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193화 (19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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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는.... 목사님이 제 목을 통해서 주입해주시더군요. 마귀를 주입할 수 있을 정도로 그걸 가지고 있는 목사님은 그러면 사탄인가 보네요?"

"네 이놈!!!! 천벌 받을 소리를!!! 독사의 혀를 뽑아내 버릴까 보다!"

그녀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태평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그녀에게 독설을 더 퍼부었고 그녀는 거의 눈을 까뒤집어질 정도로 흥분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말로는 내게 밀린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녀는 뒤에 있던 김 권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런 놈은 당장 끄집어내 돌로 쳐 죽여야 됩니다, 권사님!"

"박 집사님. 진정하세요. 저게 다 마귀 들린 자의 소리니 일일이 반응하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집사님의 영을 오염시킬 따름입니다."

"그러면 우리 소란이라도 꺼내주십시요. 저 마귀 들린 자랑 제 딸아이랑 같이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습니다!"

얼씨구. 그래도 지 딸이라고 걱정하긴 하나보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는 자기 말 들어야 꺼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걱정의 방향이 영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개기면 소란이라도 나갈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김 권사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소란 엄마가 달려들었지만 김 권사는 주저했다.

"아직 소란 양의 마음이...."

그러자 소란 엄마가 더 바싹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책임지고 설득하겠습니다! 전처럼 무단으로 나가게 두지도 않겠습니다!"

김 권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노라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말했다.

"아이를 놓고 뒤로 물러나세요. 반대편 벽에 가서 붙으세요."

"그러죠."

난 소란이의 어깨를 짚고 슬쩍 앞으로 밀었다. 그러나 소란이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더 달라붙었다.

"얼른 나가, 소란아."

"싫어요! 차라리 선생님이랑 여기 있을래요!"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소란을 보면서 소란 엄마는 더 발광했다.

"에구! 결국 내 딸이 마귀에게 홀렸구나! 권사님! 이를 어쩌면 좋나요! 아아!"

"침착하세요. 마귀는 진정한 마음의 기도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란 엄마는 그 자리에 털썩 꿇어앉더니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여, 저 마귀를 몰아내 주소서. 내 딸을 구해주소서." ...... 듣고 있는 마귀로서는 웃기고 기가 차기 짝이 없다.

"소란양. 그리고 미애 씨.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저 마귀 들린 자를 멀리하고 이쪽 문으로 가까이 오세요. 두 분은 나가게 해드리겠습니다."

김 권사의 말을 듣고 미애가 날 쳐다보았다. 난 턱짓으로 그녀보고 얼른 나가라고 했다. 미애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내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문으로 다가갔다. 난 소란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란아. 여기 있으면 네가 너무 고생해. 일단 나가 있어. 어머니도 설득해보고."

"선생님도 보셨죠. 우리 엄마는 이제 완전히 답이 없다구요."

"그래도 네 어머니잖아."

"그래서 더 싫어요."

내 배에 얼굴을 푹 파묻는 소란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고집이 상당한 녀석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 권사는 문을 열어 미애를 꺼냈다. 달려들어서 저 여자를 제압하고 도망을 쳐볼까 싶은 유혹도 느꼈지만 만 하루 이상을 꼬박 굶은 데다가 소란이까지 엉겨 붙어 있어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철창이 잠겼다. 김 권사는 나와 소란을 번갈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한석 씨와 소란 양을 위해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마음속의 악을 물리치고 현실을 보세요."

"예에, 아무렴요. 악은 물리쳐야지요. 그게 어떤 악이냐가 중요하지만..."

비꼬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김 권사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여전히 바닥에 꿇어앉아 기도 중인 소란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미애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가기 직전 미애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지만 애써 손을 들어 인사를 해주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 다시 하루 동안의 방치가 이어졌다. 여전히 식사는 없었고 소란과 나는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드러누운 체로 꼼짝도 하지 않고 지냈다. 시간이 정말 안 간다. 한 시간쯤 지났다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아직 30분도 안 되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 어찌나 배가 고픈지 위장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죽어도 흐를 것 같지도 않은 시간을 억지로 보내며 뒤척거리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선생님, 자요?"

"아니. 너는?"

"안 자니까 물어보죠. 주무세요?"

"나도 안 자니까 대답하는 거야."

"쿡...."

아침에 어머니와 그렇게 이별하고 난 후 소란은 온종일 말이 없었다. 나도 애써 말을 걸지 않았다. 뭐라고 한들 위로가 되겠는가. 자신의 친엄마가 제대로 돌아버린 사람이라는 걸 눈앞에서 확인한 사람에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게 먼저 말을 걸고 웃기까지 하고 있었다. 많이 좋아졌다. 물론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없고 웃음소리도 낮았지만 말이다. 녀석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좀 뜸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유진이 알고 지내신 지 오래 되셨어요?"

"갑자기 걔 이야기는 왜?"

"그냥요. 심심해서요."

"심심하면 자."

"치잇-. 미애 언니한테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기도 하셨으면서..."

"그거야 궁금하니까 그랬지."

"저도 궁금하니까 물어보는 거예요."

"에휴.... 요즘 애들은 왜케 말빨이 좋냐."

미애의 말이 맞았다. 얼마나 장기전이 될지 모르는 이 싸움에서 괜히 입을 열어서 체력을 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소란이 말도 맞았다. 무진장 심심하고 지루했다. 감정의 밑바닥에 깔린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난 일부러 더 쾌활하게 대답했다.

