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60 103. 명나라의 혼란 =========================================================================
연말에 핀란드 예비 국왕 부부가 핀란드와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한 다음 돌아왔다. 왕실 저녁식사 때 고석천이 왕비 내정자 쿨리키의 손을 꼭 잡은 채 순방 결과를 왕실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그 사이 내내 석천의 어머니 민정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핀란드에서는 새 수도 헬싱키와 항만, 철도, 도로 건설이 한창이었다. 강과 호수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봄가을에 진창으로 변하는 곳이 많아 대부분 난공사였으나 인력과 장비, 자재를 대규모로 투입해 차곡차곡 건설해나갔다. 석천 부부는 몇 군데 돌아보면서 핀란드 주민들의 열화 같은 지지를 확인한 다음 스웨덴으로 넘어갔다.
“구스타브 형님은 백성들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주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국왕 형님께서는 헬싱키 앞바다 스베아보르그 해상요새를 스웨덴에서 건설해주겠지만 가급적 빨리 핀란드에서 회수해 직접 운영하라고 제게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니?”
“조약을 내세워 거절했습니다. 구스타브 형님이 좋은 분인 것은 확실하지만 국익이 걸려 있는 문제니까요.”
“잘했다! 역시 내 아들이다. 한 번 빈대 붙기로 작정했으면 철저히 빨아먹어야 한다.”
석천 부부는 핀란드 국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유럽 여러 나라 군주들을 만났다. 그런데 석천이 입에 담는 군주들의 호칭이 덴마크의 크리스 삼촌, 스웨덴의 구스타브 형님, 차르 자형,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할아버지 등등이었다. 석천이 신생 핀란드의 예비 국왕 신분이기 전에 세계 최강대국인 고산국의 왕자이므로 외국 군주들에게 이런 호칭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다.
고산국 왕자와 공주들은 동기 형제자매가 워낙 많아서 어려서부터 친화력이 길러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본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졌고 아랫사람이라고 무시하는 법이 없어 어딜 가든 인기가 좋았다. 왕궁 후원에서 손수레를 끌며 일하는 정원사가 작은 어머니이고 음식 접시를 나르는 요리사가 큰 어머니이므로 직업을 갖고 남을 낮춰볼 수가 없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렀단 말이냐? 그건 너무 심한 것 같다.”
“저도 그렇게 부르고 나서 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실례한 걸까요, 아바마마?”
석천의 대답에 민정이 새파랗게 질려서 이민호를 바라봤다. 아들 석천이 황제 페르디난트 2세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바람에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핀란드를 침공하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는 듯했다.
아니면 이민호에게 버릇없다고 낙인찍혀 국왕 자격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 모양이었다. 이민호가 민정에게 걱정 말라고 씩 웃어 보인 다음 석천에게 대답했다.
“페르디난트 2세 황제가 나보다 한 살 어리거든. 쯧쯧! 평생 고생하더니 그 사이에 폭삭 늙었나 보구나. 그 인간 때문에 유럽에서 계속 전쟁 중이니 자업자득이지 뭐.”
“아! 제가 큰 실수를 했군요. 다음에 뵙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래. 건국 초기니까 더더욱 유럽의 군주들과 잘 지내도록 해라.”
신생 독립국인 핀란드가 주변국들과 분쟁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이민호는 핀란드가 영세 중립국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건국 초기부터 주변 강대국들과 충돌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주변국들이 핀란드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핀란드 뒤에 고산국이 있음을 각국 군주들이 명심할 것으로 믿었다.
“석천 형님 질문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발전한 나라 같던가요?”
외국에 자주 나가지 못하는 왕자와 공주들이 석천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납치혼, 약탈혼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공주들과 미혼 왕자들은 섣불리 외국에 나가지 못했다. 물론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면 그 지역은 당연히 초토화가 되겠지만,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안 나가는 것이었다.
덴마크 출신 요한나의 아들 석영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요즘 예조에서는 이집트를 독립시키되 고산국과 오스만 제국에 이중으로 신속하는 이중속령 개념의 이집트 왕국 건국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었다. 핀란드 국왕 후보에서 탈락한 석영이 핀란드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위치인 이집트 국왕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스만 제국 황제 무라트 4세는 별 이의를 달지 않았고 대재상부에서도 세금 납부만 계속된다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황제는 모후 쾨셈 술탄에게 간섭을 받으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제는 선황 무스타파 1세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의 남동생 이브라힘이 모두 정신병자라는 사실에, 그리고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르그레타 누님이 차르 자형하고 함께 다스리는 루스 차르국이 제일 나은 것 같다. 수도 모스크바가 나날이 번성하는 외에 철도를 따라 지방 도시들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거든. 겨울에 몹시 추운 것과 아무 데서나 곰이 불쑥 나타나는 것 빼고는 아주 좋아.”
