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38 102. 30년 전쟁 =========================================================================
에스파냐 외교관들이 돌아가고 나서 5월 초에 덴마크-노르웨이 군대가 본격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영토로 진군했다. 자리가 빈 사교령에 크리스티안 4세의 아들을 임명해달라는 청원을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매몰차게 거부한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니더작센 지역에 대한 영토적 야심, 1621년부터 지배권에 들어온 함부르크에 대한 가톨릭군의 위협 제거가 실제 참전 이유였다.
북유럽의 신교도 국가들과 프랑스가 구성한 반 합스부르크 동맹은 이때 제대로 힘을 모으지 못했다. 프랑스는 위그노 반란을 진압하느라 외부에 눈을 돌릴 새가 없었고 네덜란드는 남부 주들에서 증강 중인 에스파냐 군대에 발목이 잡혔다. 병력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던 스웨덴마저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전쟁을 하고 있어서 참전하지 못했고, 브란덴부르크와 작센 등 신교도 영방들은 그저 양쪽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나마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군대를 보내 크리스티안 4세를 지원해주기로 해서 군세를 보강할 수 있었다. 니스데일 백작 겸 맥스웰 영주인 로버트 맥스웰이 약 13,700명의 스코틀랜드 군대를, 찰스 모건이 약 6천 명의 잉글랜드 군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덴마크군 주력은 이미 국경을 넘은 이후라 세력을 합하지 못하고 분산됐다.
“신의 자비에 의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국왕이며 신앙의 수호자 등등이신 찰스 1세 폐하께서 고산국 국왕전하께 친서를 교부하고자 합니다. 지난 3월 말에 엄숙히 거행된 제임스 6세 겸 제임스 1세 선왕폐하의 장례식에 조문사절단을 파견해주시고, 찰스 1세 국왕폐하의 즉위식에 축하사절단과 선물을 보내주신 후의에 깊이 감사를 올립니다.”
“특사로 온 버킹엄 공작의 방문을 환영하오. 경고하건대, 내 후궁이나 공주, 호위들을 유혹하지 마시오. 왕자나 대신들도 유혹하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국왕전하. 저는 한 사람에게만 충성과 사랑을 바칩니다.”
신임 잉글랜드 국왕의 특사로서 고산국 왕궁을 방문한 버킹엄 공작 조지 빌러즈가 상큼한 표정으로 웃었다. 대전에 입시한 대신들과 호위 등 고산국의 모든 남녀 신하들이 버킹엄 공작의 날씬하게 쭉 뻗은 다리를 힐끗거렸다.
은색으로 빛나는 의복과 기저귀처럼 부풀어 오른 반바지, 하이힐에 스타킹으로 각선미를 강조한 것은 이 시대 유럽 왕족이나 고위 귀족 남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복장과 같았다. 그러나 버킹엄 공작은 에스파냐와 프랑스 왕족 혹은 귀족 남성들처럼 얼굴에 허연 분칠을 하고 분홍색 볼터치를 하거나 입술에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애교점을 찍는 짓은 하지 않았다. 다만 왼쪽 무릎 바로 아래에 섹시 포인트로 검은색 밴드를 둘러서 이민호에게 직캠으로 뜬 한국의 어느 걸 그룹 멤버를 연상시켰다. 오랜만에 한국이 생각난 이민호는 아주 잠시 회한에 젖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젊어서 ‘천사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버킹엄 공작은 선왕 제임스 1세의 총신으로서 그의 연인이었다는 의혹을 달고 살았다. 남녀노소를 전혀 가리지 않고 커플링이 된다는 점에서 잉글랜드 왕실과 귀족 사회는 이민호에게 참 신기한 구석이 있는 곳이었다. 버킹엄 공작이 영화 <삼총사>에서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상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일랜드는 국왕 칭호에서 이만 빼지 그러시오?”
“하하! 국왕 칭호의 변경 문제는 왕실과 의회의 승인을 받기 어려워서 말입니다.”
물론 국왕 칭호 문제는 이민호도 괜히 해본 소리에 불과했다. 백년전쟁에서 패한지 오래임에도 결코 프랑스 국왕 칭호를 포기하지 않은 잉글랜드 왕실이 얼마 전까지 지배했던 아일랜드의 국왕 칭호를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친서를 읽어봤소.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를 위해 참전했으니 나더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군대에 군자금이나 병참지원을 해달라는 소리요?”
“그렇습니다, 국왕전하. 찰스 1세 국왕폐하와 크리스티안 4세 폐하, 팔츠 선제후와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서로 피로 이어져 이미 한 가문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민호가 옥좌 오른쪽에 앉은 아이슬란드 여왕 헤드비히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제 특별기로 날아온 헤드비히와 따스한 눈길을 교환한 다음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왼쪽에 앉은 북미 여대공 비올레타에게도 애정표현을 반복했다.
“곤란하게도 현재 잉글랜드는 아국의 우방인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같은 반 합스부르크 동맹인 프랑스와도 교전 중이오. 고산국에서 잉글랜드를 선뜻 도와주기 어렵다는 뜻이오.”
