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7화 (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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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구세요?"

세상에나. 설마 이 느낌은 총인가? 그런가? 요즘 강도는 총도 가지고 다니는 건가....?

"닥치라고 했지. 조용히 앞으로 걸어가. 그리고 저쪽 의자에 앉아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얹어. 그래, 그렇게."

나는 몹시도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내 자취방의 조명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나를 향해 몹시도 흉흉한 표정을 보내고 있는 한 여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직업은 강도가 아니라 간호사였다. 그녀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며....명희 씨?"

"닥치라고 했다."

"네...넵!"

진호 선배가 소개해 준, 몹시 귀엽고 착하기로 인근 모 동네의 모 교회 내에서 평판이 자자하다는, 올해 스물두 살 이명희 씨는 내 자취방 한쪽에 버티고 서서 나를 향해 은빛의 금속재질이 형형한 총을 딱 겨누고 있었다. 총구는 정확히 내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재미 조~~~으신가 봐? 응? 이 시간에 들어오시고?"

"................."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해!"

"조용하라고 하셔서..."

"말이 많아!"

"아? 예!! 네? 아뇨... 재미라고는 딱히..."

"닥쳐, 이 새끼야!"

".............."

대체 닥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나만 하라고, 하나만!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늦게 들어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대체 뭐하고 다녀?"

"에? 그야 도서관에서 여태 공부하다가..."

"퍽 모범생 나셨네. 그런 새끼가 계집질 하러 다녀? 엉?"

"계집질이라뇨...."

"어제 날 두고 웬 딴 년이랑 술집 나가던데? 그럼 그게 계집이 아니고 사내였어? 엉?"

아까 진호 선배가 나한테 귀가시간을 물어본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선배님. 오늘만큼 선배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어요. 선배님은 자신이 소개해 준 커플 잘 되라고 그러셨겠지요. 선배님은 그 참하디 참한 명희가 이런 흉흉한 물건을 제게 들이밀며 욕을 퍼붓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하셨겠지요. 이해합니다. 저도 몰랐어요.

어제는 몰랐는데, 이 명희라는 아가씨의 입은 상당히 거칠었다. 쌍욕은 감탄사 수준으로 거듭 튀어나왔고 목소리 톤 자체도 굉장히 위압적이었다. 어디 아프리카 내전사태의 반군 포로가 되어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다. 포로의 인도적 취급을 위한 제네바 협정 준수를 요청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분위기였다.

"그...그게, 제가 원래 아는 분인데 그 분이 많이 아프셔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온 사람을 두고 그렇게 도망을 쳐? 내 평생 남자한테 그런 대접을 받은 건 처음이야!"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상황이 많이 급해서 그랬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전날 댁 대신 만난 여자를 다시 만나서 모텔로 직행해서 쿵짝쿵짝 하다가 오늘 아침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감이 떨어지는 둔감 100% 사나이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그딴 소리를 했다가는 저 총구가 불을 뿜으리라 건 충분히 알 수 있다. 힐끔거리는 내 시선을 눈치 챈 명희는 총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이거? 진짜 총은 아냐. 걱정말어."

"아, 그래요... 다행...."

"1995년 미국 콜트레인사에서 나온 PT-151K, 애칭으로는 포텐샬머신이라는 권총의 외형을 카피해서 만든 가스총인데 내부를 살짝 손봐서 가스 압력을 두 배로 올리고 탄알도 압축 플라스틱 탄이 아닌 쇠구슬을 박아 넣은 거야. 10미터 거리 이내에서 12미리 합판 따위는 가볍게 뚫어. 아직 시험은 안 해봐서 사람에게 쏘면 어떨는지는 모르겠다만."

"........다행.....이 아니군요."

조금이나마 안심되던 마음이 급격하게 얼어붙는다.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몸이 12mm 합판보다 두껍고 단단한지 아닌지를 굳이 테스트 해볼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로요. 계집질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계집질을 하진 않았지만 그 분이 저를 덮쳤어요.... 라는 말은 생략하기로 했다. 최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열심히 변명했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명희는 총구를 내리지 않은 채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온다간단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져?"

"정말입니다. 진심이에요. 믿어주세요."

살면서 이만큼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해 본 적이 없다.

"괜히 내가 추근거리니까 쫄아서 도망간 게 아니고?"

"아닙니다. 오히려 더 좋았어요."

그제야 그녀가 좀 웃는다. 그녀는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좋아. 네 말이 진심이라는 걸 증명해봐."

"즈...증명이요?"

"그래. 한번 까 봐."

그녀가 턱으로 가리킨 곳은 내 허리 아래, 두 다리의 가운데, 남자의 가장 중요한 부위 Best 1인 곳이었다.

"까...다니요?"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 남자가 거짓말을 할 때는 발기 되지 않는대.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때는 거기에 힘이 들어간다고 하더군. 그럼 한번 꺼내서 확인을 시켜줘봐. 정말 거짓말인지 아닌지 보게. 만약 거짓말하는 거면 쏴서 고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악마다. 저건 악마가 틀림없다. 남자의 중요부위를 쏴버리겠노라는, 그런 흉악한 소리를 하면서 어떻게 살짝 웃을 수 있는 거지?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봐요. 그...그게 서는 건 불가항력인데 그게 어떻게 거짓말 탐지기가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내 말을 못 믿으시겠다? 그럼 나도 네 말을 믿을 필요가 없지."

