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0 106. 제국 선포 =========================================================================
북경을 점령한 농민반란군은 하늘에 떠도는 대규모 직승기 집단이 두려워 감히 자금성에 진입하지 못했다. 가끔 약탈에 눈이 먼 반란군들이 황궁에 접근했다가 직승기로부터 기관총 사격을 받고 물러났다.
해가 지기 전까지 직승기를 최대한 동원해 황제와 황족들을 남경으로 무사히 이동시켰다. 건청궁 앞마당에 쌓인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도 남김없이 남경으로 보내는 중이었다. 도중에 이민호와 황제가 직접 통화해서 금괴와 보석 위주로 대가를 받기로 약속했다.
“반란군에 군자금을 넘기지 않아 다행이야. 황제 구출 및 군자금 이송 작전은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적에게 넘어갈 것을 가져왔으니 두 배로 이익입니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이민호에게 세자가 춘추시대 적의 전차나 군량미를 탈취한 것과 같다고 말해 민망함을 덜어주려 했다. 황태자는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사실 숭정제는 자기 재산을 군자금으로 쓸 사람이 아니었고 농민반란군 수뇌부도 개인적으로 착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객관적 시각으로는 이민호 말이 분명 맞았다.
“전하! 내탕금 수송 작전을 마쳤습니다. 대명 황제폐하는 남경 황궁의 옥좌에 오르셨습니다.”
“수고했다.”
2천 톤이라면 큰 배 한 척으로 옮길 수 있는 무게였지만 항공기, 특히 직승기로 옮기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직승기 수백 대가 동원돼 북경과 호위항모 사이를 왕복하고, 서쪽 해상으로 이동한 호위항모에 항공유를 실은 유류보급선이 달라붙었다. 호위항모 비행갑판이 모자라 일부 직승기들은 1함대 소속 다른 함선들에 내려앉기도 했다.
고정익기인 공중급유기에서 공중급유 직승기로 연료를 옮기고 다시 병력수송 직승기에 급유하는 과정도 복잡하게 진행됐다. 교통정리가 절실히 필요한 대규모 항공작전에서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공격 직승기가 남쪽 오문(午門)에서 반란군의 황궁 진입을 성공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황제를 따르길 원하는 환관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황족들의 이삿짐이 약간 남았다고 해서 아직도 건청궁 앞마당에 직승기들이 네 대 단위로 떠오르고 내려앉고 있었다. 제1 기병사단 항공여단장이 북경 상공에서 모든 항공기들을 잘 통제했기에 혼란 없이 작전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민호가 무협지에 자주 언급되는 황궁무고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어 지워버렸다. 상승의 묘리를 담은 무공서적과 내공 몇 갑자를 올려주는 영약, 보검과 신병이기가 가득 찬 그런 창고는 황궁에 있지도 않았다.
“뭐, 황상께서 원하지 않더라도 충신을 내칠 수는 없겠지. 빈자리가 남는 대로 환관들을 태워서 남경으로 보내도록 해. 그 일만 마치면 황궁에서 철수하라.”
“전하! 문관은 직승기 탑승을 금합니까?”
“문관들에게 황제의 칙명을 인용해서 끝까지 황성을 지키라고 해. 그 전에 대부분 도망갔지만.”
실제 역사에서 숭정제를 따라 죽었다는 환관 딱 한 명 덕분에 나머지 환관들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황제가 불렀을 때는 도망쳤다가 황제가 떠난 후에야 뒤늦게 건청궁 앞에 나타난 관료들은 직승기에 타지 못하게 했다.
황제가 남경으로 도주하면서 명나라는 북경 시대에서 남경 시대로 넘어가게 됐다. 그 동안 비리로 얼룩진 무능한 관료들을 다시 고관에 임명하는 것은 명 황실의 운명을 시궁창에 내던지는 행위라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사실 숭정제 한 사람만으로도 명나라 권력층은 충분히 무능했기에 이민호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아바마마. 황제도, 내탕고 보물도 다 놓친 농민반란군에 의해 북경이 약탈당할 것입니다.”
“그럼 그것은 반란군의 책임이다. 북경에서 죽인 사람 숫자가 앞으로 반란군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북경 사람들을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고산국에서 직승기 수백 대를 동원했는데도 북경까지 거리가 먼 탓에 겨우 황궁 상공만 장악했을 뿐이었다. 요동과 몽골 국경에 배치된 지상군을 움직여 북경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상황이 끝난 다음일 것이다.
“황태자는 아까부터 말이 없네? 즉시 남경으로 가는 게 좋겠다.”
황태자가 흠칫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민호에게 물었다.
“국왕전하께서 혹시 저를 똑똑한 아이라고 판단하시면 남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추락합니까?”
“흠. 황태자 말이 논리 비약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겠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황태자는 이미 충분히 한 사람의 정치가로구나.”
