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42화 (891/1,000)

00942    102. 30년 전쟁  =========================================================================

여러 대륙에 흩어져 주둔하는 보병 사단과 기병 사단에서 기병대대를 한둘씩 차출해 원정군 예하 5개 독립여단에 1개 연대씩 배속시킨 것은 이미 몇 달 전 일이었다. 다만 이는 행정적 배속일 뿐, 덴마크가 직접 공격당하지 않는 동안 원래 주둔지에서 훈련을 계속해왔다.

오늘은 처음으로 원정군 기병부대 연합 훈련이 있는 날이었고, 이민호가 직접 고중 평야에 나가 친람했다. 5개 기병연대 8천여 기가 정연한 대열을 이루어 추수가 끝난 평원을 달리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나머지 비전투부대원들은 주둔지 축성과 방어 훈련을 실시했다.

“전진할 때 박력이 넘치고 퇴각할 때는 절도가 있군요. 역시 오 대감이 훈련시킨 기병부대는 역대 최강입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전하.”

임진왜변 때부터 드러내놓고 이민호를 도왔던 오응태와 그의 형제들은 고산국 군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응태는 기병 최고 지휘관, 그의 동생과 사촌동생들은 각자 육군과 해군에서 사단장과 함대 사령관을 역임했다.

문제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그들이 이미 나이가 많아 퇴역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응태의 경우 이미 국왕의 특명으로 정년을 5년이나 연장했다. 오응태는 남미에 가서도 포르투갈 노예 사냥꾼들을 국경 밖으로 축출하고 원주민들과 유럽인 농민들을 잘 다스려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전하! 장갑차가 대량 생산돼야 기병을 기계화 보병으로 더욱 많이 전환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조만간 기병이 사라질 변혁기에 기병 대장을 맡게 돼 감회가 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 대감. 아직은 기병이 다양한 지형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 전술적 효용성이 더 높습니다. 장갑차와 달리 기병은 시베리아 타이가 지대나 남미의 밀림에서도 활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병의 후계는 기계화 보병이 아니라 전차와 직승기 강습병이 될 것입니다.”

“예? 직승기는 항공대 소속 아닙니까?”

“지금이야 그렇지만 항공대에서 시험 운용 중인 강습부대는 직승기와 더불어 육군으로 전환 배치할 예정입니다.”

“항공대의 역할을 전문화하실 모양이군요.”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공군에 배속할 수도 있지만 역할에 따른 효율적인 편제가 필요했다. 현대에는 공격헬기가 대체로 육군 소속이었다. 심지어 구소련의 경우 군구마다 전투기와 지상공격기를 보유한 전선항공군이 속해 있으면서 방공과 근접 지원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여진족 출신 기병들이 승진에 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평이 요즘도 꾸준히 들리던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여진 기병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 대감이 여진족을 차별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전하! 여진족이 고산국 군대에서 전하께 봉사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옛날식으로 말 타고 달릴 뿐입니다. 기병대원이나 기병 중대장으로서 여진족은 최고입니다. 돌격할 때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대대 참모나 대대장 이상 직책을 맡기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상으로 승진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갈 무과 급제자들보다는 완전한 고산국 백성인 여진족 출신이 기병부대의 간부로 남는 편이 좋았다. 아무리 고산국이 조선에서 나왔고 혈통도 같다지만 고산국 기병부대에서 근무하는 조선 무과 급제자들은 법적으로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감동과 감불처럼 시간이 지나면 교육을 통해 당연히 나아질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게 문젭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산국식 교육을 받은 여진족 젊은이들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전술 적응도가 확연히 떨어집니다. 정식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한 여진족 장교가 조선 출신 무과급제자들보다 실전에서 오히려 못한 게 현실입니다.”

여진족의 승마술과 저돌성은 누구나 높이 평가하기에 이들을 기병 중대장까지 빠르게 승진시킬 수 있었다. 유목민들이 다 그렇듯 정찰과 기습작전에도 능했고 혹독한 작전환경에서 버틸 적응력과 인내력도 훌륭했다.

