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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029화 (978/1,000)

01029  106. 제국 선포  =========================================================================

“합참인가? 음. 차장이 보고하러 급히 입궁하는 중이라고? 알았네. 수고하게.”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자 황태자가 전보용지를 이민호에게 내밀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게 유리하다고 황태자가 판단한 모양이었다. 급한 마당에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황태자가 무사히 제위에 오를 수 있다면 명나라가 부흥하는 일은 문제도 아닐 것 같았다. 물론 통신체계를 장악한 고산국에서 황태자가 받은 전보 내용은 이민호에게 곧 알려지게 돼 있었다.

“황태자는 즉시 남경으로 가서 나라를 이어받으라고 적혀 있군.”

“부황께서는 불행한 일을 각오하고 계십니다. 흐어엉~”

황태자가 아무리 예의와 법도, 체면을 중시한다 해도 이제 겨우 여덟 살 아이였다. 아버지 숭정제의 죽음을 각오한 유언에 황태자가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이 상황에서도 숭정제가 고산국에 구원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은 의외였다. 지난번 이자성을 제거할 때 고산국에 다시는 도와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전하! 황상을 살려주세요.”

“먼저 자세한 보고를 좀 받읍시다.”

주상아 공주는 황제가 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민호와 살면서 느낀 바가 많았는지 공주는 황실보다 백성들을 더 중시했고,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선사업에 나섰다. 농민반란군의 규모가 그나마 이 정도 수준에 그친 것은 주상아 공주가 그 동안 명나라 백성들에게 베푼 은혜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실제 역사에서 들었던 것보다 현재의 반란군 규모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후금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후금이 요동이나 산해관을 공격했다면 반란에 호응하기를 꺼렸을 농민들이, 외세의 위협이 사라지자 명나라 황실과 지배층에 더 크게 반발한 탓이었다.

후금이 국경을 위협했을 때보다 훨씬 평화로운 지금 백성들이 더 많은 세금과 부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었다. 예전과 다른 것은 농민들이 더 이상 참지 않게 된 것이었다. 황제부터 솔선수범해서 검소하기로 소문 난 황실이 아니라 관료들의 부패가 진짜 문제였다 해도, 그 관료들을 임명한 황제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황실이나 농민이나 외부 요인을 신경 쓰지 않고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해 판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군적에 올라있던 40대 중반 아버지가 관군에 징집된 사이 20대 아들은 농민반란군에 가담하는 식으로 동족상잔을 넘어 부자상잔이 이뤄지고 있었다.

“전하께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으시려는 마음은 잘 알아요. 하지만 농민반란군이 북경을 점령한다면 황실뿐만 아니라 북경에 사는 주민들, 더 나아가 모든 백성들에게도 큰 비극이 일어날 거여요.”

“무정부상태가 가장 무섭긴 하오.”

이때 합참차장이 입시했다. 차장은 황태자를 보고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민호가 눈짓을 보내자 바로 보고했다.

“전하! 삼변총독 겸 병부상서 홍승주가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응? 그는 진사 출신 아닌가?”

“진사 출신이 맞습니다, 전하. 기병 몇 십 기만 데리고 정찰에 나섰다가 반란군에 생포된 다음 전향했다고 합니다. 네 갈래로 나뉜 반란군은 홍승주 휘하의 관군 15만과 함께 북경에 접근하고 있으며, 현재 반란군의 본진인 중군은 북경 남쪽 40km 지점까지 북진했습니다.”

문관이 무관 고위직을 담당하는 명나라에서, 비겁하고 부패한 무관과 달리 문관, 특히 과거급제자인 진사 출신들은 최소한 선비의 기개를 지킨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홍승주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런 믿음과 숭정제의 신뢰를 저버리고 농민반란군에 가담했다.

실제 역사에서 홍승주는 청나라에 생포된 다음 변절한 자였다. 청군이 산해관에 입성한 이후 북경 포위 작전에 참가했고, 이후 남경을 점령하고 운남 등에서 명나라 잔존세력들을 격파하는 일을 맡았다.

“아직 하루거리인데, 혹시 현재 북경이 포위된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반란군의 유군 20만이 서쪽으로 크게 우회해 우리 정보망에 걸리지 않은 채 북경성에 접근했습니다. 양군은 직접적인 전투에 들어가지 않고 서로 견제만 하고 있습니다.”

“원숭환은 태원에 있나?”

“그렇습니다, 전하. 산서 순무가 태원에서 즉각 출전한다 해도 북경까지 7일은 걸립니다. 휘하 병력을 다 긁어모아도 12만에 불과합니다.”

