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88화 (8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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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사를 내오려던 아주머니에게 나중에 다시 와서 먹겠다며 가게를 뛰쳐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종로경찰서로 갔다. 경찰서 가까이 가기도 전에 차가 막혀서 택시가 나아가질 않는다. 하도 급하게 나오느라 주머니에는 밥값만 달랑 넣고 나왔을 뿐이다. 가지고 있는 돈을 초과하기 전에 얼른 요금을 내고 중간에 내려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수백 명의 사람이 경찰서 입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고성과 악다구니, 비명과 한숨이 가득한 혼돈의 장소였다. 도로까지 밀고 내려온 인파로 인해 차들이 나아가질 못해 경적만 울리고 있다. 피켓과 죽창을 들고 있는 시위대는 "목사님을 돌려줘라!",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지 마라."라고 외치며 경찰서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고 경찰 쪽에서는 헬멧과 진압복을 입은 전경들이 방패로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세상에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아우성을 구경하느라 커다란 인간 벽을 만들고 있었기에 그걸 지나는 것도 꽤 고역이었다. 간신히 사람들을 뚫고 경찰서로 가까이 갈 수 있나 했더니만 또 다른 경찰들이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물러나세요! 물러나세요!!"

구경꾼들을 밀어 내는 경찰 한 명을 붙들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하도 시끄러워서 소리 지르듯이 말해야만 했다.

"저기! 오늘 잡혀온 사람들! 교회 사람들 말이에요! 면회 가능해요?"

"안됩니다! 물러나세요!"

"저기요! 지금 조사받고 있을 거 아니에요?"

"암튼 안 됩니다! 얼른 물러나세요!!"

한사코 안 된다고 말하며 거칠게 밀어 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경찰서 입구 쪽의 혼란은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시위하는 신도들은 경찰을 성토하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인간띠를 형성하여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고 전경들은 그걸 방패로 막아내며 밀어내기만 하고 있었다. 병력이 모자라 그들을 해산시킬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전경이 추가되더니 시위대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실어 내기 시작했다.

"사탄의 무리야! 이걸 놔라!"

"집사님!!"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악다구니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자니 갑자기 어떤 여자 하나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는데 여자가 쨍쨍한 목소리로 외쳤다.

"잡아 갈 테면 잡아가라! 이 고난을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 보이고 말세의 그 때에 오히려 불쌍한 너희들의 구원을 기도하겠다!!"

그러자 신도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 여자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즉, 단체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시위는 요상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고 구경꾼은 점점 불어났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을 벗어젖힌 그들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비장한 표정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옷을 벗어던진 이들에게 차마 손을 대지 못 하는 경찰들이 당황하고 있었고 구경꾼들은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주변 상황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큰 고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표정으로 찬송을 이어 나갔다. 아까 맨 처음 옷을 벗은 여자가 선두에 서서 부르짖는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종로 길바닥에서 여자의 벗은 몸을 보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딱히 유쾌한 장면이 아니었기에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일단 정문을 나와 도로를 타고 뛰어갔다. 최대한 빙 돌아 뒤쪽을 찾아본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소각장 뒤에서 혼자 울고 있던 ... 소란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한테는 이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요. 왜 그럴까요?

- 글쎄... 나야 모르지.

- 저도 모르겠어요.

아직 눈물이 다 닦이지 않은 얼굴로 배시시 웃던 그 아이는,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빠졌다.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갔다는 엄마에게서 전학을 시키겠다는 전화가 오고 단짝인 유진은 녀석의 행방을 찾아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별일 없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내가 나쁜 놈이다. 멍청한 놈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왜 그 아이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경찰서 담장은 높고도 길었다. 한참을 빙 둘러보아도 넘어갈만한 곳이 보이질 않았다. 가시철망까지 달려있어 함부로 넘다가는 큰일 나게 생겼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후문 쪽이었는데 여긴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이 한산했다. 그러나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다가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보초를 서고 있던 경찰은 지금 외부인 출입은 절대로 안 된다며 계속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게 해달라는 나와 한사코 안 된다는 그 사이에서 고성이 오고 간다. 좀만 더 했다가는 멱살이라도 잡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경찰이 갑자기 부동자세를 취하더니 경례를 한다. 이 자식은 나랑 여태껏 싸우다가 뭔 놈의 경례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시죠?"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가 건장한 남자 서너 명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여자 목소리치고는 굉장히 선이 굵고 허스키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내 사정을 설명했다.

