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40 102. 30년 전쟁 =========================================================================
원정군 증원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이 수시로 움직인 탓에 고산국 원정군이 유럽에 파병된다는 소문이 널리 국외까지 퍼졌다. 이 소식을 들은 여러 나라에서 고산국 왕도에 사절을 파견했다.
가장 먼저 고위급 사절을 파견한 나라는 무과급제자들 다수가 고산국에 복무중인 조선이었다. 전직 병조판서, 현직 팔도도원수 장만이 고산국 왕도를 방문한 것은 조금 의외였으나, 원래 문관 출신으로서 외교관 직무도 훌륭히 수행하던 사람이었다.
“고산국 기병부대에서 늠료를 받는 조선 무과급제자들이 대거 원정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군인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에 가장 앞장서는 사람들이지요. 평화로운 조선의 무관으로서 아주 좋은 참전 경험이 될 것이오.”
조선 출신 무과급제자, 혹은 전직 군관들이 조선에서 관직을 얻기 어려우면 고산국에서 기병대 장교로 근무하다가 아예 정착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그러나 눌러앉은 자들 중에서 다시 절반 정도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도 국적이 조선으로 돼 있었다. 고산국 기병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이들의 활약과 상소로 인해 조선국 군대도 제법 근대화되는 추세였다.
“국왕전하! 황공하오나 그들은 비록 고산국에서 장령으로 복무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선의 무관들입니다.”
“그럼 조선 출신 장교들의 원정 참가를 금지시킬까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먼 나라지만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차에 많이 배우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신다는 조선국 주상전하의 어지를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장도에 오를 조선 무과급제자들을 왕명에 따라 격려할 시간을 주실 수 없는지요.”
“이번 금요일 오후, 사흘 후에 고산국 왕명으로 조선 무과급제자들을 소집하도록 하겠소.”
국초부터 꾸준히 채용한 조선 무과급제자들은 여진족 출신과 함께 고산국 기병부대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3년에 겨우 30명 정도만 뽑는 식년무과가 아닌 별시무과에서 때에 따라 수천 명 단위로 무과급제자를 뽑기에 인원은 충분한 편이었다. 조선 조정에서도 무과급제자들이 관직을 얻지 못해 불평분자로 남느니 차라리 고산국에서 근무하라고 권할 정도였다.
장갑차가 실전 배치되고도 기병이 활동할 공간이 여전히 많은데 고산국 본토 출신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주로 기차나 승합차를 타고 말이 끄는 거라곤 기껏 마차를 탄 경험밖에 없어 새로 기병으로 양성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조선에서는 열두어 살짜리가 양반 다리로 말안장에 거꾸로 앉아 말을 부린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민호는 몹시 부러워했다.
조선 무과급제자들은 현재 고산국 본토와 호주, 시베리아뿐만 아니라 멀리 북미와 남미에서도 기병 장교로 복무했다. 기본 소득과 봉급 외에 격오지 근무수당을 받아 몇 년 꼬박 저축하면 조선에 돌아가서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고산국에서 소령 이상 계급으로 전역해서 조선에 돌아가면 정식 첨사나 만호는 못 되더라도 그 지역 유지들에게 배정되는 만호나 간혹 연변 수령을 제수받는 경우도 생겼다. 연변 수령이란 비변사나 병조의 인사 제도를 통하지 않고 조선 국왕이 직접 무관을 선발해 남해안이나 북쪽 지방 고을들 중 일부에 임명하는 문관직이다.
“감사합니다, 국왕전하. 여기에 더해 젊은 현직 무관들 몇 십 명을 관전무관으로 대동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용은 병조가 아닌 내수사에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만큼 조선국 주상전하의 관심이 크옵니다.”
“조선국에서 머나먼 외국 일에도 관심을 두시니 나라의 앞날이 밝소.”
이민호 입장에서는 조선에 부패하고 무능한 국왕이 줄줄이 이어지고 신하들이 당파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현 국왕은 매우 똑똑한 편이었고 여러 당파에서 고루 뽑힌 신하들이 최소한 기본은 했기 때문이다. 공주 지은이 조선국왕을 잘 보필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지은이 낳은 원자는 잘 크고 있었다. 이민호는 별 생각이 없지만 고산국과 조선 백성들은 두 나라가 같은 핏줄로 이어진다며 기뻐했다. 이렇게 돼서 조선에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섣불리 합병을 시도하기 어려워졌다.
