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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22화 (12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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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오가는 차가 없었다. 그대로 도로에 진입해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한참 달리던 난 옆좌석이 아까부터 지나치게 조용하단 걸 깨달았다.

"왜 그래?"

신호에 걸렸을 때, 송화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뭘."

"아니, 너무 조용하길래. 혹시 배고파? 청에 들어가기 전에 해장국 먹고 갈래?"

그녀와 내가 하는 건 굉장히 열량을 많이 소모하는 행위인지라 모텔을 나와 서울로 들어가기 전에 도로 변에 있는 해장국 집 같은 곳에서 종종 밥을 같이 먹곤 했다.

"생각 없어."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본다. 아까 그렇게 했는데 배 안 고프나? 나는 슬슬 허기가 지는데 말이다. 진행 신호가 들어가 차를 출발시켰다.

"청에 안 들어가."

"응? 뭐라고?"

교통방송이라도 틀어볼까 싶어 라디오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송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검으로 가지 말라고. 오늘은 집에 갈테니까 거기까지 태워줘."

"그래? 어딘데?"

난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날 전화로 불러낸 그녀를 데리러 가는 곳도 검찰청 주변이었고 항상 내려주는 곳도 그랬다. 대체 퇴근은 하고 사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으로 간다니, 좀 의외였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차를 달린다. 서울 중심부에서 조금 위쪽, 아니, 좀 많이 위쪽.. 서울보다는 의정부에 가까운 쪽에 도착했다.

"저기서 우회전 해."

의정부에서 서울 방향으로 들어간다.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을 지나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한 동네에 도착했다. 1호선 역을 하나 끼고 들어간 후, 오래된 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몬다. 주도로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고 나니 더 이상 차가 들어갈 길이 아니다.

"여기 세우고 걸어들어가면 돼."

동네가 있는 곳이 언덕이 아니라 평지였으니 달동네...까지는 아니었지만 결코 잘 사는 곳은 아니었다. 게딱지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차를 세우자 송화가 내렸다. 그녀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자기는 안 내려?"

"어... 나도 내려?"

그러자 인상을 확 찌푸린다.

"들어와. 커피 한 잔 타줄 테니까."

.......저 분위기로는 커피가 아니라 사약을 타줄 것 같았지만 일단 나도 내렸다. 그녀를 따라 걸어간다. 골목 두 개 정도를 지나고 나니 작은 집 하나가 나왔다. 담 옆에 난 쪽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가기에 나 역시 따라 들어간다. 무심코 들어가다가 문틀 상단에 이마를 부딪힐 뻔 했다. 급히 허리를 숙여 지나간다.

"거기 앉아."

한 일곱 평 정도 되려나... 방 하나로 치면 그게 그렇게 좁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만한 공간에 부엌과 거실, 침실의 역할을 다 하고 있으니 꽉 차있는 느낌이 난다. 방 한쪽에는 종이상자 몇개와 여행용 트렁크가 쌓여있어 장농을 대신하고 있었고 반대편 벽은 부엌으로 쓰는 듯 싱크대와 가스렌지가 있었다. 가운데 바닥에 깔린 매트릭스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송화는 내 앞에 손바닥만한 밥상 하나를 펼쳐두고 부엌으로 쓰이는 벽 쪽으로 갔다.

"그냥 커피면 되지? 다른 거 뭐 필요해?"

"아니, 뭐, 그다지."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이 내 앞에 놓인다. 송화는 자기 것도 가져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살던 전세 집에서 보일러가 터지고 벽과 바닥이 물천지가 되었거든. 그래서 잠시 달세방 하나 얻어서 지내고 있는 거야. 원래 이런 곳에 사는 거 아니니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그녀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거야? 난 또 대한민국 검사님들이 월급이 하도 박봉이어서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고 깜짝 놀랐어."

"박봉은 박봉이지. 그래봐야 결국 공무원 봉급인데."

"그때 지검 주차장에 한 번 갔는데 다들 차는 좋던데?"

"그거야 스폰....됐어. 뭐, 나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특이하게도 그녀는 아직 면허도 없었고 따라서 차도 없었다. 내가 왜 면허를 따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맨날 택시나 전철 타고 다니면 쉽지 않을텐데도... 그러하다.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자기는 여자 방에 들어오는 거..... 처음 아니지?"

"어? 어... 뭐... 그렇지."

일단 지혜네도 그렇고 선영이, 유진이 방, 그리고 또 누구더라. 아. 현아 방도 들어갔었군. 생각해 보니 여자 방에 은근히 많이 갔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웃고 있자니 송화의 날카로운 표정이 날 찌른다.

"웃어? 웃음이 나와, 지금?"

"뭐?"

