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97 105. 대국의 길 =========================================================================
105. 대국의 길
1632년 정월은 매년 그랬듯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연말에 우르르 몰려왔던 외국 사신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나간 다음에는 항상 허탈했다. 명나라 황도인 북경에 정조사를 보내면서 대규모 조공 무역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고, 명나라 곳곳에서 창궐하던 농민반란도 조용해져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조용하다 해서 문제가 없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 드디어 1억이 눈앞에 보이는구나.”
“미리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2월 중순이 되면서 지난해에 실시한 국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출신 경제청장 김수공은 통계국장을 겸하고 있었다. 인구가 성장 동력인 시대에 인구가 느는 것처럼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민호와 관료들이 자화자찬을 해도 괜찮았다.
1631년 10월 1일 기준 속국을 제외한 고산국 총인구가 9천 8백 60만 명에 이르렀고, 올해 상반기에 1억을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조선 출신 이민자와 2, 3세대, 그리고 여진족과 본토 고산족 인구를 합한 숫자가 6천 2백만이었다. 나머지는 남북미 원주민과 유럽 이주민 등으로 채웠다.
17세기에 전 세계 인구는 5억에서 5억 8천만 명으로 추산됐다. 그 전에 2세기 동안 흑사병 유행으로 인구가 대폭 줄었다가 회복된 숫자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새로운 작물들이 아시아와 유럽의 인구 증가에 제법 크게 기여했다.
“명나라와 무굴제국에 이어 우리나라 인구가 세 번째인가?”
“예, 전하. 잘하면 몇십 년 이내에 첫 번째가 됩니다.”
“앞으로도 정치를 잘해야겠지.”
17세기 전반 명나라 인구가 추정 1억 4천만으로 국초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으나 최근 인구 증가가 정체됐다. 인도는 기원전 300년부터 이 시대까지 항상 1억 정도를 유지해 무척 안정적이었다. 아프리카는 5,500만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아직 인구가 급성장할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으나, 아프리카 제국이 통일 과업을 마치고 내정에 집중한다면 금방 두세 배 늘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역사의 17세기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2천만, 신성로마제국이 국외 영토 포함해서 2천만,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합해서 천만, 이탈리아 1,200만, 잉글랜드 560만, 오스만 제국이 1,200만, 폴란드가 최전성기에 1,100만 정도였다. 나머지 유럽 나라들 인구는 현대보다 훨씬 적어서 덴마크 70만,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를 다 합쳐서 140만 정도였다.
그러나 고산국이 수십 년째 의료와 식량 지원을 해서 어느 나라든 실제 역사보다 인구가 많았다. 특히 남미와 북미는 유럽인들이 들여온 전염병에 의해 인구가 급감할 시기였으나 고산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매입하면서 큰 고비를 넘겼다.
“1인당 연간 260원이면 가구당 대충 1,500원이 넘는군. 이 정도면 배를 곯고 살지는 않겠지.”
“충분히 먹고 살고도 절반 이상이 남습니다.”
1인당 평균 연간 수입은 260원이었다. 고산국에서 보유한 금이 이 시대 세계 금 보유량의 절반 이상인 3만 5천 톤이므로 통화 회전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만약 금이 함유된 주화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1원 주화에 은을 다량 섞지 않았거나 은행 저축률이 낮았다면 통화제도가 붕괴될 뻔했다.
금 생산량과 통화 공급량이 매년 아슬아슬해서, 조만간 금을 은행에 보관해두고 지폐를 주요 화폐로 삼는 금 태환제도를 실시해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금 보유량보다 화폐 발행량을 2배, 3배, 4배로 늘리다가 결국 금 태환제도를 정지시키고 신용화폐 제도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쯤에는 금융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과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전하! 통계 자료를 올해에도 신문과 잡지에 공개합니까?”
“당연히 공개해야지. 왜? 통계 자료를 국가기밀로 지키고 싶은가?”
“아닙니다, 전하. 그건 다른 나라에서 경쟁이 가능할 때나 통할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면 워낙 압도적이라 경쟁 국가들이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백성들에게 좋은 자랑거리가 되겠습니다.”
통계학(statistics)은 어원적으로 국가에 대한 학문이다. 통계학은 뜻밖에 아일랜드나 신성로마제국의 소국들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통치자가 국가를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시작됐기에 통계 자료는 비밀에 붙여야 했다. 그러나 고산국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호! 그 동안 백성들 키가 많이 컸단 말이지?”
