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136화 (13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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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깜짝 놀랐지만 나 역시 깜짝 놀랐다. 황당한 마음에 녀석을 돌아보자 녀석이 몹시 쓸쓸한 표정이 되어 말한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허락은 아직 받지 못했어요. 제가 너무 어려서... 집에서 반대가 심하거든요. 그래서 이이와 함께 저희가 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일단 애라도 하나 만들어 돌아가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으시겠죠."

야, 인마! 발로 소설을 써도 그런 황당한 이야기보다는 더 잘 쓰겠구만!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그걸 믿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쯧쯧쯧...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모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집을 나오면 쓰나, 색시."

"사랑이 죄인가요, 뭘."

유진이가 여상스럽게 대꾸하자 남자는 끌끌거리면서도 우리의 사정을 보아주겠다고 했다. 입을 열면 초를 칠 게 분명하기에 나는 그저 잠자코 그의 안내를 받아 따라 나섰다. 그는 자신이 이 농장의 작업반장인 윤 씨라고 소개했고, 원래 인부들은 커다란 숙소 하나에 다 같이 머물지만 우린 특별히 방을 하나 내주겠다고 했다.

"여기서 지내슈. 좀 훅하긴 해도 지내기 나쁘지는 않을 거외다."

그가 우리보고 들어가라고 한 건물은 다 쓰러져 가는 곳간 같은 거였다. 시멘트나 벽돌집도 아닌 흙벽을 바른 건물이었다. 거의 내 나이 정도는 충분히 되어 보이는 집이었다. 그렇지만 요근래 유진과 나는 산속에서 텐트와 침낭을 두고 여러 날을 지내온 터다. 지냈던 나날에 비하면 이 흙벽 바른 외양간 닮은 공간도 아주 궁궐 같았다. 유진은 무척 감사하다며 그에게 살갑게 굴었다. 윤 반장은 허허 웃으며 자기도 외지에 나가 공부 중인 딸내미가 있다며 유진이를 애틋하게 여겼다. 짐을 거기에 푼 우리는 신문지를 구해다가 바닥을 새로 깔고 눅눅한 이불을 받아다가 햇볕에 널기도 하면서 거기서 지낼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염소농장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원래 이 농장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 오십 대 아저씨였는데 우리의 유입으로 그곳의 평균연령은 대번에 확 떨어졌다. 유진은 윤 반장의 마누라인 송 씨 아줌마를 쭐래쭐래 따라다니며 인부들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했고 난 염소농장으로 바로 투입되었다. 그곳은 젊은 일꾼을 굉장히 환영하고 아주아주 아낌없이 부려 먹어 주었다. 며칠 동안 정말이지 쉬지도 않고 염소똥을 치우고 꼴을 베어왔다. 오랜만에 해보는 시골 일에 몸이 저절로 축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야야야...."

"가만있어봐요. 꿈틀거리면 파스가 잘 안 붙는단 말이에요."

해가 지면 일이 끝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유진과 지냈다. 뭐, 이렇게 얼마 있다가 또 인부들 술자리에 불려나갈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짧은 시간이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침이면, 아니, 해도 뜨기 전인 새벽이면 일을 시작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하루 중에 유진을 대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꼴을 베고 있는 들판에 참을 가져올 때라던가 밤에 방으로 돌아와 끌어안고 잠드는 시간이 우리 둘이 함께하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유진이가 내 허리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자, 이제 다 붙였어요."

"고마워."

"말로만?"

입술을 살짝 내미는 유진을 보며 슬쩍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짧게 여러 번 맞추고 이내 점점 깊고 끈적한 키스로 변한다.

"하아....."

