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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지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 손길을 막지 않았다. 그녀를 안고 침대로 향한다. 이미 한 번 그녀를 어루만졌던 손은 이미 익숙하게 그녀의 몸을 훑고 있었다.
"흐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지혜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감상했다. 밀려 올라간 셔츠와 브래지어 밑으로 불쑥 튀어나온 가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옷에 감춰져 있을 때도 커 보였는데, 직접 보니 더 컸다. 항상 술김에,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쥐어본다.
"하악...."
손가락으로 유두를 문지르자 낮은 신음소리를 낸다. 고개를 낮추고 혀를 내밀어 유두를 천천히 핥아 나간다. 신음소리에 리듬이 더해진다. 손에 쥔 유방을 이리저리 주물러본다. 혀끝으로, 또 넓은 면으로 유두의 면을 비벼본다. 여자의 가슴이 두 개인 이유를 알았다. 그건 남자의 손이 두 개이기 때문이다. 한 손마다 하나의 가슴을 쥐라는 신의 계시이다. 입이 두 개가 아니라서 양쪽 유방을 동시에 빨 수 없단 것이 가장 안타까울 따름이다.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본다. 긴 치마를 입고 있어서 걷어 올리기 조금 거추장스러웠다. 허벅지 안쪽의 살결은 정말 보드랍다. 부드럽고 보들보들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적당히 젖어있는 팬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팬티를 벗기려고 하는데 순간 지혜가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는다.
"잠깐만.."
"왜?"
"그....그게 없어."
"뭐?"
콘돔이 없단다. 그냥 하면 안 되냐고 묻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절대로 안 된단다. 덕분에 나는 성이 날대로 나서 오를 대로 올라 부푼 그 녀석을 달래며 서둘러 편의점으로 갔다. 플래시맨보다도 빨리. 앤드류보다도 빠르게! 편의점 문을 박차고 들어가 콘돔을 집어 들고 카운터에 턱하니 올려놓았다. 달려오느라 숨이 거칠어졌다.
"삼천 원입니다."
"네?"
"삼천 원이라고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점원을 마주보았다. 거기에는 얼굴은 예쁘지만, 표정은 지극히 무뚝뚝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언제 여자로 바뀐 거지? 전에는 분명히 아저씨가 있었는데 언제 바뀐 건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이런 물건을 살 때 여직원이라니.... 주머니에서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올려놓자 그녀는 사무적인 태도로 돈을 집어넣고 잔돈을 거슬러주었다. 창피해서 죽을 것 같은 내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슨 껌이라도 계산하듯 아무 표정 없이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한다. 물건을 챙겨 뒷주머니에 넣고 편의점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났다. 혹시나 싶어 돌아보았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무표정한 점원의 얼굴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는 듯이 달려 202호로 돌아갔다. 들어가자마자 바지부터 벗어버릴 테다. 지금 내 하반신은 폭발 직전이라구!! 위험수위야!!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여어~ 너도 놀러왔어?"
".........어? 어...."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 라는 동요가 있었지. 마치 그 동요를 부르며 동작을 딱 멈추듯이 그렇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 있는 건 지혜가 아니었다.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남자가 벨도 안 누르고 막 들어오고 그러면 안 돼~"
효진이의 지적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그러면 안 되지.
"그...그렇겠지? 아무래도? 하.하.하.하."
"너두 비디오 보러 왔어?"
