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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붙어 있던 몸이 떨어졌다. 애액이 흘렀던 부분은 끈적한 느낌을 남겼다. 머리가 식고 나자 미애가... 아니, 송화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부? 검사....?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인지라 나도 모르게 송화를 빤히 쳐다보게 된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나에게 쏘아붙였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죠?"
"아...아뇨. 그게 아니라....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 해서....."
송화는 바닥에 떨어진 신문지를 주워 내 물건을 닦아주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안쪽을 닦아준다. 그녀는 수줍어하며 처음에는 다리를 벌리려 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거부하진 않았다. 어차피 여기다 대고 할 짓 못할 짓 다 한 마당에 지금 와서 뭘 부끄러워하나.
"검...사라고 하셨죠?"
"그래요. 들은 그대로예요."
"우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송화에게는 좀 불편한 모양이다.
"뭐가 우와, 에요? 우와는."
"아뇨. 검사는 처음 봐서요. 음.. 그냥 막연히 TV에서 검은 옷 입고 나오시는 분들이라 생각했는데 신기해요."
"신기해요?"
"네."
"....그게 끝? 뭐 다른 생각 드는 거 없어요?"
"....무슨 생각이요? 어라? 방금 했는데 또 하시게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송화를 빤히 쳐다본다. 눈싸움을 하자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네?"
"아뇨. 신경 쓰지 마요. 혼잣말이니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기에 그냥 앉아있기도 벅찼다. 소란이가 누워있는 바닥의 옆에 드러누웠다. 송화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옆에 누웠다. 그녀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물었다.
"왜 등을 보이세요?"
"....그럼 어떻게 누우라고요."
"이쪽으로 오세요. 어차피 벗고 있어서 춥잖아요."
"신문지 덮으면 돼요."
고집을 세우는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뭐, 딱히 이상한 생각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옷이 없는 상황에서 체온을 나누자는 이야기였는데....
"그럼 전 소란이 안고 자야겠네요."
우편에 누워있는 소란이를 살짝 당겨 팔 안에 넣었다. 잠꼬대를 하는지 웅얼거리며 내 품에 파고드는 녀석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자 왼편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 권하지도 않다니, 뭐 사람이 그렇게 매정해요?"
"에? 싫으시다길래...."
"누가 싫다 그랬어요?"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쫑알거리며 그녀는 내 왼쪽 품에 파고들었다. 진작 이럴 것이지. 앙탈하고는.... 송화에게 팔 하나를 내어주고 물어보았다.
"그러면 여기 이 망할 교회인간들 잡으러 온 거예요? 사이비 종교 처단하러?"
검사라.... 검사라면 사법의 최고봉 아닌가. 이제 니들은 다 죽었다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그러나 송화의 대답은 내 예상을 조금 빗나갔다.
"글쎄요."
맥이 풀린다.
"글쎄라뇨?"
"현행 법규상 사이비 종교를 처벌할 방법은 없어요. 종말이 온다고 떠들어도 저 사람이 정말 그렇게 믿고 떠드는 거라면 그걸 처벌할 방법이 없다구요. 다른 사람들이 그걸 믿고 따르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죄가 안 돼요."
기가 막혔다. 저렇게 헛소리를 떠들어 대는 게 죄가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따져 묻게 된다.
"사람들은 현혹하고... 마귀라고 칭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꼬드겨 내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막 그러는 데도 그게 범죄가 아니면 뭡니까?"
흥분한 나와 달리 송화는 지극히 침착했다.
"그러니까... 그걸 자신의 신념으로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걸 죄라고 물을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만약 한석 씨가 저한테 돈을 빌려줬어요. 저는 갚을 거라고 이야기했구요. 그런데 제가 갚지를 않아요. 그런데도 저는 계속 갚고는 싶다고 이야기하죠. 한석 씨 입장에서는 제가 처음부터 떼어먹을 생각으로 안 준 거 아니냐고 주장하더라도 제가 갚고는 싶은데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사기죄가 아닌 거예요."
"하! 무슨 비유가 그래요?"
"마찬가지로 얘네들도 마찬가지예요. 교리가 그렇다. 우리는 교리를 믿고 따르는 거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구요. 교리에서 돈을 바치라고 했다. 교리에서 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 그건 그대로 합법적인 종교활동이죠. 현행법은 그래요. 그 사람이 속으로는 종말이 올 거라고 정말 믿고 있지 아닌지는 입증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왼편에 누워있는 소란이를 슬쩍 바라본다.