조선에 이어 명나라에서도 문관과 무장, 환관을 비롯해 100여 명으로 이뤄진 참관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서는 무스타파 1세가 퇴위한 다음 새로 즉위한 무라트 4세의 이름으로 참관단을 고산국 왕도에 파견했다. 이어 이집트에서도 옥남이 청년 장교로 이뤄진 참관단을 파견해도 좋은지 물었다. 아프리카 왕국에서도 소식을 듣고 왕자들을 중심으로 고산국 왕도에 대규모 참관단을 보냈다.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왔군. 그런데 독일에서 언제 전쟁을 시작해?”
“아직도 서로 대치중입니다, 도련님.”
“전쟁이 없는데도 국방예산만 무지막지하게 들어가고 있어. 참관단이 우리 왕도로 몰려드는 바람에 접대비도 늘어나게 생겼어.”
“요즘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주변국들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대원수 계복이 이민호에게 국제정세를 물었다. 군 소속 정보기관이 따로 없어서 필요할 때마다 국왕 직할 정보국에 매번 문의하는 식으로 정보를 습득했다.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군대 조직이 적성국 외의 해외 군사정보를 수집한다는 발상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대서양 및 태평양 탐사전단과 특전대를 묶고 정보국 해외 분야 인원 일부를 파견해 군 소속 정보부대를 창설할 생각은 예전에 해두었다. 후대에 군부로부터 왕권을 지키기 위해 기무부대 창설도 필요할 듯했다.
“오스만 제국의 무라트 4세가, 물론 모후 쾨셈 술탄이나 친척들이 결정했겠지만 무굴제국 자한기르와 동맹을 맺는다더군. 우즈벡에서도 동맹에 가담할 것 같아.”
“세 방향에서 페르시아를 협공하겠다는 전략인가본데 실현 가능성이 의문입니다. 무라트 4세가 어려서 아직 실권이 쥐어진 것도 아니고 제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스만 제국보다는 무굴제국에서 보다 적극적이야.”
물론 사파비 왕조에서도 가만히 앉아서 고립을 자초하지 않았다. 아바스 1세는 유럽 여러 나라에 사절을 파견하고 우즈벡의 배후에 위치한 루스 차르국과 카자흐 칸국, 그리고 에스파냐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고산국 왕도에도 페르시아 외교관들이 수시로 방문했지만 동맹 요청이 아니라 지금처럼 계속 중립을 지킬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잉글랜드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에 양다리를 걸쳤다.
페르시아는 전통적으로 무굴제국과 동맹을 맺고 호라산 지역을 노리는 우즈벡을 견제했었다. 무굴제국 황제 후마윤이 제위를 되찾도록 도와준 아바스 1세의 할아버지 타흐마스프에게 대가로 준 것이 아프가니스탄 남부 도시 칸다하르였다.
그러나 후마윤의 계승자 악바르가 1590년 칸다하르를 점령하면서 두 나라 사이가 나빠졌다. 1620년에는 페르시아에서 파견한 대사가 무굴제국 황제 자한기르에게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인사를 거부함으로써 전쟁이 터졌고, 1622년 페르시아가 칸다하르를 탈환했다. 이 동네도 나름대로 복잡하지만 이민호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전쟁은 물론, 페르시아와 무굴제국의 싸움에도 말려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계복이 넌 왜 왕실 가족회의에 참가한 거야?”
“도련님께 놀러왔는데 마침 회의 중인 거죠. 원정군 사령관이라서 요즘 할 일이 별로 없어요.”
“가족회의에 참가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마음대로 해라.”
군권을 임시로 감동에게 맡기고 북미 새동래에서 원정군을 지원하기 위한 후방 사령부를 감불이 지휘하도록 했다. 덴마크-노르웨이 군대가 국경을 벗어난 순간 바로 전쟁이 벌어질 줄 알고 부랴부랴 원정군을 준비했는데, 독일은 아직 조용했다. 덕택에 계복은 왕궁에서 포도나 까먹고 앉아 있었다.
“아바마마! 영명한 군주로 이름 높던 샤 아바스가 장남을 의심해서 죽이고 차남은 눈이 멀게 만들었답니다. 페르시아가 빠른 속도로 몰락할까 걱정입니다.”
