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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서 녀석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면 저 두고 아저씨 혼자서 그냥 가던가요."
"아아, 알았다. 알았어."
내가 투덜거리며 쪼그리고 앉아 등을 내밀었더니 와락 업혀 온다. 손을 어떻게 할까 난감해서 되도록 궁둥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허벅지 쪽으로 잡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미니스커트 입고 있었잖아. 이래도 되는 거야? 손에 닿는 허벅지의 감촉에 신경 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그런 자세로 한참을 걸어갔다. 공원을 벗어날 때쯤 되자 녀석은 내 목에 팔을 가득 두른 채 귀에 대고 말했다.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뭐가, 인마."
"여자가 등 뒤에 업혀 있잖아요. 등 쪽에 닿는 특별한 감촉 같은 거 말이에요."
".....없는데? 어라. 너 제법 무겁구나. 고만한 키 치고는 말야."
"아, 진짜."
녀석이 버둥거리더니 바닥에 내려선다. 뭐야. 잘만 걷는구만. 녀석은 나를 두고 한참이나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황급히 따라갔더니 녀석이 투덜거리는 게 들렸다. "뽕도 소용없네." 어쩌고저쩌고. 한국영화의 길이 남을 야외섹스 촬영물의 걸작 "뽕"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거야, 대체. 나중에 가까스로 화가 풀린 유진은 다시 내 손을 잡아끌고 이곳저곳으로 신나게 구경을 다녔다. 신발을 괜히 사줬나.... 너무 활기가 넘치잖아, 이 녀석!
"어? 저건....?"
길을 걷던 유진이가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저기로 들어가는 소란이를 본 거 같은데.. 맞나 모르겠는데요.?"
녀석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니 엄청 커다란 교회였다. 그런데 분명 교회인데 입구에 무슨 업소 간판 걸려있듯이 쓰여 있는 이름이 뭔가 이상하게 길었다.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 뭐야. 말세를 찬양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게다가 결코 평범한 교회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입구 쪽에는 덩치 좋은 아저씨들이 마치 보초라도 서듯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 분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기도"들인 모양이었다. 여하간 분위기가 이상한 곳이었다. 난 유진이의 팔을 잡았다.
"가까이 가지 마."
"방금 소란이 들어간 것 같은데요."
"소란이가 원래 저런 데 다녀? 알고 있었어?"
"아뇨. 전혀요. 평소에 그런 이야기는 일절 없었는데. 내가 잘못 봤나?"
유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쪽에 가까이 가보려고 했지만 기도들의 제지에 인해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유진이에게 내일 소란이에게 물어보라고 이르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진은 소란이에 대해 꽤 걱정했다. 친한 사이라서 걱정이 더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잘못 봤을 거라고 애써 위로했다. 해가 지기 전에 녀석을 집에다 데려다 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녀석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그냥 보내기 좀 그랬다. 어차피 이 녀석이 집에 가면 늘 혼자 저녁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밥 먹고 들어갈래?"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시간은 좀 이르지만 집 근처에서 저녁도 사주기로 했다. 점심은 느끼한 걸 먹었던 터라 밥을 먹기로 했다. 주변을 좀 걷다 보니 철판볶음밥을 하는 집이 하나 보였다. 삼부자 볶음밥이라고 쓰인 간판이 좀 웃기게 생겼다. 유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우렁찬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요!!!"
길게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두고 주방과 직접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었다. 철판에서는 먹음직스러운 밥과 야채, 고기 등이 익어가고 있었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남자 세 명이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가게는 작았지만 제법 사람이 있는 걸로 봐서 나름 맛집인 모양이었다. 안쪽에 빈 자리가 있어 유진과 함께 거기에 앉았다.
"자! 시원한 물 받으시구요. 주문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내 나이쯤 되었을까. 굉장히 서글서글하게 생긴 남자가 우리 앞에 서서 묻는다. 탁자 위에 놓인 조그만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메뉴가 딱 세 글자만 쓰여 있다. 육, 해, 공.
"우리가 여기 처음 와서 그러는데요. 어떻게 주문하면 돼요?"
