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4)

나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은근히 거절했다.

 "그래도 전혀 시간이 없는건 아니잖아. 비어있는 시간이 있으면 가르쳐 줘. 마중 나갈게."

 "아니야. 너희들도 너희 일정이 있는데 뭘."

나는 분명히 싫어하는 티를 내고 있다.

 "그래. 알았다. 그러면 만약 가고 싶어지면 연락해라. 데려갈테니."

최찬영은 나의 싫은 내색을 감지했는지 신경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석의 표정은 분명히 불만이었다.

옆에 있는 아영이도 조금 아쉬워하고 있다.

 "진수야, 혹시 팬케이크 싫어해?"

 "아니, 별로 그런건 아닌데."

사실 우리들은 그렇게 빡빡한 스케줄이 아니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 산책정도 할 수 있는 비어있는 시간은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영이는 왜 거절한 거야?라는 궁금한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영이가 내 귓가로 말했다.

 "미안, 우리 두사람의 기념일인걸 깜빡했어."

 "아니야. 뭐, 그런걸 갖고 사과하고 그래."

아영이와 나는 다시 제주도에 가면 할 것들을 얘기했고 얼마 뒤 비행기는 무사히 도착했다.

최찬영은 공항에 도착하고서 우리에게(사실 우리라기보다는 아영이에게) 연락처를 건네왔다.

 "한가해지면 언제든지 연락 해줘. 뭔가 곤란한 일이나 있으면. 우리들은 이곳이 어느 정도 익숙하니까."

 "아, 고마워요."

아영이가 감사표현을 했다.

 "아, 그러고보니 두 사람 어디에 묵는거야? 혹시나 가게 되면 위치는 알아야되니까."

어쩔수 없이 녀석들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을 부를 생각은 전혀없다.

 "위치는 그곳이고 예약한 숙소는 별장 타입의 호텔!이야."

나는 호텔이라는 말에 특히 강조를 했다.

 "아~알아 알아 거기. 그럼 우리들이 묵는 곳하고 꽤 가깝네."

 "찬영씨네도 그쪽에서 묵으세요?"

 "네. 펜션이긴 하지만."

 "아, 저 알아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호텔하고 펜션하고 어디서 묵을까 하다가 호텔을 고르긴했지만."

 "하하. 그래요. 아무튼 오고 싶으면 놀러오세요. 아영씨라면 언제든지 환영하고 하하"

 '안됬지만 너희들하고는 여기서 작별이다. 이제 끝이라고.

최찬영이 끝까지 아영이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지만 우리들은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나와 아영이는 짐을 들고 우선 예약해 놓은 호텔로 향했다.

우리들이 묵을 호텔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조금 낡아 있었지만 그래도 바다가 보이는 최고의 입지였다.

 "꺄. 진수야. 드디어 왔어." 방에 있는 침대에 뛰어 들어 소란을 피우는 아영이.

이렇게 기쁜듯한 아영이는 오랜만에 보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아영이를 보는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을 느꼈다.

 "바다 진짜 푸르다. 내가 이런 예쁜 바다를 보는건 난생 처음이야."

 "그러네. 예쁘다."

이 날은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했지만 아직 예약되어있는 저녘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나와 아영이는 모래사장을 걷기로 했다.

 "진수야. 이거 봐. 모래가 부드러워."

물가의 아이처럼 들뜬 아영이는 굉장히 귀여웠다.

주위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내일은 나랑 아영이랑 수영복입고 이 아름다운 바다를 마음껏 만끽해야지.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하얀 모래 사장, 그 속에서 빛나는 아영이의 미소와 아영이의 수영복 입은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잠시 후 석양의 빛이 바다에 내려올때 아영이에게 물었다.

 "이제 레스토랑에 갈까"

 "응, 어떤 요리일까, 기다려진다."

우리들은 첫날부터 제주도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제주도 향토 음식을 예약했다.

그런데 그 식당에 도착했을 때부터 또 한번 내 몸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비행기에서 일어난 복통은 단순 복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와아, 맛있겠다! 이런 거 처음이야."

 "맛있다! 진수야, 이거 먹어봐. 엄청 맛있어."

제주도 향토음식이 나오고 그 맛에 아영이는 감동하며 즐거워했다.

 "내일은 바다에서 많이 놀아야 되서 에너지는 많이 축적해야되.진수 너도 빨리 먹어"

나는 내 자신의 신체의 이변을 눈치 챘으면서도 즐거운 저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참아내고 있었다.

혹시나 아영이의 미소를 보면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진수야, 왜 그래?. 별로 안먹는 것 같애. 입에 맞지 않아?"

 "아니, 맛있어. 많이 먹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은 악화되어갔다. 복통은 아까보다 괜찮았지만 서서히 머리가 어질어질해왔다.

 '저녘 식사 후에도 아영이와 드라이브하는 일정이 있는데..정신 차려야 되'

하지만 나의 인내는 디저트를 기다리는 동안 한계에 도달했다.

물을 마시려고 잔을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현기증이 와서 잔은 내 손에서 미끄러졌다.

 "진수야 왜그래. 괜찮아?"

 "어.. 그래"

 "왠지 얼굴도 빨갛고.."

아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이마에 손을 댄다.

 "열나네. 이마가 뜨거워."

