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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골수 뽑아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구나. 명희의 말투에는 쓸쓸함과 회한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얘가 이런 식으로 배려해주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뭔가 생경했다.
"저, 그럼 이제 노예 아닌가요?"
"노예는 무슨... 니가 하도 어리버리하니까 놀려 먹기 좋았던 거지. 설마 넌 내가 신고하리란 걸 믿었어?"
"어, 그때 사진도 찍으시고 막...."
"뭐, 아주 열 받았을 때는 그럴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순간 긴장했다. 역시 얘는 무서운 여자였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 없어. 니도 여자 친구 있다고 하면 나랑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아니, 그게... 그러니까... 딱히 여자 친구는 없는데요."
"뭐?"
명희의 커다란 눈이 나를 향한다.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제가 언제 여자 친구 생겼다고 이야기했었던가요?"
"뭔 소리야! 여자랑 잤다면서 그럼...........아!"
그때서야 명희는 뭔가 깨달은 듯 나를 매섭게 째려본다.
"그럼 뭐야!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니랑 잤다고? 지금 그 소리야? 대체 그 여자는 뭐하는 여자인데?"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무래도 성질 급한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곤란할 거 같았다. 한참을 주저했지만 결국, 나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내가 지혜를 만나게 된 계기부터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녀와 잤다는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은 굉장히 쑥스러웠지만 이미 반쯤은 말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더 이상 숨기려야 숨길 수 없었다. 게다가 서로 접점이 없다 뿐이지 내가 지혜를 만나게 된 이유에는 명희가 어느 정도 기여한 점도 있으니 말이다. 효진이 이야기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눈치 빠른 명희는 얼추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아... 진짜 골 때린 새끼네. 그래서 그렇게 나 두 번이나 바람맞히고 우연히 만난 사람이 지혜라는 사람이고 지금은 니네 옆집에 산다 이거지. 둘이 짠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효진이라는 지혜 친구랑도 어쩌다 보니 빠굴 떴고."
".......요약을 잘 하시네요."
"좀 닥쳐. 씨발. 니가 어느 정도 어처구니없는 새끼인줄은 알았지만 진짜 이 정도면 거의 기네스다, 기네스. 그럼 그때 그 콘돔도 지혜랑 할 때 끼고 한거냐?"
"아뇨. 쓰기는 효진이랑 할 때....."
"닥치라니까, 좀만아."
"예."
닥치길 원하면 질문을 말던가. 한참 동안 골똘하게 생각에 빠져있던 명희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너 같은 녀석이 대체 왜...."
"네?"
고개를 돌려보니 명희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채로 그렇게 한참 있었다. 명희의 얼굴이 붉어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여기가 어두우니 헛것이 보인 듯싶다.
"너 잘 하냐?"
".........예?"
"생긴 거나 하는 짓거리 보면 정말 병신 중에 상병신이 따로 없는데, 아랫도리 후리는 건 잘 하나보지?"
"........표현력이 좋으시네요."
명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콘돔 남아있어?"
남아있냐고 물으신다면야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만....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자 명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인상을 팍 썼다.
"안 따라와?"
"어딜 가는데요?"
"그걸 말로 해야 돼?"
.....모텔에 가면, 가면 간다고 말을 하든가. 이 사람아.
쏴아아-
이 모텔은 샤워하는 소리가 방 쪽으로 아주 잘 들리게 설계되어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이어질 행위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저 건설비 아낄라고 방음장치 같은 걸 전혀 시공하지 않아서 일까.
태어나서 모텔에 와본 게 오늘로 세 번째고, 여자로는 두 번째 여자다. 근데 그 두 번째 여자가 명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는 나를 데리고 모텔로 향했고 들어오자마자 욕실로 들어가더니 이십여 분 동안 씻고 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있다. 전에 지혜랑 올 때는 들어오자마자 행위에 몰입하느라 이런 기분을 잘 몰랐는데, 욕실에서 지금 씻고 있는 여자가 조금 있다가 나랑 응응을 한다는 건 진짜 야리꼬리한 기분임에 틀림없다.
