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001화 (950/1,000)

01001  105. 대국의 길  =========================================================================

- 두두두두두~

“영상 꺼라. 아니, 그대로 둬.”

이민호가 영상에서 고개를 돌렸다. 저항하지 못하는 자들을, 그것도 고산국 군인으로서 한때 한솥밥을 먹던 자들을 같은 편이 사살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오랜 세월 전장을 전전한 이민호에게도 고역이었다.

그러나 반란이 반복되는 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세자가 주먹을 꼭 쥔 채 영상을 끝까지 응시하고 있었다. 세자가 즉위한 다음에는 반란이 일어나기 극히 어려울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왕궁에 비치된 대전차포나 로켓 추진 유탄을 이번에 공개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아바마마.”

“차후에 반란을 일으킬 자들에게 전차의 기동력을 보여줘 경고하는 편이 나으니까. 앞으로 세자는 이런 일에 항상 신경 쓰도록 해라. 내가 괜히 장군들과 주요 보직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게 아니다.”

“예, 아바마마. 통치 이념도, 백성들에 대한 애정도 없으면서 그저 권력만 탐하는 자들에게 절대로 왕좌를 넘겨주지 않겠습니다.”

“좋은 각오다. 그런데 반란 명분이 뭐라 했지? 세계 정복과 유럽 이주민 추방?”

사나이라면 세계 정복에 대한 로망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이민족 혹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감정을 강하게 표출할 수도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 다양하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둘은 명백히 모순이었다. 세계를 정복한 다음에는 국민 다수가 이민족이 된다.

“종교 단일화와 천도 반대도 있었습니다.”

“미운 소리만 골라서 하는구나. 이런 게 반란의 대의명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말에 혹하는 인간들이 있었구나.”

혜영이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고 반란군을 섬멸하라고 경전차 대대장에게 명령했을 때 이민호가 반대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세계 정복은 사나이라면 한 번쯤 꿈 꿔볼 만했으나 그 수단이 반드시 전쟁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국가 체계가 잘 작동하는 곳을 굳이 정복해서 지배할 이유도 없었다. 이차대전 이후 유럽 강대국들이 식민지를 독립시켜준 것은 세계대전을 통해 휴머니즘을 깨우쳐서가 아니라 돈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반란은 두 시간도 안 돼서 진압됐다. 반란군 기갑차량 39량 격파, 하차 보병 163명 전원 사살, 경찰 95명 사살이 해중국 경전차 대대가 올린 전과였다. 사복을 입었으나 경찰이 보유한 제식 총기를 소지하고 죽은 자 세 명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역시 반란에 가담한 경찰로 분류됐다.

주작대로 전투에서 진압군 쪽의 유일한 희생자는 반란군 기갑 차량들이 주작대로로 진입할 때 몸으로 막으려던 교통경찰 한 명이었다. 그는 차 없는 거리인 주작대로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초등학생들을 구하려고 시간을 끌다가 전차에 깔려 죽었기에 2계급 특진과 훈장을 추서했다. 반란 진압 이후 경찰 조직에 대한 철저한 숙정 조치를 막아준 인물이 되기도 했다.

반란군이 도심에 진입하기 전에 교통경찰들이 대피를 유도해 민간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 그 외에 특전여단 내부에서 몇 명이 총격전 과정에서 전사했다. 대신 주작대로와 주변 건물들에 갖가지 상흔이 남았다. 깨진 유리창은 모두 교체하면 되지만 대리석 기둥에 난 총알자국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말로 떠드는 인간들은 많았으나 실제로 목숨 걸고 반란에 가담한 경찰이나 법조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왕도와 지방도시의 몇몇 신문사에서 반란에 동조해 군사혁명이 성공했다고 호외를 뿌린 경우가 있어서 주동자들을 죄다 체포했다. 어느 나라든 지식인, 특히 언론인의 반역행위는 용서하기 어려워서 군사재판을 통해 모조리 처형하고, 신문사는 폐간시켰다. 이들 신문은 진실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섰으므로 이미 언론사로서 가치가 없었다.

반란은 쉽게 진압했지만 후속 정리 작업에 한참 동안 진땀을 빼야 했다. 해병대 병력을 동원해 방송국과 법원, 경찰서를 점령했으나 그 사이 도주한 자들이 꽤 많았다. 항만과 공항을 폐쇄하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며칠 만에 대부분 체포할 수 있었다.