그러나 여진족의 생활상 때문인지 아무래도 몸을 쓰는 데만 능했고, 머리 쓰는 일은 항상 뒷전이었다. 그리고 뜻밖에 말 타고 활과 총을 쏘는 능력도 조선 출신에 비해 뒤졌다.

“오 대감! 말은 여진족이 더 잘 타지 않습니까? 여진족과 몽골족은 말 위에서도 땅에서와 똑같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말 타고 활이나 총을 쏘는 것은 조선 출신이 훨씬 낫습니다. 여진족과 몽골족은 땅에서도 활이나 총을 못 쏴서 문제입니다.”

“여진족과 몽골족은 대표적인 기마궁수들인데 활을 못 쏜다니, 이해하기 어렵군요. 음. 감동과 감불보다 계복이 확실히 총과 활을 잘 쏘긴 했지요.”

이민호는 사르후에서 후금과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땅에 무수히 꽂힌 화살을 보고 이민호는 기마병들을 상대하는 전쟁터에서 당연한 풍경이라 여겼지만 이는 여진족의 기사 능력이 조선 기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여진족 일만 명 사이에서 정확히 추장을 골라 저격한 신립이나 임진왜변 중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조선 기병은 조준사격으로 충분한 명중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여진족이나 몽골족처럼 명중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일제사격을 할 필요가 적었다.

“무과 기사 과목에서 응시자는 말을 달리며 30보 간격으로 줄줄이 세워진 과녁이나 인형을 향해 화살 다섯 발을 연속 쏩니다. 시관(試官)들은 과녁 옆에 깃발을 들고 서거나 앉아 있습니다.”

“몇 번 봤습니다.”

시험 과목과 방법은 시기마다 달라서 조선 초기, 특히 세종 때는 기사 과목이 훨씬 어려웠다. 진로 좌우에 과녁 5개씩 5보 간격으로 세운 다음 응시자가 좌우를 번갈아 5발을 쏜 다음, 반대 방향으로 말을 달려 다시 번갈아 5발을 쏴야 했다. 후대로 갈수록 더 많은 인원을 뽑기 위해 사거리를 줄이고 과락 점수를 낮추는 것을 비롯해 무과 시험이 쉬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여진족이 똑같은 시험을 본다면 시관이 과녁 옆에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한 정도가 아니라 첫 응시자가 다섯 발을 다 쏘기 전에 시관 한두 명이 맞아 죽기 때문입니다. 조선 응시자가 쏜다면 비록 명중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과녁 가까운 곳에 화살이 떨어집니다.”

“으음. 그렇군요.”

“여진족에게는 뛰면서 활을 쏘는 보사(步射)가 아니라 가만히 서서 쏘는 입사(立射)를 허용해줍니다. 거리도 230보나 120보가 아닌 30보 이하로 대폭 줄여줍니다. 기마술을 높이 사서 여진족과 몽골족 출신에게만 이런 특례를 베풉니다만, 그래도 안 맞습니다. 활뿐만 아니라 총도 비슷합니다.”

“여진족과 몽골족이 말을 잘 탄다지만 서서 쏴서 안 맞으니 말에서 쏴도 안 맞는 거군요. 기마민족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봅니다.”

“물론 뛰어난 승마기술에서 비롯된 마상창술이나 검술은 훌륭합니다. 저돌성과 환경 적응력도 높이 사야겠지요. 그러나 전시에 유용한 기병을 택하라면, 특히 총기 위주로 운용되는 유럽 군대를 상대하라면 저는 조선 기병을 택하겠습니다.”

이민호는 국제경기에서 한국 대표선수들이 사격과 양궁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것을 기억했다. 연습량이나 공정한 선발 방법 말고도 한국인이 사격과 양궁에 재질이 있긴 있는 것 같았다.

