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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84화 (8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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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ROSE에서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연상임에 분명하지만 한사코 어리다고 주장하는 지나 같은 아가씨들과 어울릴 때가 더 편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미성년자가 아니니까. 그게 직업인 분들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저기, 저기 말야. 혹시 다른 사람들은 없는 거야?"

그러나 내 질문을 다르게 이해했는지 유진이라는 녀석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가 제일 어린 애들인데요... 더 어린 애들은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휴우. 알았다. 알았어. 일단 앉자."

잠시 후, 역시나 거의 헐벗은 차림의 여자애들과 정장 차림의 웨이터들이 들어오더니 안쪽 방에 과일 접시와 술 따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왜 원래 방에 차리지 않고 안에다 차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안쪽의 소파에 가서 앉았다. 두 아이도 따라 들어왔다.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내 표정을 여전히 잘못 파악한 '가짜' 유진이는 다른 아이로 초이스 가능하다고 말해왔지만 내가 손을 내저어 아니라고 답했다. 음식과 술이 모두 차려지고 나서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 맞은 편에 가만히 서있던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다가 저희들끼리 무언가 쏙닥거리더니 이내 내 양 사이드로 와서 앉았다. 우측에 앉은 유진이가 내 앞에 놓인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저희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저희 나름대로 에이스인데...."

에이스. 여기서 가장 잘 나간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이런 나이의 아이들이 이런 업소에서. 하아... 대답을 차마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오빠, 너무 인상 쓰시고 있어서 쫄았잖아요. 일단 밴드 부르고 좀 놀까요?"

"아니, 그건 됐어. 그냥 술만 줘."

"네."

유진이가 따르는 양주를 마시고 수희가 집어준 포도알을 받아 먹는다. 이런 데서 일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니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꼰대짓을 내가 하는 셈이라 꾹 참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왜 이 좁은 방에 상을 차렸는지 알아?"

유진에게 묻자 그녀는, 아니, 그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그냥 안에 계신 분 일단 모시고 있으라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요... 아마 쇼를 하시려나 보죠."

"쇼?"

유진은 벽을 가리켰다. 저쪽 방에서는 거울로 보이겠지만 이쪽에서는 저쪽 방이 훤히 보이는 유리벽이다.

"가끔 그런 분들 오세요. 일단 무대 꾸며놓고 애인이나 다른 여자 데려다 놓고 여러 가지로 즐기시는 거죠. 매직룸은 그런 거 하는 곳이에요."

쇼? 여러 가지로 즐겨? 애인이나 다른 여자?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도 낯설다. 뭔가 점점 불안해졌다. 그때 벽에 걸린 인터폰이 울렸다. 수희가 일어나서 그걸 받는다.

"지금 오신다는데요? 문 닫을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희가 벽 한쪽을 살짝 건드렸다. 우리가 들어온 자동문이 닫히고 이로써 저쪽 방과 이쪽 방은 완전히 나눠진다. 차이가 있다면 저쪽 방에서는 여길 볼 수 없지만 이쪽 방에서는 저기가 훤히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저쪽 방에는 어딘가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앉아있는 소파 뒤에 스피커가 있었다. 방에 들어선 태근이 형의 목소리가 이쪽의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들어와, 은애야."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형이 룸으로 들어서자 은애가 쭈볏거리며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형이 테이블의 중간에 가서 턱 하고 앉자 은애는 어디 앉을까 고민하더니 가장자리에 살짝 앉았다. 그러자 형이 손짓으로 은애를 불렀다.

"우리 이런 데서까지 빼지 말자. 이리 가까이 와."

은애가 자리에서 일어나 형 옆 자리로 갔다. 형은 쾌활하게 웃으며 은애의 손을 잡았다. 은애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손을 빼진 않았다. 그녀는 몹시 머뭇거리며 말했다.

"오빠, 이런 밤 늦게 어쩐 일이에요? 차까지 보내시고.... 좀 놀랐어요."

"다같이 있을 때는 못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지. 그래도 나와줘서 참 고맙다."

"뭘요...."

부끄러워 하며 몸을 비비꼬는 은애의 가식적인 행동을 보고 있노라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옆에 있는 유진에게 맥주를 따라 달라고 청해 단숨에 마셔버렸다. 행여나 이쪽의 소리가 저쪽으로 들리는 건 아닐까 싶어 염려되었지만 스피커까지 달려있고 저 근사한 자동문까지 되어있는 걸로 보아 방음도 잘 되어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다른 건 아니고 오늘 저녁에 잠깐 뭐 좀 보러 나갔다가.. 너한테 잘 어울리겠다 싶은 걸 봐서 말야. 나름 준비를 하긴 했는데 맘에 들려나 모르겠다."

형은 품안에 손을 넣더니 아주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은애가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좀 답답했다. 그러나 잠시 후 은애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는 형을 보고 깨달았다. 저걸 준비하러 간다고 간건가.... 이 늦은 시간에 저런 걸 바로 준비할 수 있다니.... 역시 재력이 있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 싶었다.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늠해보던 은애는 눈이 휘둥그렇게 되었다.

"너무 예뻐요... 근데...혹시 이거 까르띠에인가요?"

"아마 그럴 걸? 같이 간 사람은 티파니로 하라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이게 더 이쁘더라구."

"어머나...."

은애는 자기 목에 걸린 그 화려한 문양의 목걸이를 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삐까뻔쩍한 목걸이 하나가 뭐 대수냐 싶었는데 나지막히 탄성을 지르는 옆 자리 아이들이야기를 들어보지 무지 비싼 브랜드란다. 헐.... 형의 태도가 점점 이해하기 어렵다.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은애는 문득 의아한 표정으로 형에게 묻는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걸 왜...."

