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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992화 (941/1,000)

00992    104. 제국의 길  =========================================================================

다음 날 스웨덴군과 제국군에 파견했던 관전무관단으로부터 각각 연락이 왔다. 양측 군대가 이틀 전부터 자욱한 안개 속에서 매복과 기동작전을 펼친 끝에 현지 시각 오전 9시부터, 본격적으로는 11시부터 뤼첸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민호는 저녁에 퇴근도 못하고 참모본부에 남아 있었다.

“무슨 전투를 하루 종일 하는 거야?”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도련님. 전투가 끝나면 요약해서 보고해드릴 테니 퇴근하시죠.”

투덜대는 이민호와 달리 계복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 오징어를 뜯고 있었다. 이 시대 유럽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보통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고산국 본토 기준으로는 새벽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스웨덴의 꼬마가 어떻게 될지 불안해서 말이야. 예전에 머스킷에 어깨 관통상을 당해서 중갑을 못 입는다더군.”

“구스타브가 이젠 젊은 나이도 아니고 30대 후반입니다. 국왕이 무게 잡고 후방에만 있을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통닭이랑 맥주 드실래요?”

“통닭하고 콜라.”

전술지도 상에서 움직이는 부대유닛들을 지켜보면서 이민호가 안락의자에 몸을 눕혔다. 스포츠 경기처럼 영상을 보면 좋겠지만 필름은 며칠 후에나 들어올 것이다.

“오오! 핀란드 기병연대장이 누구랬지?”

“토르스텐 스톨한드스크 대령입니다. 정말 과감하게 돌격하네요.”

관전무관단으로부터 전황 보고가 하나씩 들어왔다. 전투 초반 제국군의 좌익을 분쇄하고 후방으로 돌아들어간 핀란드 하카펠리타트가 제국군 병사들에게 공포를 확산시켰다. 핀란드 기병대는 이어서 보급대를 공격해 제국군의 혼란을 극대화시켰다.

그러나 바로 이때 파펜하임 백작 고트프리트 하인리히의 기병대 3천이 뒤늦게 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미 정지 상태가 된 핀란드 기병들을 쉽게 몰아냈다.

파펜하임의 기병대가 스웨덴 본진을 향해 역습에 나서는 순간 스웨덴 보병연대에 배치된 경량포에서 쏜 포탄에 맞아 파펜하임 백작이 낙마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제국군 기병대를 차단하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돌격했다는 소식이 참모본부에 전해졌다.

“아니, 어째서 국왕이 기마 돌격을 해요! 마치 도련님의 10대 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관전무관단에 연락해서 구스타브의 행적을 찾아!”

전장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에 배치된 관전무관단이 쌍안경과 대구경 망원경을 동원해 스웨덴 국왕의 위치를 수색했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와 포연 사이에서 스웨덴 국왕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오후가 되면서 이마에 세로로 흰 줄이 난 갈색의 말이 주인을 잃고 전선 중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스웨덴 지휘부에 포착됐다. 국왕이 탄 올덴부르그 혈통의 전마 스트라이프였으며, 가격이 웬만한 말 값의 열 배 이상인 1,000릭스달러나 했다.

악전고투 끝에 스웨덴군이 그 지역을 확보했다. 그리고 총탄 세 방을 맞아 죽고 무기와 보석 장신구, 상의를 약탈당한 국왕의 시신을 후방으로 운구했다. 파펜하임 백작에 이어 스웨덴 국왕 역시 난전 중에 총탄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구스타브가 전사한 것 같다고? 끙!”

“도련님. 해병원정군을 독일에 보낼까요?”

그러나 제국군과 스웨덴군 사이, 가톨릭 동맹과 신교도 연합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해야 하기에 이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계복이 알고도 물어본 것이었다.

“근처에서 활동하는 우리 선박을 보내서 운구만 도와줘. 나보다 훨씬 젊은 국왕의 장례식에 참가하게 생겼군. 계복 상원수도 같이 가자.”

