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86 104. 제국의 길 =========================================================================
오랜만에 조선의 관복을 입은 자가 고산국 왕궁을 방문했다. 품계는 정7품에 불과했으나 아주 특이한 손님이라 알현실이 아닌 널따란 대전에서 이민호가 직접 만났다.
이 사람을 구경하려고 후궁들과 왕자들이 대거 몰려왔고 특히 기혼과 미혼을 막론하고 국내에 거주하는 공주들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마치 인기 연예인 얼굴을 보려고 행사장을 빼곡히 채운 팬들 같았다.
“조선국 무공랑 성이성이 고산국 국왕전하를 배알하옵니다.”
“어이쿠! 유명인사가 오셨네?”
<춘향전>의 실존 모델, 전 남원부사 성안의의 아들 성이성이 고산국에 유람 왔다가 왕궁에 초대를 받았다. 오타를 부르는 부자의 이름이었다. 공주들이 서로 귓속말을 하며 웃는 사이 30대 후반 유부남인 성이성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일 때문에 입궐했습니다, 전하! 어째서 제가 어린 나이에 춘향과 밤에. 흠! 흠!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소설책과 오페라라는 가극에 나옵니까? 그것도 문제거니와, 제가 남원에 있을 때는 겨우 열세 살이었습니다. 소설책에 묘사된 그런 장면은 심한 과장이옵니다.”
“조선에서 먼저 자네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서 인형극이나 만담의 소재가 되고 있지 않나? 그래도 이름은 이몽룡으로 바꿔줬다네.”
“전하! 성몽룡이든 이몽룡이든 그 남원부사 자제가 저라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선에는 제가 암행어사가 됐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고산국에 와서 초야 치르는 부분이 심히 왜곡되고 뒷이야기도 크게 부풀려진 겁니다. 탐관오리 변학도는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알았으니까 울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보게.”
관기의 딸 춘향과 사또 자제 성몽룡의 연애사건을 소재로 한 창작물은 실제 조선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조선에서는 실존 인물 이름을 피하기 위해 이몽룡과 성춘향으로 바뀐다.
이 이야기가 고산국에 건너와서 소설과 만화, 영화, 오페라, 방송극, 무도곡 등으로 발표돼 흥행이 대박을 쳤다. 물론 <춘향전> 소설과 여러 2차 창작물에 표절작가 이민호가 적극 개입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소설만 해도 국왕 이민호의 이름을 대표 작가로 내건 <어제(御製) 춘향전> 외에 밤일 묘사의 수위를 조절한 다양한 버전이 출판됐다.
“내가 자네 선친을 좀 아네만, 역시 부전자전이야.”
“윽! 선고께서는 첩을 빼앗긴 쪽이었습니다.”
“그래. 빼앗은 쪽은 유몽인이었지.”
성안의가 평안도 도사로 재직했을 때 영유 고을의 여자를 첩으로 들였는데 미색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소문을 듣고 유몽인이 차사의 위세를 이용해 빼앗았다가 여자를 조정견에게 다시 빼앗겼다. 유몽인이 신랄한 비난을 받으며 실록에 기록된 사건이다.
“근데, 진짜로 했나? 그 나이에?”
“험! 험! 그런 이야기는 물어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
“했네, 했어. 낄낄!”
부친 성안의는 경상도 봉화 출신으로 1607년 2월에 남원부사로 임명됐고, 1612년 3월에 광주목사로 재직 중에 파직됐다. <남원읍지>나 <용성지>의 역대 남원부사 재직자들을 기록한 선생안(先生安)을 보면 부임기간과 품계 확인이 간단할 일이나 최근 검색이 어려워졌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지방관의 임기는 관찰사와 도사가 360일, 기타 지방 수령은 1,800일, 당상관인 수령과 임지에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수령은 900일이다. 도호부사의 기준 품계가 당하관 종3품이라지만 남원은 중요한 고을이므로 흔히 당상관이 부사로 부임했다. 성안의가 당상관이 아니었다면 교육을 위해 아들만 임지에 데려온 것으로, 관청에서 수령의 온가족을 부양하지 않았다면 남솔(濫率)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다.
성안의가 남원부사로 900일 동안 재직했다고 보면 성이성이 1595년생이므로 우리 나이 13세에서 15세 사이에 춘향을 만났다고 볼 수 있다. 성이성과 춘향의 연애사가 이 시대에 조선에서 그토록 파란을 일으켰던 것은 극명한 신분 차이 외에 어린 나이도 한몫 했다.
“피 끓는 청춘남녀가 만나는데 신분 차이가 날 수도 있지. 나도 잡지에 실린 춘향이 사진을 봤는데, 광한루에서 한복 입고 노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더군. 지금도 잘 지내나?”