TV를 틀어보았지만 별로 집중은 안 되었다. 다시 껐다. 욕실을 한번 힐끔 보았다가 다시 벽을 바라본다. 우두커니 그러고 있으니 이윽고 욕실 문이 열리며 명희가 나타났다.
"아, 여긴 시설이 왜 이 모양이야. 쳇. 그냥 홍대 앞으로 갈걸 그랬나."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눌러 짜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샴푸 광고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커다란 수건으로 가슴 언저리를 둘러 마치 튜브탑 원피스를 입은 것 마냥 보인다. 미처 감싸지 못한 어깨의 선이 너무도 고혹적이라 나도 모르게 넋 놓고 쳐다보게 된다.
"넌 안 씻어?"
"씻...씻어야죠."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기분 나쁘게."
"아뇨, 예뻐서요."
명희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내게서 자기 표정을 숨기려는 것 같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너 같은 놈한테 그런 아부 들어도 하나도 안 좋거든?"
"아부 아닌데...."
그녀의 입은 험했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예쁘다는 소리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으니까.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예쁘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거짓말은 아니다. 명희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정도의 미녀이긴 하다. 게다가 나한테나 험하게 말하지 진호 선배 앞에서는 천사 말투가 따로 없다. 교회에서 많은 아줌마들이 자기 아들 소개 시켜주지 못해 안달이라는 이야기는 빈말이 아닐 것이다.
나도 씻어야겠다. 일단 상의를 벗었다. 바지를 벗기 전에 주머니에 있는 삐삐를 빼서 가방에 넣어두었다. 가방을 닫으려는데, 그 때였다.
삐삐가 울렸다.
나도 모르게 명희를 쳐다보았다. 명희는 나를 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내던 손이 딱 멈춰있었다.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사이 삐삐는 제 울 것을 다 울고 다시 조용해졌다. 명희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뭐야. 저거 노예콜 전용 아니었어?"
"맞아요. 저 아무한테도 번호 알려준 적 없었는데...."
내가 가방 안으로 손을 뻗어 삐삐를 집어 들려고 하자 명희가 먼저 손을 뻗어 번개처럼 낚아챈다. 삐삐에 뜬 번호를 들여다보더니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모텔 전화기로 다가가 전화를 건다. 말릴 틈도 없었다.
"여보세요? 호출하신 분이요........... 예, 맞습니다............아, 그래요? 그쪽이?"
여기쯤에서 명희는 나를 한번 노려보았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표정이 확 일그러진다. 나를 째려보고 있다. 살벌한 표정과는 정반대로 목소리가 엄청 상냥해졌다.
"아, 예.........그렇죠. 뭐. 네, 네.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예, 한석 씨는 지금 샤워중이라서요. 호호호."
저런 표정으로 웃을 수 있다니! 이건 진기명기가 따로 없다.
"네,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예. 안녕히 계세요."
철컥하고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에 내 가슴이 철렁했다. 대체 누구랑 통화한 거지? 저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으로는 영업용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여자란 요물이라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저... 명희 씨 누구던가요? 혹시 지혜에요? 아님 효진이...?"
"하아, 진짜 이 새끼는 답이 없네..."
"네?"
명희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표정은 험악했다. 일촉즉발이다. 나의 본능이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미처 도망 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허리에 척하고 손을 얹더니 아직 침대에 앉아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너 나한테 뭐라 그랬어. 과외 하는 애가 남자라고 그랬지?"
그랬나? 그랬었나? 아, 그...그랬다. 그럼 지금 전화를 건 게?
"서...설마 유진이에요?"
"그래, 이 새끼야! 너 남한테 알려주지 말라는 번호를 뿌린다는 게 기껏 중딩한테나 번호를 뿌려? 그것도 여중생? 이거 완전 페도필리아 변태새끼 아냐!"
"페도필리아가 뭐죠?"
"넌 이 와중에 그게 궁금해?"