황태자는 어린 나이치고는 지나치게 똑똑했다. 이 시대 다른 나라 군주들 같았으면 마땅히 황태자를 제거할 생각을 했을 것이고, 개인적 신념을 떠나 미래의 국익을 위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은 다른 나라들과 경쟁해야 하는 일반적인 범주의 국가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였다.
그리고 어릴 적의 숭정제가 똑똑하다고 이민호가 판단했는데도 황제가 하는 짓을 보면 영 아니었다. 그 동안 황제에게 억울하게 죽은 총독과 순무, 제독이나 총병이 열 명을 넘겼다. 정승 역할을 담당하는 내각 대학사들은 수시로 바뀌었고 그 중에서 가장 오래, 4년 동안 내각수보를 차지한 자는 숭정제 재위 중 가장 대표적인 간신이었다. 만력제와 숭정제, 조선 선조를 보건대 영리하다고 다 성군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저는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타기가 두려우냐? 황태자는 고모할머니를 떠올려 보아라.”
“아주 좋은 분이십니다.”
“주상아 공주는 젊었을 적 나의 구명줄이었고, 지금은 황태자의 구명줄이란다. 거대한 두 나라의 군주와 후계자를 살린 위대한 여성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만력제가 이민호를 죽이지 않았으니, 이민호도 황태자 주자랑을 죽이지 않겠다고 보장한 말이었다. 야만시대도 아니고 국가들 사이에 이 정도 신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신념이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두 분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남의 말을 믿지 말고, 항상 긴장을 풀지 마라. 모름지기 군주란 그래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평생 속병을 앓지.”
“명심하겠습니다, 국왕전하.”
“관료들과 백성들에게 몹시 실망하신 황상께서 조만간 퇴위할지도 모른다. 황태자는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라야 할 것 같다.”
“너무 망극한 말씀이십니다.”
“오늘도 봤겠지만 나한테 손을 내밀면 반드시 뭔가를 지불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공짜는 없으니까.”
이민호에게서 충고를 받은 황태자가 얼굴이 허옇게 뜬 채 공항으로 향했다. 남경으로 비행하는 내내 체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명나라가 아무리 급해지더라도 고산국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게 만들 의도로 조금 무섭게 대했다.
황제와 내탕금을 남경에 수송하는 일에 하루가 걸렸으나, 보물 분배에는 일주일 넘게 걸렸다. 다양한 보석의 가치를 감정하고 금과 은을 분류한 다음 최종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떨어지는 보석 전부를 이민호가 갖기로 했다.
그리고 금과 은의 가치를 계산해 이민호가 금 300만 냥 남짓, 약 120톤을 받았다. 북경 함락 소식이 남경과 그 주변에 알려져 은 가격이 치솟는 바람에 예상보다 좋은 가격에 은을 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작전에 참가한 직승기 조종사, 육상 정비병, 호위항모 승무원 등에게 전공에 따라 승전수당을 지급했다.
황금 120톤이면 현재 인구가 1억 정도니까 고산국 금화를 사용하는 속국과 외국까지 합해서 1인당 1원, 엄밀하게는 10인당 10원 꼴로 화폐유통량을 늘릴 수 있는 양이었다. 국립은행은 지급준비율이 100퍼센트라서 예금주의 인출 요구에 언제든 응할 수 있었다.
기준통화인 10원에 유일하게 금 9.9그램이 들어있어 실제 가치와 가장 가까웠고, 그래서 수요가 많아 항상 부족했다. 액면가 대비 금 함량을 낮추기 위해 5원과 50원 주화를 발행하는 연구를 국립은행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꼼수를 쓰려 해도 외국 상인과 재산가들은 오직 10원 금화만 원했다.
“명나라 황제 덕택에 위험한 순간을 넘겼습니다만, 이 여유도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와 호주, 조선의 금광에서 일하는 광부 인원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라. 나처럼 세자도 금 때문에 평생 고생하겠구나.”
이민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건국 초부터 금화를 발행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고산국은 처음에 너무 작고 국제 신용도가 바닥이었다. 경제 규모가 작은데도 명나라를 따라 은 본위제를 실시했다면 외국 상인들이 재정거래를 하자고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몇 년 내에 파산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금화 발행을 아예 폐기하거나, 금 태환제도를 실시해서 화폐유통량을 금 보유고의 몇 배로 불려야 합니다. 금 태환제도도 임시적인 제도에 불과할 테니 궁극적으로 지폐 같은 신용화폐를 도입해야 합니다.”
“지폐를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고 현재는 금 태환제가 유일한 대안이다. 다만 신용도가 떨어지고 물가가 상승할까봐 문제지.”
“물가 상승은 백성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고 정치 안정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조선이 상업을 억누른 것은 저화나 교초 종류의 신용화폐 유통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지폐 유통으로 인한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원나라와 고려가 망한 요인 중 하나였으니 조선은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류성룡은 <서애집>에서 임진왜란 중에 여진족과의 무역을 통해 기근을 극복했다고 자랑했으나, 이는 임시조치에 불과했고 어전에서 상업 진흥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현대에도 화폐금융 정책은 매우 민감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므로 전근대 국가에서 감당하기란 실로 어려운 문제였다. 사실 현대 국가들도 화폐정책에서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시대 실물 화폐 제도 국가와 은 본위제 국가들에 둘러싸인 고산국에서 화폐정책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전 세계의 금 생산량 대부분이 고산국에서 산출되는데도 항상 금이 부족하다. 내가 납으로 금을 연성하는 연금술사도 아닌데 국립은행에서 매일 같이 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야. 이젠 아주 지긋지긋하다.”
