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54화 (5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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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그녀에게서 후광이 보일 정도다. 비상등을 켠 채로 인도 가까이 차를 대고 있는 선영을 보며 만세를 외쳤다. 두 팔을 번쩍 들고 환영하자 그녀는 날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고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부 들고 갈 수도 없는 인간들에게 묶여 있는 사정을 설명하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 차에 우리 인원을 모두 태우도록 했다. 한 명씩 끌어다가 뒷자리에 처박아두고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선영이 내 쪽을 보더니 빙긋 웃었다.

"한 명이라도 토하거나.... 그러면 알지?"

"헉. 알았어."

그랬다간 1년짜리 계약이 종신계약으로 연장되겠지. 다행히 아까 열심히 속을 게워내던 현아는 더 이상 분출이 없었다. 뒷자리에 짐짝처럼 던져놓은 세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보았지만 특별히 이상 징후는 없었다. 멀미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인원들이 타서 그런지 선영은 평소와는 다르게 차를 천천히 몰면서 내게 물었다.

"지나가다 보고 한석이인가 싶어서 차를 돌렸는데 역시 맞았네. 자기는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

"회식을 했는데 말야. 다들 어마어마하게 드시더라구."

"흠. 자긴 그러면 엄청 뺀 거야, 아님 마셨는데 멀쩡한 거야?"

"왜 이래, 나도 지금 취한 상태라고."

"평상시보다 더 정상으로 보이는데? 하긴, 자기는 평상시가 좀 이상하긴 하지."

"뭐야?"

선영과의 이런 식의 대화가 요새는 일상이다. 그녀가 날 부르는 "자기"라는 호칭이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그녀라면 나뿐만 아니라 숱한 남자들을 그런 호칭으로 부르겠다 싶어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전처럼 검은 옷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밝은 옷은 아니었다. 안쪽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재킷을 걸친 회색의 투피스 차림이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반 사무직 여성 같아 보이는 패션이었다. 치마가 좀 짧아서 허벅지가 많이 드러났다는 점 말고는 평범한 차림이었다. 너 아니었으면 저 사람들은 길바닥에 재웠을 거란 이야기를 했더니 선영이 한참 웃었다.

"일단 우리 애들 쉬는 곳에 자리를 내줄테니까 거기서 정신 좀 차리게 해서 내보내. 봄이긴 한데 그래도 아직 길바닥은 추우니까."

ROSE 앞에 차를 댄다. 선영은 웨이터 몇 명을 불러 시체놀이 중인 내 실습동기들을 옮기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선영이 날 불렀다.

"자긴 어떻게 할래? 한 잔 더 하고 갈래?"

ROSE의 간판을 올려다본다.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 이긴 하지만 실려 들어간 녀석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자다가 일어났더니 룸살롱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도록 설명도 필요할 테고 말이다.

"술은 됐고, 쟤네들 일어날 때까지는 좀 있을게. 그냥 두고 가긴 좀 그래."

"그래, 그러면."

가게에 들어가는 선영을 따라 들어갔다. 비녀를 꽂아 틀어 올린 그녀의 뒷머리를 보면서 불러본다.

"선영아."

"응?"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가 돌아본다. 화장을 그리 진하게 한 것도 아니고 무척이나 단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고마워."

그러자 그녀는 살짝 웃더니 몸을 마저 돌려 나를 마주한다. 안 그래도 키 차이가 있는데 그녀가 계단 아래쪽에 있어서 높이 차는 좀 났다.

"말로만?"

"그러면?"

또 청구서라도 작성하라는 건가 싶어서 불안해하고 있는데 선영이 가볍게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진다.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더니 선영이 내 볼살을 확 쥐고 아래로 잡아당긴다.

"아얏."