"아, 아니! 안 궁금하고요, 무엇보다 전 번호를 뿌린 적이 없...."
"닥쳐!"
스트레이트가 다가온다. 아니, 날아온다. 견제용 선행 잽이 없는 정직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손을 낚아챔과 동시에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안는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매 맞는 노예생활 몇 개월이면 이렇게 공격을 흘리기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끌어안다시피 하여 바짝 붙었더니 내 등으로 쏟아지는 주먹 난타가 떨어진다. 가까스로 견디며 그녀의 몸을 들어서 침대 위로 쓰러뜨린다. 아무리 주먹이 매섭다고는 하나 명희의 몸은 무척 가벼웠고, 내 체중으로 찍어 누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 진짜라니깐요! 제가 언제 명희 씨 말 안 듣는 거 봤어요? 몇 가지 어긋난 건 있지만 그래도 명희 씨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근데 왜 맨날 제 말은 다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주먹질에 발길질만 해대는 거예요? 정말!"
악에 바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그러나 명희의 대답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니 두 눈 꼭 감은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자세가 좀 묘했다. 그녀의 몸을 두르고 있던 수건은 어느 샌가 풀려져 있었고 나도 옷을 벗던 참이라 상반신은 이미 드러나 있었다. 침대에 누운 그녀를 내가 위에서 찍어 누르고 있는, 완전한 정상위의 포즈였다. 내 등을 두드리던 그녀의 주먹도 어느새 펼쳐져서 힘을 뺀 채 침대 위에 너부러져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입만 열었다.
"진짜 번호 안 준거 맞아?"
"예."
"나보고 똑바로 이야기 해 봐. 맞아?"
"정말이에요."
나는 사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방금 샤워를 마친 깨끗하고 매끈한 몸매를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평소에 어떤 운동을 하는 건지 몸매에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슬렌더형이었다. 그러면서도 팔뚝과 허벅지에는 은근한 근육이 있었다. 쭉 뻗은 팔과 매끈한 다리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키가 작고 얼굴도 동안이라 그녀의 체형이 가슴을 제외하고는 아이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가슴도 매끈....음? 어라? 이건 뭔가 좀 이상한데....?
"하아, 하긴 네 놈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으면 대번 표가 나지."
"그....그렇죠?"
"알았다. 알았어. 그냥 잠깐 내가 욱 했나봐."
"항상 욱하잖아요."
"......죽을래? 근데 너 지금 뭐하고 있냐?"
어느 샌가 명희는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한 가슴을 보고 있던 나는 마님 목욕하던 걸 훔쳐보던 마당쇠 마냥 당황하고 말았다.
"저기, 그러니까, 어, 명희 씨, 가슴이....."
"내 가슴이 뭐."
"사....사라졌어요."
"하아, 이 바보 같은 놈. 평상시에는 뽕이지 인마. 내 몸매에 그런 가슴이 나오겠냐? 씨발."
"그....그런가요."
꽤나 큰 가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뽕이었다니. 옷을 입은 그녀를 볼 때는 거의 효진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내가 직접 본 가슴 중에 가장 커다란 지혜만큼은 안 되어도 말이다. 효진이는 내게 말했다. 여자 가슴은 촉감이 중요하다고. 그래.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그리고 맛은 또 어떨까.
"야, 너 무슨 짓....이야....하윽....."
그녀의 두 팔은 이미 내 손에 의해 제압당해 있었다. 머리를 숙여 그녀의 가슴을 빨기 시작한다. 핑크빛 유두를 희롱하고 유륜의 둘레를 혀로 잰다. 가슴팍의 곡선을 따라 혀로 훑다가 그녀의 목덜미와 귀 뒤를 맛본다. 뜨거운 체온을 따라 바디샴푸의 향긋함이 퍼져 나가고 있다. 그녀의 구석과 구석을 내 혀와 침으로 더럽힌다.
"이... 이거 안 놔?"
"놓으면 때릴 거잖아요."
"안 때릴게. 놔."
"싫어요."
