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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012화 (961/1,000)

01012  105. 대국의 길  =========================================================================

1635년이 되었다. 북반구 고위도 지방 전체가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었다. 하지만 새로 지은 벽돌집과 난로, 싸게 공급된 난방 연료와 모피 덕택에 사람들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폭풍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덴마크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공작령의 해안 지방 사람들도 고산국 해병대의 구호를 받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스칸디나비아와 시베리아 같은 한대지방보다 오히려 온대지방으로 분류된 프랑스 북부와 독일, 폴란드와 명나라 화북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동사자들이 발생했다. 아연실색한 이민호가 온대지방에도 난방 기구와 연료에 한해 저렴한 가격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혹시 내년에 더 추워지더라도 동사자 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독일 내전을 멈추기 위해 프라하와 파리, 스톡홀름을 옮아가며 평화협상이 계속 진행됐다. 협상이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더니 정말 일 년 넘게 고위 귀족들이 먹고 마시고 파티를 열면서 협상을 질질 끌었다.

그 사이 고산국에서는 독일 영토 내에 주요 도로를 닦고 식량과 난방 연료 공급 거점을 내륙 곳곳에 건설했다. 또한 독일 주요 도시에 병원을 설립하면서 흑사병 확산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북미로 이주할 사람들을 모아 수백 명 단위로 꾸준히 송출했다. 기근과 흑사병으로 인해 독일 인구가 급감하면서 위기감을 느꼈던 영주들은 정파와 종파를 떠나 고산국의 구호사업과 이주사업에 적극 협조해주었다.

영주에게 손해보전을 해주려고 북미로 향하는 이주민 일인당 10원을 지급했다. 그랬더니 일부 영주들이 용병을 동원해 영지민 외에 유민들을 붙잡아 넘기는 인신매매 비슷한 짓을 하기도 했다. 고산국에서 양쪽을 잘 설득해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

본격적인 천도를 몇 달 앞두고 이민호가 직접 새 왕도 건설현장을 돌아봤다. 왕궁은 완공을 앞두고 있었고 도로와 건물 등 시가지도 이미 건설을 마치고 이제는 단장을 하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건설하기 편한 평지에다가 새목포라는 좋은 항구를 옆에 두어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된 셈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 원주민인 쿠메이야 족 추장들이 이민호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쿠메야이의 분파로서 북쪽에 사는 이파이와 남쪽에 사는 티파이는 모두 사람을 뜻하는 말로, 해양 문화와 사막 문화의 접점을 가진 유수한 문명을 이어받고 있었다.

“대왕님! 저희 쿠메야이 사람들은 1만 2천 년 전부터 티완, 고산국에서 칭하는 새목포와 새 왕도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왔습니다.”

“쿠메야이 사람들은 내 백성이며 훌륭한 동맹이다. 그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쿠메야이 족은 부계 혈통으로 이어지는 30여 개 밴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태평양 탐사단이 새목포를 처음 탐험할 때부터 우호관계를 유지했다는 보고를 받았고, 이민호가 고산국 함대를 이끌고 새목포에 입항할 때마다 열렬히 환영하는 쿠메야이 족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초기 탐사단과의 접촉은 주로 쿠메야이 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온 탐사단원들이 배고플까봐 걱정된 쿠메야이 원주민들이 식량과 깨끗한 물을 가져와 공짜로 줬다는 훈훈한 일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단순한 교환인 줄 알고 탐사단원들이 선물을 제공했으나 원주민들은 미소를 지으며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이민호는 새순천 바닷가에 사는 순박한 원주민들과 구운 불가사리가 떠올랐다.

예전에 새목포 군항과 시가지를 건설할 때에는 쿠메야이 족이 대거 건설인부로 참여했다. 이들은 지금도 시청 소속 청소부와 정원사, 공용마차 마부, 시 외곽 척후병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현재 새 왕도를 건설하는 중에도 쿠메야이 족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대왕께 청합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진 이 지역의 이름을 유지시켜 주십시오. 거대한 나라의 새로운 왕도 이름으로 충분히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쿠메야이 말로 티완이라면, 바닷가라는 뜻 아닌가?”

“예, 대왕. 티완은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대왕께서는 다른 지역 원주민들이 부르던 지명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왕도의 이름이 무겁긴 하지만 티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그것들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새 왕도 이름이 바닷가라니. 차라리 내가 이름을 짓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바마마! 제발요!”

가만히 있던 세자가 황급히 이민호를 말렸다. 천도 직전인데도 아직 새 왕도의 이름을 짓지 못했지만 차마 바닷가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지은 이름이 뭐가 됐든 그것만은 절대 쓸 수 없다는 국가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었다.