여진족의 장점인 저돌성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양날의 검이었다. 이 시기 명나라 군대에는 여러 나라 출신 무인들이 고위 무관의 가정(家丁)으로서 복무했는데, 여진족과 몽골족 가정들은 너무 용감해서 탈이었다. 적진 깊숙이 용감하게 돌격하는 대신 살아 돌아올 확률이 적었기 때문이다. <서애집>에 언급됐듯이 조선 출신 가정들은 주변 상황을 잘 판단해 생존 능력이 높은 탓에 명나라 무장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동력은 여진족이 낫겠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군장이나 종인이 따라붙을 필요가 없어서 같은 시간에 조선 기병보다 두 배 반 거리를 달립니다. 같은 장비를 휴대한 고산국 일반 기병보다 확실히 빠르고 행군 일수가 늘어날수록 그 차이가 더욱 벌어집니다.”

“발사무기의 명중률 못지않게 기동 속도가 전쟁에서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진족 기병을 우대합니다만, 대규모 총격전 상황에서 쓰기에 불안하고 대규모 기병 지휘관으로 임명하기에는 더더욱 부족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오응태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기병 지휘관의 조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여진족 장교들을 육성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조선 무과 급제자들이 고산국에 더욱 많이 정착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하. 단순히 덴마크를 지키는 일이라면 보병 1개 연대만 보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오 대감께서 당연히 가질 만한 의문입니다만 외국 영토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나라를 지키려면 군대의 실전 감각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파병 규모가 커질수록 병사들보다는 부사관과 장교들에게 더욱 좋은 경험이 되겠지요.”

“아하! 실전을 겪지 못하더라도 파병하는 것만으로도 지휘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지만 좋은 기회로군요.”

유럽 파병을 앞두고 편제 변경과 부대 이동만으로 지휘관들은 잠도 못 자고 머리를 싸매야 할 정도로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현재는 훈련만 진행하는데도 무엇이든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었고, 그래서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는 더욱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것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장교들에게는 실제 전투 경험보다 이런 준비과정이 성장에 더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민호의 지론이었다. 혹시나 유럽에 군대를 파병할 필요가 없어지더라도 이번 준비 과정을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1625년 11월,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병참부대 선발대가 새강릉 군항에서 수송함에 타는 날 수많은 환송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문명국에서 언급하기 부끄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환송회에 참가한 자가 프랑스 출신 여자에게 태극기 깃대를 휘둘러 두들겨 팼다고?”

“예. 범인은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유럽인들 때문에 고산국 군인들이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폭행을 가했어요. 태극기를 범죄 도구로 사용한 탓에 일단 국사범으로 긴급 체포했어요.”

정보국장 미카가 새강릉에서 발행된 일간신문 1면의 인쇄전신기 용지를 이민호 앞에 내밀었다. 왕가의 상징이었다가 자연스럽게 고산국 국기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태극기가 흑백이긴 하나 분명히 피에 젖어 있었다. 홍익인간이라는 국가이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극기의 모습이었다.

“역시 외국에 파병하는 것에 반감이 심하게 드는 모양이야. 가해자가 군인 가족이겠지? 태극기 깃대를 몽둥이처럼 휘두른 것은 감정이 격앙돼서 한 실수일 테니 국사범 혐의는 벗겨줘. 대신 인종차별과 폭행죄로 기소 유지하되 반드시 실형을 선고하라는 뜻을 재판부에 전해줘.”

“피해자가 군인 가족이에요. 가해자는 군인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심지어 그 지방 민병대나 예비군에 소속된 적도 없어요.”

“뭐야? 미친!”

“그리고 그 부인은 임신 6개월이었어요. 환송회에 참가한 유럽 출신 이민자들은 많았지만 피해자는 몇 안 되는 젊은 여자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임신한 부인이었어요.”

“그럼 유산한 거야? 맙소사!”

고산국에서 조선 출신자들이 상대적 약자인 유럽 이민자들을 핍박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 동안 강력한 인종차별 금지 정책으로 인해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번 해외파병을 계기로 전쟁을 일삼는 유럽인들에 대한 분노와 경멸감이 공공연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범인은 그런 분위기를 타고 처벌이 약하거나 붙잡히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약자를 공격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은 유럽 출신자를 공격하더라도 건장한 남자를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없고 항상 여자나 어린이를 목표로 삼았다. 현대 러시아의 스킨헤드족이 동양인이나 동성애자에게 집단 린치를 가할 때 허약한 남자나 여자만 대상이 되는 것과 같았다.