"그....그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콘돔을 잽싸게 뒷주머니에 우겨 넣었다. 효진이 눈치 채기 전에 말이다. 지혜는 별 다른 표정 없이 사과를 깎고 있었다. 효진이 비디오 빌려 가지고 오는 길에 사왔다고 했다. 도로 나가기도 애매한지라 그냥 털썩 걸터앉아 지혜가 깎아 놓은 사과 조각을 몇 개 집어먹었다. 볼 마음도 없는 비디오를 함께 보면서 대충 시간 때우다가 볼 일이 있다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크아아아아아-"
방에 들어오자마자 머리통을 부여잡고 방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나는 왜 평상시에 콘돔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거냐!! 지혜는 왜 맨날 가지고 다니던 일제 초박형 콘돔을 안 가지고 있는 거냐!! 옛 말씀에 유비무환이라고 하였거늘, 이토록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설령 나나 지혜에게 콘돔이 있어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라면 한창 하고 있는 와중에 효진과 딱 마주쳤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랬으면 아마도 나는 쪽 팔려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한숨을 푹푹 내리 쉬다가 오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빨리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픈 기억을 잊는데 좋을 것 같았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그나마 상태가 괜찮고 점잖아 보이는 놈으로 골라 갈아입고 사이클에 올랐다. 진호 선배가 준 주소지는 여기서 별로 먼 곳이 아니었다. 약 15분 정도를 사이클로 달린 후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고급차, 수입차가 주차장에 즐비하다. 꽤나 비싸 보이는 아파트 단지였다. 사이클을 벤츠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놈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두고 동호수를 확인하여 목표한 곳을 찾아간다.
딩동-
인터폰이 특이하게 생겼다. 버튼과 스피커 말고도 웬 카메라 같은 게 달려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화상인터폰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라? 목소리가 좀 어렸다. 학생인가? 일단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대답했다.
"아까 전화 드렸던 최한석 학생입니다. 과외 일로 전화 드렸더니 찾아오라고 하셔서..."
"..........."
"저기, 어머님께서 따로 시간을 말씀 하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
묵언 수행하는 스님도 아니고, 전혀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저쪽에서는 지금 내 얼굴이 보일 테니까 최대한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 말야, 혹시 지금 어머님 안 계시니? 좀 뵈었으면 하는데 말야."
"............"
여전히 대답은 없고 대신에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현관을 당겨 안으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러나 넓은 거실에는 쪼끄만 키의 여자애만 하나 서 있었고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래도 얘 혼자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어, 안녕? 아저씨는 최한석이라고 하는데..."
"............"
"어머니, 어디 나가셨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앙증맞기가 꼭 인형 같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딱 바비 인형인가 뭐시기 하는 인형처럼 생긴 예쁜 얼굴이다. 체구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크기가 작아 비율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목구비는 뚜렷해서 살짝 찌푸린 이마마저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인형 같다는 건 단지 생김새만 말한 게 아니었다. 얼굴이 깜찍한 것도 그렇고 꽤나 무표정인 것도 더욱 그러한 분위기가 나게 만들었다. 나이는 이제 십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초등학교 5~6학년쯤 될 것 같다. 내가 과외 하려던 애는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애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 애는 아마도 과외 하려던 애의 동생인가 싶었다.
"언니도 어디 나갔니?"
이번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현관에 멀뚱멀뚱 서 있기도 뭐해서 거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뒷걸음질 치며 나와의 간격을 다소 벌렸다.
"좀 앉아서 기다려도 될까?"
이번에도 역시 대답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이는 자기 방으로 쑥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오질 않았다. 경계심 가득한 아이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과외할 애는 고사하고 그 애의 엄마도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아이의 방으로 다가가 노크했다. 문이 조금 열리고 아이가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말이야, 엄마 언제 오시니?"
"..............내일 아침이요."
뭐, 내일 아침? 크아아아악! 뭐냐. 사람 오라고 해놓고.... 그러나 침착하게 최대한 당황하지 않고 물어보았다.
"언니는? 언니는 일찍 오니?"
그러나 아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낙담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모처럼 잡은 과외 알바 자리가 시작부터 이래서야 앞으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아이가 내게 물었다.
"근데, 언니는 왜 찾죠? 아저씨는 과외 하러 오신 분 아니었어요? 혹시 가게 단골인가요?"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또릿또릿하게 말하는 폼이 꼭 다 큰 어른 같다. 생긴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나저나 가게라니? 어머니가 자영업을 하시는 분인가.
"너희 언니 과외 하려던 거 아니었어?"
"언니가 과외를 왜 해요? 언니는 학교 안 다니는 데요."
이 아이가 말하는 언니와 내가 말하는 언니는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대화가 꼬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기 혹시 언니 이름이....."
진호 선배가 준 쪽지를 꺼내보았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진유진 학생 아니니?"
