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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35화 (13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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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처음에는 놀란 듯했지만, 이내 녀석은 입술을 벌려 나의 침범을 허용해주었다. 손가락 대신 혀가 감기고 녀석의 안으로 내가 들어간다. 내 안으로 녀석이 들어온다. 입술은 부드러웠고 혀는 달콤했다. 늘 당당했던 녀석과 달리 녀석의 혀는 몹시 수줍어했다. 그것을 살짝 빨고 이를 훑는다.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준다. 늘 하던 대로 다른 곳을 만지고도 싶었지만 여기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진도를 더 나가지 않기 위해 애써 참았다. 기나긴 키스를 마치고 서로의 입술이 떨어진다. 붉은 뺨을 감추지 못한 유진이가 날 쳐다보며 낮은 한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말했다.

"기분 나빠요."

"에...엑?"

조금 전의 키스는 아주 분위기가 좋고 매끄러웠는데.... 유진이도 전혀 거부하지 않았는데.... 내가 분위기를 잘못 읽은 건가. 내심 크게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유진이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잘하잖아. 키스."

"뭐라고?"

유진이가 두 팔로 내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

"대체 다른 여자들이랑 얼마나 하고 다닌 거야, 왜 이렇게 기분 좋게 잘하냐구요."

눈을 흘기는 녀석의 표정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여워 보였다. 밀려난 만큼 다가가 녀석을 끌어안았다. 녀석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 내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렇다고 두 번째 키스까지 막지는 않았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유미의 장례가 끝난 후부터 유진과 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자취방을 정리하고 아예 유진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녀석은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낮과 밤, 거의 24시간을 붙어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ROSE는 도저히 내가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최적의 적임자를 찾아 부탁하기로 했다.

"난 학교 선생님 하려고 하는 사람인데... 나한테 술집을 맡기겠다는 거야?"

"그렇다고 ROSE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거든요. 혹시 정 못하겠으면 형이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셔도 나무라지 않겠어요."

내게서 ROSE를 인계 받은 태근이 형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의 말마따나 앞으로 선생님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룸살롱 경영을 맡긴다는 게 조금 미안하기는 했다. 형은 인상을 쓰며 조건을 하나 달았다.

"알았어. 단, 내가 내년에 임용고시 봐서 합격할 때까지만이야. 그 이후로는 가게가 어떻게 되더라도 신경 안 쓸 거야."

엄포 비슷한 말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슬쩍 물어본다.

"유미의 가게인데 남에게 넘어가도 정말 괜찮아요?"

".....몰라, 인마!"

형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지나는 사장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투덜거리더니 태근이 형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형은 발끈하더니 자기는 진짜 사장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논쟁 아닌 논쟁을 보면서 역시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형에게 몇 가지 더 부탁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미리 이야기한 대로 유진이와 함께 여행가방을 꾸렸다. 사실 날짜로 보아 8월 말인 지금, 원래대로라면 방학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난 이미 휴학계를 낸 후였고 유진이는 자퇴서를 낸 후였다. 난 녀석에게 고등학교는 마저 다니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녀석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정 학력이 필요하면 검정고시 보면 돼요."

"어떻게 공부하게?"

그러자 녀석은 날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과외 선생님이 상주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것도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얼마 전에 유진이가 보고 있던 팜플렛을 떠올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녀석은 해외 유학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추 필요한 짐은 다 들어간 것 같다. 텐트와 침낭이 포함된 배낭은 거의 어린 아이만한 크기였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진이의 가방은 살짝 단출했다. 녀석이 내 배낭을 보고 염려스러운지 한마디 했다.

"아저씨는 등산 많이 해봤어요?"

"뭐... 그럭저럭?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뒷산이 있었거든. 항상 올라가 놀곤 했으니까."

"저는 별로 안 해보았는데 괜찮을까요?"

"처음부터 무리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돼."

그렇다. 우리는 지금부터 등산을 가려고 한다. 그것도 하루짜리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이 아닌 길고 먼 등산을 말이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녀석은 자기 엄마방에 틀어박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자기만 틀어박혀 있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까지 못 나가게 하는 건 몹시 곤란했다. 내가 가게 일 때문에 나가야겠다고 하면 몹시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따져 묻곤 했다.

