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94화 (9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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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처음으로 보게 되시겠네요. 형사님."

"허이구...."

그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이름이야 최한석일테고.... 그러면 주소라도 말해봐. 내가 거기서 더 안 물어볼게."

그가 하도 짜증 투로 말하기에 주소는 말해줄까 싶었다.

"서울...."

"묵비권 행사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바보처럼 지금 뭐하는 거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저 싸가지 부족한 말투. 하아. 나를 향해 독설을 내뿜는 게 아주 반가울 지경이다. 사실 저걸 기다리고 있었지.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금테 안경을 쓴 회색 투피스 차림의 커리어 우먼이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태근이 형이 연락을 하긴 제대로 해준 모양이다.

"누구요, 당신은, 또?"

내 옆에 도착한 하영은 명함지갑에서 한 장 뽑아들어 경찰에게 건넸다.

"법무법인 새암의 제17법무팀, 팀장대리 손하영입니다. 제 의뢰인 최한석 씨에 대한 모든 질의응답 및 서면조사는 절 통해서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당한 긴급체포에 관한 건도 이의를 제기하겠어요."

변호사 어쩌고 떠드는 인간들 치고 진짜 변호사 불러오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경찰의 이력은 이걸로 빵꾸가 제대로 나버렸다. 하영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경찰에게 따졌다.

"그리고 폭행사건 조사라면 피고소인 조사를 할 때 응당 고소인도 배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소인은 어디 갔나요? 그래야 합의도 주선하고 그러죠."

날카롭게 몰아붙이는 하영의 태도에 경찰이 쩔쩔 맸다.

"그게.. 그 사람들은 합의도 필요 없다고...."

"그렇다고 절차를 무시하고 막 해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이미 서 안에 들어와 있는데 수갑은 왜 채우고 있는 거죠? 이거 과잉억류로 해서 인권침해사항으로 기재해도 될까요?"

경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와 수갑을 풀어주었다. 난생 처음 맛보는 차가운 금속구는 그렇게 쉽게 해제되었다. 뻣뻣해진 손목을 주무르면서 하영을 쳐다보았다. 나는 앉아있고 그녀는 서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올려다보게 되었다.

"하영 씨... 고맙습니다."

인간적으로 참 고마워서 이렇게 말한 건데 역시 그녀의 대답은....

"감사는 박태근 그 자식한테 하고 저한테 하지 마세요. 바빠 죽겠는데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일이나 던져주고.... 참나."

... 한결 같았다. 대낮에 학교에서 체포되어서 경찰서까지 끌려온, 태어나서 누가 겪을까 말까 싶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주 쓰잘데기 없는 일이라니... 조금 우울했지만 그래도 워낙 당차고 아주 쉽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하영이 경찰을 재촉하여 영장실질검사를 받게 되었다. 하영의 주장대로 "주거가 확실하여 도주의 위험이 없고 이미 이루어진 행위이며 증인 등이 확고하여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나는 금방 풀려났다. 다만 경찰에서 고소인과 연락을 해서 3자 대면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바로 돌아가지 않고 경찰서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다 말 해봐요. 태근이는 폭행사건이라는 거 말고는 이야기 안 하더군요."

경찰서 한쪽에 있는 간이 휴게실에 마주 앉은 하영과 나는 본격적인 변호 준비에 착수했다. 형이 말해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형도 몰랐으니까 그랬을 거다. 처음에는 빈소에서 있었던 일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하영은 소란이에 대해서 더 자세히 물어봤다. 소란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기분도 착잡하기에 되물었다.

"그건... 왜요?"

"아직 확정된 거는 아니지만... 제 친구 중에 검사로 있는 년이 하나 있어요. 걔가 조사하고 있는 게 바로 그 교회라서 어쩐지 신경이 좀 쓰이는 군요. 그러니까 말 해봐요."

검사로 있는 "년"이라니.... 거참, 입담하고는... 그 교회랑 결국 이렇게 엮이게 되어 몹시 입맛이 썼지만 그래도 내가 저지른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가능한 상세하게 내가 소란이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그 아이를 통해 교회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하영은 내 말이 끝나고도 한참동안 혼자 무언가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일단 3년 또는 5년짜리군요. 이건."

"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들고 있는 펜으로 수첩에 뭔가 기록하며 말했다.

"저쪽 태도는 봐야 알겠지만 들은 이야기로 볼 때 합의는 절대 해줄 사람들 같지 않고... 합의도 못 본 상태에서 이게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면 기본이 3년, 판사가 제대로 때리면 5년은 기본으로 나와요."

"징역... 말입니까?"

"네."

눈앞이 캄캄했다. 아까의 희망이 훨훨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영은 아주 날카로운 어조로 날 째려보며 말했다.

"설마 사람을 그렇게 때려놓고도 아무런 탈이 없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시겠죠?"

"그야... 그렇지만...."

"신체 건강한 남자가 여자를 상대로, 그것도 맨손이 아니라 흉기를 손에 들고,"

손까지 꼽아가며 따박따박 따지는 하영을 향해 오류를 정정한다.

