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63화 (912/1,000)

00963  103. 명나라의 혼란  =========================================================================

5월 하순에 덴마크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뤼벡 조약이 체결됐다. 발렌슈타인과 포로에서 석방된 틸리 백작은 덴마크에 영토 할양을 강제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길 원했으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아량을 베풀어주었다. 조약 내용이 덴마크에 크게 불리하게 체결될 경우 고산국과 관계가 나빠지리라는 예상도 이 결정에 한몫했다.

“제국의 종교전쟁에 참전하지 말라는 자네 말을 진작 들을 것을 그랬어. 그 동안 민호 자네가 많이 도와줬는데 이렇게 돼서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제대로 못 도와줘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그 동안 화가 났었지만 크리스티안 4세를 직접 보게 되니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고산국 왕도를 방문한 크리스티안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민호 자네처럼 정복군주라는 명성을 얻고 싶었어. 헛된 망상이었지. 내 능력도 부족하고.”

“자네 능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야.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지. 자넨 강적들을 상대로 할 만큼 했네.”

덴마크에게 남미 북쪽 해안 베네수엘라 땅을 내줘 식량과 설탕 등을 자급자족하게 해줬는데도 크리스티안 4세는 땅 욕심이 많았다. 가끔은 경제적인 동인보다 군주의 명예욕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덴마크의 북쪽 스웨덴에는 북방의 사자가, 남서쪽 네덜란드에는 오라녜공이, 동쪽 신성로마제국에는 발렌슈타인과 틸리 백작이 있었다. 이민호는 풀이 죽은 덴마크 국왕을 위로해줄 필요를 느꼈다.

“고산국 군대로 테르시오를 조직해서 발렌슈타인이나 틸리 백작의 군대와 붙었다고 가정해보게. 우리가 이길 것 같나?”

“고산국 병사들이 체구가 훨씬 크지만 같은 무기와 편제라면 아마 힘들 거야. 저들은 포탄이 지나가며 옆에 선 동료들이 줄줄이 쓰러지더라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아. 바로 앞 동료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 얼른 발걸음을 옮겨 빈자리를 채우지. 떼로 죽어 가면서도 저벅저벅 걸어오는 꼴을 보면 아주 질린다니까?”

같은 장창방진이라도 에스파냐의 테르시오만 유독 달라서, 보병방진 간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웬만한 상대는 버틸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근대 장창방진의 원류이며 용병일 아니면 밥줄이 끊기는 스위스 창병들이라도 테르시오 앞에서는 박살났다.

그러나 같은 에스파냐 군대의 테르시오라고 해도 전황이 불리할 때는 왈론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용병들은 다 도망갔다. 아무리 불리해도 에스파냐 출신만 꿋꿋이 방진을 지켰으므로, 테르시오의 핵심은 전술이나 편제가 아니라 에스파냐인들의 전설적인 용기와 군기라고 볼 수 있었다. 명량해전처럼 적에 맞서 싸워야 비로소 이길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맞아.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이야. 총과 대포로 확실히 쓸어버릴 자신이 없다면 안 싸우는 게 나아.”

“고산국은 예외라 치고, 그놈들과 같은 무기로 그 악마 같은 테르시오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뭐, 달리 생각하면 쉽지. 기원전부터 흔히 쓰던 전술 있잖아? 아군 기병으로 적 기병을 몰아낸 다음 적 보병 배후를 어지럽히든지, 요즘은 대포가 있으니까 마구 쏘든지.”

“그놈들은 기병에 포위돼도 끄떡 않고 장창을 내밀어. 기병을 뒤에 두고 도망가면 더 빨리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거든.”

그러나 지금은 테르시오가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조만간 무너지게 돼 있었다. 화기 기술과 운용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그 위력이 보병들의 용기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1643년 르크르아 전투에서 테르시오 전술 자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그 전에 테르시오가 몇 번 무너졌을 때는 독일 용병들의 비겁함이 문제였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르크르아 전투에서는 핵심 에스파냐인들이 프랑스군의 전술과 화력 앞에 완전히 무너졌다.

