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206화 (20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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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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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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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부산에 돌아가 보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예린은 리사에게 직언을 했다. 돌려 말한다고 못 알아들을 리사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린의 걱정대로... 리사는 한석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가 보세요. 저는 태호 씨랑 전화 좀 하고 있을 테니까요."

예린은 신발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몸을 폈다. 붉은색 십자가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아올라 있고 그 아래로는 푸른 색의 네온사인으로 표시된 큼지막한 글씨가 보인다.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 예린에 거기에서 시선을 돌려 리사를 본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어둠 속을 향해 달려갔다. 여자치고는 큰 키인 데다가 다리가 길쭉한 그녀는 날듯이 움직여 담장 밑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벽에 몸 최대한 붙였다. 주변을 확인하고 벽을 딛고 단번에 뛰어넘는다. 건물의 그림자를 벗 삼아 위치를 바꿔가며 움직인다. 교회 마당과 주차장,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놈들을 제압하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정찰이므로 애써 억누른다.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꺼진 내부 복도를 지나 구석구석을 살핀다. 커다란 예배당은 텅 비어있었고 몇 개 층은 단체 숙소처럼 되어 있어서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거기에도 보초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방 안의 사람들을 감시하느라 바깥쪽은 잘 보지 않았다. 더 위로 올라간다. 가장 최상층에 이르자 경계가 심해졌다.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 어떤 사무실을 확인한다.

"하앙... 아앙..."

"허허.. 이 년 보게나. 아주 좋은데~ 허허."

음란한 소리에 예린은 자기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린다. 저게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들었지만, 그녀는 아직 직접 겪어 보질 못했다. 그렇지만 방 안의 풍경은 그리 아름다운 모양이 아니었다.

벌거벗은 중년 남자가 어린 여자아이를 소파에 눕혀놓고 올라타 있었다. 공허한 표정의 아이는 결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리를 벌리고 기계적으로 남자의 몸짓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이는 이제 갓 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결코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지금 예린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내려간다. 아까 가보지 않은 지하로 가본다. 불이 켜진 방이 하나 있다. 보초가 둘이나 서 있다. 그렇다는 건 뭔가 감추고 있거나 중요한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일 터. 환기구를 통해 슬쩍 들여다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굳히고 말았다.

'바텐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그러나 그건 분명히 바텐더였다. 혼자 중얼거리며 무언가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보고 예린은 경악했다.

'송 부장이 처리한 게 아니었나?'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바텐더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틀림없이 그놈이다. 예린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저 자에 대해 생각했다. 통칭 바텐더. 이름도 성도 아무도 모른다. 말투로 보아 일본에서 부산으로 밀항했으리라 추정될 따름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나 하층민 끄트머리에 접촉한 그는 처음에 피로회복제와 같은 각성제류를 만들어 지하 경제에 유통시켰다. 항만이나 산업단지 등에서 고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흔해 빠진 피로회복제로 알고 바텐더의 약을 많이 복용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전에 없던 총기가 솟아나고 활력이 넘친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물론 주먹을 빌려주는 사람들 역시 앞다투어 바텐더의 약을 찾았다. 약의 이름을 묻자 바텐더는 그것을 칵테일이라고 불렀다. 백당은 그를 불러들여 이런 약을 퍼뜨린 저의를 물었다. 이 때, 바텐더를 대면한 사람이 리사와 송 부장이었고 리사의 등 뒤에는 예린도 있었다. 자신에게 투자하길 요구한 바텐더는 자신의 미끈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딱 한마디 했을 뿐이다. "재미있잖아."

여기에서 리사와 송 부장의 의견이 갈렸다. 그 이전부터 조직일에 관여를 하긴 했지만, 나약한 신체와 여자라는 이유로 좀처럼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뒤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의 참여를 하고 있던 리사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을 이유로 바텐더의 약을 반대했다. 그녀가 보기에 저 정체 모를 남자는 물론 그가 만든 음료는 분명 탈이 날 독배였다. 그러나 송 부장의 의견은 달랐다. 바텐더가 거의 무상이나 다를 바 없는 가격으로 시중에 유통시키고 있는 칵테일에 대한 지분을 자신들이 확보한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사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이견을 조율하느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그 사이에 칵테일은 부산은 물론 근처 양산이나 울산, 창원까지도 칵테일의 전파는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바텐더는 다른 조직에 투자를 유도해보겠노라며 백당을 떠났다.

