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0 105. 대국의 길 =========================================================================
북경반점이 새 수도 티완에서도 영업 중이었다. 고북 시에 있는 것처럼 역시나 명나라 황실과 고산국 왕실이 공동 소유하고 운영하는 최고급 호텔이었다.
북경반점 지하에는 국내외 고객들을 위한 카지노, 합법적 도박장이 개설돼 있었으나 판돈이 푼돈으로 제한돼서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하경제라는 말에 걸맞게 진짜 도박판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법적으로 고산국 영토지만 지분의 절반이 황제 소유이며 종업원들이 명나라 환관이라서 북경반점은 반쯤 치외법권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호텔이든 밀폐된 방은 비밀 도박장으로 활용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었다. 고북에서 티완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그래서 고산국의 타짜들은 여전히 북경반점을 애용하고 있었다.
“요즘은 웬만한 국영기업들보다 삼기물산의 수익이 더 나아. 아예 국영회사를 차릴까?”
“역사 기록에 남으면 부끄러우니 얼른 작전을 끝내세요.”
혜영이 말은 그렇게 해도 삼기물산의 영업보고서를 읽는 표정은 아주 밝았다. 고산국 경찰은 천도 이후 전국적으로 전문 도박꾼들을 체포하는 작전에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삼기물산은 수도 경찰청 소속으로서 특수임무를 담당한 제3기동대가 설립한 유령회사였다.
고산국에서 푼돈을 놓고 벌이는 도박은 일시적 오락으로서 큰 범죄가 아니었다. 판돈이 작으면 즉시 훈방이었고, 생산직 근로자 평균 월급 수준으로 조금 많더라도 곤장 서너 대에 해당하는 경범죄로 처벌받았다. 일인당 판돈이 연 수입 이상이거나 납치, 감금, 갈취, 불법 채권추심 등 다른 범죄와 연루될 경우부터 중범죄였다. 물론 도박개장죄, 사기죄 등은 따로 적용됐다.
사실 화투와 카드 등 다양한 게임과 운동경기 결과를 놓고 돈을 거는 행위, 즉 도박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투리 여가 시간을 보내도록 판을 깔아준 사람이 국왕 이민호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재산을 모으면서 판이 계속 커지고 도박에 관련된 중범죄가 자주 발생해서 가끔 이렇게 단속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왜? 이번 작전이 끝나면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표할 거야. 그래야 호구들이 사기도박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조심하지. 물론 개가 똥을 끊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감형해준다는 미끼로 도박꾼들을 동원해서 결국 백성들 돈을 빼앗는 거잖아요.”
“도박꾼을 회유해 돈을 따거나 판돈을 압수해서 국고수입으로 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삼기물산이 하는 일은 현대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도박꾼을 체포한 다음 형기를 절반으로 감형해주는 조건으로 다시 도박판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거액을 놓고 도박을 하는 전문 도박꾼들이 자주 이용하는 북경반점 객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남이 가진 패를 무전기를 통해 읽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경찰에 협조하는 도박꾼이 따면 그 돈을 국고로 환수하고, 잃으면 경찰이 도박판을 덮치는 식으로 판돈을 압수했다. 그리고 그 판에서 돈을 딴 더 뛰어난 도박꾼을 다시 도박장에 밀어 넣어 피라미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작전이 진행될수록 삼기물산의 영업이익과 국고 환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저예요, 저! 하지만 국초에 여러 가지 정책을 시험해보는 의미일 뿐이에요.”
“알았어. 양위할 때까지만 할게.”
“그런데 의외로 도박판에 범죄조직이 연루된 것 같지 않아요. 사설 도박장을 개설했던 중국인 범죄조직들이 돌아가서 그런 것 같아요.”
“설마 도박꾼들이 반란에 참가하겠어? 도박을 합법화한 홍콩과 상하이에 자리를 잡았더라고.”
명나라 황실과 합의해서 개항한 홍콩과 상하이는 명나라는 물론 고산국과도 법체계가 조금 달랐다. 고산국과 명나라가 병력을 투입해 치안이 확립됐으나 다양한 범죄행위를 규정한 법률이 간소화된 편이었다. 특히 아편을 비롯한 마약 밀수와 사용을 철저히 적발하는 대신 도박은 풀어주었다. 그래서 홍콩에는 카지노 외에 경마장도 생겼다.
“백성들이 도박에 눈을 돌리지 않고 건전한 여가 생활을 누리도록 제안 좀 해봐요.”
“왜 나만 갖고 그래? 등산부터 해외여행까지 내가 제안한 게 몇 백 가지나 돼.”
“주인님이 온갖 잡기에 능해서 잘 됐어요. 하지만 가족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만한 게 아직 드물어요. 화상방송이 시작되면 나아지겠죠?”
