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1 105. 대국의 길 =========================================================================
“해양을 기반으로 한 대제국이면서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준다는 의미를 국명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세자는 길게 보도록 해라. 장구한 시간에 비해 소빙기는 한 때에 불과하다.”
이민호가 살았던 현대에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했는데 이곳에서는 소빙기를 대비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이민호는 고산국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대국으로 남길 바랐다.
20세기 이후 왕실의 존치 여부와 국민주권 문제는 후손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17세기에 살고 있는 이민호가 결정할 권리도 없었고, 혹시나 유훈을 남긴다고 해도 그때 사람들이 떠받들어줄 가능성도 없었다. 그저 후계자 교육을 확실히 시켜서 왕실의 가치를 올릴 뿐이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소빙기 이후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향이 될 만한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래. 무지개 너머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만들어보자꾸나.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파란 나라.”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없는 나라>였다.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갈 수 없는 낙원이 되어버렸다.
“아바마마! 갑자기 왜 슬퍼하십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아닐까 걱정된다. 시시포스처럼 바닥으로 구를 것을 알면서도 계속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할까?”
“아바마마! 인간의 심성과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탐욕스런 자들보다는 아바마마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지 모르겠다.”
이민호는 한국에서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던 사람이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온통 이기주의가 판치는 미래 한국의 어두운 면을 알고도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근대와 현대 한국에서 일어난 불행한 역사의 대부분은 한국이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었다. 시작부터 세계 초강대국을 물려주면 잘 난 후손들이 더 잘 가꿀 수 있을 것으로 믿어야 했다. 신자유주의가 판치던 시절의 미국처럼 탐욕스런 자들에게 착한 자들이 속지 말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합니다. 아바마마께서 어마마마를 믿어주셨듯이, 저를 믿으시듯이 후손들을 믿어주십시오. 그런데 저번 반란 가담자와 별장 소유자들의 상관관계가 나왔습니다. 보고서를 보시지요.”
“으흠. 역시 그렇구나.”
국왕은 국내 부동산의 최대 소유자이자 나라를 통틀어 유일한 부동산 임대업자였다. 그런데 별장 일부는 개인 소유가 가능하도록 풀어놓았다.
왕도 근교 언덕이나 바닷가 전망 좋은 곳에 세워진 별장은 분양 이후 어마어마하게 가격이 올랐다가 최근에는 폭락 중이었다. 역시나 별장 소유자들이 반란에 적극 가담하거나 찬성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예, 아바마마. 천도가 내년으로 가시화되면서 별장 가격이 내려가 분양가와 건설비를 합산한 금액에 접근했습니다. 새로운 수도로 곧 옮기는 게 현실화되니까 부동산 가격을 떠받쳐줄 매수세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역죄인들이 수도 이전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겁니다.”
“별장 가격이 폭락했다지만 이놈들이 처음 산 가격에 비해 손해 본 것도 아닌데 마치 세상이 망할 것처럼 반란에 가담했구나.”
“애초부터 부당한 이득이었고 실현하지 못한 이익이었습니다만 손해 본 것처럼 느껴지겠지요.”
“앞으로 부동산의 사유화에 부정적 인식이 커지겠다.”
북미와 남미, 호주와 시베리아 같은 광활한 땅덩이를 소유한 고산국에서 부동산은 거의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사유자산인 왕도 주변의 별장에 사람들이 별의별 심리적 가치를 부여해 가격을 올린 것을 이민호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별장보다 풍광과 시설이 좋은 바닷가 숙박시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유한 자라도 토지는 소유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가 차라리 낫겠습니다. 유학 고전에 등장한 왕토 사상을 부정할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래. 국왕이 임대업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월세를 받아도 이익은 거의 나지 않지만.”