“사람은 늙으면 욕심만 많아지나 봐. 걱정 마라, 세자야. 이래서 임기가 정해지는 편이 좋은 거야. 내가 퇴위하기 전에 권력을 세자에게 차근차근 이양해주마.”
“황공하옵니다, 아바마마.”
혜영이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세자 개똥이가 어려운 말을 해줬다. 아바스 1세 자체가 외부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우즈벡이라는 강적들, 내부에서는 궁중의 온갖 권모술수와 계략, 배신과 반역음모 속에서 제위를 지켜온 외로운 사람이었다. 샤 아바스가 한때 대제 소리를 들었으나 늙어가면서 의심만 늘어나는 것 같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이민호나 왕실 식구들이 아는 것과 조금 달랐다. 장남은 부친을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고 의심받았으며, 차남은 아바스 1세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지지자들로부터 미리 즉위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으며 함께 기뻐했다가 벌을 받았다. 1627년에는 마지막 남은 막내왕자마저 애꾸로 만들어 투옥하고 제위는 조카에게 돌아가게 만든다.
“저번 교회 주차 문제 말이야. 감찰 결과가 나왔나?”
“여기 있어요, 주인님. 몇 달 동안 확실히 조사했는데 상부나 외부에서 압력을 행사한 증거는 없어요.”
정보국장 미카가 내민 감찰국의 조사 결과는 조금 의외였다. 왕도 경찰국 소속 동구 경찰서 교통과장이 문제가 된 교회에 도로를 주차장으로 전용하는 특혜를 줬다는 결론이 났다. 그런데 교통과장은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 독실한 불교도였다.
“종교적 관용이라니, 아주 좋은 말이야. 세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래?”
“타 종교에 배타적인 신앙인들에게 실로 훌륭한 모범입니다. 그렇지만 종교적 관용이 법보다 우선한다면 공직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불교와 개신교 쪽에서 종교를 탄압한다고 말이 많겠군. 처벌 문제는 내가 주도하겠다. 저항하려면 하라지.”
고산국은 건국 초부터 다양한 종교를 지원해주면서도 의도적으로 종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특정 종교에 호의를 베풀면 나머지 종교인들이 섭섭함을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산국 왕실은 백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에 특정 종교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거나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든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미카! 그 교회 담임목사를 해임하라고 신교도 연맹에 통보해. 장로교라면 왕명으로 해임한다. 그리고 그 교회 주차장을 10년 동안 폐쇄하고 신도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해. 경찰을 보내 매일 감시하고 불법 주차로 3회 적발되면 운전면허 취소에 폐차시키고. 그 동안 자그마한 특권을 누리면서 우쭐했겠지.”
“경찰 간부들에게는 어떤 처분을 내리시겠어요?”
“교통과장은 파면에 처하고, 상급자와 차상급자인 동구 경찰서장과 왕도 경찰국장은 일 계급 강등에 직위해제다. 그 동안 민원 들어온 것을 충분히 알고도 무시했을 거야. 알았든 몰랐든 직무유기지. 그리고 상관의 불법행위를 상부기관이나 감찰국에 보고하지 않은 동구 경찰서 교통과 직원 전부 3개월 감봉 처분이다. 내부 고발자로서 익명 투고라도 했었어야지.”
주차 문제라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사소한 사안이었지만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왕법을 무시한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승용차 대중화 시대를 열면서 교통안전과 법규 준수를 강조하는 왕실과 정부 입장에서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고산국에서는 왕실 혹은 공익을 위한 내부 고발자에게 공무원의 성실의무와 품위유지 의무, 직무상 기밀누설죄 등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 고발이 쉽지 않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곳이 경찰이나 군 등 명예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조직이었다. 현대 국가에서도 내부 고발자가 이로 인한 특진이나 포상 등을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조직의 적으로 낙인 찍혀 따돌림 받거나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고산국이나 현대 국가나 공히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조직원들이 불법임을 알고도 눈 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흔했다. 바로 여기서 부패가 자리 잡고 세금이 줄줄 샌다. 이번 사건에서 뇌물이 오간 증거는 없었지만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벌백계하기로 결정했다.
============================ 작품 후기 ============================
1625년 5월에 덴마크군이 독일 국경을 넘었는데도 그 해에 전쟁이 없습니다. 다음, 혹은 다다음 회에 1626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