이민호와 혜영이 CRT 형식이라서 터무니없이 크고 무거운 화상방송 수상기로 눈길을 돌렸다. 요즘 왕궁에서 하루 두 시간씩 시험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고산국에서는 아날로그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전파송출 시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영상제작과 전파송출, 전파 중계, 수상기에 관련된 기술적인 기반은 이미 갖췄다. 그러나 전파 송출 전에 운영 인력을 훈련시키고 전파중계국을 전국에 설치하고 콘텐츠를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해서 본격적인 방송이 늦춰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물체의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실험은 이미 19세기 후반에 성공했다. 브라운관은 20세기 초에 발명됐고, 컬러텔레비전의 시험 방송이 성공한 것은 1928년이었다. 전쟁 등 우여곡절을 겪고 실제 방송이 시작된 것은 이차대전 이후였지만 독일과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다.
고산국의 전반적인 기술 발전 단계에 비해서 TV 방송을 시작하는 시기는 상대적으로 늦은 셈이었다. 가정용 영사기는 이미 판매 중이었고 TV 녹화가 가능한 비디오 플레이어도 현재 개발 중이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일단 아이들이 화상방송 수신기가 있는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날 거야. 해가 질 시간에 만화영화를 방송하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서 엄마들의 걱정도 줄어들겠지.”
현재 전국방송으로서 왕도에 국영방송 하나와 공영방송 둘, 주마다 공영방송 하나씩 TV방송국이 개국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인구가 늘어나면 현대 미국의 주에 해당하는 군마다 방송국을 설립할 예정이었다. 공영방송의 수입원이 될 광고제작과 판매도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공중파 방송이었고 지역마다 유선방송, 케이블 TV 방송국을 설립하는 문제도 연구 중이었다. 공중파 난청지역을 우선으로 유선방송 시스템을 갖춰놓으면 나중에 이들을 연결해 채널을 다양화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오락과 보도 등에 특화된 상업방송도 허가할 예정이었다.
“음성방송이나 영화관의 역할이 확 줄어들겠어요. 화상방송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옛날 매체들은 아예 사라질지도 몰라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닐 거야. 매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어느 매체는 소멸하겠지만 웬만하면 각자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잡겠지.”
사진기가 발명된 직후 그림이 사라질 거라고 모든 사람들이 예상했고 화가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회화는 고급 예술이나 만화 같은 대중예술로 살아남았다.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표현상 한계가 많은 매체인 영화와 라디오가 사라질 거라고 봤지만 21세기에도 영화는 여전히 살아남았고 라디오도 일정한 시장 지분을 챙겼다. 이렇게 새로운 매체가 나와서 기존 매체의 영향력이 대폭 감소할지라도 일정한 역할을 맡으면서 연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20세기 말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에서도 전자책이 도서시장을 장악할 거라고 예상한 한국 출판사들이 협회를 구성해 전자책 시장을 선점했다. 세계적인 발전 추세에 맞춰 전자책 시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갖가지 장애물을 도입해 전자책 시장의 발전을 가급적 늦추고 종이책이 중심이 되는 시장을 유지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전자책 시장에서 유통업체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결국 인터넷 연재와 전자책의 시대가 왔고, 기존 종이책 출판사들은 시장 장악력을 완전히 잃고 몰락해 버렸다. 소설을 쓰거나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용이 중요하지,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인터넷 연재든 매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매체와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전체 내용 중의 일부에 국한되는 영향력일 뿐이다. 모 신문의 디지털 특별면에는 소설은 컴퓨터로 써서는 절대 안 되고, 원고지에 혼을 담아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야 제대로 된 작품이라는 기고문이 실리기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타자기로 작품을 쓴 대문호들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요즘 원주민들이 술렁이고 있어요.”
혜영이 신문 사회면을 이민호에게 내밀었다. 새 왕도 주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분위기는 미카가 이끄는 정보국에서도 비슷한 보고를 올렸었는데 기어코 사고가 나고 말았다. 조선 출신자가 왕도의 거리에서 일하던 원주민 청소부를 욕하고 때린 것이다.
“내가 알아서 챙겨주는데도 이것들이 스스로 매를 버는구나. 이곳에서 수천 년을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을 욕하고 때리다니, 미쳤지.”
“비록 하급이지만 국왕의 대리인인 공무원을 모욕하고 폭행했으니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거여요. 원주민들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천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행정부에 이어 추밀원과 대법원이 이주를 완료했어도 왕도 백성들이 이주를 완전히 마치려면 한참 멀었다.
새 왕도가 여전히 뒤숭숭한 와중에 왕도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전 고북 시민들에 의한 북미 원주민들에 대한 무시, 차별, 학대 문제가 종종 불거졌다. 북미 동해안에서는 예전에 몇 차례 강하게 처벌했더니 인종차별 금지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생겼으나, 새로 이주한 전 고북 시민들은 아직 적응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놈들이 원하는 게 뭐야? 조선에서 소작농, 유민, 천민 출신이었던 자들이 지들이 무시당하는 것은 못 참고 남을 무시하고 싶어 안달하는 거지?”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나라를 건국한 핵심 세력이라는 자부심이죠. 누가 그러던데, 만약 인구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 혈통 백성들에게 일등백성이라는 명목상의 특권을 준다면 그들에게서 확고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거래요.”