“인구가 늘고 경제규모가 성장할수록 더 많은 화폐가 필요합니다. 아바마마께서도 고생하셨지만 제게도 고생길이 훤히 열렸습니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자연스럽게 금 태환 제도로 이행될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건국 초기 왕궁 지하 창고에 금괴를 잔뜩 쌓아놓았던 때를 떠올렸다. 금괴의 산을 보고 있자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괴 몇 개만 남아, 이미 지나간 과거에 불과했다.
그때 쌓여있던 금보다 현재 궁성 지하에 보관 중인 보석의 가치가 훨씬 높았다. 그러나 시장에 한꺼번에 풀 경우 보석 시세가 폭락할 것이 뻔해서, 아무 때나 자유롭게 판매할 수 없는 품목이었다. 그런데도 남아프리카와 시베리아에서 생산한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각종 보석이 매년 창고에 들어와 차곡차곡 쌓여갔다.
“금 태환제로 바뀐 다음이 더 문제다. 화폐발행량이 금 보유량의 1.5배, 2배 식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화폐의 신용을 잃으면 안 되니 금 보유고를 항상 투명하게 공개해라.”
“예, 아바마마. 화폐제도에서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1억 5천만에 달한 시점에 백성들을 설득해 신용화폐 제도로 넘어가겠습니다. 화폐제도 전환 초기에 무역이 위축되고 물가 폭등 같은 경제적 혼란이 오더라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남아프리카 금광들과 호주 남서부 칼굴리, 조선과 북미 각지의 금광에서 매년 순금 500톤 정도를 생산하고 있었다. 현대 기준으로 매년 도합 천 톤은 생산하는 지역들인데 기술과 인력 부족으로 이 정도에 그쳤다. 1625년에 발견돼 1626년에 본격적으로 개발한 새 나하 금광은 10년 동안 순금 400톤을 제련한 다음 금맥이 말라붙었다.
일 년 금 생산량 500톤이면 백성 일인당 매년 금 5그램이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러나 금 함유량이 적은 1원과 그 이하 은화가 아니었다면 백성들의 평균 소득증가액을 따라잡기 어려운 양이었다.
지금까지는 부족한 금을 명나라나 유럽에서 은과 바꿔 채울 수 있었다지만 금 가격이 폭등해 앞으로는 교환 자체가 힘들어질지도 몰랐다. 지금도 금 투기가 횡행하면서 가수요가 붙어 금의 상대가격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새로운 금광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에 자원탐사단을 파견했고, 특히 몇몇 탐사대는 극한의 추위가 몰아치는 알래스카와 카나타에서 활동하게 됐다. 국가나 탐사단원이 부유해지기 위한 금광 탐사가 아니라 금 본위제 경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지폐를 위주로 한 신용화폐 제도를 당장 실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립지리원에서 북미의 행정구역 구분과 이름을 좀 더 빨리 정해달라고 요청했더구나.”
“들소 군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구가 적어 군을 설치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북미 내륙지역은 철도 종사자들에 원주민까지 다 합해도 인구가 너무 희박해서 군을 창설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현재 들소 떼의 이동 경로 대부분을 들소 군이라 칭한 채 행정적으로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다. 현대 미국의 중앙 내륙 10개 주에 캐나다의 서스캐치원과 앨버타 주가 포함된 광대한 지역이었다.
고산국에서도 동양의 전통적인 지방 통치제도인 주군현 제도에 따라 북미 영토를 구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만한 군 하나가 현대 미국의 주보다 훨씬 컸고, 유럽 국가들 몇 개를 합한 정도였다.
한반도의 세 배 넓이가 넘는 텍사스 군의 영어 번역을 텍사스 카운티로 하니까 유럽 사람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백작령을 earldom으로 하고 county는 작은 행정구역으로 사용하는 잉글랜드 사람들은 부러움에 한숨을 지었다. 앞으로 인구가 더 늘어나면 고산국 백작이나 군수가 유럽에 가서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게 될 것 같았다.
“그래. 행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지. 인구가 늘고 기후가 온화해지면 그때 본격적인 개발을 하기로 하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혹시 ‘따뜻한 바다의 제국’은 아바마마께서 필명으로 제안하셨습니까? 국명 투표를 며칠 앞두고 요즘 그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따뜻한 나라이며 바다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해양제국이라는 뜻인데, 국명으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이민호가 그 이름의 제안자임을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았다. 세자가 건국이념으로 내세우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명나라 내전은 바로 결판나지 않고 시간을 꽤 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