“반란 수괴가 비겁하게 뒤에서 지시만 내리지는 않았군.”

반란 주모자는 뜻밖에 제1 기병사단장이었다. 사단장에 부임한 날부터 예하 여단장들과 대대장들을 회유, 협박하고 장인과 처남이 판검사로 일하는 법조계와 공모한 이가 바로 기병사단장이었다.

기병사단장은 선두 전차를 타고 반란군을 이끌다가 첫 번째로 죽었다. 지휘관으로서 항상 자신만만한 모습이 이민호가 보기에 좋았으나, 그는 왕위마저도 만만하게 본 모양이었다.

사실 이때까지 누구나 지상전에서 전차는 무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강력한 기갑부대인 제1 기병사단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인생을 걸고 왕좌를 노려볼 만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지상전을 통해 전차를 잡을 수단을 최소 다섯 가지 이상 준비해놓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이민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군 내부 감찰기관으로 기무사령부를 창설할 결심을 했다. 반란을 사후에 진압하는 것보다는 감시의 눈길을 공식화해 반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경전차 대대는 병영으로 복귀하라. 수고했다. 승전 수당은 챙겨주겠다.”

“예! 여왕폐하.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겠습니다!”

혜영에게 거수경례를 마친 경전차 대대장을 이민호가 불렀다. 혜영은 그를 잘 몰랐지만 이민호가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정수야!”

“예, 나리! 아니, 전하.”

“허리 펴고.”

“옛! 전하.”

수원에서 대원군 이응화의 땅을 부치던 소작농의 아들은 어느덧 50줄을 바라보는데도 어릴 때 이민호를 대하던 자세 그대로였다. 거의 40년 전에 자영농으로 독립시켜줬으나 정수는 이민호를 따라 고산국으로 이주했다. 인적 관계보다 공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민호였으나 그를 대대장으로 임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해중국 군인들은 승진이 느리다고 불만이 많겠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그저 쇤네는 주인마님의 명만 따를 뿐입니다. 사관학교에 입학할 실력이 안 되는 놈들을 믿어주시니 소인들은 그저 감읍할 따름입지요.”

이민호의 수원 집에서 부리던 노비의 자식들이나 여진족 포로들은 고산국에서 대부분 군인으로 크게 출세였다. 그러나 이는 이민호와의 개인적 친분 때문이 아니라 이민호와 계복이 어릴 때부터 그들을 꾸준히 교육,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작농 자식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자식들이라 어렸을 때부터 훈련시킬 수가 없었다. 자연히 날고 기는 인재들과 경쟁해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고산국의 직제에서 벗어난 인사를 할 수 있는 해중국에 정착시켜서 유사시에 대비한 친위 세력으로 키웠다.

문제는 해중국의 군 규모가 작다 보니 승진이 몹시 느리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도 소작농이나 노비 자식들이 조선의 첨사나 만호보다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번에 큰 활약을 해줘서 고맙구나. 그런데 안됐지만 수륙양용 경전차는 조만간 해병대로 넘길 물건이다. 물론 철갑탄은 빼고.”

“알고 있습니다요, 전하. 저희들은 또 새로운 물건을 받아서 갈고 닦고 훈련해서 다시 다른 부대에 넘기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섭섭하지 않습니다. 매번 새 물건을 받아서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래도 매번 힘든 임무를 맡아줘서 고맙다.”

여러 가지 여건과 사정으로 인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그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항상 부족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해중국 경전차 대대 장병들은 국방연구소 조병창에 전차를 도열해놓은 다음 군용 승합차를 타고 맨몸으로 돌아갔다. 병영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국방연구소에서 육군용으로 개발한 새 주력 전차 으뜸-1633이었다. 경전차는 수리를 마친 다음 해병대로 넘길 예정이었다.

“반란에 가담한 자들의 가족에 대한 형사상 처벌은 없죠?”

“우리가 대명률을 인용하지 않으니 연좌제나 대역죄인의 삼족을 멸한다는 법조문 따위는 당연히 없지. 반란군들은 이미 다 죽었지만 훈련병으로 강등시켜 군적에서 파내도록 할게.”

“자식이나 남편, 형제가 이번 반란에서 죽었다고 왕실에 원한을 품는 자들에게 확실하게 경고해줘야 해요.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은혜를 베푼 거니까요.”

