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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앙...하아...하악...."
푸슙-푸슙-푸슙-
그녀와 내 아래 깔린 낡은 매트릭스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우리의 살과 살이 맞닿는 음란한 소리까지 묻어버릴 만큼 거센소리다. 그에 지지 않게 송화의 교성도 드높아진다. 원래 소리가 큰 그녀였지만 자기 집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단칸방이니 분명 바로 옆에 붙은 다른 방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하앙...하아...하악...하윽....날... 더...더....하아...."
의미 없는 비명과 끊임없는 신음, 그것을 부추기는 허리 놀림은 밤을 새우도록 이어졌다.그녀와 나는 아까 모텔에서 했던 만큼, 아니면 그 이상으로 몇 번이고 더 어울렸다. 그녀는 내게 어떠한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고 나 역시 어떤 해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만의 관계였다고 생각한 내 생각이 틀렸다고 그녀는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내 솔직한 생각이다. 그렇게 그녀는 내게 몸으로 묻고 나 역시 몸으로 답한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우리 둘은 겨우 떨어졌다. 생각해보니 저녁도 먹지 않고 아까 오후부터 지금까지 미친 듯이 하고 또 해온 것이다. 발정 난 개도 아니고.... 가쁜 숨을 내쉬며 우리 둘은 알몸인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다.
"라면, 괜찮아?"
"계란 넣어주는 거야?"
"우리 집에는 냉장고 없어. 따라서 계란도 없어."
가볍게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몸으로 싱크대에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다가가 뒤에서 살며시 안았다. 이제는 더이상 서지 않는 물건을 그녀의 엉덩이에 대고 지그시 눌러본다. 손으로 그녀의 앞을 어루만진다. 부드럽지만 탱글탱글한 젖가슴과 여러 가지 액으로 젖은 아랫도리까지.... 송화가 내 손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 내며 그 특유의 허스키한 소리로 말한다.
"니가 그 과외한다는 여자애..... 걔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유진이 이야기인가. 조금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답한다.
"왜? 너도 나한테 과외 받고 싶어? 난 좀 페이가 쎈데..."
"흥. 말이나 못하면..."
"넌 나한테 다른 종류의 과외 받고 있잖아. 이런 거..."
"시끄러. 무슨 말만 하면 그런 쪽으로 몰아가다니. 쳇."
"질투?"
"아니라니깐!"
물은 거의 다 끓었고 그녀는 라면을 거칠게 부셔서 넣었다. 수프가 들어가면서 물이 빨갛게 변한다. 그걸 보면서 송화가 말했다.
"너... 일하는 거... 과외 말고 뭔가 한다며? 그거 뭔가 불법이거나 그런 건 없는 거지?"
역시 뜨끔했지만 되도록 태연하게 답한다.
"글쎄. 나야 그냥 가서 알바 정도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알았어. 네가 정 그러하다면."
이윽고 라면이 다 끓여졌고 작은 밥상을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여태 알몸으로 있던 송화가 커다란 티셔츠 하나를 꺼내와 입기에 살짝 야유했다.
"왜?"
"알몸으로 그냥 있지, 왜 입어? 여름이라 춥지도 않은데."
내 눈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그녀가 여상스럽게 대꾸했다.
"국물 튀면 뜨겁잖아."
"것두 그러네."
계란도 넣지 아니하고 끓여낸 라면을 두고 서로 나누어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라면 맛이 아니라 꿀맛이었다.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어내고 그릇을 치운다. 후식으로 마실 커피를 준비하려고 하기에 그건 내가 끓이겠다고 했다. 싱크대에 서서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리-
뒤를 돌아보니 송화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여태까지 좀 느슨해져 있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 긴장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내게 조용하라는 손짓을 보내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플립을 열고 귀에 가져다 댄다.