그러자 형이 은애의 손을 잡더니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지...지금, 뭐하는 거야. 저 사람! 보는 입장에서는 닭살스러워 죽을 지경인데 은애는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 형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오늘부터 잘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너무 부담스럽니?"

"아, 아뇨.. 부담스럽다기 보단 너무 갑작스러워서...."

얼굴에 홍조를 가득 띄우고 어쩔 줄 몰라하는 은애와 달리 형의 표정은 침착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에는 형이 은애를 앉혀놓고 저게 대체 무슨 개수작인가 싶었지만 "차분한" 형의 표정을 보고 있던 나는 점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다. 겨우 저런 연애행각을 보여주려고 나를 이런 엄청난 설비가 갖추어진 방에 있게 한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런 곳에서 술 마시고 여자 부르는 것 자체도 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텐데 말이다.

이런 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방 안의 분위기는 참으로 핑크빛으로 흐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평상시에도 형에게 늘 달라붙던 은애인데다가 형은 그런 그녀를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어 둘은 거의 한 쌍의 연인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 친절하고 부드러운 형의 태도는 은애로 하여금 홀딱 빠진 표정을 짓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이윽고 둘은 찐한 키스를 나누었고 그걸 보고 있는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응? 아냐. 뭐.. 그냥."

나도 모르게 양 옆에 앉은 아이들의 다리를 힐끔거리게 된다.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양 쪽의 두 아이는 내게 거의 안기다시피 붙어있었고 은근히 내 허벅지와 허리 등을 더듬고 있었다. 어린 녀석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게 불편한 건 여전했지만 바지 아래의 상황은 내 의지와는 별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젠장. 이래서 남자라는 생물은 ... 답이 없다. 안쪽 방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가볍게 술 한잔 할까?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며 말이야."

"네, 좋아요."

"이런 날에 어울리는 술을 알고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형은 손을 뻗어 안쪽에 있는 인터폰을 들고 무언가 주문했다. 그러자 지금 내 옆에 있는 아이들처럼 헐벗게 차려 입은 여자아이 네 명이 들어와 각각 형과 은애의 양 옆에 앉았다. 뒤이어 따라온 웨이터들이 가져온 것들로 술과 안주가 차려진다. 여태까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은애의 표정이 묘해졌다. 입으로는 웃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이마와 눈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오...오빠, 그냥 술 마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아아, 몰랐어? 여긴 여자 끼고 술 마시는 데라서 말야. 그냥 술을 시키면 얘네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 쟤네는 일종의 안주 같은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은애는 거북하기 그지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각각 술을 따라주며 안주를 준비한다. 형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가슴과 허벅지를 떡 주무르듯이 만지며 은애에게 술을 권했다. 은애는 그걸 받아들면서도 얼굴이 점점 안 좋아졌다. 형은 그런 은애의 얼굴을 모르는 척 하며 옆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소희라고 했나? 혹시 칵테일 있어?"

칵테일? 칵테일은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에게나 만들어 달라는 거 아닌가? 그걸 옆자리에 앉은 접대부한테 물어보면 그게 나오는 건가? 그런데 정말 나왔다.

"어머, 사장님. 너무 초반부터 달리시는 거 아니에요?"

소희라고 불린 아이가 가슴 안쪽에서 뭔가 캡슐을 꺼냈다. 형은 그걸 보더니 슬쩍 미소를 지으며 조용하게 말했다.

"나는 됐고 여기 언니에게 한 잔 드려. 너희가 오늘 이 언니 제대로 뽕 가게 하면 내가 큰 거 한 장씩 쏜다."

큰 거 한장이라는 말에 다들 표정이 변했다.

"꺄아~ 진짜요?"

네 명의 여자아이들은 태근이 형은 제쳐두고 은애에게 달라붙어 언니, 언니 거리며 술과 안주를 연신 건넸다. 소희라는 애는 캡슐을 열고 잔에 붓더니 거기에 양주를 채웠다. 그걸 은애에게 내밀었다.

"언니, 이거 완전 좋은 거예요. 쭉 들이키세요."

"이... 이게 뭔데?"

"아이, 참. 정말 뿅 가는 거라니까요."

은애는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형을 바라보았지만 형은 도리어 그걸 마셔야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며 은애를 부추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은애는 결국 잔을 들이켰다. 은애가 눈을 딱 감고 잔을 들이키는 동안 형은 이쪽을 향해,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손동작을 해보였다.

OK 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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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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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석이를 접대하고 있는 아이들. 소희. 유진.

현재 태근이를 접대하고 있는 아이들. 지유. 수희.

현재 은애를 접대하고 있는 아이들. 슬기. 하나.

전부 16~17세 입니다.

1997년 상반기 때 국내 한 일간지에서 "여고생 접대부 늘고 있다"라는 제목의 르포 기사가 실려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 때 나라가 망하니 어쩌니 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데... 요새는 이런 거 깜도 안 되는 기사겠지요?

그리고 그 해 7월달에 온 나라를 뒤집어 놓는 대형 비디오가 하나 출시되죠. "빨간 마후라" 여기 출연한 여학생이 아마 그 때 중학생인가 그랬는데 평소에도 접대부 생활 등을 했었다고 진술했었습니다.

휴우.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본 소설은 픽션이며 현실의 그 어떤 이름, 지명, 장소, 단체, 명칭, 조직 등과 상관이 없습니다.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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