"그럼 이 아이의 엄마가 가족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간 것도.... 자기 딸을 교회에 강제로 데려오려고 하는 것도.... 그게 다 합법적이란 말입니까? 정말로요?"
"그건 그 여자의 자유 의지 아니겠어요? 자기가 믿고 싶어서 믿는 건데 누가 말리죠?"
"크아아아아아악!!!"
대갈통이 터져버릴 것 같다. 약 기운이 아직도 남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머리가 나빠 법이라고 하는 고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에게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고함만 질러대고 말았다.
"그러면... 사람들을 납치하고 이렇게 감금하는 건! 그것도 합법이에요?"
"그건 엄연히 범죄 맞죠.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사이비 종교, 그 자체는 처벌이 어려워요. 불법 행위는 불법 행위 자체로만 판단되어 처벌되지요."
미치고 팔짝팔짝 뛰고 싶었지만, 내 두 팔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들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문득 다른 부분이 생각나서 말했다.
"그럼 약을 하고... 여자들을 그렇게 한 건요?"
"벌써 잊었어요? 나랑 소란이를 겁간한 게 누군지?"
".........접니다만..."
"그럼 그걸로 교회 처벌은 안 되겠네요. 강간으로 잡혀 들어가도 한석 씨만 잡혀가지 교회는 죄가 없어요."
"끄아아아악!!"
속에서 열불이 난다. 나쁜 놈 잡아넣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문득 다른 부분에 생각이 닿았다.
"약은요?! 그래요. 그 이상한 약을 만들고 있잖아요. 여기서!"
이제야 내가 제대로 된 포인트를 짚은 모양이다. 내 팔에 얹어진 송화의 머리가 끄덕거리는 게 느껴졌다.
"맞아요. 그 약을 처벌하려고 제가 잠입한 겁니다."
"아아....."
마약조직범죄부라고 했던가. 어쩐지 그녀는 처음부터 약이라든가 증상 같은 것에 빠삭했다. 이제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게 자기 전공이기 때문이다. 다시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요, 원래 검사들이 이렇게 막 잠입수사하고 그래요?"
"아뇨."
아주 산뜻한 대답이 금방 돌아온다.
"........방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부정하셨는데요?"
"내가 특이한 거예요. 아무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요. 사무실에서 수사관들이 잡아온 녀석들만 처리하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다구요."
"헤에... 그러시구나. 그럼 왜 이렇게 험한 꼴을 당하면서까지....."
송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과 소란에게는 미안하지만 아까부터 계속 말했듯이 이 교회는 제 관심사가 아니에요."
"그러면요?"
"그놈.... 그놈을 잡기 위해서 여기 들어온 겁니다."
"그놈이라니...? 그 원 목사요?"
"아뇨. 한석 씨도 봤잖아요. 그 노인. 통칭 바텐더. 이름 불명에 국적 불명. 나이 불명. 돈만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약을 제조해주는 미친놈. 녀석이 만들어낸 신종 마약만 해도 열 종이 넘어요. 재일교포 출신이라 원래 일본에서 활동하던 놈인데 2년 전 부산을 통해 밀입국했다는 첩보가 있었죠. 그때부터 녀석을 추적하고 있었어요. 이제서야 놈을 마주하게 되는군요."
"아...."
여태까지 차분하고 나직했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왔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그의 행적이 이곳에서 끊겼어요. 이 교회에 딸린 기도원이라는 곳에서 약을 대규모로 소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쪽을 알아내야 했어요. 그렇지만 어찌나 폐쇄적인지 외부에서는 접근할 도리가 없더군요. 그래서 교회에 끌려간 언니를 가진 장미애라는 사람의 신분을 빌려 들어왔었지요. 듣기로 이 교회에서 믿음을 증명하면 기도원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바텐더를 발견하고 그 기도원을 덮치는 게 제 일차 목표예요."
"기도원? 믿음을... 증명해요?"
"방법은 나도 아직 모르겠지만요."
"으음.... 아마도 재산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소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송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저도 그렇게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돈은 충분히 냈다고 생각했는데도 기도원으로 쉽게 보내주지 않더군요. 차일피일 대답을 미루기에 신도들을 선동해서 기도원을 공개하라는 주장을 한 번 했더니.... 휴우. 그다음은 당신도 알다시피죠."
