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0 105. 대국의 길 =========================================================================
“경전차 대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어요.”
“잘했어. 해중국 군대를 반란 진압에 처음으로 써먹는군.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왕도 북쪽, 고산국의 첫 개척지였던 해중국 지역에 연구단지가 밀집해 있었다. 수산연구소의 전신인 어업연구소처럼 국방연구소도 해중국 영역에 자리 잡았다. 인구가 적어 시험 사격장도 이 지역에 위치했다.
그래서 새로 개발한 무기체계는 해중국 병력이 시험하고 실전 배치될 때는 가장 먼저 지급받았다. 일반인들이 해중국을 왕래할 이유가 적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권력 지향주의자들의 집요함과 무모함을 무시하지 마세요.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혀 불가능하더라도 오늘처럼 매번 도전하잖아요.”
“물론! 항상 경계하고 있지.”
이민호와 혜영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기병사단 장갑 차량들이 왕도의 주요 도로를 진군하고 있었다. 5분 정도만 지나면 반란군이 주작대로에 진입해 왕궁을 지척에 두게 된다. 이들 반란군은 군부 쿠데타가 항상 그렇듯이 왕궁과 최고 권력자인 이민호를 노렸다.
그런데 왕도에서 혁명방송을 듣고 나선 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반란군 편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시민들이 총을 들고 나서서 전차와 장갑차를 향해 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반란군 쪽에서도 시민을 향해 쏘면 여론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대응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 전하! 참모본부장입니다. 혁명평의회 포고문 청취 내역을 보고 드립니다. 먼저 저들이 발표한 반란 수괴 명단입니다.
“반란 수괴는 당연히 계복과 감동, 감불이겠지.”
계복은 반란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원수부를 단신으로 뛰쳐나갔고 감동은 북미, 감불은 몽골에 있었다. 감동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감불은 잠이 덜 깬 졸린 목소리로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개국공신인 세 사람이 반란에 가담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 예, 전하. 그리고 오응태 주지사님도 계시고 저, 참모본부장도 저들이 발표한 수괴 명단에 들어 있습니다. 저를 해임하시길 건의 드립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 거짓말해서 반란 가담자를 늘리려는 속셈이니까. 실제 반란 주모자는 누굴까? 기병사단장이겠지?”
- 제1 기병사단 사령부와 예하 부대에 통신을 시도해봤는데 기병사단장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피살됐거나 감금 중인 것 같습니다.
“여단장과 대대장 몇 명이 모의했을 수도 있겠지. 전차가 포를 몇 발 쏘면 왕궁 정도는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거야.”
그때 왕궁과 해중국 경계 언덕에 위치한 특전여단 본부에서 약간의 소요가 일어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소령 계급인 지역대장 하나가 병력을 이끌고 특전여단장을 제압하려다가 역으로 사살된 사건이었다. 중대장 하나는 무장한 병력을 이끌고 여단 본부로 이동하다가 자기 중대원들에게 제압당했다.
특전여단은 주둔지에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참모본부에 보고했다. 고남 시 외곽과 파푸아 섬에 주둔하는 특전대대들도 현재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때 해중국 해안요새의 부포가 특전여단 본부를 향하고 있었지만 쏠 일은 없었다.
- 도련님! 계복입니다. 기병사단 1여단 주둔지에 도착해서 병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란군 놈들은 벌써 떠났답니다. 병력을 모아 왕궁에 후원을 하러 갈까요?
“됐어. 이쪽은 알아서 할 테니 그쪽 병력이나 추슬러.”
계복답게 단신으로 1여단 주둔지에 가서 병력을 장악했다고 한다. 이민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제 몫을 해주는 계복이 항상 고마웠다.
- 그 미친 것들한테 도련님이 만만해 보이나 봅니다.
“그러게 말이야. 자그마치 1개 대대나 반란에 자발적으로 참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 반란에 반대하는 비율이 훨씬 높으니 실망하지 마세요, 도련님. 그런데 진압 병력은 어디에 있나요? 해중국 병력이라면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제가 보고 받기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왕궁에 들어와 있어.”
왕궁과 해중국 사이에 터널이 뚫려 있었고, 이것을 통해 경전차 대대가 이미 왕궁의 정원에 전개돼 있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해중국 전체가 고산국 왕실의 직영지인 만큼 이곳 백성들은 왕실에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쳤다. 강대국으로 성장한 고산국의 초기 개척자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고급 기술자와 그 가족이 아니면 왕도와 해중국 사이를 왕래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광산 장비를 동원해 터널 하나쯤 뚫는 건 일도 아니었다.
- 역시 그렇군요. 도련님! 저는 도련님의 영원한 충신입니다. 저의 충성심을 믿어주십시오. 반란이 일어났다고 이러는 건 아닙니다.
“알아, 알아. 바빠서 끊는다.”