"저기, 그게.... 이 안에 제 학생이 있습니다."

내 학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모른 척 해버린 나지만, 그런 나라도 소란이를 내 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양심에 찔렸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말을 들은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경찰에게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높은 여자인가 보다. 여태 나랑 싸우던 경찰이 찍 소리도 않고 나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여자를 필두로 남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가고 나 역시 얼른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걸어가던 여자가 나를 돌아보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이신가보죠? 학생이 무슨 일로 들어왔는데요?"

"저기, 이번에 무슨 교회 지하에서 발견된...."

"아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몹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이라고 하면, 어린 나이겠군요. 안타까우시겠습니다."

"네에..."

"무탈하길 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건물 가까이 도착하자 여자는 나에게 조사실을 알려주고 다른 곳으로 갔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은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축소판이 여기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유치장과 경찰서 바닥에 드러누워 찬송가를 부르짖고 있었고 경찰들은 그들을 한 명씩 끌어내어 조서를 쓰고 있었다.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내가 찾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남자 한 명을 붙잡고 교회에서 잡혀온 사람은 이게 다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증세가 심한 사람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말했다.

"증세가 심하다뇨?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자 남자는 나에게 되물었다.

"잠깐, 당신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어디 소속이야?"

"아니, 전 그게....."

그러자 남자가 다른 사람을 쳐다보며 외쳤다.

"윤태! 조사실 인원 똑바로 체크 안 하지? 여기 외부인 들어온 것도 몰랐어?"

"네? 넷!!"

젊은 남자 한 명이 벌떡 일어나 내게 오더니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남아 소란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윤태라 불린 경찰은 나를 정문까지 데리고 가더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에게 통사정을 했다.

"제 학생이 여기 잡혀왔습니다! 상태라도 알게 해주세요!"

"학생...이라구요? 혹시 여학생?"

"그런데요."

그러자 윤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겁이 덜컥 났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가 좌우를 살피더니 내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이런 이야기는 원래 하면 안 되니까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알려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 데려온 여자들은 거의 다 중독증상을 보여... 경찰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중독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태가 황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언론에도 발표되지 않은 겁니다. 경찰병원에 가도 들여보내주지 않을 거구요. 어지간한 빽이 있으면 모를까... 아무튼, 일단은 댁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고 계세요. 조만간 발표가 있을 겁니다."

그는 내게 비밀을 엄수하라고 주의를 주곤 건물 안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여기까지 알려준 것 만해도 어디냐 싶었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경찰서를 벗어났다. 닭장차가 오더니 시위 중인 사람들을 하나씩 담요로 싸서 태워가는 광경이 보였다.

휴거...라고 했던가. 저들이 믿는다는 게? 게다가 중독이라니?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까 화면에 약 2초정도 비쳐졌던 소란의 모습을 떠올린다. 단 일주일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그래,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경찰병원이든 뭐든 가보는 거다. 그러나 이내 또 걱정이 되는 것이.... 지금 경찰서도 천만다행인 요행으로 들어왔는데 병원도 그게 될까 싶었다. 윤태라는 경찰이 말한 걸 떠올려본다. "어지간한 빽". 그런 게 나한테 있을 리가 있나.....

패배감과 무기력함에 젖어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공중전화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되든 안 되든... 도움을 요청해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내가 가진 돈이라고는 50원짜리 동전 하나뿐이었다. 젠장. 아까 택시비도 겨우 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서 집까지도 걸어가야 할  판이다.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뿐이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곳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얼마 전부터 신세를 지고 있는 ROSE. 또 다른 하나는 무려 변호사를 대동하고 다니던 효진이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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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플레이에서는 선택지가 하나만 제공됩니다.

1회차 엔딩을 감상한 후 또 다른 선택지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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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 A. ROSE에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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