“군인이 해외 파병 중에 국가가 그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다니, 국가 지도자인 국왕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내 이름으로 사과 전문을 부인과 남편에게 먼저 보내고, 내가 직접 문병하러 가겠다. 남편 소속부대에 명령해 당장 소집 해제시키고 부인이 입원한 병원으로 보내줘.”

“대대장이 너무 참담하고 미안해서 그 군인에게 부인의 사고 소식을 차마 통보해주지 못하고 있대요. 그리고 수송함이 대서양을 건너고 있어서 중간에 돌려보낼 수 없대요.”

“주변 해군 함정이나 상선을 불러서 인계하면 되잖아! 부끄럽더라도 지휘관으로서 임무를 다하라고 해! 그 순간만 모면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답답해진 이민호가 오랜만에 큰소리를 질렀다. 고지식한 대대장을 직위해제하려다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꾹 참았다. 지휘관들이 군령을 지나치게 신성시한 나머지 다른 문제를 살피지 못하는 고질적인 병폐가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번 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사범 혐의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국사범이지! 그리고 배가 나와서 임신한 것이 명백해 보이는 여자의 신체를 공격해 유산시키면 살인죄가 적용되지?”

“예. 유산이 될 줄 몰랐다고 가해자가 주장하더라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태아 살인죄에 저촉돼요. 임신했는지 판별하기 어렵다 해도 유산하면 최소한 폭행치사죄나 과실치사죄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워요.”

“재판부에서 살인죄로 사형을 언도하겠지만 국사범에 대한 처벌은 단 한 시간도 미룰 수 없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까지 매일 아침 30대씩 공개적으로 장형을 집행하라고 해. 장형 집행시 하루 열 대 제한이나 치료를 위한 사흘 간격 제한은 이번 사건에 한해 특명으로 배제한다.”

웬만하면 법대로 처리하는 게 맞지만 이번 사건은 매우 특별했다. 그 동안 인구가 충분히 늘어 앞으로 이민이 줄어드는 것은 큰 상관이 없으나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동요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이민 2세대에 접어든 북미에서 유럽 이민자들은 고산국에 이미 완전히 동화됐으나 남을 깔보고 심리적으로 공격하는 자들이 그 핑계로 인종이나 출신국을 따져서 문제였다.

“그러다 사형 집행 전에 죽어요.”

“본보기로 죽으라는 거야. 그런 자들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처벌을 가하는데도 기회만 생기면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파병 군인의 임신한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자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범인은 국사범, 태아 살인죄, 인종차별죄라는 세 가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앞의 두 가지 죄목만으로 그가 살아날 길은 없었다. 이민호는 놀랍도록 역겨운 이 범인이 재판 과정을 마치고 곱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미카가 반대하거나, 나중에 형법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교육과 경찰력 증원을 통해 철저히 억눌러온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의 공격 성향이 기회만 생기면 이렇게 분출되곤 했다.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이런 자들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자제하지 못한다면 크게 손해를 보고 만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국초부터 꾸준히 노력해왔다. 물론 이런 자들은 인구 중 일정 비율로 존재하므로 영원히 이어질 사회적 과제라고 볼 수 있었다.

범인은 사흘 연속 곤장을 맞은 뒤에 죽었고, 이 일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비행기를 타고 새강릉에 도착한 이민호가 군 병원에서 피해자 부부를 직접 만나 사과와 위로를 한 바로 그 날이었다. 북미 여대공 비올레타가 그 동안 피해자 여성을 돌봐주어서 이민호 입장에서 무척 고마웠다.

============================ 작품 후기 ============================

1625년을 마쳤습니다. 다음 회에 덴마크에 갑니다.

연재가 자꾸 늦춰져서 죄송합니다만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며칠 놀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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