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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228화 (22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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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엉겁결에 시작한 기도는 역시 엉겁결에 마친 아멘으로 끝이 났다.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줌마의 목소리가 울먹거리기에 까닭 모르게 나 역시 숙연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그녀는 그릇을 챙기고 있었다.

"저기.... 방금 그 기도가 무슨 뜻입니까?"

태어나 여태까지 교회라고 하는 곳을 가본 적은 정말 손에 꼽았다. 어렸을 때 내당리 살 적에 군종들이 매년 행하는 부활절 행사에만 참여해봤던 터라 기도라든가 그런 건 정말 몰랐다. 최근에는 주인님 때문에 종종 끌려나가고 있어서 기도가 끝날 때 아멘으로 끝난다는 것 정도라는 걸 아는 게 유일한 지식이랄까.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제가 굳이 답하지 않겠습니다. 저기에 모든 해답이 있으니 그걸 읽고 깨달으십시요. 사람의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입니다."

아니, 이보셔요. A라도 물으면 A에 대한 답을 주세요. A라고 물었는데 Z라고 답하니 이만한 동문서답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러나 그녀는 내가 더 묻기도 전에 쟁반을 챙겨 창고를 나가버렸고 나는 별 도리 없이 아까의 자세로 돌아갔다. 아이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다가 문득 아줌마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검은색의 표지가 번들거리는 한 두꺼운 책이 놓여있었다. 손을 뻗어 그것을 들어본다. 표지에 금박으로 적힌 글씨를 읽어본다.

"개역개정 우리말 성경"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펼쳐본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는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맨 위를 보니 사도신경이라고 적혀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 사람의 이름이 "빌라도"인 모양이었다. 아까 그 아줌마는 빌라도처럼 나도 용서하겠다고 했다. 예수를 죽게 했다면 기독교 입장에서는 아주 그냥 쳐 죽일 놈일 텐데... 그런 사람을 용서한다고? 예수는 보통 대인배가 아닌가 보다. 얇디얇은 종이를 팔랑거리며 넘겨본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적힌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그 아줌마는 여기에 해답이 있다고 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빠르게 훑어본다. 손바닥만 한 창을 통해 들어오던 빛이 불그스레 해질 때까지 꼼짝도 않고 그러고 있었다.

이런 거짓말쟁이. 여기 해답은 개뿔.... 도무지 모를 이야기만 잔뜩 적힌 그 책에서 빌라도가 누구이고 뭐 하는 놈인지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이런 거는 좀 PDF파일 같은 걸로 제공되어서 맨 위에 검색 기능 같은 거 달아놓으면 좀 좋아? 투덜거리며 책을 덮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소리가 났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은 바텐더였다. 그는 조그만 손가방 같은 걸 가지고 들어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뭐 하고 있나?"

"뭐...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이걸 읽고 있었는데요. 여기 해답이 있다고...."

손에 든 성경을 내보이자 그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백날 그딴 거 읽고 자빠져 있는다고 해답이 나올 것 같아? 그 책이 나온 지 이천 년이 다 되어가고 그동안 읽은 인간 수십, 수백억이 넘어가는데도 이 세상이 답이 안 나오는 걸 보면 모르겠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책이 문제라는 걸 일찌감치 인정해야 하는데 말야. 안 그래?"

"......신성모독쯤 되겠는데요, 그 발언은?"

"뭐, 어때. 내가 믿는 종교도 아닌데."

"하긴... 힌두교 믿는다고 그러셨지요. 시바신을 모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다가 문득 뭔가 이상했다. 이 사람이 뭘 믿는지 내가 어떻게 알지? 언제 들었지? 흠칫 놀라 그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내 대답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더니 주사기 두 개를 조립했다.

"뭐..하시게요?"

"피 좀 빌리세."

"에엑?"

그는 고무줄을 꺼내 내 팔을 묶고 주사기를 꽂아 피를 좀 뽑아갔다. 그리고 누워있는 소란이라는 아이의 팔에서도 마찬가지로 채혈했다. 방금 주사를 놓은 부분을 가리키더니 나보고 계속 누르고 있도록 했다. 작은 앰풀에 피를 나누어 담는 모습을 보며 물어본다.

"대체 그걸 어디에 쓰시게요?"

"뭐, 다양하게 쓰이겠지. 자네가 궁금해할 건 아냐. 이제 자네를 보기도 어려울 테니 미리 받아감세."

"보기 어렵다뇨?"

그러고 보니 그의 복장은 아까와 좀 달랐다. 낮에 올 때는 가운차림에 슬리퍼 차림이었는데 지금은 두툼한 트레킹화에 등산바지와 조끼 같은 걸 입고 있다.

"어디... 가세요?"

"응. 여기 더 이상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 어젯밤에 무슨 난리가 있었는지 자네는 모르지, 아마?"

"에? 어제요?"

대체 어제라는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걸 나한테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겠냐, 이 사람아.

"자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저 아이에게 해보고 싶은 실험이 좀 더 있었는데 말야... 일단은 물러나야겠군. 잘 있게."

"에? 해보고 싶은 실험....이라뇨?"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쳐다보려는데, 갑자기 귀청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침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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