입술에서 시작한 키스가 귓불과 목덜미로 이어지자 유진은 낮은 한숨을 토해내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셔츠 안에 들어간 손이 녀석의 브래지어를 들추고 그 아래 숨은 언덕을 탐한다. 요즘 들어 부쩍 단단해지며 부풀어 오르는 중이었다. 보이진 않지만 손끝으로 만져지는 유두의 감촉을 조심스럽게 느껴가며 유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의미를 알아들은 난 옷 안에서 손을 빼냈다. 그리고 직접 녀석의 옷매무새를 바르게 해주었다. 유진이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해요. 저기, 아직은...."

"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난 아저씨가 정말 좋아요. 그거... 알고 있죠?"

"그래."

다시 한 번, 내 목을 끌어안고 입 맞추는 녀석의 입술을 맛본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다가 떨어졌다.

그렇다. 유진과 나는, 아직 한 번도 관계를 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을 때 한 집에서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고 밤이면 꼭 끌어안고 잠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내 손길이 닿은 유진의 몸은 밤을 맞이한 나팔꽃처럼 움츠러들기 일쑤였다. 달아오른 녀석의 몸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나 역시 장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밀어붙이고 강제로 연다면 열리고 말 테다. 그렇지만 유진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 거라 생각하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 물론 키스를 거듭할수록 접촉의 면적이 넓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키스는 원래 입과 입만 만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다양한 몸과 몸의 면적을 맞대어 재어보는 게 키스니까. 근래만 해도 키스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서 쇄골쯤에 닿고 있다. 그렇게 둘이서 있으려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우리 둘은 서둘러 떨어졌다.

"새신랑, 자는가?"

"아, 아뇨. 반장 아저씨. 안 잡니다."

"바쁘지 않다면 나와서 한 잔 하지?"

"아, 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진이가 따라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바쁜데...."

파안대소하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이마에 살짝 한 번 더 입을 맞춘다. 그런 다음,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평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염소농장의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인부들은 자신의 피로를 주전자 가득한 탁주로 풀어내곤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내로 외출하는 사람도 있기에 이런 술자리는 주 5회꼴로 벌어졌다. 유진도 따라 나왔지만 녀석은 평상으로 가는 대신 부엌으로 들어갔다.

"증말 스무 살 맞는가? 자네 색시 말이여?"

자리에 앉자 남원이 고향이라는 박 씨 아저씨가 넌지시 물어본다. 여기서 나보다 어린 사람은 유진이뿐이라 하대를 듣는 일에는 익숙했다. 내 앞에 놓인 양은잔을 한번에 들이켜고 씨익 웃었다.

"좀 동안이죠? 그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아무래도 미성년자라고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 스무 살이라고 해두었다. 그렇지만 다들 믿지 않았다.

"암만 봬도 아주 얼라구만.... 이거 순 거짓부렁에 아주 그냥 도둑넘 같어."

창원이 고향이라는 최 씨 아저씨도 날 가리키며 흉 아닌 흉을 본다. 유진이는 생긴 것도 예쁘고 농장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몹시 싹싹하고 예의가 바르기에 모두 귀여워했다. 부엌으로 갔던 유진이는 수박을 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자기 이름이 들렸던 모양이다. 수박을 내려놓으며 인부들에게 한마디 한다.

"제 흉 보고 계셨던 거예요? 귀가 간질간질 하던데요?"

그러자 다들 호들갑을 떨며 부인한다. 이 아저씨들은 유진이 말이라면 꺼뻑 죽는 시늉을 예사로 한다.

"우리가 새색시 흉볼 일이 있나? 여거 색시 남편 흉보고 있었제. 암만 봐도 도둑놈 인상이여."

평상 옆에 선 유진은 날 돌아보더니 위아래로 훑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 남편인데 너무 그렇게 흉 보지 마세요. 아무리 못생겼다고 해도...."

"윽... 너는 나보고 잘 생겼다고 해줘야지."

내가 불평을 토하자 모두 와하고 웃어버렸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축사쪽에서 염소 우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소리였다. 한 마리가 굉장히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누가 시키기도 전에 가장 막내 인부인 내가 일어나서 얼른 달려가 보았다. 3번 축사에서 암컷 하나가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전부터 배가 불룩했던 녀석이다. 서둘러 돌아가 상황을 전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올려나 보네."

