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어두운 청춘시대로 살아온 나는 대학 입학 전에 마음먹고 있었다.
앞으로의 대학 생활은 즐겁고 충실하게 보낼거라고.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먼 대학을 선택한 것은,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과거를 벗고 환생 한듯 싶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스스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밝게 행동하고 빨리 대학의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순식간에 나에게는 몇 명의 친구들이 생겼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 늦게 까지 장난 칠 수 있는 친구.
친구는 이런식으로 간단하고 쉽게 사귈수 있는데 왜 중고등학교에서는 똑같이 할 수 없었던 걸까.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말을 거는 여자애도 없었고 그저 교실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나에게 사회관계능력이 부족했던것일까.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놈은 나를 업신 여기는, 흔히 어떤 학교에나 있는 불량학생들 뿐이었다. 어쩌면 일부러 내가 사람들을 배척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걸 깨달았을때는 이미 나는 반에서 고립되어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런 나를 마음에 들지 않는건지 성격이 드러운 녀석들은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빵셔틀 부터 시작해서 발길질까지..
그것이 대학에 들어와서는 모두가 "진수야" "진수야 오늘 시간 비냐?" "지금부터 술 먹으러 갈거야. 진수 너도 와라" 라고 말을 걸어준다.
모두가 나를 친구로 대해준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것이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무려 나에게 여자친구가 생긴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여자와 연애를 하다니.
그녀의 이름은 박아영이었다. 키 165cm의 날씬한 몸매를 한 인근 대학에 다니는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동갑내기 학생이다.
처음 봤을때부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아영이랑 친구가 되고자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아영이는 웃는 얼굴로 항상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영이와 시간을 같이 보낼수록 나는 아영이에게 끌렸고 정신을 차려 보니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영이에게 고백했다.
지금까지 여자와 사귄 적이 없었던 나는 아무래도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주위의 친구들에게 "나중에 모두 위로 해줘"라고 미리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영이의 대답은 OK였다. "앞으로 잘 부탁해"
이것은 꿈인가?? 아영이 같은 예쁜 여자가 내 여자 친구!?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친구들도 모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축복해주었다.
"김진수, 새끼야, 여자친구 소중히해라. 임마"
그때부터 나는 매일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아영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물로 친구들과의 시간도 모두 즐거웠다. 아영이와 데이트하고 같이 아르바이트하고 친구들과 놀고, 반복되는 생활. 하지만 전혀 질리지 않는다.
아, 즐겁다 행복하다. 이것이 행복이구나. 평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나는 완전히 들떠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인생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고 했던가.
나는 내가 유급될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었다. 오로지 놀기에만 바빠서 학생으로써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았다.
너무 들떠있었던 걸까. 위험을 감지했을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신경이 느슨했다고 할까.
친구들은 내가 유급한것을 두고 깔깔거리며 웃거나 극소수이지만 나처럼 유급 한 놈도 있었고, 나를 위로해주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한 주위의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침체되거나 하지는 않았다.(조금 우울했지만.)
하지만 아영이는 달랐다. 내가 유급당한 일을 말할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 정말? 왜 그런거야??"
이때 아영이의 표정은 화가 나있는 건지, 기가막혀있던건지, 하여튼 내가 지금까지 본적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따.
나는 그런 아영이를 보고 내가 유급 해 버린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무거워지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
"미안.."
"나에게 사과는 안해도 돼. 부모님은 이 사실 알아?"
"아니.. 아직."
"부모님이 학비 대주는 거지? 빨리 말해봐."
"그래. 맞아"
"부모님한테도 제대로 말해."
아영이 앞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는 나. 그 후 나는 집에 전화하였고 당연하지만 부모님은 이 소식을 매우 언짢아했다.
며칠뒤에 집에가서 남은 대학 생활을 제대로 성실하게 보내겠다고 부모님에게 약속하고 어떻게든 용서받았다.
다시 돌아왔을 때 아영이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진수야, 너가 유급한건 내 책임이고해.. 미안"
"뭐라는 거야. 넌 책임없어. 이건 내가 그냥."
당연하지만 이건 내가 잘못한거지 아영이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기뻤다.
주위의 친구들은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남의 일이니까 웃을 수 있지만 아영이는 진심으로 나의 일을 걱정 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건으로 아영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아영이를 더 소중히 해야지 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하지만 나의 유급이 결정된 이후 나와 아영이 사이에는 미묘한 공기가 계속 흘렀다. 왜냐하면 아영이가 데이트를 거절하는 횟수가 늘었다.
한번은 데이트를 할 때 아영이가 물었다.
"나랑 놀고 괜찮아?"
아영이는 나의 삶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둘 사이가 조금 깨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영이는 학업에 전념하라며 친구들이랑 덜 놀고 아르바이트도 줄이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그것에 대해 스트레스가 있었고 나름 줄이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영이의 기준에는 못 미쳤었나보다.
결국 말다툼을 했다.
"진수야. 너 또 유급하면 어떡해."
"괜찮아. 괜찮아. 그런걸 쉽게 또 할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미 1년 했잖아. 뭐가 괜찮다는 거야."
"아, 짜증나게. 나도 알아. 나도 나름대로 조절하고 있다고. 이제 더 얘기하지마"
"누군 하고싶어서 이 얘기 꺼내는 줄 알아. 너 때문에 그러는거야. 이 바보야."
이 말을 끝으로 아영이가 눈물을 펑펑 쏟자 나는 사과를 하며 어떻게든 수습했다.
내가 나쁘다. 이런 싸움을 한 것은 처음이지만. 그래도 우리 사이에서 ' 헤어지자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영이가 없는 인생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영이를 좋아했고 아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고. 앞으로도 두 사람이 협력해 앞으로 잘 헤쳐나가자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우리들의 싸움은 그날 한 번 뿐, 나머지는 예전처럼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둘이 사귄지 1년이 되는 날이 다가 왔다.
사실 오래전부터 1주년 기념일을 맞아 제주도로 2박3일 여행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푸른 바다와 아영이의 수영복 모습, 그리고 로맨틱한 밤.
나는 여행을 기대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영이도 마찬가지 였고.
하지만 그것은 유급 전에 계획했던 것일뿐.
유급이 결정되고 아영이의 입에서도 여행얘기는 나오지않았다.
하지만 유급이어도, 1주년은 기념해야지.
그래서 아영이에게 은근 슬쩍 말을 꺼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제 사귄지 1년되네. 여행 슬슬 예약해야지. 비행기나 호텔 같은거."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아영이의 얼굴을 그리 좋아보이지않았다.
"여행? 갈려고? 유급인데..?"
나는 아영이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들여가며 한참을 설교했다. 우리가 왜 여행을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결국 아영이를 설득했고 여행은 계획대로 가기로 했다.
아영이도 본심은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것 같다.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우리는 여행 갈 준비를 했다.
여행 갈 옷도 사고, 해수욕장에서 놀 때를 대비한 수영복도 사고.
수영복을 살때 아영이는 처음에 스커트가 부착된 비키니를 골랐지만 나의 권유로 섹시라고나 할까. 조금 야한 것을 선택했다.
"이거 입으라고?"
"괜찮다니까 .이렇게 입으면 섹시하고 예뻐보여"
"그런가?"
아영이는 조금 망설이는 듯 했지만 결국 내가 골라준 수영복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