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80화 (929/1,000)

00980    104. 제국의 길  =========================================================================

북직예 순무 원숭환이 국경 획정 조약의 책임자로 뽑혀 왕도를 방문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모문룡을 참수함으로써 황제에게 미움을 받아 1630년에 능지처참을 당했지만, 고산국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뀌면서 아직 살아 있었다.

“오랜만에 알현 인사를 올립니다, 전하.”

“아니! 원 순무라는 분이 내가 아는 원 진사 아니시오? 정말 오랜만이오.”

원숭환이 젊었을 때 왕도를 방문해 전쟁을 주제로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민호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칙사 선발 때부터 원숭환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데 반가움을 과장한 것뿐이었다.

진법과 전술 외에 국방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는 원숭환은 이 시대의 진정한 밀리터리 덕후였다.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릴 줄 안다는 점에서 전국시대의 이목(李牧)을 떠올리게 하는 명장이었다.

“국왕전하께서 후금을 정벌해주신 덕택에 안심하고 관병을 동원해 반란군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섬서까지 모두 평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산국과 국경을 접한다는 게 이렇게 안심이 되는 일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것 참 다행스러운 일이오. 몽골 전역에 군과 관리들을 파견했으니 조만간 완전히 평온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

이민호가 아깝다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필사적으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원숭환이 이민호의 표정을 슬쩍 살피는 것 같아 더더욱 긴장했다.

이제 명나라는 후금이란 변수 없이 순수하게 관군과 농민반란군의 대결로 단순화됐다. 관군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농민반란이 진압되더라도 장래에 다시 농민반란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번 후금 정벌이나 둔전 경영, 군량미 운송 등등 국왕전하께 항상 신세만 져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무슨 말씀이오? 황상의 신하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원숭환이 북쪽을 향해 읍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민호는 원숭환이 미운 것은 절대 아니었으나, 큰일을 놓고 똑똑한 자를 상대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원숭환이 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고산국 예조와 참모본부에서 준비해준 내용이 흐릿해졌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국왕전하이신데, 황제폐하로부터 상다운 상을 제대로 받으신 적이 없어서 대명의 선비로서 민망할 따름입니다.”

“괜찮소. 고산국은 항상 천조에 기대어 살아왔으니까요. 나도 좋은 이야기만 나누고 싶지만 원 순무는 황명을 받고 오신 분이 아니오? 일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직전에 이민호가 본격적으로 조약 내용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원숭환이 기다렸다는 듯이 지도 몇 장을 내밀었다.

지난번 칙사가 왔을 때 명나라와 고산국의 속국이 된 몽골의 국경은 장성을 기준으로 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장성이라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 무수한 변화가 있었고, 겹치거나 중간에 휑하게 빈 곳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 조약의 기준은 명대 장성이 되었다.

21세기 현대 중국은 발해의 장성과 신강 지역 장성까지 2만여 km를 만리장성이라고 주장하며 매번 새로 확장된 지도를 내밀었다. 현대 중국의 주장으로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5만리장성인 셈이다. 그리고 장성 바깥 역시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라고 우긴다.

“전에 칙사로 왔던 병필태감이 전하의 어지를 조정에 전했습니다. 큰 의견 차이가 나리라 여겨지지는 않습니다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성이 왜 이리 기오? 동으로는 산해관, 서로는 무위가 아니었소?”

“장성의 서쪽 끝은 당연히 가욕관입니다. 더 서쪽으로 옥문관을 기점으로 할까요?”

“옥문관과 돈황은 현재 거기서 살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물어보시오.”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전하. 실제 병력을 파견해 지키는 장성 방어선만 따지겠습니다. 다만 요동의 경우는 좀 복잡합니다.”

16세기 후반 이묵에 의해 작성된 <대명여지도> 북직예도를 보면 북경 동쪽 산해관, 현대 중국의 친황다오 시의 해안까지 장성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같은 <대명여지도> 산동여도2를 보면 발해만 북쪽, 바다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장성이 다시 시작해 요양과 심양 등을 감싸고 요동반도 중간으로 남하하다가 내륙지역 산 속에서 끊긴다.