“지금은 반대로 리슐리외 추기경을 도와 위그노 반란을 진압하라고 전함 7척을 프랑스에 보냈습니다. 같은 신교도를 공격한다고 의회의 반발이 심해 내년에는 다시 위그노 편을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적과 동맹이 수시로 바뀌는구려. 덴마크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군대가 도착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덴마크-노르웨이 군이 이미 출전해서 실전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소.”
어차피 아쉬운 쪽은 잉글랜드였다. 잉글랜드는 동시에 세 곳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인도에 쏟아 붓고 있는 병력과 자금도 만만치 않았다. 잉글랜드 왕실은 수십 년째 적자와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잉글랜드 입장에서 제임스 1세의 사위인 팔츠 선제후를 돕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군대는 오랜 실전 경험을 쌓은 강군입니다, 전하. 크리스티안 4세 폐하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군인들이 그 동안 북방의 여러 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한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런데 연대장, 아니 대령들이 맥스웰 장군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소.”
“험! 그 문제 때문에 스코틀랜드 연대들을 덴마크-노르웨이 여단들에 분산 배속할 예정입니다.”
이 시대에 연대는 동일한 병과로 구성되는 가장 큰 제대이면서, 같은 지역에서 징병된 자들로 구성된 부대라는 특징이 남아있었다. 연대 지휘관인 대령도 대체로 같은 지역 출신 귀족이라 부대 장악력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원정군의 지휘관인 니스데일 백작 겸 맥스웰 영주인 로버트 맥스웰은 가톨릭인 반면 영주인 대령들은 장로교라서 지휘계통이 문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 신자인 맥스웰 장군을 원정군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은 국왕 찰스 1세가 친 가톨릭 성향이 강해 신교도들을 불신한 탓이었다. 찰스 1세는 왕비 간택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물의를 빚어 신교도들에게서 반발을 샀다. 왕비 후보를 가톨릭을 신봉하는 합스부르크 가문, 특히 에스파냐 왕실에서 찾다가 역시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 공주 앙리에트 마리, 즉 루이 13세의 여동생 헨리에타 마리아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이번 6월에 결혼식을 올리더라도 왕비의 신앙 문제 때문에 왕비의 대관식을 겸하지 못하게 됐다.
물론 왕실간의 결혼 문제는 국가간 동맹과 깊이 연관된다. 잉글랜드가 최근 에스파냐와 화해 및 동맹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프랑스와 국혼을 추진한 것도 마찬가지 목적이 숨어있었다. 그런데 찰스 1세가 왕세자 시절에 함께 에스파냐로 건너갔다가 집요한 방해공작을 펼쳐 결국 파혼을 시킨 자가 바로 버킹엄 공작이었다.
“그럼 덴마크 군에게서 보급품을 나눠받으면 되겠소, 그려.”
“국왕전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에스파냐에 부채 탕감과 함께 2억 원을 지급했다고 들었습니다. 신교도 국가들에게도 어느 정도 지원해줘야 균형이 맞지 않겠습니까?”
“영토 매매 대금일 뿐이오.”
“에스파냐와 달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고산국에 팔 해외 영토도 없습니다. 고산국에서 혹시 셰틀랜드에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오크니 백작이 감금된 이후 스코틀랜드 국왕의 직속 영지로 편입됐습니다.”
“그래서요?”
“예전에는 파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 덴마크를 잇는 직선 항로 중간에 셰틀랜드 제도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북동쪽, 노르웨이 베르겐의 서쪽에 위치한 섬들이었다. 미래를 위해 셰틀랜드를 매입하면 좋겠고 잉글랜드 특사도 판매 의향을 내보였지만 이민호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척했다.
셰틀랜드는 14세기까지 노르웨이 영토였으며 주민들은 전원 노르웨이 바이킹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덴마크와 동군연합이 되고, 크리스티안 1세의 딸 마가렛 공주가 스코틀랜드 제임스 3세에게 시집가면서 지참금의 담보로 스코틀랜드에 넘어갔다. 크리스티안 1세가 스코틀랜드 왕실에 지참금을 지급하지 않는 바람에 얼렁뚱땅 스코틀랜드 영토가 된 셈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공작이 오해한 모양인데 항로의 안전을 위해 아국 탐사선을 보내 셰틀랜드 주변의 수심을 잰 것뿐이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영해를 선포하지 않았으니 불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셰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영토가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제 와서 덴마크가 지참금을 지급한다 해도 반환할 수 없습니다. 의회를 설득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나는 남의 나라 영토에 관심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만,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부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재정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어째서 관심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잉글랜드가 고산국 때문에 망해간다고 느끼기에 이런 발언이 나왔다고 이해했다. 모직물의 원료인 양모를 호주에서 대량 생산해 네덜란드에 싸게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에서는 목장을 다시 농지로 바꾸고 있었으나 고산국에서 유럽에 곡물을 싼 값에 수출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들었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국왕을 위해 1억 원 혹은 금 100톤 정도를 대여할 의향이 있소. 이자율은 에스파냐 왕실과 같이 연 1할로 정하겠소.”