“저는 못 갑니다.”

“왜?”

“스웨덴 국왕의 딸이 겨우 다섯 살이랍니다. 12월에 여섯 살이 된대요. 그런 어린 아이와 눈을 마주치라고요? 저는 도저히 그렇게 못합니다.”

계복의 말을 듣고 보니 월급쟁이 군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근무 조건이었다. 이민호도 갑자기 스톡홀름에 가기 싫어졌다. 실제 역사에서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장례식은 2년 후인 1634년 여름에 거행됐다.

“윽! 나는 내가 사형 명령을 내린 홍타이지의 자식들과도 대면했어!”

“그거야 당연히 군주가 할 일이지요. 하지만 전투에 참가도 안 한 제가 무슨 죄입니까?”

“쳇! 겁쟁이!”

“저를 욕해도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창 한 자루만 달랑 주고 적진을 향해 돌격시키십시오. 그건 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

이민호가 아버지를 잃은 다섯 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동안에 전황은 스웨덴에 극히 불리하게 돌아갔다. 제국군 포병대에서 포연이 일제히 솟구칠 때마다 스웨덴 최정예 부대들인 늙은 푸른 연대와 노란 연대의 병력이 10분의 1씩 팍팍 줄어들었다. 전열에 세운 보병대가 거의 전멸하고 후방은 제국군 기병대가 쓸고 다녔다.

스웨덴군 지휘부는 국왕의 전사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총지휘관의 전사 소식이 퍼지면 군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려 패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구스타브의 전사 소식이 완패 직전으로 내몰린 스웨덴군에 퍼진 다음 기적이 일어났다. 국왕의 원수를 갚자고 소리치며 돌진하는 스웨덴 병사들에게 제국군이 점점 밀려난 것이다. 파펜하임이 지휘하던 보병들이 밤새도록, 그리고 하루 종일 뛰어서 오후 6시에 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기울어버린 전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발렌슈타인은 퇴각을 명하고 작센에서 물러나 보헤미아에 겨울 숙영지를 차린다. 스웨덴군은 작센을 구하는 작전을 성공시켰지만 왕을 잃었기에 프랑스에 신교도 연합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신교도 연합은 이미 반 합스부르크 연합이 됐기에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라는 사실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승리 하나 얻기가 이렇게 힘들다. 전투에서 승리했어도 스웨덴은 힘을 잃겠구나.”

“스웨덴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구스타브 국왕에게 어린 딸밖에 없으니까 친족들이 왕위에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스웨덴에서는 국왕이 신민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니까 다를 거야.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성인이 될 때까지 스웨덴의 국력은 약화를 면할 수 없을 거야. 우리가 스웨덴을 지켜주는 대신 원정을 못하게 하든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든지 해야지.”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사후 스웨덴에서는 재상 악셀 옥센셰르나를 비롯한 섭정 다섯 명이 왕권을 대리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유언장에서 이민호에게 뒤를 부탁했다지만, 스웨덴의 섭정들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예, 전하. 저도 몹시 당혹스럽습니다. 신료들이 전 황제폐하의 뜻을 받들어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이번에 새 황제께서 다시 콥트교로 바꾸라는 훈령을 받았습니다.”

에티오피아 대사가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종교가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한, 지배자의 의사에 따라 고위 관료들이 배교와 개종을 하는 일이 흔히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의 교리가 그리 많이 다르진 않잖소?”

“전례 말고도 교리가 꽤 많이 다릅니다, 전하. 불공하게도 5세기 칼케돈 공의회에 의해 콥트교회 전체가 이단으로 분류됐습니다.”

“이슬람이나 불교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같은 기독교 안에서는 다 그게 그거요. 유럽 전쟁에서 교훈을 얻어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오.”

