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195화 (19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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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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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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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인사가 끝나자마자 뒤쪽에 앉은 남자아이들은 벌떡 일어나며 먼저 나가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토요일 방과 후의 농구 골대는 언제나 초만원이기에 종례가 끝나는 대로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는 게 유리했다. 뒷문이 부서져라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애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출석부를 챙기다가 교탁 바로 앞에 있는 빈자리에 눈길을 던졌다. 월요일에도 무단결석을 하더니, 토요일인 오늘도 또 그런다. 조회가 끝나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소란의 아버지는 화만 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결석자가 하나 더 늘었다...

"저기, 선생님."

교실을 벗어나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따라왔다.

"반장? 무슨 일이지?"

반장이자 오늘 결석한 소란의 짝인 유진이었다. 늘 빠릿빠릿한 녀석인데 어쩐지 오늘은 상당히 주저하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저기, 그게.... 오늘은 교생 선생님 안 나오시는 날인가 보죠?"

교생? 한석을 말하는 건가, 싶어 지애는 유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하긴, 이 나이 때의 여학생들이라면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오빠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교생에게 관심을 가질 만도 했다.

"아니, 원래 나오는 날인데... 글쎄. 아침에 학교로 연락이 왔다더라구. 독감에 걸려서 못 나오겠다고."

"독감이요?"

"응. 내가 받은 건 아니고 다른 선생님이 받았는데 목이 어찌나 갈라졌는지 완전 다른 사람 목소리 같다고 하더라. 독감이면 애들한테 옮길 수도 있고 해서 나오지 말라고 하셨대. 원래 교생은 휴가가 없지만 교장 선생님 사후 결재만 받는다면야, 뭐.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겠지. 어차피 토요일이고.... 집에서 푹 쉬고 오라고 했대."

지애는 되도록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평소 공부 잘하고 똑 부러진 유진이를 좋게 보아왔는데 그런 녀석이 교생 선생에게 관심이 있다는 게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유진의 다음 말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까 쉬는 시간에 전화해도 안 받던데요? 혹시 어디 병원이라도 입원할 정도로 아픈 건가요?"

"글쎄..... 근데 네가 최 선생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

유진도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는 말끝을 흐렸다.

"어..그게....그러니까......원래 좀 알던 사이라서요."

"흐음.. 그러니?"

지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유진의 표정을 보니 이거 보통 사이가 아니다 싶은 여자의 직감이 작동한 것이다. 한석은 대체 이런 어린 녀석한테까지 마수를 뻗친 걸까. 역시 그 녀석은 연상보단 연하를 좋아하는 타입인가. 그래서 나한테 관심이 ....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여러 생각을 애써 억누르며 지애는 최대한 사무적으로 답했다.

"암튼, 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야. 자세한 건 월요일에 나와서 물어보면 되겠지."

"네에."

"그럼 이만. 주말 잘 보내렴."

"안녕히 가세요."

유진은 몸을 돌려 걸어가는 지애의 등에 대고 혼자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대로 교실로 돌아가 가방을 챙겨 하교를 시작했다. 어쩔까 싶다가 발걸음을 돌려 한석의 집으로 향했다. 정말 감기에 걸려서 드러누워 있는 거라면 간호라도 해줄까 싶었다. 분명 또 혼자서 골골거리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한석의 집에 찾아갔지만 집은 비어있었다. 혹시나 싶어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한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진은 맥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이 되어 공부할 거리를 챙겨가지고 다시 한석의 집을 찾았다. 그냥 와도 되지만, 무슨 일로 왔냐고 누가 물으면 공부하는데 물어볼 게 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일부러 가방을 가지고 왔다.

"응? 니가 여긴 우짠 일이고?"

한석의 집 앞에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쳤다. 사투리를 쓰는 시끄러운 여자. 한석이가 학교에 다닐 때 항상 옆에 붙어있는 얄미운 여자. 심지어 이름도 특이한 여자였다.

"알아서 뭐하게요?"

아무래도 대답이 곱게 나오질 않는다. 그냥 지나쳐서 계단을 오르려는데 등 뒤에서 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아레 밤부터 안 뵈던데? 지금 집 비었다카이."

"아레라뇨?"

"아, 니들은 그저께라고 하던가? 암튼 금요일 밤부터 안 보이데."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유진은 우뚝 멈춰 서서 마리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유진의 시선을 받게 된 마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아레 저녁에 맥주라도 한잔 할라 켔는데 집에 없데? 어제도 아침부터 들고 나지도 않고 온종일 집 비어놓카고. 오늘도 그라네."

유진은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좋지 않은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학교에는 감기로 쉰다고 전화까지 왔다고 하는데 마리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어제 아침에도 한석의 집이 비어있었다고 한다. 마리도 토요일 날 한석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유진의 이야기를 듣더니 표정이 변했다. 서로 마주 본다. 그녀들이 아는 한석이라는 녀석은 집과 학교밖에 모르는 참 재미없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갑자기 자리를 비웠다. 게다가 정체 모를 전화로는 집에서 쉬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는데 지금 집에 없다. 그럼 대체 그 전화는 뭐고 한석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혹시 집에 무신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닌가?"