"간단합니다. 돼지고기, 해물, 닭고기. 셋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걸로 볶아드립니다. 김치는 당연히 곁들여지구요."
아하. 그제서야 이해했다. 유진을 돌아보니 해물로 하겠단다.
"그럼 해물 하나랑 닭고기 하나요."
"예에! 여기 해공 둘! 막내! 일루 와라!"
생긴 것 만큼이나 접대도 시원시원했다. 남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반대편 끝에 있는 이를 불렀다. 막내라고 불린 녀석이 밥과 야채가 담긴 커다란 그릇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왔다. 녀석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바다 하나, 하늘 하나, 맞으시죠?"
여긴 손님이 해물과 닭고기라고 말하면 주문 받는 사람이 해와 공이라고 말하고 정작 만드는 사람은 바다와 하늘이라고 표현하는 독특한 시스템인 모양이다. 그러나 의미가 워낙 명료해서 헷갈릴 일은 없을 듯 싶었다.
"네, 맞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물을 마시던 유진이 우리 앞에 온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택용이 아냐?"
"어? 어... 유진이구나."
철판에 밥과 재료를 놓고 볶으려던 녀석은 유진을 보고 멍하니 있었다. 그냥 아는 사람 만난 것치고는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녀석은 유진이를 보다가 그 옆에 앉아 있는 나도 한번 쳐다본다. 그런데 그 눈빛이 어째 아껴서 숨겨두었던 과자를 냅다 꺼내먹은 형을 노려보는 그런 눈빛이다. 그때 아까 우리에게 주문을 받은 이가 성큼 달려와 택용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인마! 안 볶고 뭐해!"
"어?! 어... 알았어. 형."
그는 유진이 앞에서 뒤통수를 맞은 게 못내 아쉬운 듯 자기 형과 유진이를 번갈아 보며 투덜거렸다. 그 이후로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밥을 열심히 볶았다. 쇠로 된 커다란 두 개의 뒤집개를 가지고 이리저리 뒤집으며 볶는 모습이 무척이나 능숙하다. 나는 유진에게 물었다.
"친구야?"
"아저....아니, 선생님. 우리 반 택용이잖아요. 김택용."
"으응?"
그제서야 다시 얼굴을 쳐다보니 좀 낯이 익다. 택용은 날 보고 고개를 꾸벅했다. 지애는 출석부를 주며 사진과 이름을 빨리 외우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 애들이라면 모를까 남자 얼굴을 내가 어떻게 외워! 내 어설픈 기억이 맞는다면 이 녀석은 아마도 교실 맨 뒤에 앉아있던 녀석인 것 같은데 솔직히 잘 생각은 안 난다. 일단 변명을 하고 인사를 건넸다.
"아, 그래. 두건 쓰고 있어서 못 알아봤다. 그래, 여기서 알바 하는 거야?"
"예. 저희 집에서 하는 거라..."
택용은 시선은 철판에 고정시킨 채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젊은 사람보고 형이라고 했었지. 그러면 저기 끝에 있는 나이 든 아저씨는 아버지인건가? 간판에도 삼부자라고 쓰여 있더만 정말 그런 모양이다. 이윽고 조리가 다 끝났는지 택용이가 우리 앞으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오목한 그릇에 담긴 볶음밥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고 위에 뿌려진 김가루와 깨가 풍미를 자극한다. 그런데 유진이와 내가 받은 게 좀 달랐다. 유진이는 해물도 가득 들어있고 계란 후라이도 하나 얹어져 있는데 내 꺼는 어째 닭고기도 별로 없고 밥만 잔뜩 이다. 계란 후라이도 없다. 내가 고개를 들어 택용이를 쳐다보자 유진이 쪽을 빤히 보고 있던 녀석이 내 시선을 눈치 채고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손님에게 갔다. 내가 말야, 여자의 눈치에는 상당히 둔한 편이지만 남자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하다. 그렇군. 헤에. 그런 건가.
"어이, 진유진."
"왜요?"
"인기 좋아?"