1970년대 한국에서는 추곡 수매가를 억제해 도시의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농민을 비숙련노동자로 전환시켰다. 반면에 고산국에서는 주거비, 즉 월세를 가급적 낮게 책정해 임금 인상 압력을 해소했다. 덕택에 공무원들이 시공사와 시행사, 감리인, 집주인, 부동산소개업자를 겸해야 했지만 모든 백성들이 싼 가격에 높은 주거 수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공동주택을 잘 지어줘도 조선 출신 고산국 백성들의 기본적인 주거 형태는 여전히 단독주택이었다. 제사나 문중 행사 때마다 다수의 손님들을 받아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방이 많고 커야 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주택 안에 들이고 외양간을 본가에서 떨어뜨린 것만으로도 주거생활에 큰 변화를 겪은 셈이었다.
고산국 건축의 장점은 비가 자주 내리는 지방이나 추운 지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장마가 오래 지속되더라도 천장이 썩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몽골과 토르구트의 겨울 방목지마다 공동주택을 지어 유목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전통을 존중하는 몽골인들이 목욕이나 빨래를 할 일은 절대 없었다. 아무리 정화시설을 보여줘도 물을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이 몽골인들의 신념이었다. 목욕과 빨래는 원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사형에 처할 범죄였다.
“독일 종전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예. 영주가 아닌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는 것은 협상에 참가한 모든 세력으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황제와 영주들의 관계, 그리고 북부 독일에 설정하려는 스웨덴의 영토 크기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독일 서부 지방 영주들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잘 됐구나.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독일 내륙지방에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는?”
“독일 내륙에 도로망이 완성됐고, 현재 해병대 상륙장갑차 두 대가 식량수송 마차 대열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겨울보리를 수확하는 내년 봄까지만 버티면 더 이상 기근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농지를 개간해줄 예정입니다.”
“앞으로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할지가 문제야. 독일 유민들을 북미 내륙에 잘 정착시킨 것 같구나.”
독일 내전에 의해 발생한 유민들은 가족 단위로 미시시피 강 유역의 농경지대에 배치했다. 미시시피 유역에 먼저 정착한 프랑스 위그노들이 독일인 농부들에게 농사를 비롯해 고산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여러 가지 생활을 잘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 사이에 독일 이주민들에 대한 교육도 진행됐다.
미시시피 유역의 농촌과 도시에서 3년을 채운 독일인들을 다시 북미 서부 콜로라도 강 유역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오대호 주변 대평원은 소빙기에 대비해 개발 시기를 늦춰두었다. 지금도 토지 생산성이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모리스코들을 더 남쪽으로 이주시킬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럽 출신 이주민들이 인구 비율은 낮아도 참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토질에 비하면 북미가 훨씬 비옥하니까 농사를 지을 맛이 날 겁니다.”
“다른 인종을 따라잡고 있느냐?”
“예. 가구당 수입이 어느덧 조선 출신 농민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일반 도시민의 두 배 이상이며 본토의 농가 수입과 비슷합니다.”
“고마운 일이야. 북미 원주민들은 매사에 느긋해서 곡물 농사는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담배 농사나 면화 농사, 목축 위주로 배치하도록 해라.”
“북미 원주민들을 가급적 고수익 농업에 배치하겠습니다.”
“큭큭! 그렇게 해석이 되는구나.”
농가 수입은 거의 전적으로 토지 면적에 비례하고 기후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조선 출신 농민들이 따뜻한 남동부와 서부 중앙평원에 먼저 정착했으므로 다른 지역에 뒤늦게 정착한 농민들은 생산성에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 이주민들이 먼저 고산국 백성이 됐으므로 당연한 권리 정도로 여겼다. 드넓은 북미 대륙에 인종마다 적당히 분산시켰으므로 물 관리 등의 이익을 두고 인종 간에 충돌할 일은 없었다.
“백산 3부 족장들이 남자 몸에 좋은 물건을 많이 가져왔더구나.”
“아바마마 옥체에 필요한 물건인지요?”