물론 프랑스 기병대의 공격을 네 번이나 물리쳤으므로 장창방진 전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전장의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이후 보병의 전투 진형은 밀집방진이 아니라 선형전술로 바뀐다.

“덴마크가 아프리카에 진출하면 안 되겠지? 거기 아프리카 왕국의 배후에 민호 자네가 있다고 들었어.”

“시끄러!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데!”

“덴마크는 너무 좁아서 그래. 포르투갈이 빠져나가면서 아프리카 남쪽이 비어 있다던데.”

크리스티안 4세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었다. 아프리카 왕국이 아직 남쪽으로 본격적인 진출을 하지 못했고 고산국은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주변만 지키고 있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견딜 자신 없으면 포기해. 게다가 아프리카 왕국은 보병이 20만에 기병이 10만이야. 머스킷과 대포 정도는 당연히 갖췄지.”

“정복하려다 오히려 정복당하겠네.”

이민호는 어떤 영화에서 줄루 왕국의 2만 대군에게 싹싹 쓸려나가던 빨간 군복의 영국 군대를 떠올렸다. 아무리 제국주의 시대의 백인 침략자들이 강하더라도 단발총 시대까지는 완벽하게 흑인 전사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개활지가 아닌 중남미 밀림에서는 에스파냐 정복자들도 고전했고, 파푸아 섬에서 고산국 특전대는 앞선 무기가 아니라 인내심과 육감으로 싸우며 피땀을 흘려야 했다.

“포기하고 내정이나 잘해. 자넨 신성로마제국의 제후이기도 하지만 덴마크의 국왕이 우선이니까.”

“그래. 비록 내가 독일 혈통이지만 덴마크가 내 나라야.”

“물론이지.”

아이슬란드를 넘겨받은 이민호는 베네수엘라와 서인도회사로 그 이상의 것을 덴마크에 안겨주었다. 지금 당장은 패전으로부터 나라를 추슬러야 하겠지만 덴마크의 미래는 그래서 밝다고 할 수 있었다. 내정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한 크리스티안도 자신감에 넘쳤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네. 헤드비히나 서인도회사가 있다 하더라도 자네가 왜 유독 덴마크만 그토록 도와주는지 말이야.”

“그야 뭐. 덴마크가 부러우니까. 풍차라든지, 젖소라든지.”

“이해할 수 없군. 어쨌든 고맙네.”

덴마크 영토가 4만 3천 평방킬로미터밖에 안 되고 현대 들어서서도 인구가 겨우 560만 정도밖에 안 되지만 국민 96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강한 나라였다. 현대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에서 과연 얼마나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지금이 아닌 21세기 덴마크가 이민호의 스승이며 교과서였다.

8월에 본토 원주민 대표들을 소집해 연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장소는 산맥 중간 시원한 별궁이었다. 일단 왕도에서 모인 대표단이 승합차에 함께 타고 별궁까지 올라왔다.

건국 초부터 적극 협조했던 아타얄족과 사이시얏족, 북경에 입조했을 때 무용단으로 참가했던 아미족 등 고산족과 평지족들이 빠짐없이 대표를 보냈다. 이들 대표들은 고산국어를 충분히 잘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상징하는 고산국어 통역을 각자 대동했다.

옛날과 달리 원주민들이 얼굴에 문신을 하지 않으니 남방계 중국인들과 용모가 흡사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운영하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몰려온 한족 농업노동자들과 대만 원주민들 사이에 대거 혼혈이 일어나 이들을 본성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고산국 건국으로 인해 혼혈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꽤 닮았고, 몇몇 부족은 조선 혈통 사이에 끼어 있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평지족 몇몇 마을은 고산국 일반 도시에 편입되고 의식주가 조선 혈통과 비슷해져서 지금은 생활양식이 거의 동화되고 말았다. 원주민들이 이런 현상을 문명화로 좋게 받아들여 이민호에게 꽤 큰 고민을 안겼다. 대신 이름에 더해 부칭이나 고향마을 이름을 부기하는 원주민 방식을 유지하라고 적극 권장했다.

