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37화 (886/1,000)

00937    102. 30년 전쟁  =========================================================================

위압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알현실이 아닌 널따란 대전에서 에스파냐 외교관들을 만났다. 높은 왕좌에서 이민호가 내려다보는 동안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4세의 총신 가스파르 데 구스만과 수행원들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총리 혜영과 세자빈, 그리고 6조 판서와 참판들이 배석했다.

“고산국 국왕전하와 그 분의 배우자이신 총리각하께 에스파냐 펠리페 4세 국왕폐하의 총신이며 왕실 총리인 올리바레스 백작 겸 산 뤼카르 공작 가스파르 데 구스만이 인사 올립니다.”

“올리바레스 백공작께서 오랜만에 고산국 왕도에 오셨는데 이번에는 어째 급한 것 같소. 단 한나절 만에 예조와 협상을 마쳤다니, 전혀 예상 밖이오.”

“예, 전하. 더 이상 밀고 당기기는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국왕전하께서 이미 양보를 많이 해주셨기에 저희 에스파냐에서도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덴마크가 독일의 신교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하기로 확정됐고 다른 신교도 국가들과 참전 문제로 협의 중이기에 에스파냐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쪽에서 다급해졌다. 문제는 에스파냐와 신성 로마 제국의 재정이 완전 바닥나 군대를 투입할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용주에게 자금이 부족하면 용병 지휘관에게 현지 징발권을 주어 보급품과 용병들의 급료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 용병들이 쓸고 지나간 지역은 지나친 약탈로 인해 완전히 망한다는 사실은 정치가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에스파냐 입장을 이해하겠소. 중남미에서 은을 캐더라도 싣고 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 같소.”

“고산국 해군의 관할 해역을 넘어선 순간부터 유럽 모든 나라의 해적선들이 달라붙습니다. 국왕전하의 조언을 받아들여 진작 고산국 선박에 은괴 수송을 맡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습니다. 되돌리긴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나도 안타깝소. 자! 봅시다. 영토 매매 대상은 멕시코와 쿠바 등 서경 40도부터 동경 95도 동쪽에 이르는 에스파냐의 모든 해외 영토이되, 다만 필리핀은 제외한다. 에스파냐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려주셨소.”

안타까워하는 올리바레스 백공작의 한탄을 들은 다음 이민호가 영토 매매 조약문의 핵심 조항을 읽었다. 서경 40도는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 즉 아조레스 제도 서쪽의 대서양 중심선이고 동경 95도는 수마트라 섬의 서단인 아체 지방이었다. 여기에는 에스파냐가 남북미 대륙은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고산국과의 경쟁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조레스 제도에서 물이 가장 많이 나는 포르투갈령 상 미구엘 섬에는 고산국 해군의 군항과 북미를 오가는 상선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담당하는 민간 항구가 건설돼 있었다. 에스파냐에게 처절하게 저항했던 아조레스 제도 주민들은 의외로 고산국 해군에게는 호의적이었다. 여기까지가 에스파냐와 합의한 고산국 해군의 경비 관할 구역이었고 그 동쪽부터 사략선이라는 이름으로 해적들이 창궐했다.

“매입 금액은 에스파냐 왕실이 고산국 왕실에 진 부채 5억 8천만 원 중에서 4억 원을 탕감하고, 새로 2억 원을 에스파냐 왕실에 금괴 혹은 고산국 금화로 지급한다. 멕시코와 남미 은광 채굴권 연장 기간은 따로 협상에서 정한다. 맞소?”

“그렇습니다, 국왕전하.”

남미가 고산국에 넘어간 이후 에스파냐에서 채굴 중인 남미 은광에서도 더 이상 원주민들을 부역에 동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멕시코 은광처럼 숙련된 광부에게 임금을 주어 고용하고 있었고, 덕택에 남미 원주민들이 예전보다 훨씬 덜 죽게 됐다.

대신 에스파냐의 수익성이 조금 악화됐기에 고산국에서 원주민 광부 고용 자금을 적당한 비율까지 지급해주었다. 어차피 대서양을 지나 본국까지 수송하는 비용이 급증한 탓에 중남미 은광은 더 이상 큰 수익이 나지 않았다.

“멕시코와 쿠바 등에 산재한 에스파냐 민간인들의 부동산은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소?”