“험! 험! 모친께서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키시는 바람에 자기 집에서 지내도록 해줬습니다. 전하께서 출판국을 통해 춘향이를 기적에서 빼준 것은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성이성의 모친상이 1654년에 있었으므로 춘향이 시집살이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게다가 성이성의 본부인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즈음한 시기에 양반의 첩은 공식적으로 2명, 관습상 3명까지 용인됐고, 정식 결혼하는 때에 맞춰 부모가 알아서 첩 두 명을 챙겨줬다.
설화에서는 성이성이 과거에 급제한 다음 남원에 내려가 춘향을 만나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혹은 춘향이 새로운 사또의 수청을 들기를 거부해 이미 장살, 혹은 옥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춘향전>이 크게 인기를 끌고 조선에도 그 책이 전해지자 유명인사가 된 춘향을 감히 건드릴 사람이 없어졌다.
소설과 방송극, 오페라의 원작료 절반을 춘향에게 보내고, 또한 이민호가 고산국 출판국을 통해 제법 큰돈을 들여 기적(妓籍)에서 춘향을 빼주었다. 양인 신분이 된 춘향은 한성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성이성을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오호! 자네 5년 전에 식년문과에 합격해서 지금 관직이 승문원 정자였나? 그 녹봉에 두 집 살림이 돼?”
“지금은 승정원 주서를 마치고 시강원 설서로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잠시 고산국을 유람 중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뇌물 안 받고 관직생활을 계속하려면 집안에서 후원해줘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춘향이가 저보다 훨씬 부자입니다.”
<춘향전>이 실존 인물들로 구성된 이야긴 줄 몰랐던 이민호는 조선에서 들려온 남의 연애사에 신이 나서 소설을 썼고, 춘향과 몽룡, 실제 이름 성이성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고산국 출판국과 방송국, 문화단체에서 매달 인세로 춘향에게 큰돈을 보내주었다. 춘향이도 고산국에서 유행하는 운동법과 화장법을 배워 3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미색을 뽐내고 있었다.
<춘향전>에서는 이몽룡이 장원급제했다고 나오지만 성이성은 식년문과에서 갑과 1등인 장원이 아니라 병과로 급제했다. 나이도 33세가 된 1627년에 합격했으니 남원을 떠나고 나서 장장 18년을 더 공부한 셈이다.
조선에서 이 정도면 아주 젊은 나이에 대과에 합격한 축에 속한다. 다만 성이성이 처음 암행어사에 임명된 것은 1637년, 43세였다. 남자 주인공이 이 나이면 이미 청춘 드라마라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해에 성이성이 담당한 관할지역은 남원이 있는 전라도가 아니라 충청도였다.
“흐음! 조선 관료들은 그렇게 청렴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관료들 녹봉이 적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적당히 해먹는 것 정도는 눈감아주잖아?”
“안타깝지만 남을 비판하려면 먼저 제 주변에 티가 없어야 합니다. 언관으로 일하려면 어쩔 수 없이 청백리가 돼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성이성은 부패하고 무능한 고관대작들뿐만 아니라 인조 임금까지 대차게 까버렸다. 이 때문에 승진이 늦어지고 걸핏하면 모함을 받았으나 항상 언관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나중에 암행어사를 하게 되겠지?”
“그야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소설을 보니, 흠! 흠!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암행어사를 하는 것도 꽤 멋진 일일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자네 고산국에서 암행어사를 해보면 어떻겠나? 요즘 조선과 고산국 사이에 장교뿐만 아니라 관리들에게도 교환 근무 제도가 새로 생겼잖아? 다른 나라에서 수행한 관직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네.”
“암행어사도 좋긴 합니다만, 세자저하를 교육하는 시강원 설서가 아주 중요한 직책이라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민호가 암행어사라는 카드를 꺼내는 순간부터 성이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세자시강원 설서가 세자를 거의 매일 만나는 자리라지만 요즘 들어서 유학강의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숙빈 고 씨, 고산국 공주 지은이 세자를 위해 신학문 교육 시간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성이성은 실제 역사에서 암행어사 직을 여러 차례 수행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방관으로 재직할 때는 목민관의 표상으로서 여러 가지 구태를 폐지하고 제도를 개선을 조정에 건의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장정 만 명이 거주하는 고을에서 경군 200명을 선발해 한성에 보낸다고 하세. 그럼 장정 몇 명이 아전들로부터 침탈을 받을까?”
“만 명 거의 대부분이 아전과 서리들로부터 침탈을 받습니다. 이런 폐습을 지방관이 알아서 막아야 하는데 모르거나, 알고도 내버려두는 실정입니다. 이래서 차라리 아전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고 백성들을 침탈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원래는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경군으로 선발돼 한성까지 오가며 전 재산을 날리는 것보다 그 절반을 아전에게 뇌물로 쓰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아전들이 뇌물을 써서 경군 선발에서 빠지라는 제안을 고을 장정 만 명 전체에게 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경군 소수를 뽑는 일은 거의 매년 있으므로 단 몇 년 만에 고을의 모든 부가 아전들의 손에 넘어간다.