 "그래? 여기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걱정마."

그러나 테이블에 놓여져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나. 머리가 휘청 휘청하여 손끝의 감각도 둔해지고 있었다.

 "괜찮지 않잖아.. 이렇게 열이 나는데."

결국 우리들은 디저트를 먹지 않고 저녘을 중단했다. 나는 아영이의 손을 빌리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겨우 도착했을 무렵에는 내 몸은 더욱 악화되어 체온도 급상승했고 얼굴은 새빨개지고 두통도 심해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거친 호흡을 하는 나의 머리에 레스토랑에서 받아 온 얼음을 넣은 비닐을 올려두는 아영이.

 "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병원?"

 "약도 없고, 원인도 모르니까, 제대로 의사에게 진찰받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아영이에게 폐를 끼치기는 싫어 일단 병원에게 가기로 했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 보고 올게."

 "...응"

날 위해 바쁘게 뛰어 다니는 아영이.

나는 천장을 바라며 몸의 나른함과 악화 되어가는 강렬한 두통과 싸우고 있었다.

머리가 깨져 버릴 정도로 아프다.. 죽겠다...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서 병원에 가서 치료해줬으면.. 이런 생각들이 강해져간다.

하아,정말 힘들어진다. 아영아.빨리 돌아와줘

 나는 아영이가 의사나 호텔직원을 데려오리라 기대했다.

그런 나의 희망과는 다르게 귀에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진수, 몸 안좋다매. 괜찮냐? 조금만 기다려.병원에 데려다줄테니까"

아영이 뒤에 붙어서 들어오는 3명의 남자들

'이녀석들이 여기는 어떻게..'

아영이가 나의 속마음을 눈치채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영이의 말에 따르면 호텔직원이 병원은 알고 있으나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이 전부 퇴근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119를 부를 정도로 심각한것같지는않았고.

그때 마침 아영이는 렌터카를 가진 녀석들을 생각한것이다. 사실 택시를 부를수도 있었지만 이쪽에 여러번와보고 안면있는 녀석들이 신뢰감이 느껴져서 연락했다고 했다.

나는 어느새 몸상태가 더 악화되어 혼자서도 걷기 힘들 정도가 되자 근육질의 체격이 투박한 남자가 등에 업고 차까지 옮겨주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박우진이라고 했다.

덧붙여서 또 한명의 키크고 날씬한 사람은 오지훈이라 했고. 나를 포함한 5명은 차를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찬영씨네도 여행와서 즐기고 있는 중이었을텐데.."

아영이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최찬영무리에게 사과를했다.

 "하하.그런거에 신경쓰지마세요."

 "맞아요. 어차피 우리들 할거없어서 빈둥대던 참이었죠. 마침 딱 아영씨가 전화한거고요."

 "그러면 다행이고요"

아영이가 최찬영과 박우진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진수씨는 어쩌다 아픈거래요? 뭐를 잘못 먹으셨나"

오지훈이 운전을 하며 아영이에게 물었다.

 "글쎄요. 저도 같은 음식을 먹어서..저는 괜찮고 진수만 이러는건 말이 안돼요. 음식때문은 아닌것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됬을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영이

"제주도에도 큰 병원 있으니까 크게 걱정말아요.진찰도 잘 해줄거에요"

 "그렇..겠죠?"

나는 녀석들과 아영이의 대화를 들으며 한심한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여행을 왔건만 아프다니. 나 자신이 한심하다.

아영이도 분명히 마음속으로는 실망하고 있을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진찰을 받을수 있었고 진찰결과는 위염과 감기였다.

비행기에서 배가 아팠던것은 전조에 불과한거였다.의사는 약을먹고 2.3일 푹 쉬라고 했다.

나는 여행기간동안 침대에 얌전히 있어야하는것인가

 하지만 진찰을 받고 약을 받으니 조금 편해진것같다.하여튼 병원에 데려다준 그녀석들에게 조금은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진수야. 진찰결과는?"

아영이가 걱정스럽게 물어오자 나는 아영이에게 진찰결과를 설명해주었고

"다행이다" 이내 안심한 표정이 되는 아영이었다.

이후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영이는 나에게 말을 건네지않았다. 다만 때때로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나는 느껴졌다. 아영이의 진실된 감정이.

아영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얼굴에 드러낸다. 아영이는 나를 걱정해주지만 한편으론 매우 실망하고 있다.

 '모처럼의 여행이 어째서 이렇게되버리냐고. 왜.'

아영이는 속으로 실망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나에게 말하지않는다.

 '미안해.아영아' 숙소로 돌아와서 나는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직도 두통은 있었다. 녀석들은 나를 위해 음료와 소화하기쉬운 음식들을 사다놓았다.'아까는 고마웠다. 이제 가. 어서. '나의 속마음과는 다르게 녀석들은 떠날생각을 않고있었다.

그렇다고 도와준 사람에게 용무끝났다고 바로 가라고 하는것도 예의는 아니고.녀석들은 내가 자고 있는 방 옆방에서 지들끼리 담소를 나누고있다.

아영이도 '진수야. 무슨일 있으면 불러. 나 옆방에 가 있을게. 아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해서' 라고 말하고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아영이가 그녀석들과 있는것이 싫지만 어쩔수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아영이가 내 옆에 있어도 즐겁지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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