난데없는 내 소리에 유진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날 빤히 보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밥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래?"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고기가 좀 적어서 그렇긴 하지만 양념도 잘 배어있고 밥도 따끈따끈하니 아주 맛이 좋았다. 한 그릇을 금방 뚝딱 해치우고 있노라니 유진이가 자기 것 좀 더 먹으라며 권했다. 유진의 그릇에서 내 쪽으로 덜어 담고 있는데 어쩐지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기분이다. 아까부터 저 녀석은 이쪽을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 딴에는 안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내 레이더에는 제대로 걸려있었다. 난 일부러 유진이 쪽으로 몸을 가깝게 붙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택용이랑은 친해?"
"별로요. 그건 왜요?"
"흐음.... 아니, 내가 뭐 그렇게 눈치가 빠르거나 그런 건 아닌데 말야. 아무래도...."
그 때 갑자기 나와 유진이 사이에 사이다 병이 턱 하니 놓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야기의 당사자, 택용이다.
"서비스입니다. 손.님."
"아, 그래? 고맙네. 택용 군."
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녀석에게 최대한 밝게 웃어주었다. 사이다를 후식 삼아 유진이와 나눠 마시고 가게를 나왔다. 나중에 학교를 가거들랑 좀 주의 깊게 녀석을 관찰해보아야겠다. 저 나이대의 남자애들이 저렇게 구는 걸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귀엽다고나 할까. 유진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녀석은 이번에도 나에게 집에 들렀다 가지 않겠냐고 하였지만 난 정중히 사양했다.
그곳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 돌아가기로 했다. 생각치도 못 했던 지출이 크기도 하거니와 하도 사람 많은 곳을 다녀왔더니 정신이 성가셔서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시장을 가로 질러 가는 길에 어제 현아와 떡볶이를 먹었던 분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집에 혼자 있을 마리가 생각났다. 시간이 어중간하긴 하지만 집에 들어가 마리랑 간식을 먹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도 있고.... 마치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집에 혼자 두고 나온 기분이라 그걸 달래줄 겸 뭔가를 사갈 생각에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마리의 왕성한 식성을 고려하여 아줌마에게 떡볶이랑 순대, 튀김을 좀 넉넉히 달라 하고 포장을 부탁한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안쪽에서 나오던 사람과 마주쳤다.
"어?"
금발의 벽안인 여자였다. 얼굴이 낯이 익다. 이름도 알고 있다. 빅토리아 베일리. K대 부속고등학교 2,3학년 회화를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교사였다. 기가연구실에서 본 적이 있고 금요일 회식에도 같이 갔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다. 굳이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아니거니와 아무래도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랄까. 그녀가 말을 먼저 걸지 않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와 이렇게 딱 마주치다니... 하아. 사람 많고 공간이 넓은 학교에서라면 모를까, 좁은 공간에서 딱 둘이 마주쳤는데 그냥 모른 척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싶어서 일단 가볍게 손을 들고,
"Hi."
라고 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지나쳐 아줌마에게 간다. 씹...씹혔다. 흐음. 뭐, 나를 못 알아보았거나 내 발음이 하도 부실해서 굳이 대화할 필요를 못 느낀 모양이다. 하긴 외국인들이 보면 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고도 하잖아? 빅토리아가 다가 온 걸 안 아줌마가 순대를 썰다 말고 가게 안을 한번 돌아보았다.
"오뎅이랑 떡볶이랑 순대랑 만두랑 해서 6,500원이야."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 저만큼이라니. 저쪽도 마리 못지않은 대식가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빅토리아가 아줌마에게 내민 것은 오천 원짜리 한 장이었다. 아줌마가 인상을 쓰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이 아가씨 또 이러네. 육천 오백 원이라니까. 헤이. 그 뭐다냐. 그래, 깁미 머니. 천오백 원 더. 오케이?"
아줌마가 손짓발짓으로 천오백원이 부족하다는 의사를 열심히 표현했지만 빅토리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하이구 답답해. 이봐요. 아저씨. 혹시 영어할 줄 알아요?"
"네? 저요?"
난데없이 화살이 나에게 향한다.