잡아당겨진 볼의 얼얼함에 비명을 지르는 사이 반대편 볼에는 전혀 다른 느낌이 감촉이 와 닿았다. 그렇게 남의 얼굴을 잡아당겨 볼에 입맞춤을 해준 선영은 잠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내 손을 놓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아직 남아있는 몸 안의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방금 전 선영이 보여준 "수줍은" 표정 때문일까. 몸이 확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는 흔히 말하는 갈 때까지 간 사이인데도 이런 익숙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묘해진다. 얼얼한 볼과 달달한 볼이 양쪽에서 나를 혼란에 빠트린다.

한참 만에 정신을 추스르고 안으로 들어간다. 선영은 보이지 않았다. 전에 왔을 때보다 꽤나 바빠 보이는 내부였다. 하긴 그때는 훤한 낮이었고 지금은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시각이니 인구밀도가 다를 수 밖에 없겠다. 줄지어 지나가는 아가씨들과 커다란 쟁반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웨이터들을 피해 전에 가보았던 사무실로 향했다. 선영에게 동기들을 어디다 두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그녀가 갈만한 곳이 여기 말고는 생각이 잘 안 났다.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어머,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유진의 엄마, 유미였다. 애엄마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날씬하게 쭉 벋은 바디에 전보다 훨씬 더 과감한 앞트임으로 가슴의 계곡을 가득 강조하고 길게 낸 슬릿으로 허벅지의 탄력을 강조하는 패션의 그녀가 몹시 반가운 표정으로 날 반겨주었다. 그 옆에는 선영이 서 있었다.

"아, 저기..... 안녕하세요."

"호호, 저야 늘 안녕하죠. 오늘은 어쩜, 잘 차려 입고 놀러 오셨네요? 저흰 그렇게까지 딱딱한 가게는 아닌데. 물론 이렇게 멋있게 생긴 젊은 손님이 오시면 다들 좋아라 하긴 하죠. 호호호."

교생 첫 출근이라고 나름 차려 입고 온 옷차림을 유미가 칭찬한다. 그나저나 놀러 왔다니. 그런 건 아닌데.... 난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전 그게 아니라 선영이한테 볼 일이..."

"어머, 벌써 지명이세요? 아직 다른 애들도 안 보셨는데?"

유미가 깜짝 놀란 표정을 과장스럽게 지으며 선영을 돌아본다. 어떤 종이 꾸러미를 들여다보고 있던 선영이 고개를 살짝 들어 유미와 나를 번갈아 본다. 날 보고 살짝 인상을 쓰긴 했는데 애써 못 본 척 했다. 유미는 박수를 짝짝 치더니 선영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내 팔짱도 끼더니 문을 열고 나가면서 나와 선영을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럼 제가 방 하나 내드릴 테니 선영이랑 재미있게 노세요. 원래 얘가 이렇게 놀 군번은 아닌데 선생님이니까 특별히 내드리는 거예요. 그나저나 저희 가게에 별로 오시지도 않았으면 선영이는 어떻게 딱 아시나 몰라요?"

"아, 저... 그게....."

"호호호. 암튼, 선영아. 이 분 중요한 분인 거 알지? 잘 모셔 줘."

유미의 등쌀에 밀려 선영과 나는 한 방에 들어가서 자리하게 되었다. 노래방을 연상시키는 너댓 평짜리 방이었다. 일반적인 노래방보다 내부며 장식이 훨씬 고급스럽다. 소파가 아주 푹신하다. 과일 안주와 음료, 맥주 등이 테이블에 세팅된다. 웨이터들이 빠져 나가고 나자 옆 자리에 앉은 선영이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봐. 중요한 분. 술 생각 없다며."

"아니, 난 꼭 술을 마시겠다고는 안 했는데."

테이블에 놓인 캔음료 하나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선영이 먼저 캔을 잡아 따더니 잔에 얼음을 채우고 따라준다. 내게 잔을 건네며 한숨을 푹 내쉰다.

"월초라서 정리할 것도 많은데, 어휴...."

아까 그녀가 들고 있던 종이 뭉치들을 떠올린다.

"아까 들고 있던 게 다 뭐야?"

"술이랑 음식 재고 목록. 업체들한테 돈 줘야 하는 거. 그리고 애들 월급."

"그런 걸 네가 다 하는 거야?"