철컥- 소리를 내면서 총의 가늠쇠를 제 쪽으로 향하신다면야 그 말씀이 진심임을 누구보다 믿을 수 있습니다.

"아....아뇨! 알았습니다!"

길어지려던 생각은 그녀의 다그침과 다가오는 총구 앞에서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황급히 바지를 벗고 거의 동시에 팬티를 깠다. 수치스러운 감정보다는 살아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내 물건은 서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네 놈은 주인을 이렇게 골로 보낼 참이냐? 그런 내 모습을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고 신기해하는 반응도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기미까지 보였다.

"고자는 아닌 거 알겠지만, 거짓말쟁이구나."

"아뇨.... 그게 그러니까.... 지금 좀 많이 놀랐기도 하고... 앞에 여자도 있고...."

"그래? 넌 여자가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발기가 되는 모양이지?"

"그럴 리가요. 그게 그러니까... 이건 특수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내가 살면서 남자에게 바람 맞고, 또 만난 다음에 또 바람 맞은 것도 다시 없는 특수한 상황이기는 했어. 눈 감아."

총구가 내 쪽을 향해 점점 다가온다. 눈을 질끈 감았다.

철컥-

공이가 당겨졌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허벅지에 진하게 와 닿는다.

"가만있어. 괜히 움직이다가 딴 데 맞으면 엄청 고생한다. 맞아도 죽지는 않는 부분을 골라서 쏠 테니까 말이야."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있으니 공포가 극대화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내 머리에 뭔가 얹어진다. 설마 외국 테러리스트들의 처형식처럼 베일이라도 뒤집어씌우는 걸까.

"좋아. 그럼 잠깐 이쪽 좀 볼래?"

"이쪽이요?"

"그래. 이쪽."

눈을 뜨자 그녀의 손에는 총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들려있는 게 보였다. 뭐지? 라는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번쩍- 그리고 찰칵-

빛과 소리.

그것이 내 혼을 어벙벙하게 빼놓는다. 사각형 박스에 앞에는 원통 비스무리한 게 붙어있고 전면에는 렌즈와 플래시가 달려있다. 소위 "카메라"라는 물건인데.... 지금 저게 왜 그녀의 손에 있지?

"대학생이니까, 그 좋은 머리로 잘 생각해봐. 네가 다니는 학교에 이 사진을 뿌려지면 어떻게 될까? 응? 머리에는 여자 속옷을 얹어놓고 아래는 벌거벗은 네 놈 사진 말이야."

내 머리 위에 얹어진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진다. 그것은 여성들의 봉긋한 가슴을 가리고 모양을 잡아주는 기능성 속옷, 브래지어라는 물건이었다. 그게 내 머리 위에 왜 있을까. 아니, 그보다 방금 전에 찍힌 사진에는 대체 나의 어떤 꼴이 담긴 걸까. 으악! 으악! 그제야 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며...명희 씨! 자...잠깐만요!. 그러니까...."

"멈춰!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나한테 조금이라도 다가올 기색이 있으면 일단 쏘고나서 아까 말한 대로 하면서 밖에 달려가서 이 사진을 길거리에 뿌릴 거야."

나이 스물세 살이 되어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아주아주 오랜만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마치 우보법으로 발이 묶인 것 마냥 나는 제자리에 떡 하고 달라붙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알았습니다. 일단 그러니까... 지금 명희 씨 말씀은 저한테 누명을 씌워서 변태로 만들겠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그래."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한순간의 욕망에 눈이 멀어 이렇게 홀랑 넘어가버리다니. 게다가 이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 줄이야 누가 꿈에서라도 생각했겠는가. 내 반응을 본 명희는 코웃음을 치더니 내게 삿대질했다.

"왜 그러긴! 몰라서 물어? 나를 바람맞힌 남자가 있단 사실만으로도 쇼크인데 거기에 놓고 딴 여자랑 도망까지 가? 니가 제정신이야?"

그녀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리고 들고 있는 총으로 나를 겨누며 당당하게 외쳤다.

"난 결심했어. 니 녀석을 철저하게 짓밟아서 다시는 나를 우습게보지 못 하게 만들겠노라고. 주인에게 대든 개새끼가 어떤 꼬라지를 당하는지 정확히 알게 해주겠어. 그게 불만이라면 언제든지 말해. 이 사진은 네 놈 대학교 대자보에 대문짝하게 실릴 거고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네 녀석을 이름 대신 변태새끼라고 부르게 되겠지"

"사...사진 돌려주세요."

"흥. 공짜로?"

"돈... 돈을 드리면 되나요?"

"누가 돈을 달래? 이제부터 넌 내 노예야. 내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가면 안 돼. 불러서 10초안에 안 나타나면 당장 이 사진을 네 놈 학교와 집에 하나씩 우편으로 보낼 테니 알아서 하고."

그렇게,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렇게 한 마리의 노예새끼가 되었고 "착하고 참하여 교회 내에서도 칭찬이 자자한데다가 진호 선배와는 오래 동안 알고 지낸 착한 여동생"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주인님이라고 이 노예 새끼야."

.......정정하겠다. 주인이 아니라,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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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물론, 저런 총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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