산삼과 녹용, 웅담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이민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허!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아니다. 너도 몇십 년 뒤에 나와 같은 문제로 꽤나 고민하게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백산 3부 사냥꾼들은 역시나 산사람들답게 지역마다 산출되는 산삼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듯했다. 산삼은 같은 백두산이라도 남쪽 사면과 북쪽 사면에서 나는 종류가 아주 약간 달랐다. 여진 땅에서 캔 산삼을 조선 심마니들이 캔 묘향산 산삼과 바꾼 것이 틀림없었다. 녹용도 마찬가지로 시베리아나 북미의 사슴뿔이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10월 11일과 12일에 북해 남동해안을 폭풍해일이 휩쓸었다. 북해 연안에서 폭풍해일은 매년 겨울에 몇 번씩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었다. 지대가 낮은 덴마크와 북서부 독일, 네덜란드와 런던에 자주 피해를 입히고 해안 지형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가끔은 수천에서 수만, 많게는 10만 단위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번에 발생한 폭풍해일은 나중에 Burchardi flood라는 이름이 따로 붙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네덜란드와 독일 북서부 해안지방이 큰 피해를 입고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북부가 섬으로 떨어져 나갔다.
덴마크 왕실의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영지인 슈트란트 섬은 면적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섬이 여러 개로 분리됐다.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공작령은 1603년에 흑사병이 휩쓸었고 30년 전쟁 기간 동안에는 제국군과 덴마크군이 이 지역에서 여러 번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625년 빙산이 제방에 부딪쳐 타격을 주었으나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이 겹쳐 제방을 제대로 보수하지 못한 바람에 이번에 큰 재앙으로 확대됐다.
“지도가 많이 바뀌겠구나. 수심도 다시 재야겠다.”
“예, 아바마마. 구조대와 병원선을 급파한 외에 대서양 탐사전단이 총동원돼서 활동 중입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 독일 사람들은 대대로 이런 곳에서 살아왔었군요.”
“그나마 부유한 지역이라 금방 복귀될 것이다. 수십 년 후에 다시 폭풍 해일에 휩쓸리겠지만.”
바닷가 저지대에 산다는 것은 풍요와 생활의 편의를 보장하지만 대신 생명의 위험을 주민들이 감수해야 했다. 제방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제방 높이를 넘는 폭풍해일도 역사상 흔한 편이었다. 이번에는 8천에서 15,000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고산국 해군과 해병대 2개 사단이 동원돼 덴마크와 독일, 네덜란드 해안지방에서 구조작업과 난민 구호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건사업은 덴마크 왕실, 독일 영주들과 협의해 빠르게 진행할 예정이었다.
“세자도 알고 있겠지만 아국의 법적 기준에 맞춘 해안 제방은 주변 바다의 최고조보다 5미터 높게 건설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보통 때는 충분하지. 하지만 그 높이에서는 60년에 한 번 꼴로 범람하면서 큰 재해를 당할 것이다.”
지진해일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은 예외였다. 후쿠시마 원전의 제방은 10미터 높이였으나 바닷물이 가뿐히 제방을 넘어 원전 건물 지하실의 비상발전기를 침수시켰다.
“그렇다면 기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소빙기가 끝날 때까지는 해수면이 계속 낮아져서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진해일이 나면 10미터를 넘길 수도 있을 텐데, 제방을 10미터 높이로 쌓으면 다양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대서양 연안 수마트라 섬의 아체 지역에서 해일이 일어날 것을 이민호가 알고도 제방을 쌓지 않고 피난처만 마련해줬다. 해안에 10미터 높이의 제방을 쌓았다간 자연재해가 오기 전에 그 지역이 경제적으로 몰락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1634년은 다른 해에 비해 비교적 큰 사건이 없이 지나갔다. 고산국은 왕도 이전 문제로 매우 바빴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다시 농민반란이 크게 일어날 분위기였으며, 고산국이 명나라를 돕는다고 달라질 시기는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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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년 반 정도 남았습니다.(연재기간 말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