"집에요?"

"응. 고향 집에서 연락이 왔다던가...."

마리의 의견에 유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듯했다.

"혹시 거기 전화번호 알아요?"

"내는 모르는데.... 아, 언니야라면 알지도 모르겠네."

"언니?"

유진은 그때 보았던 마리의 쌍둥이 언니를 떠올린다. 어쩐지 범접하기 어려운 기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글거리며 잘 웃던 여자. 그 여자가 뭐길래 아저씨 고향집 연락처를 알까 싶어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진은 마리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마리가 전화기를 가져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예린 언니? 저, 마린데예. 예. 에. 좀 바꿔주소. 어, 딴 게 아니꼬 한석이 선배님이. 예. 아니, 뭐.. 그게...."

마리는 조금 주저하면서도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한석의 부재를 횡설수설하며 말한다. 보고 있던 유진이 답답해서 전화기를 빼앗아 들고 대신 이야기 했다.

"저, 저기요. 제가 대신 말 할게요."

"여보세요?"

"저기, 저 유진이에요. 진유진."

"어머, 유진이 학생. 오랜만이네요?"

리사였다. 전화선을 타고도 묘한 긴장감이 전해지는 것 같다. 유진은 한석이가 토요일에 학교를 빠졌다는 이야기와 정체 모를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요일인 지금까지 집에 들어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고한다. 혹시 고향 집에 내려간 건 아닐까 싶어 전화했다고 이야기했다. 전화기 너머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내 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어머님께 안부 전화 드렸지만 오빠가 왔다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고향에 간 건 아닌 모양이네요."

"안부 전화요?"

"네, 전에 뵌 이후로 사나흘에 한 번씩은 전화드리고 있죠. 왜? 무슨 문제라도?"

유진은 말문이 막혔다. 이 여자의 마수가 어디까지 이미 뻗어있는가 생각하니 바짝 긴장된다. 애써 평정을 되찾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뇨. 아무 문제 없어요."

"좋아요. 그렇다면... 유진이 학생은 오빠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죠?"

"금요일 날 학교에서 잠깐 이야기했었고 종례 때 보고 집에 왔어요."

"이야기? 무슨 특별한 이야기라도 있었나요?"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순간, 유진의 뇌리에서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토요일 날, 한석이만 결석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짝궁인 소란도 결석을 했었다. 한석과 소란이가 관련 있을 거란 생각을 평소라면 하지 않았겠지만 금요일 점심시간에 한석과 소란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에 지금은 그 사실이 꽤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새삼 생각났다.

"아니, 저기, 선영이 언니라고 있는데, 제 친언니는 아니지만 꽤 가까운 분이 있거든요. 그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선영? 누구죠, 그게?"

"그게 그러니까....."

유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우연히 알아차린 이후 아직 남에게는 한 번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한석이나 선영,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하리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라면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았다. 이게 한석의 실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소한 단서라도 필요했다.

"요새 그 언니가 아저씨한테 수업을 따로 받고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교재를 가지고...."

그러자 리사의 가벼운 탄성이 들렸다.

"아아, 그분이군요. 요새 종종 만나고 들어오시는...."

유진은 그런 쪽으로 촉이 엄청 발달한 녀석이었다. 리사가 말한 "만나고 들어온다"라는 말에서 무언가 대번에 눈치챘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잠자코 있으면서 리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암튼 그분 이야기를 했다고요? 왜죠?"

"그 언니는 원래 저희 엄마 가게에서 일하는 언니인데... 지금 일주일째 안 나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

자기도 말을 꺼내놓고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한석이 없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쩌다 선영의 부재까지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설마 선영의 실종도 한석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렇게 유진의 작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아주 바쁘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고 있는데 리사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 좀 흔하게 생각해보면, 오빠가 그분이랑 어디 좋은 데 여행이라도 간 게 아닐까 싶긴 한데요."

"뭐라구요?"

"남녀 둘이서 어디 좋은 곳 놀러 가는데 굳이 다른 사람한테 알리고 갈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괜히 분위기 망치게 말이죠."

안 그래도 지금 속에서 뭉글뭉글 자라나는 "어떤 생각"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유진은 리사의 한가로운 답변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났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긴 하지만...."

"이봐요, 아줌마. 지금 대체...."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어 유진은 씩씩거렸다. 자기가 느끼기에 이 여자도 한석과 분명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한석과 다른 여자의 사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지? 설마 자신이 잘못 봤나 싶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착 가라앉은 리사의 목소리가 유진으로 하여금 다시 긴장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제 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군요. 좋아요. 제가 가보죠."

인사도 없이 전화가 뚝 끊겼다. 갑작스러운 불통에 유진이 잠시 멍해 있자니 옆에서 보고 있던 마리가 어떻게 된 거냐고 재촉했다. 유진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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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파트는 앞으로 가끔 등장하게 됩니다. 한석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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