“저희들은 나그네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을 예의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산국 사람들이 점점 많이 오더니 어느새 거대한 마을을 만들어 계속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손님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급기야 남쪽에 더 큰 마을을 지어 거대한 나라의 대왕께서 살 집을 지었습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너희들과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었구나. 쿠메야이 사람들이 전혀 불만을 표출하지 않기에 문제가 없는 줄로 오해했다.”

북미 대륙에서는 영토를 두고 고산국과 원주민 부족이 싸운 일이 거의 없었다. 비록 오응태가 여진족 기병부대를 이끌고 여기저기 위력시위를 하긴 했지만 실제 전투가 벌어진 적은 드물었고, 그것도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닌 침략에 대한 방어 문제에 한했다.

이민호는 쿠메야이 족이 이주해서 살 땅을 마련해주거나, 경제적인 보상을 먼저 생각했다. 콜로라도 유역에 개간한 기름진 농토 일부를 넘겨주는 것도 좋은 보상일 것이다.

“대왕께 고합니다. 땅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에, 티완 지역을 저희들만의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혹시 분쟁이 생길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지역 원주민들과 땅에 대한 관념이 비슷하구나.”

“또한 저희들은 손님들에 대한 봉사를 계속할 것입니다. 고산국에서 충분한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지금도 불만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티완이라는 이름만은 버리지 말아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이 지역을 가리키는 스페인어 티후아나(Tijuana)라는 이름은 티완, 티와나 등 쿠메야이 말에서 비롯됐지만, 에스파냐 사람들에 의해 영어권 ‘제인 아줌마’의 스페인어 버전 ‘Tia Juana’에서 나온 것으로 각색됐다. 고모, 숙모, 이모가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 조카들을 따스하게 맞이하듯이 손님을 따뜻하게 환대해주는 도시라는 뜻이다. 쿠메이야 족이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을 가졌으므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구나. 쿠메야이 사람들, 그 동안 손님을 환대해준 티파이, 이파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곳은 큰 나라의 새로운 수도로 정해졌다. 쿠메야이 사람들을 새 왕도의 주민으로 인정하겠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시청 공무원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계속 봉사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민호가 세자와 눈을 마주쳤다. 이민호의 뜻을 알아차린 세자가 한숨을 파악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천도 후 이민호의 재위 기간은 겨우 2년에 불과하겠지만 세자는 앞으로 20년을 넘게 수도 티완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산국 국왕이 선언한다. 이곳 새 왕도의 이름을 티완 그대로 두겠다. 다만 북쪽 군항은 새목포로 이름을 정했으니 앞으로 두 지역을 구별해서 부르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대왕!”

고산국 새 왕도의 이름이 갑자기 티완으로 정해졌다. 도시 이름은 고유명사이므로 외국어로는 티완의 발음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는 음차를 기본으로 하면 충분했다. 굳이 한자로 해변(海邊), 영어로 by-the-sea라고 번역할 이유가 없었다. 서울이 영어든 중국어든 서울로 불리고 새벌이나 동경(東京), 수도로 번역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새 왕도의 예전 이름이 스페인어로 티후아나임에도 그 전의 원주민 말인 티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 원주민들이 쓰던 이름을 그대로 쓴다는 점에서 원주민들은 아주 고맙게 여겼다.

샌프란시스코가 따뜻한 것은 기후 때문이 아니라 몇몇 노래처럼 1970년대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전사상과 히피문화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사람은 타인을 따뜻하게 반겼던 그때 그 사람들을 추억하며 노래 가사처럼 한 번쯤 모자를 벗을 만하다. 티완의 이미지가 바로 그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했지만, 이 시대에는 오직 이민호만 아는 일이었다.

새 왕도를 들러본 이민호는 텍사스 북쪽, 대평원 남쪽 끄트머리에 와 있었다. 푸른 풀밭에 무수히 많은 검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서만 수십만 마리, 대평원을 다 합하면 몇 억 마리에 이르는 들소들이 북쪽으로 향하기 직전이었다.

이 시기에 들소, 아메리카 바이슨은 북미 대륙 거의 전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캐나다 동부를 제외하곤 평원과 숲을 가리지 않고 살았으며 평원 들소 외에 숲 들소라는 아종이 따로 있었다.

“들소들이 모이는 걸 보니 이제 북쪽으로 이동하려는 모양이구나. 너희들도 들소를 따라 북쪽으로 떠나려느냐?”

“예, 대왕.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쇼쇼니 족에 속하는 동부 쇼쇼니 부족의 구춘데카 혹은 쿠쿤티카 사람들이 겨울 야영지 천막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쿠쿤티카라는 이름은 ‘들소를 먹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었으며, 들소 가죽을 덧댄 천막은 높이가 4미터에 달하는 대형이었다.