“일등감자도 아니고, 날 시험하는 거야?”
“호호! 아니에요. 편하고 쉬운 길이 있지만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이 라는 뜻이에요.”
“그런 건 실제 이익도 없고 오히려 국민통합에 문제가 생길 거야. 괜히 인종폭동과 반란, 분리 독립전쟁으로 날을 지새울 수는 없어.”
오랜만에 이민호가 현대 미국에서 문젯거리로 떠오른 잉글랜드 혈통의 레드넥들을 떠올렸다. 남들보다 일찍 북미로 이민을 간 덕택에 한때는 광대한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지주계급이었으나 경제 중심이 상공업으로 넘어간 다음에는 고집불통의 무식쟁이 육체근로자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레드넥은 이에 반발하며 다양한 정책 구호를 내세웠다.
남북 전쟁을 거치며 연방 제도와 유색인들을 혐오하게 된 이들이 내세울 거라곤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의 직계 후손이라는 혈통밖에 없었다. 결국 개인의 자유 극대화, 주정부 권한의 확대, 총기소지 자유, 세금 인하와 복지제도 축소를 부르짖게 됐다.
이 모두가 연방정부의 권한을 악화시키기 위해 연결된 논리들이었고, 그래서 보수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 이후 신보수주의 공화당과 겹치는 정책들이 많았으나, 레드넥들은 공화당이 남북전쟁 때의 연방정부라는 이유로 극도로 혐오했다.
문제는 조선 이주민들이 레드넥이나 티파티와 같은 인종차별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레드넥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레드넥이 미국의 경제발전에 따라 기득권을 박탈당하고 경제적 신분이 하락해 국가체계에 극심하게 반발하는 집단인데 반해, 조선 출신자들은 교육과 직업 등을 통해 여전히 집중적인 특혜를 받는 집단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조선 출신자들은 집단의 힘으로 정부에 저항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 중에서 희생자를 고르는 경향이 더 강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시간이 좀 더 걸렸겠지만 조선 혈통만으로 온전히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주장을 해요. 풍요로운 열대지방을 내버려둔 것도 아까워해요.”
“외국인과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학살하면서 잘도 영토를 늘렸겠다. 전쟁으로 정복할 생각을 했다면 아직도 서태평양 섬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쟁으로 날이 새고 졌을 거야.”
“열대우림에서 싸우면 우리 군의 화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전사자가 최소한 수만 명이 생겼을 거여요. 파푸아 섬의 확대판이었겠죠.”
“전사자도 문제지만 말라리아 환자 수백만 명이 생길 게 더 무서워. 열대 지방을 정복하려다가 우리가 먼저 멸망했을 수도 있어.”
영국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확대하려고 처음 시도했을 때 1개 연대 병력이 채 일 년도 못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전투가 아니라 토착질병 때문에 병사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당한 탓이었다.
원인을 파악한 후에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내성이 생긴 카리브해 백인 이주민의 후손들을 골라 파병하고 나서야 영국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넓힐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전사자보다 토착질병 사망자들이 여전히 더 많이 발생했다.
그리고 말라리아에 내성이 생겼다는 말은 겸상 적혈구 증후군이나 지중해빈혈의 유전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운 좋은 무증상 보인자가 아니라면 평생 빈혈에 시달리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 기사 참 재밌어요. 원주민 청소부를 때린 인간이 같은 부족 출신인 승합차 운전사에게는 혹시라도 안 태워줄까 봐서 아주 공손했다는데요?”
“인간들이 참. 원주민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약해보여서 만만했겠지.”
“이건 피의자의 변호사가 청소부 폭행이 인종 차별 범죄가 아닌 증거라고 주장한 거여요.”
“그래봤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야. 그런데 문제는 청소부가 공무원이라서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가 없다는 거지. 골치 아프네.”
원주민 청소부를 욕하고 때린 자는 결국 곤장을 몇십 대 맞은 다음 탄광에서 몇 년 일해야 하는 강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청소부의 복장이 업무의 편의성에만 중점을 두어서 신분이 낮아 보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주장이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조선의 벼슬아치들 복장을 참조해 시청 소속 청소부의 근무복을 새로 만들었다. 근무복 제작에 비용을 많이 들여 위엄을 올리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은 좋았으나, 조선의 고을 사또 같은 치렁치렁한 구군복은 일하는데 크게 지장을 주었다. 그러나 새 옷을 지급받은 청소부들이 기뻐해서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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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방송 관련 기술이 의외로 일찍 완성됐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