"당연하지. 언니한테 맡겨봐. 한 달도 못 가서 여기 살림 다 거덜날거야."

선영의 말을 듣고 언제나 웃는 표정의 유미를 떠올린다. 몇 번 본 것은 아니지만 어째 표정이 항상 같다. 웃는 얼굴로 무슨 일이든 오케이인 그녀. 과외 선생을 구하고 페이를 정하는 것도 지 딸내미가 하고 싶다는 대로 오케이. 지 딸내미를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보내는 것도 오케이. 딸내미 과외 선생님이 놀러 오면 비싼 술에 아가씨도 오케이. 흐음. 듣고 보니 그런 사람의 밑에서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영이 신경 써야 할 업무량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영의 성격상 그런 것을 또 그냥 가만히 두고 보지 못 했겠지.

"고생이 많네."

"알면서 날 지명해?"

"아니, 난 딱히 지명이라니 보단 그냥 뭣 좀 물어볼라고....."

선영이 따라준 음료를 마신다. 우롱차다. 시원하게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걔네들이라면 저기 안쪽에 있어. 나중에 깨면 연락 오겠지."

선영은 내가 뭘 물어볼지 미리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손으로 방울 토마토를 하나씩 따서 내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좀 받아먹었다. 그러나 아까 좀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가 불렀다.

"배부르다. 그만 먹을래."

"자기 회식에서 많이 먹었나 보네?"

선영은 내 입으로 가져오던 방울 토마토를 도로 자기 입에 넣는다.

"술로 배 채웠다니깐."

"학교 선생님들이라면서 뭔 술을 그렇게 먹어?"

"내 말이."

우롱차를 조금씩 마셔가면서 오늘 있었던 학교에서의 일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 해 주었다. 출근 이야기, 교무회의, 담당 선생, 선생님들의 수다.... 선영은 자기도 음료 하나를 따서 홀짝이면서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유진이 이야기가 나오자 반색한다.

"어쩜.... 걔네 반이 자기 담당이라고?"

"그러게 말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반에 들어갈 때는 나도 놀랐다니깐.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내 담당이라기 보단 내 사수가 담임인 반이지."

"암튼 간에. 유진이 걔가 반장이라고? 역시 유진이는 대단해. 근데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 했을까?"

유진이 이야기만 나오면 선영은 얼굴이 활짝 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그렇게나 좋아?"

"뭐가?"

"유진이 말야. 넌 유진이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이 바뀌어."

"그랬나, 내가?"

"응. 확실히."

"흐음. 그랬었나, 내가...."

선영은 크게 부정하지 않으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이런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목을 살짝 잡고 내게 당겨 입을 맞추었다. 잠깐의 입맞춤이 몹시 달콤하다. 입을 떼자 선영이 눈을 뜨며 가볍게 날 밀친다.

"지명 아니라며?"

"지명이면 이런 거 마음대로 해도 돼?"

내 손은 이미 그녀의 허벅지를 지나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익숙한 그 곳이 날 기다린다.

"원래는 안 돼.... 그치만,"

내게 몸을 기대오며 선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기니까 괜찮아."

이번에는 선영의 입술이 내게 다가온다.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다가앉은 선영은 내 바지 위를, 정확히 말하자면 내 허벅지 위쪽을, 좀 더 세심하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내 다리 사이를 쓰다듬고 있다. 손 전체로 전체의 윤곽을 훑고 네 손가락으로는 불알 아래쪽을 살살 긁으면서 엄지로는 귀두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을 정확히 쓰다듬는다.

"흐음...."

신음이 절로 나온다. 그녀의 집에서도 곧잘 받아보았던 환상의 핑거 테크닉은 여전했다.

"오늘 내가 빨간 날이라서.... 그냥 입으로만 해줄게."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여름의 열대야처럼 끈적거리며 가을의 잘 익은 과일보다도 더 농염하고 짙은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와 박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선영의 손이 미끄러지듯 들어와 내 물건을 꺼낸다.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기대감으로 가득한 주니어는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며 꼿꼿이 일어난다. 뜨겁기 그지없는 살덩이를 매끄러운 손가락이 휘감는다. 쥔다. 내 것이 그녀에게 쥐어진다.