얘가 아까부터 왜 이렇게 날카롭게 굴지?

"아까부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내가 딴 여자방에 들어가 보았다는게... 그렇게 싫어?"

송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또렷한 이목구비가 이럴 때 더 도드라진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 그녀가 입을 연다.

"자긴, 날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채송화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인간적으로."

"좋게 생각하고 있어."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냐."

"나도 농담 아닌데?"

"그런 뜻이 아니잖아. 지금!"

이야기가 자못 평범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일단 손에 든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를 돌아본다.

"갑자기 왜 소리를 질러? 또 약 기운 돌아? 여기서 한번 할까?"

"됐거든. 누군 무슨 약 기운이 맨날 시도때도 없이 돌아서 자기랑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아?"

"처음엔 그랬잖아."

"처음에만! 그때만 그런거지... 지금도 그러겠냐고. 바텐더에게 당한 게 벌써 몇 달 전인데!"

바텐더라.... 묘한 이름이었다. 가끔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튀어 나오는 이 이름은 아마도 그녀가 쫓는다는 약쟁이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약 기운이 거의 안 남았다는 거야?"

".......몰라."

"검사라도 받아보지 그래."

"대한민국 검사가! 그것도 마약조직부에 속해있는 내가, 향정신성약물 반응검사라도 받으라는 거야, 지금? 그게 말이 돼?"

"왜 말이 안돼. 그래야 적절한 치료도 받을 수 있고...."

"퍽이나."

아랫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경이 복잡했다. 한숨을 내쉬며 물어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송화, 널 인간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 의도가 뭔데?"

"하아. 나도 모르겠어. 자기랑 나랑....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 만나가지고 몸만 섞어야 하는 건지. 나도 여자야.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손잡고 밝은 대낮에 시내를 쏘다니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고! 맨날 불륜커플 잔뜩 있는 모텔에 가는 거 말고! 근데 아까 뭐? 우린 커플도 아니라고? 그게 지금 니가 나한테 할 소리야?"

"좋아...하는 사람?"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나는 더 이상의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커플이 아니라는 소리가 그녀를 그렇게 화나게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굳이 번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녀와 내 사이에 참 많은 정액과 애액 그리고 타액을 주고 받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유대를 쌓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그녀의 화를 더 돋군 모양이다.

"물론 내가 바빠서, 그리고 자기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 만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자긴 내가 원 목사를 잡을 때까지 내 욕구를 풀어주기로 한 사람이지 나랑 사귀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렇지만...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렇게만 지낼 수 있느냐고... 나도... 자기랑...."

울고 있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목소리는 젖어있지만 여전히 짱짱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단 한 번이라도... 니가 먼저 나한테 연락을 한다거나.... 그랬다면... 그랬다면...."

"송화야."

그녀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어버렸다.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집까지 굳이 날 데려온 이유를 이제 알았다. 그녀는 울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남이 있는 곳에서 울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비록 좁고 낡았지만 여긴 그녀 만의 성이었고 난 그 성에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그녀의 손을 거둬내고 눈물에 입을 맞춘다. 몸을 살짝 밀어 매트릭스에 눕히려고 하자 그녀가 꿈틀거리며 반항했다.

"놔. 이럴 기분 아냐."

"그럼 어떨 기분인데?"

"건들지 마."

"그럴거면 애초에 날 여기 데려오지 말았어야지."

뺨과 귀에 입을 맞추고, 목을 핥아내려가며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 낸다. 그녀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동작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날 거부하기에는 난 그녀의 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악...하으....."

실크 재질의 팬티를 비집고 들어간 손가락이 마주한 것은 그녀의 젖은 동굴. 브래지어를 끄집어 내리고 드러낸 가슴 정상에 자리한 유두는 이미 직립해 있었다. 그것을 한 움큼 베어 물고 그녀를 몰아붙인다.

"흐윽... 흐읍...나....난... 니가 미워...."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젖어있었다. 살짝 쥔 주먹으로 내 가슴을 난타한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

"날..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날 좋아한다고 해주지도 않고...."

자꾸 칭얼거리는 그 입술을 내 입으로 덮어본다. 싫다고 말한 주제에 내 혀를 빨아들이는 그 이중성을 농락한다. 바지와 팬티를 끄집어 내리고 나 역시 팬티를 허벅지까지 내린 상태에서 성급히 삽입했다.

"하앙....하악.....읍....."

아랫입과 윗입이 모두 봉해진 상태에서 그녀는 내게 한사코 매달렸다. 더 깊은 삽입과 더 강한 흡입을 원했다. 나는 그대로 해주었다. 그녀가 듣길 원하는 말을 해줄 순 없지만 몸짓은 해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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