관군 100만이 사천으로 진군하는 도중 산서 순무 원숭환은 그 중간에서 관군의 보급을 책임지고 있었다. 북경이 위기에 처했어도 원숭환이 당장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꼬여도 너무 꼬였어. 아니, 반군이 관군의 빈틈을 제대로 찌른 셈이야.”

“국왕전하! 제발 부황을 구해주시옵소서!”

황태자가 옥좌를 향해 무릎을 꿇었고, 주상아 공주가 그런 황태자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민호가 판단할 때 고산국에서 병력을 급히 투입해도 북경을 지키기는 이미 틀린 것 같았다. 고산국 공수부대 1개 사단을 모아 급히 투입한다면 진정한 인민의 바다에 휩쓸리는 꼴을 보게 될 것 같았다.

홍승주가 휘하 병력과 함께 반란에 가담하는 바람에 북경 수비 병력은 15만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반란군은 계속 세력을 불려 거의 200만에 육박했다.

물론 반란군이 4개 지대로 나뉘어 북경으로 향하는 도중에 지나치는 모든 도시와 농촌이 초토화됐다. 그 지역 주민들은 피난민이 되어 흩어지느니 차라리 반란군에 가담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했다.

“차장! 1기병사단 항공여단에 지시해서 대명 황제폐하와 황족, 고위 관료들을 남경으로 모시도록. 잠깐! 공중급유 1회를 해도 행동반경을 넘어버리잖아?”

“전하! 1함대 호위항모 한 척이 마침 백령도와 산둥반도 사이에서 작전 중입니다. 탑재기와 기종이 달라 긴급정비는 못하더라도 이착륙과 급유는 가능합니다.”

“즉각 구조 작전을 실시하도록.”

합참차장이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아시아 지역 통합 사령관에게 연락을 해서 항공여단에 이미 출동준비를 지시해놓았다고 한다. 이민호가 재가함으로써 통합사령부가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감사합니다, 국왕전하.”

“황태자는 들어라. 내가 대명 황실을 도와주는 바람에 앞으로 반란군이 고산국을 적대할 것이다. 내게 얼마나 큰 손해가 되는지 알겠지?”

“죄송합니다, 전하. 황상께서 고산국에 배상금을 지급할 것입니다.”

“반드시 이기라는 뜻이다. 황태자를 남경으로 급히 보내줄까?”

이민호는 개편되기 전의 참모본부에서 명나라의 내전 전개 상황을 몇 가지로 예상해 준비한 방안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반란군이 북경을 점령하고 황제가 북경에서 죽는다면 명나라는 거의 멸망이 확정되므로 고산국 입장에서는 황제를 살리는 편이 유리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남명 정권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황제가 살아남아 남경에서 재기할 수 있다면, 내전이 반란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천하삼분지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국을 분할하는 것이 고산국에 여전히 유리했다.

“황태자로서 북경에 가는 것이 효이겠으나 황명을 받들어 남경으로 가고자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전하.”

“좋아. 일단 황상의 안전을 확인하자.”

이민호가 세자와 황태자를 데리고 궁성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승강기에 올랐다. 궁성 지하 비상 지휘소는 황태자가 둘러보더라도 현재 명나라 기술 수준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시설이었다.

비상 지휘소는 육해공군에서 파견한 장병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중앙 벽면에 큰 화면이 설치돼 있는데, 마치 1970년대에 제작된 SF 드라마처럼 볼록하고 해상도도 떨어졌다.

제1 기병사단 항공여단 소속 2개 대대가 배치된 요동 선양을 표시한 지역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직 출동 전이었다.

“오늘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직승기는 60대 정도다. 24대는 공격용과 정찰용이고, 36대는 병력수송용이다. 병력수송 직승기를 빈 채로 보낸다면 최대 400명을 태울 수 있다.”

“황상께서는 아마 사람은 100명 이내로 태울 것 같습니다.”

“음. 그렇다면 내탕고가 아직 남았나보구나. 군자금이 있어야 군을 움직여 황도를 탈환할 수 있을 테니 꼭 비정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겠지.”

황제에게 버림받은 충신들이 부복한 채, 직승기를 타고 황궁을 떠나는 황제를 향해 울부짖는 장면을 연상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북경이 반란군에 포위된 이후 숭정제가 회의를 소집했을 때 대신과 환관들은 죄다 도망갔다. 숭정제가 경산에서 나무에 목을 맸을 때 뒤따른 자는 환관 왕승은 한 명뿐이었다.