"너, 이 자식..... 하악......"
그녀가 아무리 포악하고 힘이 좋아도 여자는 여자였다. 게다가 키부터 20센티 넘게 차이 나는 내가 위에서 찍어 누르는 형국이 되자 아무래도 몸을 쉽게 빼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다리로는 그녀의 몸을 조이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두 손을 모아 쥔다. 남아있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어루만진다. 곳곳을 쓰다듬을 때마다 연주되는 그녀의 소리를 듣는다.
"아...흑....흠....."
그녀의 약점은 가슴인 듯싶었다. 꼭 큰 가슴이라고 좋은 게 아니라 하더니 정말인가 보다. 작은 가슴은 작은 대로의 민감성이 있는 것이니까. 한참 동안이나 양쪽 유두를 번갈아 물고 빨아가며 한 손으로 그녀의 비부를 만져간다. 은근히 젖어있었다. 털은 많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를 서서히 동굴 속으로 진입시킨다. 가장자리에서부터 비벼가며 물기를 머금게 하며 집어넣자 마치 빨아들이듯이 쑥 하니 들어간다. 이때쯤에 손을 모두 놓아주었지만 그녀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대신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릴 뿐이었다.
"이 새끼.... 건방지게....."
"아래도.... 괜찮아요?"
"몰라, 인마. 그 딴 거 묻지 마."
평소의 표독함이 절반, 아니 절반 이하로 줄어있었다. 나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탄탄한 느낌이 나는 허벅지를 만지는 것은 기분 좋았다. 새침한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깊이 숨어져 있는 비부를 혀로 희롱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손을 뻗어 허벅지 안쪽을 슬쩍 밀자 별다른 저항 없이 다리가 벌려진다. 아니, 어쩌면 내가 손을 대지 않았어도 스스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흐읍......"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입가가 다 흥건해질 정도로 질퍽했다. 약간은 새큼하고, 약간은 달콤하고, 약간은 걸쭉하면서도, 또한 약간은 미끈거린다.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맛이 나고 만지면 만질수록 빠져들어 간다. 혀를 넓게도 쓰고, 좁게도 쓴다. 넣기도 하고 빨기도 한다. 손에 만져지는 허벅지와 엉덩이의 탄탄함을 즐긴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다. 어느 순간 내 머리카락을 부여잡는 손길이 느껴진다.
"하악....하읍....하악..... 그....그만 하고... 빨리...."
"네?"
"너 이 새끼....빨리 안....해? 흐읍......"
"아아."
미리 꺼내두었던 박스에서 콘돔을 꺼내고 옷을 마저 벗었다. 이미 성이 날대로 난 녀석에게 고무를 씌우고 그녀에게 올라탄다.
"넣을까요?"
"그....그래....."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왠지 약 올리고 싶었다. 귀두의 끄트머리를 가지고 그녀의 입구를 살살 간지럽힌다. 눈을 꼭 감고 이어질 뭔가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한 쪽 눈을 살짝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뭐...해...하윽..."
"조금만 공손하게 말해보세요."
"뭐?"
"그렇잖아요. 사실 제가 한 살 더 많기도 하고...."
"노....노예 주제에...."
그녀가 눈을 흘겼다. 그러나 눈가에서 어떤 표독스러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부끄러움이랄까, 뭐, 그런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붉어진 얼굴 탓일까. 아니면 지금 빨리 넣어 달라고 뻐끔거리는 아랫입 때문에 그럴까.
"싫으면 안 넣을게요."
"누....누가 싫대?"
그녀는 황급히 손을 뻗어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솔직히.... 몸을 뺄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그녀가 당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몸에 바싹 붙게 된다.
"너...넣어줘...."
내 귓가를 간지럽히는 그녀의 숨소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심술을 더 부려본다.
"뭐라구요? 안 들려요."
"이....이게 진짜...."
순간 때리는 줄 알고 움찔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더 당겨 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넣어주세요...."