혜영의 말처럼 반역자의 가족들이라면 당연히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량을 베푼 상대를 만만하게 보고 대들려는 인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자들은 단호하게 처단할 수밖에 없었다. 형사상 처벌은 아니지만 반란 가담자의 가족과 친인척은 군인이든 공무원이든 사직시키기로 했다.

“악다구니 쓰는 인간들은 곤장을 때리고 탄광에서 일을 시켜서 정신을 확실히 차리게 해줘야지. 문제는 체포돼 조사받거나 반란 가담 혐의가 확정된 법조계 인사들과 경찰이 너무 많다는 거야. 이 공백을 단시간 내에 해결해야 해.”

“휴우~ 제가 할 게요. 걱정 마세요.”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혜영의 눈 밑에 검은 반점이 생겨나는 듯했다. 그러나 반란 세력 중 법조계에서 천도를 명분으로 내세운 바람에 앞으로 천도에 반대하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확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싸움 구경하길 너무 재밌어 하는 역전재판 재판관 같은 사람에게 판사를 시킬 수는 없었다. 방대한 법률 공부를 해야 하고 판사 임용 뒤에도 업무에 시달리는 판사는 기본적으로 매우 성실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사고방식이 항상 문제였다.

“임용 전에 다양한 사회 경험이 필요한데 시험만 봐서 변호사, 판검사를 하니까 문제야. 차라리 법대를 없애고 법학대학원 같은 걸 만들까?”

“저는 반대에요.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만 남으니까요.”

“그렇겠네.”

그래도 사법시험 직후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바로 판검사를 임용하지 않는 제도라서 다행이었다. 판검사는 변호사 경력자들 중에서 뽑기 때문에 이번 반란에 연루된 판검사가 많더라도 금방 충원할 수 있었다.

“문제는 경찰이에요. 반란 참가자가 많아 공백이 심한데 곧 천도할 예정이라 지원자가 더욱 적을 거여요.”

“새 왕도 경찰 절반을 여기서 뽑는다고 해.”

이민호가 고개를 돌려 영상 몇 개를 살폈다. 주작대로에서는 아직도 불길에 휩싸인 채 가끔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기갑차량들이 남아 있었다. 폭발물 제거반이 투입되어 판정을 내린 다음 중장비들이 기갑차량을 도시 외곽으로 끌어냈다. 반란군 사망자들도 병원으로 보냈다. 청소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았다.

반란 이후 현역 군인들의 충성심은 매우 높아졌다. 그리고 현재 보이는 것보다 고산국의 군사력이 훨씬 강하다는 평가가 큰 공감을 얻었다. 기병사단의 주력 전차를 때려잡을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반란 진압 후부터는 그보다 더 강한 무기가 존재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아바마마! 기갑차량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두꺼운 장갑을 두르고 주포 구경을 키우는 수밖에 없지. 그럼 중량이 더 나가서 기관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에휴! 손보려면 끝이 없다. 하여튼 실전 배치된 뒤에도 개량을 위한 연구가 계속돼야 할 것이다.”

“포탄도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이미 개발된 것 같습니다.”

“포탄에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는 혜진 이모가 세자빈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이건 아직 비밀이다?”

“당연합니다. 외국에 무기 관련 기술이 넘어가면 절대 안 됩니다.”

발전된 무기 기술은 나라를 지킬 뿐만 아니라 왕좌를 지키는 데에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세자는 이번 반란에서 절감했을 것이다. 체력과 지성을 중시하던 세자가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이번 반란에서 유일한 소득이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반란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 같다.”

“예, 아바마마. 여러 나라에서 위로 사절단을 굳이 보내는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이번 반란에서 전투 현장이 된 주작대로에는 세계 각국의 외교 공관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반란군이 전차와 장갑차를 이끌고 왕궁으로 전진했을 때 외교관들은 반란이 반드시 성공할 줄 알았다. 왕궁 쪽에서 저항하려고 내놓은 것이 자그마한 경전차인 것을 확인했을 때는 진짜 기존 왕실이 끝장난 줄 알았다.

그러나 경전차가 압도적인 화력과 방어력으로 반란군을 섬멸하자 외교관들은 눈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존 고산국 전차와 장갑차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데 고산국 왕실에서는 아주 간단히 때려잡았기 때문이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고산국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신무기를 개발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은 외국 대사들에게 축하를 받는.. 현대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