“남경은 제2의 황도가 아니라 예비 황도입니다. 북경 조정의 직제가 고스란히 남경에 준비돼 있으니 그 동안 백성들을 쥐어짜 반란을 일으키게 만든 관료들을 구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 때로는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이민호와 세자가 황태자의 발언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실제 역사와 달리 도망칠 길이 있다면, 황제는 환관들도 다 버리고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명나라가 멸망했을 당시 황제의 내탕금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숭정제가 군비로 내탕금을 다 소모해 텅텅 비었다는 주장도 있고, 구두쇠 숭정제가 내탕금을 아끼려다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의 관군을 제대로 기동시키지 못해서 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북경 점령 후 내탕고를 열어보니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보석들 외에도 은 3,700만 냥, 금 150만 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자성이 내탕금을 털어 농민반란에 가담한 자들에게 나눠줄 계획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내탕고가 텅텅 비어서 북경에서 반란군들이 황궁과 민가를 약탈하는 것을 제지할 수 없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관련된 모든 인간들을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숭정제의 내탕금이 실제 그 금액 혹은 그 이상이었고, 이자성과 측근들이 독차지하기 위해 몰래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내탕고가 비었다고 우겨서 북경 약탈을 방관한다면 대충 설명이 가능하다.

“전하! 저 깜빡이는 선이 직승기들이 이동하고 있는 위치입니까? 직승기도 비행기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렇다, 황태자여. 북경까지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그런데 15만이나 남아있다던 북경 수비군은 아무래도 종이로 만들어진 모양이구나.”

“예?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저길 봐라. 먼저 북경성 밑에 도착했다는 반란군 유군이 남문과 동문을 통해 북경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아아!”

황태자가 멀리서 촬영해 흐릿한 화면을 보면서 절규했다. 삼변총독 겸 병부상서 홍승주가 반란군으로 전향했다는 사실이 북경에 알려진 모양이었다. 북경을 둘러싼 높은 성곽에서는 관군이 방어를 한다는 어떠한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명나라 최악의 위기였던 토목보의 변 직후 기세등등한 몽골군을 막아냈던 북경 성의 대문 두 개가 전투 한 번 없이 열렸다. 그리고 반란군이 무장한 창검과 각종 기치가 성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북경 실함은 되돌릴 수 없겠구나. 구조에 집중하도록 해야겠다.”

해군 소장인 지휘소장이 이민호의 뜻을 항공여단에 전달했다. 위력시위를 해서라도 가능하면 농민반란군을 북경성에서 쫓아낼 계획이었으나, 성문이 뚫린 이상 직승기들이 반란군 상대로 화력을 퍼부을 수가 없게 됐다.

“전하! 직승기에서 화면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널따란 건청궁 앞마당에 직승기 네 대가 차례로 착륙했다. 그 동안 황제는 가까운 황족들과 환관들을 거느린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관료는 단 한 명도 끼지 못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하!”

“뭐가 문제야?”

“대명 황제께서 보물을 남김없이 남경으로 수송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만약 모든 나무궤짝에 은이 들어있다면 대충 2천 톤이 넘습니다!”

“그건 말이 안 돼.”

병력수송 직승기 36기에는 무장한 보병 400명이 탑승하거나 화물 30톤 탑재가 가능했다. 항공기는 무게 중심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비행 조건에 따라 화물 탑재량이 크게 바뀔 수 있었다. 황제가 준비한 짐을 옮기려면 직승기들이 70번 가까이 왕복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전하. 고산국 장병들의 목숨을 담보로 수송하는 것입니다. 일단 황상만이라도 구해주신다면 백 번 죽어도 못 갚을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황태자. 군자금으로 써야 할 엄청난 재산인데, 남경까지 다 못 옮겨줘서 미안해.”

금은보화를 옮겨주더라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숭정제가 군자금으로 활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석과 금괴 약간만 챙기라고 황제에게 권하려 했는데, 지휘소 소장이 급히 보고했다.

“국왕전하! 대명 황제께서 제안하셨습니다. 남경으로 옮겨준 양의 절반을 국왕전하께 드리겠답니다.”

“전군 비상이다! 육해공, 해안경비대 소속 모든 직승기를 모아 북경으로 총출동시켜! 공격헬기는 교대로 급유하면서 건청궁 사방을 방어하라! 몇 대는 자금성 주변 대문과 해자를 지켜! 공중급유기를 충분히 더 보내도록. 최소한 금괴는 무조건 다 옮겨야 한다. 황제와 황족들을 어서 호위항모로 보내지 않고 뭐하는 거야?”

이민호가 여러 가지 명령을 동시에 쏟아냈다. 각 부대에 지시하느라 지휘소가 급하게 움직였으나, 언제부턴가 세자와 황태자가 얼이 빠진 채 이민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보기가 민망해진 이민호가 헛기침을 연발했다.

“미안. 요즘 금화 발행액이 수요보다 많이 부족해서 말이야.”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이상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금언을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민호의 얄팍한 본색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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