"나 말고도 다른데다가 이거 가끔 쓰지?"

이거라는 건..... 그녀 손에 쥐어진 걸 말하는 거겠지? 다른 데라면 역시 다른 여성을 말할 테고.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짓말을 못 한다는 게 이럴 때 참 불편하다. 선영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내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여태껏 손에서 주물럭거리던 것을 입에 가져간다. 입술로 살짝 문 상태에서 날 올려다보며 묻는다.

"확 깨물어 버릴까?"

"에엑...."

"그럼 나도 못 쓰겠지. 흥."

"예에...."

지금 깨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아.... 흐으.... 아.....으아...... 으읍......

정말 프로의 테크닉은 다르구나 싶었다. 선영의 집에서 이런 서비스를 안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장소가 주는 묘한 느낌이 나의 흥분을 더욱 부채질 한다. 선영의 기교는 단순히 입에 물고 빠는 게 아니라 뭐랄까. 그냥 빠는 게 아니라 살짝 물고 빠는 것도 아닌 묘한 울림이 입안에서 일어나 내 물건을 감싸고돈다. 숫제 진동마사지기로 훑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넣고 빠는 건 기본.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목 깊이까지도 들락날락하고 귀두 아래쪽의 파인 부분을 입술로 가볍게 물고 혀끝으로 오줌구멍을 살살살 문지른다. 손가락으로 육봉의 아랫부분에서 중간 부분까지 가볍게 쥐고는 잔뜩 발린 침을 윤활유 삼아 부드럽고도 힘차게 문지른다. 츄룹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타고 흐른다. 입술에 머금었다가 요도를 한 번씩 자극한다. 앞뒤로 흔들리는 선영의 머리의 스피드가 점점 더해간다. 단정하게 입은 그녀가 이렇듯 날 물고 아래쪽에서 흔들어대고 있다는 시각적 자극은 굉장한 쾌감이었다.

"서...선영아.... 지금은......"

아래로부터 치밀어져 올라오는 사정감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선영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녀는 입을 떼지 않았다. 귀두를 입술로 살짝 물고 엄지와 검지로 만든 링으로 더욱 빠르게 스트로크 한다.

"서...선영아... 으음..."

뿜어진다. 나아간다. 선영의 입안으로 사정하고 말았다. 꿀럭이며 제2파와 3파를 쏘아내는 동안에도 선영은 계속 살짝 물고 있었다. 손으로 아래로부터 쭈욱 훑어 올리더니 마치 남은 치약 짜내듯이 중간부분을 힘주어 쥐고는 입으로 쪼옥 빨아낸다. 그제야 입을 뗀다. 기둥의 끝 부분과 그녀의 입 사이에 여릿한 현수교가 생겨난다.

"하아...하아....."

입 안 가득 싸버린 내 정액을 삼키는 선영을 보면서 좀 놀랐다. 저걸 뱉는 것도 아니고 삼키다니..... 섹스도 아닌 고작 오랄 뿐이었는데도 탈진 아닌 탈진을 느끼고 만다. 아득해지는 기분이 꽤 나쁘지 않다.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뽑아 다시 틀어 올리고 있는 선영을 보고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 나만 바지를 까 내리고 물건을 꺼내고 있으니 말이다. 황급히 물건을 넣는다. 사정 직후이긴 하지만 아직 덜 부드러워진 녀석을 넣느라 조금 애먹었다. 우롱차로 입을 헹구는 선영을 보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 많이 해?"

그러자 선영의 표정이 다소 굳었다. 웃는 얼굴이긴 하지만 묘하게 그늘졌달까.

"그런 거 묻는 건 매너가 아냐."

"어? 어... 미안."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생각에서 입까지 전해지는데 중간에 버퍼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내 못난 사고 회로를 탓해보지만 선영의 표정은 이미 살짝 차가워져 있었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바로 잡더니 문가에 섰다.