이민호는 이 부분이 가장 흐뭇했다. 성장기 영양 부족 때문에 왜소한 체구에 평생 병을 달고 사는 백성이 고산국에는 거의 없었다. 의료 공영화 제도와 넘쳐나는 의료 재정 덕택에 다른 나라처럼 가족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나머지 식구들이 죽도록 고생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예, 전하. 현재 만 16세 이상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8cm, 30세 남성 평균 신장은 174cm, 21세 남성 176cm입니다. 조선 이민자 2세대 21세 남자 평균은 175cm, 여자는 162cm에 달합니다. 중간치는 그보다 1cm 정도 작습니다.”
중간치가 평균치보다 작다는 것은, 평균 신장 이하 남자들이 평균치에 더 촘촘하게 분포해 있는 반면 평균치보다 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띄엄띄엄 분포돼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의 고3처럼 180cm 넘는 장신들이 수두룩했다.
“북미 원주민과 에이레 출신 이민자 2세들이 평균보다 1, 2cm 정도 더 크네? 전혀 뜻밖이야.”
“예. 추세를 살펴보면 특히 에이레 출신 이민자 2세들의 키가 앞으로 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유전적인 이유 같습니다만, 에이레 출신 백성들은 국왕전하의 선정 덕택이라고 이유를 돌리고 있습니다.”
“내가 선정을 베푼 탓 맞아. 크크! 정말 잘 됐다.”
“사실 에이레 사람들 입장에서는 눈물 나는 이야깁니다, 전하.”
18세기 후반 미국 백인 남자와 북미 인디언 남자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컸다. 그리고 이들보다 큰 사람들은 171cm가 넘는 북미 흑인 노예들이었다.
18세기 전반 아일랜드 남성의 평균 키가 168cm로서, 잉글랜드인보다 3cm 큰 것은 인종적인 차이였다. 반면에 1770년대 조사에서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 이민자들의 후손인 미국 식민지 군인들이 영국 왕립 해병대 대원들보다 7.6cm나 큰 것은 주로 성장기의 영양공급 차이에 원인이 있었다. 현대에도 잉글랜드인보다 스코틀랜드, 웨일스인의 평균 신장이 더 크다. 영국 음식 탓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산업혁명 이후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인구가 대폭 늘었으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바람에 유럽인의 평균 신장은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영국에서는 같은 나이의 빈부 집단 신장 차이가 22cm나 났고, 네덜란드에서는 농촌보다 도시 남성의 키가 3.5cm나 작았다. 19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현대와 정반대로 키가 작다고 유럽에서 소문났다.
“좋은 일이야. 어린애들에게 잘 먹이도록 계몽을 더 철저히 하게.”
“물론입니다, 전하. 아이의 배를 손가락으로 눌러봐서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꾸역꾸역 더 먹이는 조선 출신자들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금기가 많은 무슬림과 신교도들에게 특히 홍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돼지고기, 비늘 없는 물고기와 해산물에 대한 혐오감이 종교 경전에 반영된 것이 큰 문제였다. 무슬림들은 종파별로 해석에 따라 해산물에 대한 금기가 달랐고 개신교도들 일부는 교리와 달리 구약성경 구절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있었다. 앞으로 세월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에게 버릇된다고 안 먹이거나, 유아기 건강을 위해 덜 먹여야 한다는 정신 나간 부모들이 가끔 있었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요상한 학설을 남발하는 의사나 육아 관련 잡지사도 문제였고, 그게 편하다고 수용해버리는 무책임한 부모들도 문제였다. 자기 발언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의사들은 걸리는 족족 감옥에 쳐 넣고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곡학아세를 일삼는 신문사와 잡지사는 여지없이 폐간시켰다.
“전하! 제발 명예를 지키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무릎 꿇고 비옵니다!”
“범죄자가 지킬 명예 같은 게 있나?”
“제발 전하! 곤장을 맞지 않을 수 있다면 징역을 두 배로 받겠습니다! 아니, 비공개 장소에서라면 곤장을 두 배로 맞겠습니다!”
“전직 판사가 감히 국왕에게 법을 어기라고 요구하는구나. 그 동안 판결과 양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이로써 알만하다.”
꾸준한 사정활동과 내부 고발 덕택에 판사와 검사, 변호사, 경찰들이 뭉쳐서 재판 결과를 조작한 중대 범죄행위를 적발해냈다. 법조인과 군 장교의 직무상 범죄는 국사범과 같은 무게로 다뤄졌고, 국왕이 특별재판관을 맡았다.
“저희들을 무시하면 아니 되옵니다. 저희 법조인들은 법률 전문가이며, 어느 나라에 가든 지배층입니다.”
“판사라는 직업에 충실하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도 못한 주제에 있지도 않은 특권을 찾는구나. 특별히 가중 처벌하겠다.”
판결을 확정하고 날짜를 잡아 왕궁 앞 주작대로에서 공개 집행을 실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와 경찰이 엉덩이를 까고 곤장을 맞았다.