그러나 진짜 바쁜 사람은 이민호가 아니라 총리 혜영과 세자빈이었다. 혜영은 왕궁 정원에 도열한 해중국 경전차 대대를 사열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창가에 가서 구경했다.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하되 대대장은 왕궁에 남아 무전기로 전체 병력을 지휘한다.”
“여왕폐하! 제가 현장에서 지휘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주력 전차를 상대하는 어려운 싸움이지만 제가 선두에 서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현재 반란 진압 중이다. 명령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 대대장 단차 승무원들은 무전기를 탈착하고 하차하라!”
“여왕폐하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만......”
세자빈이 길쭉한 것을 혜영에게 넘기자, 혜영이 오른쪽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대대장이 탑승했던 경전차에 혜영이 로켓 추진 유탄을 조준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고 뒤로 흰 연기를 내뿜으면서 웬 시커먼 돌덩이가 대대장 단차를 향해 날아갔다.
- 콰쾅!
경전차가 폭발하는 순간 대대장이 혜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반란 진압 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대장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 복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혹시 모를 경전차 대대의 반란 가담 가능성을 억제하는 효과도 노렸다.
간단한 구조의 로켓 추진 유탄은 진작 개발했으나 전차와 장갑차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산국에서만 보유했기에 일부러 보급에 제한을 두었다. 그래서 이 무기의 성능과 존재를 아는 군인은 극히 드물었다.
“여왕폐하께 절대 충성을 맹세합니다! 어명을 내려주십시오!”
“왕궁을 나서서 주작대로에 진입한 전차와 장갑차 약 40량, 무장한 병사와 경찰 병력을 제압한다. 주작대로에 아군은 없다고 간주하되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
“예! 폐하! 어명을 받드옵니다! 하오나 경전차의 주포로 주력 전차를 격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륙양용 경전차와 반란군이 몰고 온 주력 전차는 크기 차이가 확연히 나고 무게 차이는 두 배 가까웠다. 성능 차이는 당연히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혜영이 신념을 담아 명령을 내렸다.
“대대장은 전 차량에 철갑관통탄 보급을 추진하라.”
“해군 함포에서 쏘는 철갑탄 같은 것입니까?”
“그렇다. 단차 당 열 발을 수령해 차내에 적재하라. 반란군 전차를 목표로 철갑탄을 발사하면 반드시 깨질 것이다.”
“이번 임무에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경전차는 가벼운 무게를 이용해 속도가 느리더라도 수상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유사시 남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습지에 파병할 경우 주력 기갑전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현대 남중국에 주둔하는 인민해방군 예하부대가 주력 전차보다는 낡은 경전차를 많이 보유한 것은 강과 호소가 많은 지형 때문이었다.
현대에서 수륙양용 경전차는 주력전차와 성능 차이가 크고 1970년대 이후에는 중국을 제외하면 신규 차종이 거의 개발되지도 않았다. 경전차가 화력은 약하고 방어력은 더욱 약해서 제대로 된 지휘관이라면 둘이 정면에서 싸울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민호와 혜영은 기병사단의 전차와 장갑차 앞에 경전차를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아바마마. 성능 차이가 큰데 괜찮겠습니까?”
“글쎄. 급하면 나도 총 들고 싸워야겠지.”
이민호가 세자에게 제법 비장한 소리를 해봤지만 혜영이 피식 웃고 말았다. 왕실 가족들은 왕궁 성벽과 주작대로 건물 몇 군데에 설치된 영상 중계기를 통해 들어온 영상을 관람했다. 국왕과 여왕, 세자와 세자빈 등 왕족들 사이에서 경전차 대대장과 통신병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예하 중대들에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 쿠우앙~
바로 이때 기병사단 기갑차량들이 벌써 주작대로에 들어섰고, 반란에 가담한 경찰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선두에 선 전차가 첫 탄을 왕궁의 대문을 향해 발사했다. 이로써 반란군과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해군의 5인치 함포가 직사를 가해도 버틸 정도로 두꺼운 철문이 왕궁의 대문이었다. 포탄 여러 발에 피격돼 진동하던 철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고, 장갑차보다 작은 경전차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신속하게 빠져 나가!”
- 깡! 콰앙!
“피탄되더라도 무시하고 달려! 후속 차량에게 공간을 비워줘!”
대대장이 무전기를 통해 열띤 목소리로 예하 차량들을 지휘했다. 그 동안 기병사단 주력 전차에서 쏜 포탄이 왕궁 대문을 통과하던 경전차의 상면 장갑에 맞고 튕겨나갔다. 그러나 자그마한 경전차의 전면 장갑이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것은 아니었다.
“경전차 전면 장갑이 주력 전차 주포탄을 딱 버틸 정도 두께지.”
무게를 줄이기 위해 경전차의 방어력이 전면에만 몰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주력 전차에서 쏘는 포탄인 고폭탄은 상대적으로 얇은 경전차의 측면을 뚫지는 못했다. 먼로-노이만 효과를 이용해 폭발력을 집중시키는 성형작약탄은 아직 전차 포탄에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전차 측면에 전차 주포탄이 맞으면 뚫리는 게 아니라 차체가 가벼워 뒤집힌다는 시험 결과를 경전차 개발 중 실사격 시험에서 얻었다.