"자기가 원하면 풀로 뛸 수 있는 다른 애로 넣어줄게. 난 좀 바빠서."

"아냐. 괜찮아. 나도 이만 가볼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영을 따라 나섰다. 이렇게 그녀를 보내는 건 다소 아쉬웠다. 문손잡이에 손을 얹고 있는 선영의 팔을 가만히 잡아당긴다. 별다른 저항 없이 선영의 몸이 돌아서서 내게 안긴다.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저녁에 쉬면 미리 연락 줘. 놀러 갈게."

그러자 선영이 피식 웃으며 날 살짝 밀어낸다.

"자기 말고도 같이 놀 사람 많거든?"

"누구?"

"내가 말하면 알려나? 한 두 명이 아닌데?"

"야, 너 진짜...."

선영은 웃으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방에서 나가려던 우리도 덩달아 놀랐다.

"누...구시죠?"

선영이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딸꾹거리고 있는 쪼그만 여자가 대답을 못하고 있기에 내가 대신 대답했다.

"아까 같이 온 동기인데.... 현아 씨, 여기서 뭐하세요?"

"아? 예? 저? 그게, 그러니까. 한석 씨가, 여기 계시다고 해서...."

대체로 가볍게, 혹은 헐벗게 입은 아가씨가 많은 이곳에서 그녀의 복장은 상대적으로 참 답답해 보였다. 선영은 그제서야 아까 자기가 싣고 온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내게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그 자리를 떴다. 난 현아를 따라 휴게실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가면서 현아에게 물었다.

"술이 좀 깨셨어요? 속은 어때요?"

"아.... 아직 머리는 좀 그렇고.... 속은 이제 괜찮아요."

하긴 그렇겠지. 아까 이 아가씨가 쏟아놓은 것만 모아서 전을 부쳐도 동네잔치가 가능할 지경인데 그 정도로 쏟아놓고 나면 누구라도 속이 편해지겠지.

"다른 사람들은요?"

"아직 자고 있어요. 저만 먼저 일어나서 다른 분께 여쭤보니 한석 씨는 저 방에 있다 그래서...."

"그렇구나."

참으로 보기만 해도 눈요기가 고맙게 되는 아가씨들이 한 무리 지나가는 바람에 대화가 잠깐 끊겼다. 현아는 그 아가씨들을 힐끔거리더니 내게 조용히 묻는다.

"저, 근데 여긴 대체 어디에요?"

"아, 제가 아는 분이 하는 술집인데요. 아까 도움을 좀 받았어요. 전부 취해서 해롱거리는데 혼자서 도저히 못 옮기겠더라구요."

"그....그래요?"

현아는 꽤나 위축이 된 듯 주변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평범한 여대생이라면 이런 곳을 와보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주변을 보다가 이내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한석 씨는 이런 곳 자주 오세요?"

"네? 저요? 그럴 리가요. 이제 딱 두 번째 와보는 건데요?"

"아까 그분이랑도 되게 친하게 보이던데...."

"아하하하. 에에. 그게. 그냥 어쩌다 알게 됐어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현아와 함께 휴게실로 들어갔다. 널찍한 온돌방에 이미 몇 명의 아가씨들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사물함 같은 것이 주욱 늘어서 있고 맞은 편 벽면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린 화장대가 세 개나 있었다. 이쪽 벽면에는 이런 저런 옷들이 걸려있었고 바닥에는 태근이 형과 은애가 부둥켜안은 채로 자고 있었다. 방에 있던 아가씨 중에서 한 명이 날 보고 아는 체 한다. 에.... 저 분이 누구였더라. 얼굴은 낯이 익은데...

"어머, 한석 씨인가? 맞죠?"

그래. 맞다. 지나라고 했었지. 내 물건을 입에 넣고 굴려주시던 그 고마운 분. 한 번 보았던 지나 씨. 참 반갑기는 한데 말이죠.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현아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거짓말쟁이."

아오. 진짜 딱 두 번째 오는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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