두건을 써서 얼굴을 가린 형리가 앞부분이 납작한 나무 막대기를 힘껏 내리쳤다. 징역 10년 이상씩을 언도받은 전직 법조인 기결수들은 탄광에 수감되기 전에 일단 곤장 맛부터 봤다.
- 짜악!
“허윽! 으허으허으허!”
태형이나 장형은 맞으면 일단 아프기도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집행할 경우 범죄자의 사회적 생명을 끝장내는 명예형으로서의 요소도 갖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야만적인 형 집행을 금지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고산국에서는 곤장이나 태형 같은 형벌은 일부 파렴치범에 한정해 집행했다. 그러나 뇌물을 받고 잘못된 판결을 내리거나 그렇게 유도한 범죄자들은 이미 충분히 파렴치한 인간들이었다. 국가를 유지하는 전통적인 두 가지 수단이 형벌과 세금이니, 국왕인 이민호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할 수 없었다.
“세자야!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폐쇄된 내부 집단을 만들어 특권층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세자는 일신의 편함을 찾지 말고 그런 자들을 경계하도록 해라.”
“예, 아바마마. 부조리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도록 결코 용납지 않겠습니다.”
“의료제도와 공기업을 민영화하자거나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자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것에 자신들의 이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의료와 기간산업은 민간 시장에 맡길 수 없으니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부질없는 토목공사를 경계하는 내용은 유교 경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자유경쟁 시장은, 자원의 최적 배분을 하지 못해 이따금 실패하기도 한다. 경제학과 재정학에서는 시장의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써 공공재인 국방과 치안을 내세운다. 의료는 국영이든 민영이든 국가에서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업종이었다.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과 북유럽의 사례를 볼 때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이 민영 의료에 비해 반드시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미국의 민영화된 의료제도는 환자에게 과도한 비용을 청구함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은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민층의 의료비용을 부유층의 자선으로 감당하는 사회 분위기라도 있었다. 자선행위가 활발하지 못한 국가에서 의료 선진화를 명분으로 섣부른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다간 자칫 재앙을 부를 수 있었다.
사회 기간산업의 민영화 문제도 고산국에서 이미 시험과 검토를 마쳤다. 외따로 떨어진 마을 몇 개에서 수도 사업을 시험적으로 민영화했더니 요금은 오르고 수질은 떨어지고 사업체에서 고용하는 인원은 줄었다. 그런데도 사업주는 정부에 적자 보전을 위한 보조금 지원을 요청했다.
결국 사업주를 제외하면 사용자와 종업원과 정부 모두가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런 명백한 시험 결과가 공표됐어도 민영화해야 효율이 오른다는 주장은 끝없이 계속됐다. 그런 자들에게는 사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려서 진리를 깨우치도록 도와줬다.
“그렇다. 관료들이 뇌물을 받아서 비효율적인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느니 차라리 예산에서 직접 돈을 가져가라고 권하는 편이 국가적으로 훨씬 경제적이다. 그러니 돈 좋아하는 인간들은 처음부터 관직 대신 장사를 하도록 도와주거라.”
“예. 아바마마. 책임에 맞는 권한을 쥐어주면 이것을 특권으로 오해하고 엉뚱한 데에 쓰면서 거물 행세하려는 소인들이 있습니다. 관료들이 느슨해지지 않게 사정 기관을 독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뇌물을 통해 관료와 상인이 결탁하는 문제는 인간 사회라면 어디든 있고 기원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이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고산국에서도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관료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뇌물 사건이 해마다 그 규모를 갱신했다. 고산국 왕실에서는 관료들을 향해 감시의 눈을 번득이며 곤장과 칼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도 그렇지만 내부 고발자가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갈 뻔했다. 비리를 근절하려면 그 전에 내부 고발을 억제하는 분위기를 뿌리 뽑아야 한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부정과 비리에 저항하는 것을 도덕적 의무로 여깁니다.”
다행스럽게도 고산국에서는 직장을 때려치우더라도 다른 직업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내부 고발이 가능했다. 살기 어려운 팍팍한 시대에는 사회 정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특권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처럼 일반 백성들이 부유해지길 원하지 않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를 최고로 여긴다.
“세자!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 고산국이 어떠냐?”
“당연히 최고입니다. 아바마마께서 기가 막히게 잘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욱 큰 부담을 느낍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식의 질문이었지만 세자의 대답을 듣고 이민호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됐다고 느꼈지만 아직 큰 문제 하나가 남아있었다. 후대를 위해 욕을 먹는 것도 선대의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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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잘 보내십시오. 아마 일요일, 월요일 이틀 정도 연재를 쉴 것 같습니다. 토요일 밤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