"이 아가씨한테 천오백 원 더 내야 한다고 말 좀 해줘. 자주 오는 아가씨인데도 맨날 돈을 부족하게 내는 통에 내가 아주 미치겠어."
"아, 예에..."
시장 분식집에 자주 오는 금발 아가씨라. 굉장히 미스매치한 광경이긴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직면한 현실이다.
"젊은 사람이니 영어 좀 하겠지? 내 이야기 좀 통역 해줘봐."
"에? 전 공대생이라....."
"공대생이면 대학생 아녀? 얼른 말 좀 해줘봐."
아줌마가 내 팔을 잡고 끌어다 빅토리아 앞에다 세운다. 전공수업 때문에 원서는 항상 읽고 있지만 그걸 소리 내어 말해본 적은 거의 없다. 내가 아는 영어 단어라고 해봐야 제어공학이나 전기 혹은 기계공학에 관련된 용어뿐인데 그렇다고 그 Control 이니 Impedance 이니 아니면 Torque 같은 단어가 여기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에...아... 그러니까.... 유 머스트 페이 모어 머니, 오케이?"
최대한 간략하게, 그러면서도 의사 전달에 무리가 없는 문장을 만들어 내어 살짝 던져본다. 빅토리아는 눈을 깜빡이며 날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일단 어색한 미소라도 지어본다. 그러자 여태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빅토리아가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무어라 쏟아낸다.
"I have no money anymore. But a command economy is an economy in which production is in the hands of the state rather than the hands of private enterprises. It is similar to a market economy in that the goal is growth and the dependence on the natural world is mostly ignored. Do you agree with me?"
"....예스...! 아, 아닌가? 노인가?"
으악. 사람 살려. 아니. 한국인 살려! 아무리 영어 쓰는 코쟁이라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말을 막 해도 되는 거야? 듣는 사람을 생각을 좀 해주란 말야. 이 나라에서 영어듣기평가는 아주 천천히, 그것도 두 번이나 불러준다고! 내가 쩔쩔 매고 있는데도 아줌마는 뒤에서 자꾸 재촉한다. "뭐라 그려? 전에 안 낸 돈도 내라고 말 좀 해주고 말야." 아줌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나오는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구요. 빅토리아는 무어라무어라 말을 더 했지만 여전히 못 알아듣겠다. 앞에는 영어, 뒤에는 아줌마. 전장에 포위되어 사면에서 고향 노래가 들려올 때, 초나라 군사들이 느낀 심정이 이런 심정일까.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아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다. 난 아줌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모자란 돈이 얼마라구요?"
"이번엔 천오백 원. 그리고 예전부터 안 냈던 돈들은 내가 어디 써 놨는데.... 여기 있네. 전부 해서 팔만 오천 원."
"끄억. 그... 그렇게까지 외상이 있는 데도 계속 손님으로 받아주세요?"
아줌마가 내 등 뒤에 서 있는 빅토리아를 넘겨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하기도 그렇잖어."
"그..그런가요. 이게 바로 한국인의 정이군요. 그럼요, 일단 이거 받으세요."
지갑에 있는 돈 중에서 세종대왕 세 분을 꺼내어 아줌마에게 건넸다. 아줌마가 갑작스런 대납에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다.
"이 분이랑 저랑 같은 학교에서 일하거든요. 제가 나중에 모자란 만큼 받아다 드릴게요."
"어머, 그래? 그럼 잘 됐네. 그려. 부탁 좀 할게, 총각."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어깨가 축 늘어진다.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 담긴 아직 따끈한 떡볶이의 온기가 날 데워주기는 하지만 역부족이다. 터덜거리며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누군가 내 뒤를 따라붙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빅토리아다. 아까 못 다한 영어회화(?)를 마저 하러 따라 온 건가.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끝났다고. 물론 더 솔직히 말하면 외국인이랑 말하라는 마음의 준비는 앞으로 회화학원을 2~3년 다니고 나서야 겨우 들까말까 하다고.
"너 등신이지?"
........라는 환청이 들린다. 아까 영어를 너무 많이 들었나. 이게 어디서 들리는 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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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일이 많아 연재가 조금 늦었습니다.
다시 연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