“자! 모처럼 대표들이 모였으니 나라에 불만이 있으면 이 기회에 제기해서 해소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해보시오.”

“국왕전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오, 파이완족 대표.”

본토 남부에 거주하는 파이완족의 족장이 발언권을 얻었다. 파이완족은 남태평양 탐사에 통역으로 적극 참가한 부족들 중 하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남태평양 원주민들과 말은 많이 달라졌어도 풍습과 터부가 비슷해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잘했었다.

“이제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없고 혹시나 불만이 있더라도 해결되지 못할 노인들의 희망 정도입니다. 혈통을 막론하고 도시 생활을 동경하는 시골 젊은이들을 어느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 문제는 10년 넘게 해결하지 못했구려. 참 어려운 문제요.”

“저희들도 이제 포기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하더군요. 다만 독신남만 돌아와서 문제입니다. 여자들은 산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지레짐작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젊은이의 이농 현상은 20세기 후반 한국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한국처럼 곡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시켜서 농촌에서 짜낸 인력을 도시에 저임금 노동력으로 공급하는 방식이 흔했다.

그러나 수입이 많은 일부 농가에서도 젊은이들은 교육과 직업, 문화 혜택을 누리기 위해 도시로 꾸준히 흘러 들어갔다. 일단 어린이가 아닌 청년이 놀기에는 사람 많은 도시가 훨씬 좋았다. 이것은 산에서만 살던 고산족 젊은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평지 사람들이 괴롭히거나 무시하지 않소?”

“옛날에는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보는 앞에서 곤장 맞기 싫을 테니까요. 서로 몰라서 실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앞으로는 형벌을 적당히 줄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하지만 당분간 형벌을 줄이지는 않겠소.”

“그런데 저희들이 고향에서 누리는 권리가 평지 사람들한테는 없던데, 왜 그런지 알 수 있겠습니까?”

“원주민들이 산지에서 살면서 자연을 돌보고 가꾸기 때문에 누리는 권리일 뿐이오.”

원주민들이 일반 백성들보다 기본 소득을 조금 더 받았다. 같은 곡물을 재배하더라도 산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비용이 더 많이 들고, 원주민 마을 사람들이 외지에 판매하는 특산품이 그리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하려면 기본 소득이라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주민과 조선 혈통이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경우 원주민에게 더욱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 보통은 강한 쪽이 약한 쪽을 하층민이나 피정복민 취급해 가혹하게 대하기 마련인데 그 반대라서 원주민들은 매우 만족했다.

“어쨌든 저희들은 전하의 보살핌 덕택에 아주 만족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교육이나 취업, 군대 입대나 관리 임용에 있어서 특혜를 받았으면 받았지 차별 받은 일은 전혀 없습니다. 40년 전에 부족 어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오.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 관할 시청이나 본토청, 아니면 다른 관계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시오. 행정관청에서 해결해주지 못하면 왕궁에 사람이나 편지를 보내시오.”

“하하! 그럴 일 자체가 없다니까요, 전하.”

이민호가 원주민들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우대하는 것 같지만 원주민 정책은 이게 가장 싸게 먹히는 방법이었다. 몇몇 식인종 부족 외에 대부분 부족들이 국초부터 고산국에 협력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결코 순한 양들이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일본이 점령한 동안 우서 사건이라 해서 원주민 차별정책에 맞서 대규모로 궐기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고산국과 고산족 부족들은 국초부터 서로 협력하면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원주민들이 고산국이 조국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정도였다.

“조선 왕실에서는 적장자가 없을 경우 적자들 중의 하나로, 적자마저 없을 경우 서자들 중의 하나로 왕위를 잇게 합니다. 아시지요, 전하?”

“그야 당연하지요.”

이민호는 곧 건국될 핀란드의 왕위계승법을 데카르트 백작과 그로티우스에게 맡겼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고산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이민호에게 자꾸 물어 확인했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서 이민호가 간단히 대꾸해줬다.