아, 진짜. 이 순간. 내 하반신의 모든 혈류가 단번에 한 곳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더 보태어져 더 단단하게 꼴리는 느낌이다. 더 이상 그녀를 놀릴 수도 없고 더 기다릴 수도 없다.
단번에 꽂아 넣는다.
내가 안으로 진입하자 그녀는 다리로 내 허리를 조이며 화답했다. 더 깊이, 더 강하게 박히길 원하고 있는 건가. 그녀를 끌어안고 반쯤 들어 올려 허리를 튕겨 올린다. 작은 몸의 그녀는 마치 은빛 물고기처럼 파득거리며 나와 함께 만들어 내는 리듬에 몸을 실었다.
"하악- 하악- 하악-"
"명희 씨- 명희 씨-"
"흐아....하악.... 나 몰라.... 하악....."
쩔컥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그녀와 나의 연결부위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온다. 많은 물이 윤활유가 되어 우리의 속도를 더 가속시킨다.
"하악...하악....흐......"
몇 번 이고 나를 그녀에게 밀어 보낸다. 내가 밀면 밀려날까 그녀는 나를 부둥켜안고 놓아주질 않는다. 나를 감싼 그녀의 동굴은 끊임없이 수축하고 있었다. 조금 자세를 바꾸고 싶었다. 그녀의 다리를 풀어내어 엎드리게 했다.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그녀는 흐느끼는 듯 한 소리를 질렀다. 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녀의 눈물은 아랫도리에서 죄다 흘리고 있으니 눈에서 눈물이 나오려야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엎드려 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향해 허리를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하악...하악.....흐읍.....흡......"
"며...명희 씨..... 으으....."
탱탱한 엉덩이에 내 살이 닿을 때마다, 깊숙한 안쪽을 찔러댈 때마다 그녀는 화답하듯 노래를 불렀다. 비록 인간의 언어는 아니지만 짐승의 소리라도 듣기 좋은 소리가 있는 법이다.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마구 주물렀다. 작아도 감촉이 좋다. 말캉말캉하다. 솟아오른 유두를 꼬집어 비틀고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버리고 싶다.
"며....명희 씨... 우욱!!"
내 안의 것이 터져 나가고 두 사람은 침대에 엎드린 채로 한참이나 숨을 헐떡였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위아래로 거칠게 움직이는 등의 움직임이 방금 전의 격렬함을 대변한다. 그렇게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줄어든 물건에서 콘돔을 빼내고 휴지로 닦아냈다.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며...명희 씨? 자요?"
아무 말도 없기에 불러보았다. 한참 만에 그녀가 대답했다.
"안 자."
여전히 말투는 퉁명스럽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애액이 줄줄 흐르고 있다. 그녀가 항상 내비치는 퉁명스러움은 이제 내게 전혀 퉁명스럽지 못하다.
"그럼 얼굴 좀 보여줘요. 왜 자꾸 그 쪽을 향해 있어요?"
"시...싫어. 그냥 이대로 있어......앗..."
그녀의 몸 아래로 손을 넣어 강제로 내 쪽을 향해 뒤집는다. 누워 있는 내 위로 그녀가 올라타 엎드린 모양새가 되었다. 눈을 반쯤 내리깔고 있는 표정이 몹시도 새초롬하다. 그녀는 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좋아. 하나 인정해줄게."
"뭔데요?"
"니가 잘한다는 거."
"정말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붙잡아 당겨 키스했다. 끈적끈적한 숨결과 침이 교환되었다. 입을 떼자 그녀는 살짝 눈을 감고 속삭이듯 말했다.
"설마 단 한 번에 인정해 주리라고는 생각 안 하겠지?"
"네?"
그녀의 허리가 움직인다. 까슬한 털 자락이 내 민감한 부위를 문지른다. 아아, 이 이야기로군.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움직임을 돕는다. 뭉글뭉글 해진 살 부위에 기상나팔을 들려준다. 동굴이 다시 열렸노라. 아직은 덜 뻣뻣하지만 홍수 난 동굴을 막으러 빨리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우린 2회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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