“휴우! 예, 전하. 에티오피아에서도 종교 분쟁을 호되게 겪어봤더니 전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비신자는 쉽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으나 신자들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에티오피아 대사가 이민호에게 많이 양보해주는 편이었다. 새 황제 파실리데스도 황태자 시절에 수만 명이 전사한 전장에서, 작은 교리 차이 때문에 같은 기독교도들이 헛되이 싸웠다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해안 도시를 포격한 포르투갈 때문에 에티오피아 대사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러나 남쪽에 아프리카 제국, 북쪽에 이집트라는 고산국 속국이 있고, 성지 순례를 하려면 고산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에티오피아 대사는 이민호의 중재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걱정했는데 대사는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오. 굳이 외국 배의 통행을 막으면서 전쟁을 할 이유가 없소.”

“에티오피아의 근원이 기원전 1000년으로 소급되는 유서 깊은 제국이라 하나, 예멘을 잃은 뒤부터는 국제사회에서 그렇게 큰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외교관으로서 무굴제국과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조금 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굴제국 샤자한의 대관식 때도 에티오피아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에티오피아는 유럽 기독교 문화권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고 십자군전쟁에도 참가했으므로 우물 안 개구리는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이슬람 너머 기독교 왕인 프레스터 존의 신화에서 에티오피아는 당연히 제외됐다.

“그래도 황제를 설득할 때 매우 조심스럽겠구려.”

“역대 황제들께서 그리 꽉 막힌 분들은 아니십니다. 고산국에서 발간한 책을 번역해 황실 도서관에 비치할 정도는 됩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이라고 다 오두막에 살면서 소를 키우거나 사냥해서 먹고살지는 않았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아주 오래된 문명국으로서, 기원전 10세기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전설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다못 왕국이 유지되고 있었다.

시대가 매우 앞선 농경 유적과 관개시설, 고유한 문자와 국가체제는  에티오피아를 다른 아프리카 지역과 비교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원 3세기 전반에 고전 그리스어가 새겨진 주화를 발행해 유통시키기도 했다.

“아프리카 제국과의 관계는 어떻소? 혹시 군사적 충돌 같은 건 없겠지요?”

“아주 괜찮은 편입니다. 가끔 국경지대에서 그쪽 정찰대와 마주쳐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가 몇 만 단위 병력을 일시에 동원한다지만 아프리카 제국은 그 이상이었다. 두 거대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서로 아주 조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제국 입장에서는 에티오피아와 싸울 이유가 없을 것이오.”

“맞습니다, 전하. 그리고 우리 교회 사제들이 아프리카 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종교가 자유로운 국가라서 한편으로는 아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지역이 통합됐고 황실도 고산국에서 나왔으니 특히 문화적인 혼란이 클 것이오. 신생국을 잘 도와주도록 하시오.”

“선황제의 자식이 하도 많아서 국혼을 해도 의미가 없겠습니다만, 일단 추진하고자 합니다.”

“오! 좋은 결과가 나길 바라겠소.”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에티오피아 대사와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 이 시기 에티오피아는 영토를 확장하기보다는 내정을 다지는 시기라서 전력을 북서쪽에 투입해야 하는 아프리카 제국 입장에서도 몹시 다행이었다. 파실리데스가 재위 중에 아치형 석교를 하도 많이 만들어서, 현대 에티오피아에 남은 다리 이름에 죄다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

이민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장례식을 위해 단 몇 주 만에 스톡홀름 거리를 말끔하게 단장하고 나서 국왕의 운구를 받아들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부두까지 나와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저씨 안녕?”

“크리스티나도 안녕? 몇 년 전에 만난 아저씨를 기억하니?”

“아뇨. 하지만 책에서 아저씨 사진을 자주 봤어요. 아빠 친구라면서요? 아빠가 아저씨와 친구라고 자랑하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렇지. 아주 좋은 친구였단다.”

이민호가 구스타브와 친구를 맺을 나이는 아니었지만, 부정했다간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될까봐 긍정하고 말았다. 마차 옆 자리에서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더욱 슬퍼하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완결이 가까워지면서 장례식이 자주 나오네요.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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