그러다 최초로 사달이 난 것이 바로 울산이었다. 백당의 하위 조직에 속하는 한 이권 단체에서 내부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사소한 다툼이었으나 어느 순간 조직 내 항쟁으로 비약되더니 울산 조직이 괴멸에 이르기까지 갔다. 리사의 라인에 기대고 있는 소조직의 오야가 칵테일을 금지하도록 하자 이미 칵테일에 맛 들린 부하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약을 못 하게 했다는 이유로 하극상을 저지른 일에 대해 백당은 엄밀히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리사는 그전부터 칵테일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가진 자료를 모두 공개했다. 칵테일은 일시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각성시키고 활력을 가져다줄지언정 지속적으로는 불안감, 무기력, 정신 이상 등을 가져올 수 있는 환각 물질이 기본 베이스였다. 자료의 출처는 부산지방검찰청. 나름 검찰에 줄을 대고 있던 리사만이 가져올 수 있는 특급 정보였다.

리사의 아버지는 즉각적으로 그녀의 의견을 수용했다. 당장 바텐더를 잡으라는 지시가 송 부장을 향해 떨어지고 리사는 예린을 통해 조직 내 칵테일의 전파 및 중독 정도를 조사했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끔찍했다. 그들의 생각보다 칵테일은 깊고 넓게 퍼져있었다. 부하들과 지하 경제의 사람들에게 칵테일을 끊게 했더니 당장에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변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이 언론이나 공권력이 눈치채게 된다면 지하 경제를 향한 강한 압박이 들어올 게 분명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 부장은 바텐더를 잡아 처단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깊이 중독된 사람들을 되돌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직 내의 불화가 심해지고 조직원의 이탈은 물론 하극상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때부터 리사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기 시작했고 혼란이 수습되는 데는 거의 일 년이 걸렸다. 단 한 명의 약쟁이가 저지른 일치고는 너무 깊고 커다란 비극이었다.

'지금 뛰어들어 저 새끼를 잡을까?'

예린은 몹시 갈등했다. 비록 가드가 둘이 있다고는 하나 그녀의 실력이라면 어떻게든 제압하고 바텐더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렇게 했다가는 난리를 피워 한석의 수색은 물 건너간다. 애초에 이 교회에 잠입을 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리사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각이나 판단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기에 일단은 리사의 지시대로 하기로 했다. 몸을 빼내어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 마침 구름이 달을 가렸는지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도 많이 사라졌다. 시야는 많이 제한되었지만 그녀가 은밀히 움직이기는 더 좋았다.

"징벌실"이라고 팻말이 붙은 방이 나타났다. 경비 인원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자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의 구조는 특이했다. 안쪽에는 철창으로 된 감옥 같은 시설이 있다. 그 안에 피투성이의 남자가 누워있고 그 옆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예린이 발걸음 소리를 죽여 철창에 다가갈 때까지 여자는 미처 이쪽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철창에 다가가자 그제야 예린을 알아차리고 화들짝 놀란다. 그녀는 발악하듯이 외쳤다.

"또... 또 온 거야?! 이만하면 됐잖아! 빨리 의사를 불러달라고!"

여자가 자신의 몸으로 남자의 몸을 덮으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예린은 바닥에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피투성이인 데다가 방 안이 하도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체격이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녀가 찾던 사람이 맞았다. 가슴이 쓰렸다. 철창의 출입구로 다가간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을 살짝 흔들어 본다. 강하게 충격을 몇 번 가하면 문짝 자체를 뜯어낼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랬다가는 소리가 심하게 날 것이고 적들이 눈치채게 된다. 자물쇠를 따야 하나... 예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철창 안의 여자에게 묻는다.

"...머리핀이나, 뭐 그런 거 없습니까?"

"없어요. 당신은 누구죠?"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예린의 방문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는 이내 침착해져 있었다. 적어도 이쪽이 적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구하러 온 사람이라고 아주 좋아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대단히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린은 신발 뒤축에 숨겨준 단도를 꺼내어 자물쇠를 따기 시작했다. 살상용이라 매우 날카롭기는 하지만 문따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린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거기 누워있는 최한석 씨를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분을 찾는 분이 있어서..."

그러자 징벌실 안의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눈은 예린을 향해 있었다.

"움직임이 상당하군요. 결코 일반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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