"네, 채송화입니다."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 침대에서의 펼치는 요염함과 나와 대화할 때의 뾰로퉁한 말투, 그런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무엇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이럴 때 서슬 퍼렇게 느껴진다. 그녀는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 너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더니 몇 마디 더 묻는다. 배치, 돌입... 어쩌구 한다. 그리고 알았다며 이내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야?"
부리나케 옷을 찾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묻자 그녀는 내게 다가와 가스렌지의 불을 껐다.
"지금 커피 마실 때가 아냐. 나중에 다시 끓여줘."
물은 거의 다 끓어가고 있었고 인스턴트 커피믹스 봉지를 뜯기 직전이었다. 난 손에 들린 그것을 들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나갈 시간도 안 될 만큼 바빠?"
"녀석들의 근거지가 방금 파악되었어."
"뭐?"
순간, 그녀가 말한 녀석들이 누군지 깨달았다. 그녀는 어지간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놈들은 딱 정해져 있다.
"원 목사와.... 약쟁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급하게 말한다.
"그래. 게다가 서울이 아냐. 그쪽 지방 검찰청에 협조 요청하고 여기서는 수사관들을 급파하기로 했어. 내가 가봐야 돼."
"커피는?"
"다녀와서 마시자."
그녀를 태워다 주어야 해서 나까지 서둘러야 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는데 커피 한 잔도 못 마시고 일어나게 되어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일이 일이니만큼 불평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전부터 궁금하던 걸 묻는다.
"왜 항상 너는 니가 그렇게까지 앞장서는 거야?"
정체가 수상한 교회에 직접 잠입하지 않나, 지금 같은 경우도 이 야심한 시각에 나쁜 놈들 때려잡겠다고 벌떡 일어나 뛰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녀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
"난 말이지, 누가 나한테 뭔가 지시만 하는 게 싫어."
"조직생활 부적응자로군요. 지금 있는 곳에서 지시를 안 받고 어떻게 일해?"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지시가 무조건 싫다는 게 아냐. 적어도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라면 그 지시가 가져올 영향이라든가 수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든가, 그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봐. 그저 시키는 대로, 위에서 내려온 대로만 수사한다면 그건 검사가 아냐. 집에서 키우는 개지."
"그래서 현장을 직접 뛰신다?"
"뭐, 말하자면."
그녀와 나는 옷을 모두 갖춰 입고 쪽방을 나왔다. 좁은 골목길을 함께 걸어 내려가야 했다. 보안등도 제대로 켜있지 않은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음?"
내 왼손을 잡는 손. 그녀의 오른손 안에 내 손이 잡혀 있었다. 난 그걸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어유, 우리 송화 씨. 길이 어둡고 무서워서 그래? 오빠가 손잡아 줄까?"
"오빠는 무슨..."
내 너스레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리 먼 길도 아니건만 우리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 걸어 내려왔다. 차에 올라타서 그녀가 가야 할 곳으로 향한다.
"지금 가면 언제 와?"
"몰라. 일단 연락이 온 곳은 대전지검이야. 그곳에 도착해서 수사관 지원을 받고 녀석들의 본거지를 덮치게 되겠지. 여태까지 요리조리 하도 잘 빠져나가던 놈이라 전격적으로 덮쳐야 할 거야. 미적거릴 시간이 없어."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날 힐끔 쳐다보았다. 운전하느라 전방을 주시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시선을 못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왜 쳐다봐?"
"아니, 뭐... 지금 이런 사안들을 원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건데... 너한테는 문제없겠지."
"설마 내가 이걸 유출이라도 할까 싶어서 그래?"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원칙이 그렇다고."
새삼 느끼는 거지만 그녀는 정말 딱 원리원칙의 화신이다. 그것만큼 그녀에게 중시되는 것은 없었다. 그런 그녀이다 보니 그녀 자신으로서도 나를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잘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괴로워하고 또 어려워했다. 물론 그걸 아주 쉽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정식 교제를 하면 되겠지만.... 나 역시 그녀에게 사귀자는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고 그녀는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 왔어. 저기서 내려 줄까?"