"아뇨. 진유진은 전데요."
"에엑? 니가?"
"그런데요."
완전히 헛다리짚었다. 요 녀석이 내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녀석일 줄이야. 넌 왜 이렇게 어리게 생겨서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거니! 라고 따지고 싶을 정도. 요새 중학생들은 발육이 남다르다고 날 부추기던 진호 선배에게 항의하고 싶었다. 이렇게 꼬맹이 같은 애들이 중학생이라고요!
"저기 말이야, 그럼 아까는 내가 과외 하러 온 사람이라는 거 몰랐니? 그때 왜 이야기 안 해주고...."
"들어오자마자 언니를 찾기에 과외는 뻥이고 가게 손님인줄 알았죠."
아까부터 이 아이가 말하는 "가게"라는 게 뭔지 꽤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이 아이가 말하는 언니는 가게에서 일하는 언니를 말하는 것일까?
"대체 언니가 뭐하는 분이기에..."
"......언니 몰라요?"
"모르는데?"
"......모르면 됐어요."
대충 오해는 풀린 듯 싶었다. 유진이에게 어머니께 연락을 취할 수 없냐고 하자 군말 없이 무선전화기를 가져와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언니, 저예요. 유진이. .......네. .........네. 지금 엄마 있어요? 예. 좀 바꿔줘요........엄마가 말한 과외선생님 왔어......... 응. ........... 응. 잠깐만."
전화를 건네받았다. 아까 낮에 통화했던 나른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전혀 졸린 목소리가 아니었다. 180도 다른 분위기였다.
"전화 바꿨습니다. 최한석입니다."
"어머~ 선생님. 미안해요. 내가 좀 일이 있어서 가게에 일찍 나왔거든요. 선생님 오신다는 거 깜빡하고 말이죠. 호호호호. 일단 유진이랑 이야기 해보시고 결정해주세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의 목소리는 울트라 하이톤.
"저기, 어머님이랑은 의논을 따로 안 드려도...?"
"호호호호. 괜찮아요. 제가 뭘 아나요. 그냥 유진이랑 말해서 정해지면 그대로 과외하시면 돼요."
"아, 예."
유진이 쪽을 힐끔 보았다. 여전히 무표정이다.
"그럼 부탁드려용~."
굉장히 애교 넘치는 목소리였다. 끝에 하트라도 붙이면 딱 좋을 그런 목소리... 목소리만 들어가지고는 이게 정말 내년이면 고등학생 되는 딸내미를 가진 엄마의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 말투도 그렇고. 모르긴 몰라도 이 유진이라는 녀석은 엄마의 애교는 전혀 닮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유진이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말야, 어머님이 너랑 이야기해서 결정하라는데?"
"다 들렸어요. 일단 여기 앉으세요."
거실 소파에 다시 앉았다. 유진은 작은 탁상달력과 펜을 들고 와서 대각선 편에 앉았다.
"우선 말씀드릴게요. 전 별로 과외가 필요 없어요. 근데 엄마가 굳이 시켜주겠다고 하니까 그냥 하는 거구요. 그러니 딱히 아저씨도 부담 크게 가지지 말고 그냥 시간만 맞춰서 왔다갔다 잘 해주세요. 그러면 때맞추어서 페이는 지불할게요."
"........필요 없다니. 공부 안 하니?"
달력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진은 고개를 들어 나를 힐끔 보았다. 약간 무서운 눈초리다.
"지금 K대 다니시죠?"
".......응. 그런데?"
"저는 K대 따위가 아니라 나중에 꼭 S대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학원도 그거에 맞춰서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누가 옆에서 거치적거리는 거 싫어서 과외는 안 하려고 한 건데 엄마가 저 혼자 공부하면 외롭지 않냐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서 시켜준 게 이 과외예요. 기왕 구할 거면 S대에서 구하라고 했는데도 굳이 이 대학을 지정하신 이유는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일단 이렇게 되었으니 어쩌겠어요. 다시 구하려면 저도 귀찮으니까 그냥 제 공부 하는 거 방해만 안 해주시면 돼요."
"........말이 참 싸....아니, 똑부러지게 말하는구나."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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