"아...."
집회에서 나와 같이 묶여 있던 그녀... 그리고 징벌실에서 김 권사를 대하던 그녀의 태도가 이제서야 납득이 되었다. 바텐더에게 끌려와서 내뱉었던 "들켰다"라는 말의 의미도 이제 알겠다.
"제 연락을 사흘 동안 받지 못한다면 수사관들이 출동하게끔 되어있어요. 바텐더에게 끌려가기 전에 이미 한번 연락을 취했으니 일단 여기서 이틀만 더 버티세요."
"그 전에 굶어 죽을 것 같은데요..."
"그러는 분이 잘도 해대던 걸요."
딱히 비난하는 어조는 아니었지만, 조금 부끄러웠기에 입을 다물었다.
"기도원에 가지 못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서 바텐더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까지 되고 마는군요."
수사에 온몸을 던진 그녀는 말 그대로 몸을 망치게 되었다. 약을 투여 당한 것은 물론 처음 보는 남자에게 강간 아닌 강간을 당하고 말았다. 물론 그다음은 화간이 분명했지만..... 책임감이 들어 그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해하지 마요. 더 비참해지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엄격한 느낌의 힘이 담겨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집단에 뛰어들면서 대체 그녀는 어떤 각오를 다졌을까. 그 각오에.... 그런 끔찍한 행위에 대한 각오도 있었을까. 그것까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비극에 일조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에 나는 사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사과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뜻에 찬성을 표했다.
"네. 앞으로 미안하다고 하지 않을게요."
"........지금 사람 놀려요? 좀 미안해하거나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여봐요."
"책임....이요?"
"뭐야, 그러면... 아예 입 싹 닦으려고 했단 말야?!"
갑자기 갈비뼈 쪽이 화끈거린다.
"아야야.. 그렇다고 꼬집으실 것까지는...."
"흥!"
그녀는 다시 등을 돌렸다.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심산인가 보다. 그 상태에서 송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경고예요. 절대로 나서지 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단은 참고 기다리라구요. 이틀... 딱 이틀이면 돼요."
"그렇게 송화 씨만 믿으면 되는 건가요?"
"휴우..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맘이 편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든가. 암튼 지난번처럼 나서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제발."
"네, 네. 알겠습니다. 검사 나으리."
"쳇."
그녀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내 팔을 베고 있는 머리를 빼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는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잠이 든 모양이다. 양쪽의 여자들이 내 팔을 가져가서 꼼짝달싹 못 하게 된 상태로 천장을 올려다본다. 잠이 오질 않았다. 거의 사흘을 내리 굶었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또 제정신인 상태에서 연속으로 섹스를 치르고 났더니 온몸이 텅 빈 느낌이다. 그렇게 굶고도 발기가 되다니... 인간의 성욕은 정말이지 신비롭다. 그러나 무리는 무리였다. 힘이 든다기보단... 내 몸에 원래 힘이라는 게 전혀 없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진맥진하다.
몸에서 그렇게 힘이 쭈욱 빠져나가고 나니 도리어 머리가 무섭게 회전하고 있다. 평소라면 잘 기억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백당 폭포 앞에서 누가 더 높은 곳까지 던질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며 친구들과 돌을 던지고 놀았던 어린 시절. 학교만 갔다 오면 엄마와 삼촌 등쌀에 못 이겨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으로 술 받으러 가던 국민학교 시절과 털털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던 중학교. 그렇게까지 먼 것은 아니었지만, 교통이 워낙 좋지 않아 집에서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도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중에 큰 삼촌이 사이클을 사주면서 3학년 시절은 집에서 수험준비를 했었지, 아마.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많고 엄청나게 복잡한 도시에 깜짝 놀랐다.
3학년 겨울에 이르러 엉겁결에 지혜를 만나고, 또 명희와 알게 되어 노예가 되고, 그런 와중에 유진이 과외를 시작했다. 나중에 그리되리라 전혀 예상치도 못하고 선영과 다투었고 마리를 주워왔다. 리사와 예린을 알게 되고 또 소란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지난 삶들이 그래도 내 딴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혜를 만난 이후부터는 그 많은 여자들에게 휘둘려 온 느낌이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게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두 여자에게 팔을 내주고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이게 다 내 팔자려니 싶었다.
한숨을 내쉬고 애써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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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네요.
현재 예상으로는 300화까지는 갈 것 같습니다만, 400화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