현대 중국이 작성한 명대 장성에는 의주 건너편 단동까지 장성이 있다고 그려져 있으나 고구려 박작성을 현대에 개축한 사기 행위였다. 그리고 요동이나 실크로드 황무지에 40km 단위로 띄엄띄엄 보루 몇 개를 세워놓고는 이것들 사이에 가상의 직선을 그어 장성이라 우겼다. 그러나 <조천기(朝天記)>나 <연행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많은 조선 사신들의 여행기를 보면 황무지에 작은 보루 하나가 달랑 서 있는 꼴이었다.

현대 관광객들이 직접 오르는 넓고 튼튼한 장성은 현대 북경 북쪽이나 대도시 주변에 짧은 구간을 새로 쌓은 것이었다. 어느 시대든 중국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장성으로 길게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소. 문제는 요동이오. 물론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대명의 요새 도시들이 여진 땅 깊숙이 들어오는 바람에 여진족들은 불편해 하고 명나라는 긴 방어선에 대군을 투입해야 하는 곳이오.”

“주둔비가 만만치 않은데 후금과 전쟁까지 했으니 이곳이 대명의 국력을 갉아먹은 원수 같은 땅입니다.”

원숭환은 문관 출신이었지만 관직 생활의 대부분을 전쟁으로 보냈기에 국경지역의 실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문관이 왔다면 중국이 역사상 한 번이라도 점령한 곳이면 무조건 중국 땅이라고 우겼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현대 중국과 달리 원나라의 몽골족을 중국인의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모스크바나 이란을 나중에 회복해야 할 중국 땅이라고 우길 수는 없었다.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운 다음 중국 영토를 대폭 서쪽으로 확장했기에 이 시대 명나라 영토는 의외로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명나라를 시대 배경으로 한 무협지에 신강성, 청해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이 등장할 수가 없다. 감숙도 아직 성(省)으로 승격된 지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변발을 하지 않고 그럴 듯한 무인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려면 청나라보다 명나라가 시대 배경으로 좋았다.

“북경 방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발해만이 아니겠소?”

“바로 그렇습니다, 전하. 해적이 위험 요소로 떠오르면서 더더욱 발해만이 중요해졌습니다. 요동과 산동을 잇는 선에서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발해만을 천조에 확실히 보장해줄 테니 여진 쪽으로 툭 튀어나온 요양과 심양, 그리고 그 주변 성곽도시들을 넘겨주시오. 압록강 하구를 기점으로 잡고 요동반도 남해안의 중간에 점을 찍어 북쪽으로 선을 쭉 그읍시다. 그 서쪽이 대명의 영토요. 대신 다른 곳을 양보하겠소.”

“음. 발해만의 해안지대가 모두 대명의 영역 안에만 있다면 황상과 조정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다. 교환할 영토로 북경 북쪽을 주십시오.”

명나라 입장에서는 해마다 주둔비용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요동보다 북경 북쪽을 넓히는 게 시급했다. 북경이 중국의 북쪽 변경도시로 출발했던 탓에 북경과 만리장성 사이가 그리 넉넉하지 않은 탓이었다.

“모든 게 후금 때문에 벌어진 일이오. 요동에서 줄어든 면적만큼, 후금이 이주했던 남몽골 지역의 남쪽 일부를 떼어주겠소. 북경 북쪽 방어선이 꽤나 두툼해질 것이오.”

“감사합니다, 전하. 이 정도면 고지식한 조정 관료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겠습니다. 진작 이렇게 국경이 정해졌다면 변경을 지키는 부담이 훨씬 덜했을 겁니다. 농민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해야겠지요.”

명초에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명나라의 국방정책 전체에 무리가 많이 갔다. 수도가 변경에 치우친다면 그 의도가 무엇이든 자칫 국가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토목보의 변 때는 북경이 오이라트에게 점령될 뻔하고 그 외에도 수시로 몽골족이 북경 성 아래에서 말을 달렸다.