"작년 말에 과사에서 과외 소개받아서 갔거든. 유진이네. 그때 처음 본 거야."

"흐음, 정말요?"

"내가 뭐하러 거짓말하겠어."

그러자 소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소란이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이한테는 좀 미안하네요."

"뭐가?"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어 소란이 쪽을 돌아보았다. 내 쪽을 향해 돌아누워있는 그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소란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아주 잘 보일 만큼 바특한 거리였다.

"어쩐지 새치기하는 기분이랄까요."

"뭐라고?"

"그게 조금, 미안할 따름이에요."

귀에 닿은 말을 뇌까지 전달하여 해석하느라 시간을 꽤 지체하고 있었다. 내가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소란이는 "꺄아, 어떻게 해." 이러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했다.

"자...잠깐, 소란아.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팔을 뻗어 소란이의 손을 잡자 녀석의 반면이 드러났다. 붉게 물들어 있는 얼굴은 마치 잘 익은 사과 같았다.

"서...선생님은, 유진이가 선생님 좋아하는 거 모르세요?"

"어? 어..... 그거야, 뭐...."

알지, 모를 리가 없지. 내가 아무리 둔탱이, 얼빵이 최한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지만 유진이 고것이 하는 짓거리가 아주 노골적이고 대놓고 어택인지라 모른 체하는 거 자체가 고역이고 힘들 정도니 말이다. 밤에 데려다 주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질 않나, 아무리 땀 닦는 거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를 드러내 놓지를 않나.....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순간들뿐이다. 그러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보기라도 한다면 변명 한마디도 못 하고 쫓겨나더라도 할 말이 없을 만큼의 초대형 사건이다. 새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저도 조금, 아주 조금 좋아하고 있었어요."

"아아...."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 어린 소녀의 수줍은 고백이 이어졌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진이에게 선생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제가 받지 못하는 과외를 받는다는 거에 대해 부러워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선생님과 단둘이 함께 있을 유진이가 부럽더라구요."

녀석은 눈을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 둘뿐이었고 어떤 다른 소리도, 어떤 다른 이도 없는 완벽한 적막,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건 소란의 작은 목소리뿐이었다.

"제가 여기 끌려올 때 막아주신 거를 보고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죄송스러우면서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선생님이랑 이렇게 같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 이런 생각 하면 벌 받겠죠?"

"아니야. 누가 널 벌하겠니."

어린 소녀가 난데없이 끌려가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그렇게 했으리라. 딱히 소란이를 위한다기보단 어린 여자를 보호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게 소란에게는 꽤 큰 영향을 주고 말았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이랑 밤늦도록 이렇게 단둘이 누워 있는 거 알면.... 유진이가 진짜 질투 많이 할 거예요."

반짝거리는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은 정말 순진무구했다. 확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손가락을 들어 녀석의 이마를 가볍게 밀었다.

"어이어이. 너랑 나랑 여기 있는 건 그 사람들에게 끌려와서 억지로 갇혀 있는 거고, 드러누워 있는 건 몸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건데.... 그렇게 앞 뒤 문맥 다 자르고 말하면 오해할 거 아냐."

"오해 좀 하게 해볼까요? 유진이 펄펄 뛰게?"

"얀마!"

그제야 소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후후. 농담이에요. 그냥 지금 유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

"유진이랑 많이 친한가 보네? 원래부터 알던 사이야?"

"아뇨. 고등학교 예비소집일 처음 만났어요. 그때 같은 줄에 서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주욱 지금까지..... 알고 지낸 지 몇 달 안 되었는데도 중학교 때 친구들보다도 친해진 거 있죠? 좀 신기해요."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이는 신기하다고 했지만 난 충분히 그러리라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자기 어머니의 성을 따서 쓰고 있는 유진이에게는 부정(父情)이 결핍되어 있고, 종교에 빠져 가족도 내팽개치고 나가버린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소란이에게는 모정(母情)이 결핍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 말이다. 유진이 성격상 자신의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테고 소란이도 유진에게 자신의 가정사를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서로는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자신에게 결핍된 점을 가지고 있는 서로에게 끌렸을 게다. 결핍된 사람은 동류를 알아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란이가 내 품으로 파고들어 와 안겼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그 작은 몸이 나에게 밀착된다. 그런 고백 직후의 포옹이라 조금 두근거렸다.

"어... 소란아....."

"유진이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은 선생님에게 기대고 싶어요. 이것도 나중에 유진이에게는 비밀로 해 줄게요. 정말이에요."

"그래. 알았어."

비록 이제는 울지 않았지만 소란의 말투는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여태껏 눈물을 너무 많이 쏟아서 더 쏟을 눈물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어린 양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게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부르짖던 김 권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진정 눈이 있다면 이렇게 서글프고 가녀린 어린 양을 왜 못 보는 걸까. 어미조차 잃어버리고 소리 없이 우는 이 어린 양을......

타칭 "마귀들린 자"가 팔을 뻗어 길 잃고 제 품으로 날아든 어린 양을 감싸 안았다. 배가 꼬르륵거리고 있느라 전혀 폼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의 체온이 상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애써 잠을 청했다. 꼼지락거리며 내 품으로 자꾸 파고드는 녀석 때문에 신체 한 부위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저 등을 쓸어 내리고 토닥여 주었다. 이토록 작디작은 어린 양을, 내가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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