“조선 양반들은 적자가 없을 경우 보통 아래 항렬인 조카나 오촌조카를 양자로 들여 가문과 제사를 잇게 합니다. 이 사실도 잘 아시지요?”

“물론이요. 어?”

“이제야 느끼셨습니다. 그 양반가 가주에게 서자가 여럿 있는데도 양자를 들인 다음 그에게 상속한다는 말입니다. 적자가 없으면 서자로 왕계를 잇는 조선 왕실과 다릅니다.”

“뭐, 원래부터 그랬소.”

이민호는 어떤 제도나 관습이 있다면 그 전에 그 제도나 관습을 형성하게 된 합리적인 이유와 구성원들의 합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 역대 왕조의 제도나 관습도 조선에서 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떤 제도나 관습이 있더라도 그것들이 성립하게 된 배경이나 변천 과정 같은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법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무게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왕은 서인 기준으로 지배층인 선비들 중의 제1 선비에 불과하고 남인 기준으로는 지배층의 지배자였다. 왕과 양반은 같은 지배층이므로 양반 가문의 상속법과 같아야 할 왕위의 승계법이 다르다는 것을 지금까지 이민호가 문제로 삼은 적이 없었다.

“전하께서는 왜 조선 왕실과 조선 양반 가문의 상속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셨습니까?”

“원래부터 둘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소. 왕위는 핏줄의 연결과 계속성이 더 중요하고, 양반은 신분을 유지하고 가문 전체의 경제력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상속제도가 달라진 것 같소.”

“그러니까 제 말씀은 상속법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께서 그 전부터 명확하게 인지하고 계셨냐는 뜻입니다. 궁금증을 갖고 그렇게 차이가 난 원인을 찾아본다거나,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거나 하는 사고와 행동이 있었느냐는 말입니다.”

“백작은 참 집요하오. 몰라도 아는 게 아니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요.”

“다릅니다.”

데카르트 백작이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민호가 잠시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 그로티우스가 설명했다.

네덜란드 법학자 그로티우스는 로테르담에서 칼뱅주의에 반대했다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아내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지금은 고산국 예조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의 몸값은 이민호가 네덜란드에 이미 지불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 백작의 말씀은 상속 규정의 차이에 따라 후대에 큰 차이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시입니다. 게르만족의 살리카법은 원래 토지 소유주에게 군역을 부과하려는 군사법이라서 조선 왕실보다는 오히려 조선 양반 가문의 상속법과 닮았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국왕전하께서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저번에 내가 두 분께 결정을 맡기지 않았소?”

“선택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가계도를 살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어차피 적자로 이어지는 직계 혈통은 중간에 끊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경우 선왕의 사촌 가문 등 방계에서 이을지, 선왕의 서자가 이을지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알았소. 그 지역에 맞추시오.”

데카르트가 표정 변화가 없는 데 비해 그로티우스는 아주 크게 놀랐다. 고산국의 왕위계승 관습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본가와 방계 왕가의 통일성을 기하기 어려워진다.

“그럼 핀란드 국왕 서자들의 계승권이 사라집니다. 단기간이겠지만 국왕전하의 다른 왕자님들로 핀란드 왕위가 이어질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소.”

“또한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모계의 영향권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핀란드 왕실이 시간이 흐를수록 고산국 본가와 멀어져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왕위승계로 인해 국가적 혼란이 오거나 외국이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하오. 그러니 덴마크나 기타 유럽 왕실의 상속법을 참조해서 비슷하게 만드시오. 방계 왕가가 고산국 본가에서 떨어져 나가더라도 할 수 없소. 핀란드 왕실은 앞으로도 영원히 핀란드의 왕실이오.”

데카르트 백작이 살짝 미소를 띠고 그로티우스는 이민호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두 사람이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고산국 관료 경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민호는 핀란드 국왕으로 등극할 석천이 오래도록 살면서 정실 자식들을 많이 낳길 기대했다. 사촌끼리 혼인할 수 있는 유럽 왕실과 달리 앞으로 고산국과의 통혼은 아예 불가능하므로, 핀란드 왕실은 혼인을 포함해 모든 것을 유럽에서 해결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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