“서쪽은 어떻게 나눠야 하겠습니까?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존재 때문에 이쪽이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욕관에 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명의 영토로 인정을 해줘야겠으나, 그 중간 중간에 천조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다른 종족들이 살고 있소. 그들을 현 주거지에서 밀어낼 수는 없지 않겠소? 좁고 긴 영토는 방어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오.”

역대 중국 정권은 실크로드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한 서쪽으로 길게 영토를 연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서주랑(河西走廊)은 현대의 난주에서 돈황까지 이어진 길고 좁은 회랑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면 실크로드 주변, 혹은 서쪽 지역을 쳐서 이 지역의 불안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주변 땅에는 티베트나 위구르, 몽골 등 다양한 종족이 섞여 살고 있었다.

“비단길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고, 황무지를 두고 주변 티베트나 오이라트와 전쟁을 벌일 필요는 없겠습니다.”

“우리끼리는 가욕관까지만 정합시다. 다른 종족과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티베트나 오이라트와 국경 조약을 따로 체결하는 게 좋겠소. 오이라트는 몽골이면서 몽골이 아니라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소.”

“동의하옵니다, 전하.”

한나라가 건설했던 돈황과 옥문관은 현재 티베트 영역이라 가욕관을 명대 장성의 서쪽 종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지역 주변까지 마음대로 국경선을 그었다가 괜히 욕먹기보다는 현재 그 지역에 사는 주인들에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리적, 역사적으로 매우 복잡한 곳이라 이민호가 정리해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이라트는 일족 토르구트가 고산국의 속국이 되면서 크게 번성하고 몽골 고원 전체가 고산국 본토에 속하게 되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현재 서몽골에 거주하는 오이라트 예하 부족들은 스스로를 몽골이라 칭하면서 고산국에 복속했다. 알타이 산맥과 그 남쪽 중가르 분지에 사는 오이라트 부족들은 아직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했으나 고산국에 매우 우호적이었고, 조만간 복속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다.

“수고하셨소. 국경 획정의 기본 원칙이 확정됐으니, 나머지는 자세히 논의하도록 실무자들에게 넘깁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온데 국왕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천자국인 대명이 제후국이나 외국과 평등한 조약을 맺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알고 있소. 예우는 천자께 최상으로 해드릴 테니 내용은 고산국에 유리하게 해주시오.”

“황공하옵니다. 역시 국왕전하께서는 황상의 충신이십니다.”

청나라가 러시아와 맺은 국경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은 기본 조약문의 언어가 만주어로 돼 있고 조약 체결 당시 한어 번역문은 없었다. 중화사상에 의해 불평등조약이어야 하는데 이 조약은 평등조약이라 일반 한족 백성들에게 내용을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명나라는 외교 문제에서 절대 종주권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국경조약 서문에 ‘예부와 대명의 제후국인 고산국이 황제폐하의 칙명을 받들어 숭정 4년 9월에 국경을 명확히 정하노니 운운’하는 내용이 들어가게 됐다.

그 대신 요동 국경선은 조금 더 서쪽으로, 북경 북쪽 국경은 좀 더 남쪽으로 조정됐다. 두 나라가 더 중요시하는 것이 달랐으니, 양쪽 모두 만족스러운 조정이었다.

“건국할 때부터 신세를 많이 졌으니 당연한 일이오.”

“영토는 대명보다 고산국이 훨씬 넓고 건국 후 짧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은 인구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군사력은 말도 못하게 강합니다. 그런데도 황상께 항상 겸손하시니 과연 뭇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사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는 없지 않겠소?”

TV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높은 사람을 만나 인사할 때 까딱 목례만 한다.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허리를 90도로 숙여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다르다는 것은 다 알지만 감정을 이입한 주인공이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당당하기를 시청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먹여 살릴 식구가 많기에 자존심을 접고 철저히 이익을 추구했다. 건국 초부터 ‘내가 누군 줄 알아?’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면 국가의 성장이 어렵거나 곧 한계가 왔을 수도 있었다. 아무 것도 없이 배경만 믿고 기고만장한 이들에게서 수모를 받을 때도 참 많이 참았다.

============================ 작품 후기 ============================

아침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 예약으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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