“좋은 조건입니다만, 혹시 신용대출입니까?”
“안타깝게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실은 에스파냐 왕실보다 신용이 낮은 편이오. 당연히 그 금액에 해당하는 적정한 담보를 잡아야겠지요.”
“고산국은 다른 나라에 부채를 지운 다음 땅을 싸게 매입하는 순으로 영토를 거저 늘려왔다고 들었습니다.”
“전쟁을 해서 남의 영토를 빼앗은 게 아니지 않소? 빚을 갚고 영토를 팔지 않으면 그만이오.”
잉글랜드 왕실의 부채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고, 대부분 네덜란드의 여러 상업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이었다. 묘하게도 대출기한이 올해 말까지로 겹쳐서 잉글랜드 왕실은 현재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네덜란드 상업은행들의 대주주는 이민호였다. 잉글랜드에 1억 원을 빌려준다 해도 절반 이상을 몇 달 안에 회수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민호가 결심만 한다면 언제든 추가 대출을 끊고 기존 대출을 회수해 잉글랜드 왕실을 파산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다.
양모산업이 붕괴된 현재 잉글랜드에게 돈 나올 구석이라곤 에스파냐 보물선단을 나포한 사략선장들이 왕실에 바치는 이익분배금밖에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버킹엄 공작도 바로 몇 달 전에 함대를 이끌고 동대서양에 매복했다가 보급품이 떨어져 물러난 바 있었다. 만약 이민호가 멕시코와 남미의 은광을 에스파냐에게서 매입해 보물선단의 항해를 멈추게 한다면 즉시 잉글랜드 왕실의 목줄을 쥘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영토를 외국에 넘길 수는 없습니다.”
“셰틀랜드도 담보였소. 뭐, 그냥 하는 소리요. 담보가 없으면 대여를 하기 곤란하니 잊어버리시오.”
“사실 지참금이 그리 많은 금액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셰틀랜드 주민들은 원래 바이킹으로서, 노르웨이 사람들과 비슷한 자들입니다.”
스코틀랜드와 노르웨이 사이에 위치한 셰틀랜드는 오랫동안 바이킹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웨일스, 그리고 아일랜드가 수백 년 동안 셰틀랜드에서 출발한 바이킹의 침략을 받았고, 브리튼 제도 여러 지역에 바이킹이 정착해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 브리튼 제도의 주민을 구성하는 켈트족, 앵글로색슨, 노르만은 대대로 바이킹의 피해자라서 셰틀랜드 주민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요? 어서 결정을 하시오. 금 100톤에 대한 담보로는 큰 브리튼 섬의 남서부 돌출부인 콘월 반도가 적당하겠소. 가끔 고산국 상선을 공격하는 정신 나간 해적선이 그 주변에 출몰한다고 해서 말이오.”
“그건 안 됩니다!”
“공작이 여러 번 언급한 셰틀랜드는 금 100톤의 담보가 되긴 너무 작지 않소? 스코틀랜드에서도 그런 황량하고 외딴 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소.”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셰틀랜드가 고산국의 항로 중간을 차단, 아니 항로의 안전과 선원들의 편의를 위해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는 게 아니라 담보일 뿐이오.”
이민호는 논쟁을 길게 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금 100톤에 콘월 반도, 금 50톤에 셰틀랜드요. 이 자리에서 공작이 선택하든지, 본국으로 돌아가 국왕에게 문의하시오.”
“국왕의 대리인으로서 제가 선택하겠습니다. 셰틀랜드를 담보로 금 50톤을 대여해주십시오.”
금 100톤을 빌려간다면 잉글랜드를 확실히 파산으로 몰고 갈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이번이 아니라도 기회는 언제든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에 이민호가 입맛을 다시며 동의했다.
잉글랜드가 운이 좋은지 이민호가 아무리 함정을 파도 지금까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연명해왔다. 아일랜드 독립전쟁 중에도 잉글랜드가 결코 이민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산국에 대비해 확실한 국가전략을 갖고 있는 듯했다. 사실 어느 나라든 고산국의 국력을 두려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좋소. 대여 기간은 10년, 이자는 연 1할이오. 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담보물의 소유권이 고산국으로 넘어갈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바로 계약서를 쓰겠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계약 내용을 강제 집행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나라가 고산국이었다. 잉글랜드는 셰틀랜드를 잃을 각오를 하고 돈을 빌리려 했다. 버킹엄 공작은 고산국 국왕이 땅보다는 섬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예조 판서와 함께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민호는 셰틀랜드가 고산국 영토로 편입되든 말든 큰 관심은 없었다. 셰틀랜드 제도가 항로 중간에 위치했다 해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군함이 고산국 선박을 어떻게 해볼 능력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잉글랜드가 심각한 재정파탄 위기에 몰린 사실만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민호는 잉글랜드가 군침을 흘리는 인도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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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외교.. 영토입니다만 인도에 대비한 떡밥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