“마르그레타 누님이 몹시 기뻐하셨겠어요.”
“당연하지. 핀란드 방면 병력을 빼서 남서쪽을 강화하겠대.”
핀란드의 독립을 가장 반기는 나라가 그 동쪽에 위치한 루스 차르국이었다. 동쪽 우랄 산맥부터는 고산국, 남동쪽은 토르구트, 북서쪽은 핀란드라는 우호국으로 둘러싸이게 됐으니 서쪽과 남서쪽 폴란드-리투아니아 방향만 집중해서 방어하면 안전하게 됐다. 남쪽 크림 칸국이나 노가이 칸국은 토르구트의 위세에 눌려 군사행동이라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핀란드 국왕으로 아직 즉위하지도 않은 석천 부부를 루스 차르국에서 국빈 대우해줬다고 한다. 17세기부터 무섭게 확장하는 러시아의 역사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이민호는 잠시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실제 역사보다 훨씬 안정됐기에 루스 차르국 백성들에게 나쁜 일은 절대 아니었다.
“오라버니! 유럽 다른 나라들은 어때요?”
“고산국 왕궁에서 살던 우리가 유럽 국가들을 보면 정말 지저분하고 한심하지. 그래도 우리나라를 보고 열심히 따라하려는 나라가 많더라. 조금 더 발전하면 유럽에 우리 백성들이 안심하고 여행갈 수 있겠어.”
공중위생 문제도 있고 특히 치안이 불안해 베네치아나 더블린 등 몇몇 도시를 빼고 유럽은 여행지로 인기가 없었다. 대신 가까운 명나라 복건성과 말이 잘 통하는 조선, 덥지만 이국적인 대월국과 발리 등이 인기가 높았다. 한때 인기 여행지였던 아유타야는 수시로 왕이 바뀌는 등 정정이 불안해 요즘은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나 고산국 영토가 워낙 넓다 보니 웬만큼 좋은 여행지는 다 국내 아니면 속령, 관계국들 영토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외국 여행이 아직도 탐험 수준으로 위험하므로 백성들은 되도록 안전한 국내에 머무르려 했다. 아마존 유역 열대우림에서 식물 표본 채집하기,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대야 타고 떨어지기,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백상어와 함께 수영하기, 호주 장영실 항에서 바다악어에게 손으로 먹이 주기, 겨울 바이칼 호에서 하는 얼음낚시 등이 재미있는 국내여행 상품으로 추천됐다.
“핀란드 사람들 대부분이 루터교 신자라던데, 혹시 네 신앙은 문제가 안 되겠더냐?”
“예, 아바마마. 주변국 군주들과 핀란드 귀족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두 가지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 대다수 백성들과 같은 종교를 갖는 편이 좋다는 쪽과, 백성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기만 하면 국왕은 종교에서 자유롭다는 의견입니다.”
고산국이 1600년 교황의 성지 순례를 지원할 때 호위 민정이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민정의 아들 석현도 꾸준히 성당에 다녔다.
“종교를 명분으로 전쟁을 하고 있는 유럽 국가 군주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신교도 왕비들은 가톨릭 신도인 국왕에게 시집가면서 남편을 따라 종교를 바꾸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외라면 헤드비히의 언니 안네 공주가 있다. 그녀는 나중에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가 되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에게 시집가면서 종교로 인해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그래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앤 왕비가 된 안네 공주는 아들 둘을 가톨릭 신도로 키우고 나중에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대충 가톨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교도 국가에 공주를 시집보낸 경우도 드물고, 시집가더라도 왕비가 된 공주들이 종교를 바꾸지 않으려 했다. 프랑스에서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에게 시집간 헨리에타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앙을 지켰고, 그래서 큰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냐?”
“신앙의 자유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일반 백성이 아닌 핀란드의 국왕이 될 몸입니다. 국왕의 종교 때문에 국가에 분열이 생기거나 백성들이 종교적 압박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꾸겠다고?”
“예. 하지만 제 평생 지녀온 신앙인데 제가 혼자 버리겠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서 교황 성하께 개종 허락을 받으려 합니다.”
