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편.
“당신네도 사정이 복잡하구만~ 하지만 뭐, 나는 머리 아픈 일은 질색이라.”
오난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김리온은 주변을 살피더니 오난휘에게 더욱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분지와 관련된 이번 의뢰는 끝났지만, 정녕 오난휘가 워마갈리아 척결을 위해 애쓸 생각이라면 자신과 함께 더 큰 꿈을 꾸어보지 않겠느냐고.
“큰 꿈?”
“그렇소.”
김리온은 오난휘에게 제안했다. 그 제안이란, 자신의 혁명을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지금의 부러젠 연방이 기미니 총통과 그 패거리들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고 김리온은 주장했다.
“분명 기미니 총통은 처음엔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게 맞소. 하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악용하여 총통은 연방을 통째로 워마갈리아 공화국에 넘길 판이오.”
“…….”
“누구는 싸우고 싶어서 싸우겠소? 싸우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저 극단적인 여성 우월주의자들의 노예가 될 판이니 싸우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하지만 기미니 총통은 워마갈리아 공화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연방 백성들의 노력까지 평화를 방해하는 책동으로 몰아세우고 있다며 김리온은 분노했다.
김리온의 말에 따르면 이제는 총통에게 등을 돌린 백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총통에게 절대 충성하는 친위대와 맹목적인 지지 세력 때문에 다수의 백성들은 불만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미니 총통은 종신 총통이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기미니 총통이 늙어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아마 그렇게 되기 전에 부러젠 연방은 워마갈리아 공화국에 잡아먹히리라고 김리온은 예측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오. 나는…… 불길한 의심을 품고 있소.”
“호오?”
김리온의 의심은 기미니 총통을 향했다. 총통이 처음부터 워마갈리아 공화국에 포섭된 자였거나, 그렇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워마갈리아의 사상에 세뇌된 상태가 아닐까 하고.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오난휘가 시큰둥한 태도로 대꾸했다.
“근데 말이야. 정말 당신 의심대로 총통이 벌써 워마갈리아에 넘어간 자라면, 지금 당장 군대를 해산하고 워마갈리아에 항복하지 않는 이유가 뭔데? 너무 과민반응 아냐?”
김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자신의 걱정대로 기미니 총통까지 워마갈리아 공화국에 넘어간 것이 맞다면, 그렇게 단숨에 나라를 넘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미니 총통을 뒤에서 조종하는 리으니 수령의 간교한 점이라고 말했다.
“기미니 총통이 노골적으로 군대를 해산하고 나라를 넘겨보시오. 아무리 총통 친위대가 설치는 상황이라고 해도, 부러젠 연방의 일반 백성들이 사방에서 들고 일어날 거요. 연방을 안정적으로 삼키고 싶은 워마갈리아 여자들 입장에선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
그래서 김리온은 분석했다. 기미니 총통은 워마갈리아 공화국이 연방 영토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현실에 백성들이 무덤덤해지도록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총통 일파는 가짜 평화 분위기가 대세로 자리 잡길 바라고 있소. 이미 상당부분 계획이 성공했고. 그런 판이니 워마갈리아 공화국을 상대로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힘든 노릇이오. 선동꾼, 적폐, 전쟁광 취급을 당하고 마니까.”
“…….”
“그러니 오난휘. 부디 내게 힘을 빌려주시오. 내가 부러젠 연방을 새롭게 세울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오. 이대로 두면 워마갈리아의 천박한 사상이 이 땅을 전부오염시키고 말 것이오!”
기미니 총통의 종신 직위는 법에 의해 보장된 사안이었고, 그 법을 바꾸기 전에 기미니 총통을 끌어내리는 행위는 두말 할 나위없는 위법이자 반역이었다. 하지만 법을 바꾸는 입법 기관은 이미 총통 일파의 간교한 공작에 의해 친위대로 메워졌다고 김리온은 한탄했다. 이런 와중에 법이 바뀔 가능성은 없었다.
“남은 길은 혁명뿐이오. 나라를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나는 위법자라고, 반역자라고 지탄을 받아도 좋소. 어차피 이기면 혁명이고 지면 쿠데타가 되는 것 아니겠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은 오난휘를 상대로가 처음이라고 김리온은 고백했다. 오난휘는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이 세계의 기존 이해관계와 얽혀 있지 않은 순수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뜻을 함께 해 줄지 모른다고 김리온이 판단한 결과였다.
김리온과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은 이미 대부분 숙청당했다. 이제 와서 동지들을 모아봤자 총통 일파에게 장악된 연방군 중앙 세력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고 김리온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권능을 지닌 오난휘가 힘을 써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부러젠 연방을 워마갈리아 공화국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나라로 다시 기강을 확립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계산이 서자, 김리온은 가슴이 뛰었다.
“싫어.”
“뭣…….”
그러나 오난휘는 시니컬하게 김리온의 제안을 거절했고, 엘프 부대장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오난휘가 말하길, 자신은 부러젠 연방의 복잡한 내부 사정에 휘말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설령 앞으로 휘말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김리온의 말만 듣고 행동할 게 아니라 오난휘 자신이 직접 문제라고 느꼈을 때 방해하는 장애물을 때려 부술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니까 내 도움 기대하지 말고 당신이 알아서 잘 해봐. 당신 위치에서 잘 버티고 있다 보면 언젠가 나와 또 얽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좋은 쪽으로 말이야.”
“큭……. 하지만 그러다간 늦는단 말이오. 부러젠 연방이 워마갈리아에게 먹히고 마오. 워마갈리아를 해치우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그 타이밍도 내가 정하겠다고. 별로 서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리고 자꾸 늦는다, 어쩐다 하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 이 세계가 워마갈리아 년들의 썩은 사상에 몽땅 물들지 않도록 내가 적절히 해치우고 다닐 생각이니까.”
“…….”
김리온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난휘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야생마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오히려 함부로 오난휘의 행동을 제약하려고 들었다가는 자신에게 화가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역시.
“얘기는 끝났나? 암튼 난 당신과의 계약을 지켰어.”
그렇게 말하며 오난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 지역에서 아직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소쿠레느의 부대 근거지인 지역 요새를 완전히 박살내고 그곳의 워마갈리아 전투원들을 몰살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데에까지 굳이 김리온의 탐색대와 행동을 같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오난휘는 내일 아침 일찍 이 탐색대를 떠나 단독으로 요새를 향해 돌입할 생각이었다.
“내 여행을 위한 물자나 두둑이 챙겨 줘.……그리고, 당신이 내게 했던 혁명 어쩌고는 다른 데에서 떠들고 다닐 생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뭐, 직접 도와주진 못하겠지만 열심히 해 보든지.”
“……알겠소. 아무튼 생각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주시오.”
김리온으로선 무거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난휘가 평범한 자였다면 그의 속마음을 안 이상 죽여서라도 입을 막았겠지만, 그딴 짓을 했다가는 부러젠 연방을 상대로 혁명을 하기는커녕 오난휘에게 그가 먼저 제거당할 터였다.
“응, 그래, 그래.”
오난휘는 김리온의 말에 그렇게 대꾸해두었다. 김리온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가벼운 말투였다. 엘프 부대장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오난휘는 부대장 텐트를 떠났다. 김리온의 여동생과 즐길 뜨거운 섹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오난휘가 자신의 텐트로 돌아와 보니, 약속대로 김레오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난휘는 빙그레 웃고서 김레오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엘프 처녀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췄다.
쮸읍~! 쯉! 쮸으읍~!
“음……. 응…… 아, 아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