"그런가벼."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혔다. 나도 따라서 가려는데 유진이가 내 팔을 잡고 물어보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염소 하나가 새끼를 낳으려나봐."

"새끼요?"

유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녀석의 이런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저기 말이야. 가서 한번 볼래?"

"저도 가서 봐도 돼요?"

"안 될 것도 없지."

잠시 망설이던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왔다. 아저씨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거기 잡어!"

"불 켜고!"

이미 축사 한쪽에서는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부터 짚을 잔뜩 쌓아두어 푹신하게 만들어 둔 축사 한쪽에는 아까부터 애처롭게 울고 있던 염소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박 씨 아저씨가 칸막이를 쌓아올려 공간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아저씨는 나머지 염소들을 반대편으로 몰아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뒤늦게 도착한 날 보고 누군가 외쳤다.

"어이, 새신랑! 멀뚱히 있지 말고 먹이 더 가져와."

"먹이요?"

지시를 받자마자 낮에 베어두었던 꼴을 쌓아둔 곳으로 뛰어갔다. 한 아름 끌어안고 돌아와 보니 이미 암컷의 뒷부분에서 이미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양수인 듯했다.

"거기 앞에 쌓아둬! 염소들은 워낙 먹쇠라서 낳으면서도 먹는다구."

최 씨 아저씨의 말대로 여물통에 마른 풀을 쌓아두자 암컷 염소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정말 진정한 먹쇠로군. 이런 상황에서 먹이가 눈에 들어온단 말이야? 아무래도 염소는 사람처럼 출산의 고통 같은 게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이었다. 별로 힘을 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뭔가 꾸물거리는 게 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온다. 다리 하나가 보여."

양수가 흐르는 가운데 새끼 염소 한 마리가 불쑥 튀어 나왔다. 유진이가 탄성을 질렀다. 아저씨들이 수건을 가져다가 새끼 염소를 닦아주었다. 한 분이 수건 하나를 유진에게 주며 해보라고 했다. 유진이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염소를 닦는 일에 동참했다. 갓 태어난 새끼의 모양새가 홀딱 젖어 있어 꼴이 좀 웃겼지만 닦아놓고 나니 좀 귀엽기도 했다. 유진이가 까르르 웃었다. 어미 염소는 자기 새끼가 나오든 말든 여물통에 머리를 처박고 풀만 먹고 있었다. 저런 무심한 어미를 보았나....꼭 누구 같은데, 말은 못 꺼내겠다. 암튼 그런 식으로 5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두 마리가 더 나왔다. 아저씨들끼리 의견을 교환했다.

"이제 다 나온 거 같은데? 배 모양을 보니.... "

새끼 염소들은 어미의 아래에 매달려 열심히 젖을 빨고 있었다. 아저씨들의 말에 따르면 어미 염소는 새끼에게 젖을 잘 먹이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어서 이런 식으로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초유를 쭉쭉 빨아대는 새끼들을 보며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이번 출산기에 몇 마리가 더 나왔고 앞으로 더 나올 것에 대한 준비 같은 거였다. 그런데 염소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유진이가 외친다.

"저, 저기요. 아직도 거기가 벌름거리는데요?"

"뭐? 그럴 리가.. 벌써 세 마리나 나왔는데?"

유진이가 지적한 대로 어미 염소의 출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마리가 또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까처럼 쑥 나오는 게 아니라 걸려서 잘 못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음부의 틈에 껴서 좀 심하게 버둥거린다. 그걸 보며 아저씨 한 명이 혀를 찼다. 내가 물어보았다.

"왜 그러세요?"

그러자 최 씨 아저씨가 침을 퉤하고 뱉더니 대답한다.

"너무 많이 나와. 원래 두세 마리가 적당한데 너무 많이 나오면.... 끝에 나오는 놈은 영.... 못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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