"그래."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도로에 차도 별로 없었다. 정말 금방 도착했다. 서울 시내라는 게 늘 복잡하고 차가 막혀서 그렇지 거리 자체는 그리 먼 곳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그러면 수고해."
차를 세우고 잠금쇠를 풀었지만, 송화는 바로 내리지 않았다. 대신 날 빤히 쳐다본다.
"왜, 뽀뽀라도 해주게?"
"그래."
장난스럽게 이야기한 건데도 그녀는 바로 대답하고 내게 팔을 뻗쳐왔다. 내 목을 감싸는 그녀의 손가락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와 닿는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 달콤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살짝 깨문다.
"아얏..."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뒤로 젖힌다. 왜 이래, 이 여자가. 방금 내 입술을 깨문 여자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눈빛이 빛난다.
"유진이라고 했지? 그 아이가?"
"어? 어...."
그녀는 내가 과외한다는 여고생, 유진이에게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선영, 진미자, 박효진, 김지혜...."
조금 전의 생각을 취소한다. 유진이한테만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어...어떻게 그 이름들을?"
송화는 날 한 번 흘겨보더니 말했다.
"지금 이 차. 니가 항상 몰고 다니는 이 차의 주인이 한선영이더군. 네가 알바한다고 나한테 거짓진술한 그 유흥주점은 너와 진미자가 공동사업자로 올라가 있고... 여기까지는 내가 조사한 거고, 효진과 지혜 이름은 하영이한테 들었어. 예전에 너랑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대체 어떤 여자랑 열심히 하고 다녔는지 말이다. 흥신소 다니는 분은 아니지만 흥신소 뺨을 양쪽으로 싸대기로 치고도 남을 정도로 정보력이 있는 분이었지. 항상 침대에서만 마주해서 그걸 몰랐는데 이제서야 알겠노라. 등줄기에 저절로 땀이 난다. 간신히 항변한다.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본다.
"개인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파헤치며 다니고...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입니다. 검사님. 이의를 제기합니다."
"귀하의 이의 제기는 서류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절차상에 중대한 흠결이 있으므로 각하."
각하는 또 뭐야.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하면 각하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해봐."
그러자 그녀가 눈을 흘겼다.
"좋아하는 남자에 대해서 살짝 알아본 걸 가지고... 쪼잔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거야?"
또 나왔다. 저 소리. 좋아하는 남자라니. 하아. 그러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대답을 못 하고 있으려니 송화는 차에서 내렸다. 창문을 내렸더니 그녀가 거길 통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쁘다면서, 지 할 말은 다 하려는 모양이다.
"다녀와서 너에 대한 본격적인 체포를 진행할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있는 여자들 정리하고 정리 못할 여자는 나한테 확실히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해. 변호인을 선임해도 좋지만 여자 변호사는 안 돼. 네가 내민 이유가 합당치 못하다고 판단이 되면 난 그 자리에서 널 검거해서 평생 내 옆에 두겠어."
전 같으면 못 알아듣겠는데.. 지금은 뼈저리게 알 수 있다.
"....그건 법조인식 유머입니까. 날 좋아한다는 소리를, 그리고 사귀고 싶다는 소리를 왜 그렇게 힘들게 말하는 거야?"
"모르지. 영심이 말에 따르면 우리들은 너무 공부만 많이 해서 살짝 돌아버린 걸지도. 그러니 각오해. 조만간 미친 여자 한 사람이 널 잡으러 간다."
얼굴을 잔뜩 찡그려 사나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이, 어쩐지 귀엽다고 생각되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권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데 왜 저렇게 귀여울까.
"급하다며, 빨리 다녀와. 다녀와서 이야기하자."
"알았어."
그녀는 차 지붕을 몇 번 두드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지검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당당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걸음걸이를 끝까지 지켜본다. 저런 그녀가 내 앞에 서서 당당히 자신의 애정에 대한 답을 요구한다면, 나는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문 안으로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기어를 바꾼다. 악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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