크고 작은 전차끼리 붙는 전투를 상정하면 전차 크기가 작은 편이 대부분의 면에서 유리했다. 큰 체구는 먼저 적에게 발견될 가능성을 높이고 또한 피탄 가능성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전차가 커지면 두꺼운 장갑으로 방호해야 할 표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무게가 늘어나면 엔진도 큰 것을 달아야 하고 서스펜션에 크게 무리가 간다. 연료도 훨씬 많이 먹어 작전거리가 짧아진다.
그래서 전차 승무원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불편하게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면 전차는 되도록 작고 낮은 편이 좋았다. 물론 포탑 내에 수용하는 주포 포신이 위아래로 움직일 공간이 작아져 부앙각이 극히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화력 강화를 위해 주포 구경과 구경장을 늘리려면 어쩔 수 없이 전차 크기를 일정 수준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 쿵!
왕궁 대문에서 나온 경전차가 네 대로 늘어났을 때 최초로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포탄에 명중된 반란군의 주력 전차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빗맞았나요?”
“아니. 명중했고 무력화됐어.”
지금까지 실전 배치된 고산국 주력 전차와 장갑차는 유럽의 대구경 화포에서 쏘는 포탄을 막을 정도의 방어력만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경전차에서 발사한 철갑탄에 아주 쉽게 뚫릴 수밖에 없었다.
경전차에서 쏜 철갑탄이 주력 전차의 전면 장갑을 뚫고 들어가 겉에는 자그마한 동전 크기의 구멍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철갑탄의 탄자와 피격된 주력 전차의 장갑이 부서지며 만들어낸 무수한 파편이 전차 내부를 휩쓸었다. 현대전에서 전차가 철갑탄에 관통 당하면 승무원 네 명 중에 보통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는다.
- 쿵! 콰쾅!
무수한 파편이 전차 내부를 헤집어 놓았지만 외면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 반란군 선두에 선 전차 승무원들의 불행이었다. 생존자들이 전차에서 급히 탈출하려는 순간에 다른 경전차들이 선두 전차에 집중사격을 가했다.
차체 내부에 수납한 포탄과 장약이 터질 때까지 계속 철갑탄에 얻어맞은 반란군 전차 내부가 결국 폭발했다. 곧이어 전차 내부에서 시뻘건 화염이 솟구치며 포탑이 분리돼 하늘로 떠올랐다.
“전 차량 전진! 단차 당 적 차량 하나씩만 격파하면 된다! 적에게 측면을 노출시키지 마라!”
경전차 대대장이 꽤나 현실적으로 전차병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자그마한 경전차로 커다란 주력 전차를 상대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면에서 싸운다면 전면 장갑이 두텁고 철갑탄을 쏘는 경전차가 압승을 거둬야 하는 것이 현재 양쪽 차량의 스펙을 비교해 정상이었다.
경전차들은 왕궁 대문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왕궁에는 대문 외에도 문이 여러 개 있었고, 수레 두 대가 교차해서 통과할 수 있다면 작은 경전차도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어느새 주작대로 북단 성벽 아래를 가득 메운 경전차들이 연신 포격을 이어나갔다.
반란군이 동원한 주력 전차에서 아무리 포를 쏴도 경전차에는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 동안 전차병들이 온갖 전장에서 누리던 기술의 우위가 사라지자 공포가 단숨에 확산됐다. 사실 경전차의 외부 센서나 무전기 안테나가 박살나고 있었지만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에 상대방이 입은 피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포격을 주고받는 동안 어느덧 반란군 전차들이 전멸했다. 전차에서 내뿜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널따란 주작대로를 가득 채웠다.
“적 전차 전멸. 여왕폐하! 장갑차에 탄 반란군 병력이 하차하고 반란에 가담한 경찰들이 총을 버리고 항복합니다.”
“적의 기만전술이다. 대대장! 적 보병의 항복이나 접근을 허용하지 말고 모조리 사살하라.”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폐하! 대대장이다. 전 차량 주포와 기관총 사격! 적을 섬멸하라! 전진!”
포로가 된 반란 가담자들은 지휘관 또는 상급자들이 위협해서 어쩔 수 없이 반란에 가담하게 됐다면서 눈물을 흘릴 것이 뻔했다. 그러나 기병사단 병력 다수가 주둔지에 남은 것으로 봐서 이는 변명에 불과했다.
반란 가담이라는 모험을 해서 개인의 영달을 노린 이상 살아날 기회를 줄 필요가 없었다. 경전차들이 불타는 주력 전차들 사이를 뚫고 전진하며 반란군을 향해 기관총을 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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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거의 끝났고 후속조치가 남았습니다. 1000회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급적 빨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