"나랑 함께 있겠다고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아예 안 나갈 수는 없잖아. 가게는 어떻게 하라고...?"

"치잇. 아저씨 없어도 잘 돌아간다고요."

특히 다른 것도 아니고, ROSE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삐죽거리며 툴툴거리는 통에 대단히 곤란했다. 그래서 결국 태근이 형을 불러 넘기게 된 것이다. 가게 일에 대한 부담을 덜고 나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진이 녀석을 오랫동안 설득하여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기로 했다. 종주라고 하니 굉장히 거창하지만.... 무슨 전문 산악인들처럼 다닐 건 아니었다.

"갑자기 근데 왜 산이죠?"

"사람이 원래 가만히만 있으면 더 나쁜 생각이 난대. 자꾸 몸을 움직여야 건전한 생각이 많이 든다는 거야."

내 말을 들은 유진은 하루 정도 고민하더니 찬성했다. 태근이 형에게 인수인계도 마친 날로 하여 유진과 나는 그렇게 서울을 떠났다. 우선, 청량리에서 떠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정동진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동해의 일출을 보고 나서 설악산을 향해 거슬러 올라갔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백두대간을 타고 종주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산행에 익숙하지 않아 한참 애먹었다. 나 역시 쉽지 않았다. 녀석에게 말했듯이 어렸을 때만 해도 마을 뒷산에 종종 올라가 놀곤 했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서울에 올라와 살기 시작한 이래 등산이라고는 공대 뒤쪽 언덕 올라간 게 다였으니 말 다했다.

우리들은 남들 하루 걸리는 길을 사나흘 걸려서 지나기도 하고 이정표를 놓쳐 산속을 한참 헤매기도 했다. 손바닥만한 작은 텐트 하나를 쳐놓고 둘이 잠들었다. 아직 여름이라 그리 추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뿐인 침낭에 유진이를 넣어두고 밤새도록 꼭 끌어안고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고생하며 간신히 길과 방향을 잡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목표는 지리산이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서두르지도 않았다. 산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이곳저곳을 유랑했다. 요령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절이나 학교 같은 곳에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절에서 절밥을 얻어먹거나 가지고 있는 돈을 가늠해가며 식사를 적당히 사 먹었다. 그런데 지리산 밑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졌다. 이번 여행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유진아."

"네?"

"우리 오늘부터 거지인데, 어쩌지?"

둘 다 등산복을 입고 방풍자켓을 둘렀다뿐이지 얼굴만 두고 보면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어제만 해도 계곡에서 노숙을 했다. 그러나 유진은 그런 것을 전혀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지금만 해도 내가 우리에게 가진 돈이 없다고 털어놓자 까르르 웃기까지 한다.

"혹시 저기 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유진이가 가리킨 것은 꽤 큰 염소농장이었다. 내가 앞장서서 먼저 들어갔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생긴 건 멀쩡한데.... 거지유?"

"아뇨. 여행중인데 돈이 떨어져서요... 혹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는 자신은 인부에 불과하다며 안쪽에 들어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들어가자 컨테이너로 된 사무실 하나가 나타났다. 안에 들어가자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날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슈?"

"아... 저희는 여행 중이었는데요, 가진 돈이 마침 떨어져서요. 혹시 식사라도 얻어먹을 수 있나해서...."

남자는 나와 유진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끼야 내가 호의로 준다고 쳐도, 그다음부터는 대체 어쩔 생각이유? 다음 집에 가서도 적선을 바랄 셈인가?"

"에... 뭐, 그렇게까지는..."

여기서 시내로 나가면 은행이 있을 테고 은행에 가면 우리의 계좌에 있을 막대한 돈을 찾을 수 있다. 그런 것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

"좀 있으면 출산기라 우리가 좀 바쁜데 말여, 혹시 우리 농장에서 일할 생각 없는가?"

"네? 일이요?"

난데없는 제안에 내가 난감해하고 있으려니 유진이가 활짝 웃으면서 날 재촉했다.

"오빠! 우리 해보자!"

녀석은 단둘이 있을 때는 아저씨라고 불렀지만 누가 있으면 날 오빠라고 부르곤 했다. 남자는 그제서야 유진이를 발견한 듯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동생인가?"

그의 질문에 내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유진이가 먼저 낼름 대답해버렸다.

"아뇨. 부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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