“예전에는 신교도 국가에 국왕이나 영주로 가는 귀족들이 로마에 사절을 보내거나 편지로 허락을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네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현재 교황은 우르반 8세였다. 예술을 사랑하고 선교에 적극적이며 국제외교에서 중립적인 훌륭한 교황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가문 특유의 족벌정치를 구사해 동생과 조카들이 죄다 추기경에 올라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핀란드가 자원이 극히 빈약한데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위치 덕택에 백성들을 잘 먹여 살릴 수 있겠구나.”
“스웨덴과 나눠먹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핀란드가 땅은 조선보다 넓은데 자원이라곤 목재와 이탄밖에 없었다. 철, 구리와 아연 산출량이 국내 소요량을 맞추는 정도였고 농업생산성은 극히 낮은 편이다. 유럽에서 석탄이 전혀 나지 않는 나라는 이민호도 처음 봤다. 이탄(泥炭)은 전 국토의 3분의 1에서 채취할 수 있으므로 양은 매우 풍부한 편이지만 연소 효율이 낮고 이산화탄소 배출양이 높았다.
산업시설을 건설하려 해도 이를 움직일 동력자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석유는 한 방울도 안 나고 태양열과 풍력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울창한 삼림에서 채취한 바이오매스를 적극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랄산맥 너머 고산국 영토에 값싼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가 넘쳐나므로 기차에 싣고 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더 경제적인 전력원인 수력발전에 밀려 석유가 남아돌던 우랄산맥 동부 지역은 모처럼 수출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리보니아를 장악한 스웨덴은 루스 차르국의 적국이지만 핀란드는 중립이라 스웨덴과 루스 차르국의 중간에서 상당한 차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냉전 시대에도 핀란드는 소련과 유럽 중간에서 중개무역으로 편하게 배를 불렸다. 물론 무역에서 얻는 이익 일부를 스웨덴에 떼어주기로 조약 체결 당시에 약속이 돼 있었다.
“아바마마! 앞으로 학교 책걸상은 저렴하고 튼튼한 핀란드 목재로 만든 제품을 들이시지요. 헤헤!”
“국왕 즉위 전부터 영업질을 하는구나. 좋은 자세다.”
따로 산업이랄 것이 없는 핀란드이므로 목재와 가구, 제지산업을 1차 집중개발 산업으로 지정해놓았다. 고산국 임업정책은 지속 가능한 이용을 목표로 하기에 브루나이나 시베리아, 북미의 삼림은 남벌보다 보호에 치중하고 있었다. 인구가 폭증해 국내에서 가구 수요가 늘어나던 차에 핀란드의 가구산업은 고산국 내수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1629년 1월 지질연구소 연구원들이 북미서부 단층 전체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일대에 존재하는 산안드레아스 단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민호는 땅이 쩍 갈라진 듯한 풍경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얼어붙었다.
“이 단층 길이가 자그마치 1,300km나 된다고요?”
“예, 전하. 이 지도를 보시옵소서. 북쪽 일부가 바다에 잠겨 있으나 틀림없이 계속 연결된 단층입니다. 새나하와 새인천에 지진이 자주 발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북미 서해안 새나하와 새인천, 현대 지명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는 단층에 아주 가까운 위치였다. 수시로 지진이 일어나고 가끔 큰 지진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새나하와 새인천은 단층 서쪽에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새나하와 새인천이 바다에 잠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도 영화를 봤...... 아니오. 앞으로 몇백 년 동안은 괜찮을 것이오.”
실제 역사에서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리히터 규모 8.3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 동안 큰 화재가 발생해 도시민 3천 명이 죽고 도시가 거의 다 파괴됐다. <산안드레아스>라는 미국 재난영화에서 묘사하는 그런 파멸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
“물론 즉각적인 주민 소개와 도시 폐쇄는 불필요하겠지만 도시의 확장과 인구의 추가 유입을 금해야 할 듯하옵니다.”
“먼저 북미 서부 곳곳에 지진 관측소부터 세워야겠소. 자칫 국가의 명운이 달린 문제요. 그 와중에 지질학 연구의 일대 전기가 될 것이오.”
지진을 우려해 새나하와 새인천의 건물은 기초공사부터 다른 지역과 아예 달랐다. 백성들은 건물을 그렇게 단단하게 짓는 이유를 몰랐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위험을 경계해도 넘치지 않았다. 주방 취사연료로 저렴하고 편리한 도시가스를 공급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새목포와 그 남쪽은 어땠소?”
이민호가 지도에서 가리킨 곳은 현대 미국 샌디에이고와 바로 남쪽 멕시코 티후아나였다. 북태평양 항로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해 파나마 운하를 넘기 전, 며칠 잠깐 머물던 별궁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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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연결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