“정답이야. 중앙 조정에서는 모르고 넘어가는 온갖 비리가 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다네.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암행어사가 잘못된 제도 개선을 조정에 건의하고 지방에서 오용되는 실태를 바로잡아 줘야 하네.”
“지당하십니다, 전하.”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나? 고산국은 조선보다 훨씬 넓고 인구도 많아. 지방관청에서 하는 일도 많고 물론 예산도 어마어마하다네. 호민관이나 감사관이 일은 잘하는데 조선처럼 꼬장꼬장한 인물이 드물거든. 제도 개선을 건의하는 일도 극히 적어서 문제야.”
“고산국 관청은 회계 제도가 복잡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야 자네 휘하 감사관, 회계관들에게 시키고 자넨 간략히 보고를 받으면 돼. 고산국에서 추상같이 암행어사 직을 수행하고, 이를 발판으로 조선으로 돌아가 고위 관료로 출세하는 게 어떤가?”
비리 적발도 중요하겠지만 이민호가 성이성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제도 개선이었다. 조선과 고산국 두 나라의 제도가 달라 초반에는 성이성이 배우느라 한참동안 고생하고 피감 대상인 관료들에게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3자의 객관적 시각이 가끔은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에 이민호는 바로 그것을 기대했다.
현대의 컨설팅 업체 직원들도 처음에는 고객사의 업무를 제대로 몰라 고객사의 현업 전문가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참 가르쳐줘야 한다. 그러나 나중에 컨설팅 업체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현업 전문가들이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해주기도 한다. 비용 대 효과 면에서 민간 기업이 컨설팅 업체를 적극 이용할 만하므로 규모가 큰 국가 단위에서 이런 제3자적 시각은 더욱 유용했다.
“다 좋습니다만, 제 이야기가 조선에 알려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도 조선 관료들 중에 저를 어떻게든 파직시키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럼 고산국으로 아예 이민을 오든지.”
성이성이 한참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고산국에서는 재산 상속이 부정됩니다. 자식들을 키우고 장성하면 재산을 나눠주는 게 부모로서 큰 기쁨인데 이것을 막으면 백성들이 어찌 열심히 일하려 하겠습니까? 양반들이 고산국에 이민 오지 않으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상속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그거야 자네처럼 부자나 할 수 있는 말일세. 조선이 요즘 예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며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재산 상속은 극히 일부에게만 유리한 제도일세. 국가에서 여러 가지 재정 지원을 해주면 상속제도 자체가 필요 없다네.”
자본주의든 뭐든 떠나서 시대를 통틀어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들도 평생 가난하게 살 확률이 높다. 가난한 집안은 2세의 교육환경이 나빠지는 것도 문젠데 만약 부모 중 한쪽이라도 병에 걸리면 전 가족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로 취직이나 결혼할 때 고위 공무원이나 재벌의 자식들이 훨씬 유리하다. 극소수의 금수저들 말고는 로또 아니면 답이 없는 세상이었다.
고산국에서는 재산상속을 불가능하게 한 대신 모든 백성들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고 교육, 의료를 무료화함으로써 상속재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발달시키려면 상속이 가능하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이견과 꾸준히 마주쳤다.
지나친 빈부격차는 명나라처럼 자칫 국가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호는 상속 문제 때문에 고산국 국적을 이탈하는 경우를 막고 싶어서 상속제도의 변경을 고려하고 있었다.
고산국에서 살다가 다 늙어서 상속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선으로 돌아간 노인들이 꽤 많았다. 수구초심이니 고향에 묻히고 싶다 운운하더라도 사실은 조선의 가난뱅이 소작농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좀 있었다. 이런 자들은 영락없이 고을 수령이나 아전들의 표적이 됐고, 보통 몇 년 안에 거덜이 나서 다시 고산국으로 돌아왔다. 쪽박을 찬 국적 회복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절반만 지급했으나 병원과 노인 요양원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실로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전하.”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는데 조만간 상속 제도가 변경될 걸세. 상속세율이 100퍼센트, 아니 10할이었는데 재산 십만 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8할, 그 이상은 9할로 낮추기로 했네. 사실 고산국에서 상속은 대부분의 백성들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어.”
“퍼센트는 100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전하. 천천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좋아, 좋아! 정식 이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고산국 암행어사로 일하게. 조선 조정에는 바로 통보해주겠네. 휴가가 필요하면 먼저 쓰게나.”
조선시대 통틀어 인지도 랭킹 2위인 암행어사를 고산국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일단 교환 근무 제도를 빌렸지만 그렇지 않아도 조선의 부패한 관료제도에 실망한 성이성을 고산국에 정착시키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여전한 미모를 자랑하는 춘향이도 주부 모델로 데뷔하면 큰 인기를 끌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