북미 원주민들은 들소를 잡아 옷이나 티피의 재료로 사용하고, 고기를 먹기는 했으나 들소 사냥을 최소화했다. 많이 잡아도 한 번에 열 마리 이하에 불과해 들소 개체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에 들여온 가축 소에 의해 구제역을 비롯한 각종 우역이 퍼지면서 앞으로 개체수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인들이 미친 듯이 사냥을 빙자한 학살을 하지 않았더라도 멸종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민호가 텍사스를 방문한 것은 들소의 멸종을 막기 위한 장기적 계획의 하나였다. 대평원을 목초지나 농지로 개발하는데 제한이 생기겠지만 소빙기가 다가오는 지금은 굳이 대평원을 개간할 이유가 없었다.

“내게 좀 더 가까이 오라. 내가 그렇게 싫으냐?”

“대왕께 더 이상 가까이 가면 숨이 막혀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대왕!”

남태평양의 마나와 비슷한 초자연적 힘의 개념을 북미 원주민들도 갖고 있었다. 이로쿼이 족은 오렌다, 알곤킨 계열은 마니토위, 수족은 와크트 혹은 마호파, 쇼쇼니 족은 포쿤트라 불렀다.

문제는 강대한 포쿤트를 보유했다고 알려진 상대에게 도전할 엄두를 못 낸다는 것에 있었다. 북미 매입 초기에 오응태가 이끄는 여진 기병연대가 대평원을 휘젓고 다니는데도 원주민들이 나서서 제지하지 못한 이유였다. 지금도 쇼쇼니 원주민 추장은 감히 이민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 땅도, 들소도 모두 고산국 국왕인 나의 것이다. 알고 있느냐?”

“대왕의 말씀이 무조건 옳습니다. 하오나 대왕이시여! 진정 저희들을 버리고 가시나이까? 저희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이까?”

쿠쿤티카 족의 추장 토끼꼬리가 땅에 엎드려 울었다. 토끼꼬리는 땅 욕심이 많다고 소문 난 고산국 국왕이 들소 사냥을 금지하고 쿠쿤티카 족을 농사꾼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러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은 조선말이나 고산국 말이나 같았다.

“그러니 앞으로 너희들은 내 소유인 들소를 관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달 너희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말과 천막, 식량 등 필요한 물품을 지원할 것이다.”

“대왕께서 저희들을 들소 관리인을 시킨다는 말씀입니까? 몹시 감사한 말씀이지만 들소 떼가 계절에 따라 남과 북으로 멀리 이동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쇼쇼니 족이 들소 떼를 따라 여러 지역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다른 부족에게도 통보하겠다. 그리고 북쪽 라코타 족과 공동으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이 매년 지나간다 해서 그곳이 너희들의 땅이 아니다. 모두 내 땅이다.”

“땅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서 예전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상하게 여겼습니다만, 과연 대왕은 이 땅의 주인으로서 자격이 있으십니다.”

쇼쇼니 족의 선조들은 오래 전 북미 중서부 윈드 리버 산맥의 고지대에 살았다. 1500년대에 로키산맥을 넘어 대평원으로 퍼져 살다가, 다른 부족들의 압력에 밀려나면서 거주지를 넓혔다. 남쪽 텍사스로 이주한 자들은 나중에 코만치 족의 주력이 된다.

“추장 토끼꼬리는 들어라. 혹시 20여 년 전에 고산국 탐사전대 대원 두 명의 머리 가죽을 벗긴 부족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잘은 모르지만 멀리 북쪽 어느 말 타는 부족이 조상의 영광이라며 지금도 자랑하는 줄로 압니다. 혹시 그 부족을 몰살시키실 건지요?”

“아니다. 으드득! 그 머리 가죽을 회수하고 그 부족은 영원히 기마 순찰대로 고용하겠다.”

“대왕! 부족 단위로 국가에 고용된다면 그 부족에게 좋은 일이 아닌지요?”

“그 사건에 가담한 생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일을 아주 많이 시킬 것이다. 아주 추운 곳에도 보낼 것이다. 으드득!”

토끼꼬리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이민호가 새삼 복수를 다짐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했는데, 이제 그 복수를 할 때였다.

북미 탐험 과정 중에 발생한 탐사대원 희생자들은 대부분 왕도의 국립묘지에 묻혔다. 특히 북미 북서부에서 원주민에게 머리 가죽을 빼앗긴 두 명은 따로 동상으로 제작돼 국립묘지 입구에 서 있었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투가 발생했을 시점에 북미는 주인이 없는 땅, 혹은 명목상 에스파냐가 보유한 땅이었다. 그러므로 북미 탐사전단을 오히려 침략자라고 불러도 되는 상황이었다. 이민호가 소소한 복수를 하는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작품 후기 ============================

여러 가지 떡밥 회수. 티완은... 그렇게 넘어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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