"흉기가 아니라 목탁 쪼가리였다니까요."

"돌조각이든 부젓가락이든 사람을 상대로 해를 끼칠 수 있는 물건이면 전부 흉기로 봐요. 꼭 예기만이 흉기가 아니랍니다."

하나 알았습니다....으으으으....

"네에..."

"게다가 명백한 살해의 뜻을 품고 머리를... 음,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군요. 이건 빼죠. 그 다음은.... 어깨를 두드려서 이쪽을 보게 한 다음 쳤다고 하니 실수가 아닌 명백한 고의성이구요. 게다가 시간도 마침 야간. 하아. 이봐요, 최한석 씨. 당신이 저지른 일은 중죄 중에서도 중죄예요. 결코 쉽게 볼게 아니라고요. 물론 초범이니까 정상참작으로 집유까지는 노려볼 수 있겠네요."

아까까지는 쓰잘데기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나 하영의 하나하나 따지는 말투를 들으며 가슴이 무거웠다. 비록 한 순간 욱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나 그 후폭풍이 너무 컸다. 고개를 숙이고 시무룩하게 있자니 하영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앞뒤 사정만 보아서는 아주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속 시원한 거랑 법적인 처리는 다른 문제죠."

"그런가요...."

"일단 있어봐요. 어떻게든 합의를 하지 않게 하고는 못 버티게 해 줄 테니."

귀가 번뜩였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자 손을 내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통화는 꽤 길었다. 창을 통해 내다보니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무얼 할까 싶어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경찰 한 명이 오더니 고소인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창밖을 내다보고 하영을 불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가리키며 나보고 먼저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경찰을 따라 조사계 사무실로 갔다. 아까 날 조사하던 경찰, 이 경장이라고 했던가, 암튼 그 사람의 앞에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김은혜 권사와 어떤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날 빈소에 왔던 사람 중에 하나인 모양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 경장을 향해 소리 지르며 항의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당당하게 대명천지를 활보하고 있습니까? 이 나라 공권력은 다 종교 핍박하느라 바쁜가요? 사람을 그렇게 무참하게 후려친 마귀 같은 놈이 어떻게 이렇게 수갑도 안 차고 있단 말입니까."

마귀 같은 놈이라니.... 욕설 한번 참 성경적이로다. 이 경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만류했다.

"에.. 선생님? 장로님이라고 하셨나요? 지금 이 분은 일단 피고소인 신분으로 여기 와 있는 거 맞고 실질심사도 다 끝났습니다. 우리가 억지로 구류할 수는 없어요."

"어허! 못된 놈을 처넣으라고 만들어 놓은 감옥은 다 전시용이랍니까?"

"그게 다 절차가 있고....."

"자꾸 우리한테 합의하라 어쩌라 하시는데, 저희는 절대 합의 없습니다. 10억을 갖다 줘도 싫고 이놈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해도 싫습니다. 이놈을 깜방에 넣을 수만 있다면 내 당장이라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겁니다."

책상까지 탕탕 내리 쳐가며 호통을 쳐대는 저 인간을 보고 있으니 뒷목이 뻣뻣해져 오는 것 같다. 일차적으로는 내 잘못이 있으니 무어라 말은 못 하겠다만... 다른 건 몰라도 딴 사람을 깜방에 집어넣는 일에 대해서 신께 기도를 드린다는 대목에서 기가 턱 막혔다. 이 사이비 놈들은 대체 기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같이 교회 안 나가는 놈도 알기로는 기도라는 건 신께 드리는 기원 같은 거 아니었나? 그런 기원에 저 놈을 감옥에 넣어 주십사 하는 게 가당키나 해? 나만 어이없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 경장을 물론, 날 데려오느라 옆에 서 있는 경찰도 표정도 일그러져 있었다. 장로라는 남자는 핏대를 올리며 계속 외쳤다.

"당신네들이 우리 교회를 쳐들어와서 선량한 우리를 잡아다가 수사다 뭐다 하는 것 좋다 이겁니다. 범죄사실이 있으면 잡아다 수사를 하시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뭐 위법한 게 나옵디까? 선량한 우리 교인들을 핍박할 시간 있으면 이런 못된 폭행범이나 잡아 가두란 말이오!"

"선량한지 어쩐지는.... 이쪽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않겠어요?"

통화가 이제서야 끝난 건지 하영이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교회 남자와 김 권사가 그쪽을 쳐다본다. 하영은 전혀 꿀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이 경장에게 물어보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 사람들 고소하면서 진단서 얼마나 끊어왔던가요?"

"진단서요? 진단서는 안 냈는데...."

이 경장이 눈을 껌뻑이며 대답하자 하영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니, 뭐예요.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폭행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고소를 접수했단 말입니까?"

"그거야 이쪽에서 하도 강경하게...."

이 경장이 손가락으로 교회 사람들 측을 가리키자 남자는 팔짱을 끼고 콧바람을 뿜으며 말했다.

"우리는 성령의 힘을 믿습니다. 세속 인간의 치료 따위는 거부합니다. 성령은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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