“일단 교회 건물과 부지, 농장은 교황청 재산이니 로마 교황청과 따로 협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건물과 부지는 교회에서 계속 사용하고 농장은 일괄 유상 매입한다면 교황청에서 쉽게 동의할 것 같소.”

“에스파냐 대소 귀족 소유의 건물과 농장은 향후 어느 국적을 선택했는지를 불문하고 50년 면세 특혜를 준 다음 왕토로 회수해주십시오. 대귀족들과 현지 이달고들이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동의했습니다.”

에스파냐 소귀족들 대부분은 멕시코에 남기로 하고, 쿠바 상인들 중 일부는 에스파냐로 귀국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현지 분위기였다. 노예노동이 사라지면 임금을 주어 원주민 농업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텐데, 과연 농장이 과거처럼 유지될지 알 수 없었다. 쿠바 아바나와 멕시코 베라크루스 등에 거주하는 에스파냐 상인들도 상업에서 기존 권리를 인정받는다면 고산국 국적을 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파나마 운하는 에스파냐에서 계속 관리해주길 바랐는데 말이오.”

“고산국의 과학기술을 배운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기계 조작이 미숙해서 운영에 무리가 있었습니다. 고산국에서 운하 운영회사의 지분을 좋은 조건으로 인수해주신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영토 매매 조약과 별도로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고산국에서 완전히 인수했다. 일정한 인원을 풍토병이 만연한 열대 지역에 파견해야 할 입장에 처한 고산국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멕시코와 쿠바 거주 농민들이 이주하는 동안 국제 농산물 가격에 큰 변동이 오지 않도록 앞으로도 잘 협의해나갑시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전하. 남미 북동부에 마련해주신 대체 농지에는 주로 밀과 쌀, 그리고 사탕수수를 재배하겠습니다. 물론 노예제는 금지될 것입니다.”

네덜란드에 배정해준 농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프랑스 농장지대 동쪽이며 아마존 강 하구 북안에 에스파냐의 농장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공조에서 개간한 모든 농지에 관개수로를 완비한 것은 물론 도로변 적당한 거리마다 에스파냐 농민들이 거주할 마을과 병원, 학교와 교회 건물을 지어주었다.

멕시코에 남아 고산국 백성이 되는 것도,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선택하기 어려운 에스파냐 농민들이 이 지역으로 우선 이주해 마을을 채워나가기로 했다. 영토 매매 협상이 일찍 타결된 것은 대체 농장지대를 살펴본 에스파냐 신부의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 에스파냐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인 식량공급원을 확보하게 된 셈이었다.

“잉글랜드 노예무역상 놈들과 매입자인 포르투갈의 브라질 농민들이 가장 큰 문제요. 혹시 올리바레스 백공작이 힘을 써줄 수 없겠소?”

“하하! 죄송하지만 포르투갈 국내 문제라서 제가 간섭하기 어렵습니다. 노예상인들이 조만간 아프리카 왕국에 의해 내쫓길 테니 국왕전하께서는 심려하지 마소서.”

10만 흑인 총기병과 20만 보병, 8두 마차가 끄는 거대한 대포들에 대한 소문은 유럽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시대 유럽 어느 나라도 상비군을 몇 만씩이나 유지할 수 없으므로 감히 아프리카 왕국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매년 전마 10만 마리를 지원해줘도 흑인 기병은 고작 3만을 유지하기도 벅찼다. 전마들이 전투 중에 죽는 게 아니라 각종 병으로 죽어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모든 군사작전은 이렇게 풍토병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고산국의 지원이 없다면 사하라 이남을 장악하는 중인 아프리카 왕국이 통일성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호주 남서부 새여수에서 대단위 목장을 운영해 말을 공급했으나 항상 부족했다.

풍토병과 체체파리에 강한 얼룩말을 군마로 이용하려는 므부투의 야심 찬 시도는 수천 년 동안 얼룩말의 사육을 시도했던 선조들처럼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겨우 말과 얼룩말의 잡종을 만들어냈으나 노새처럼 생식능력이 없었다.

“유럽에도 어서 평화가 오면 좋겠소.”

“저도 그렇습니다. 하온데 만약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참전할 경우, 혹시 동맹을 체결하신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도 참전하실 예정이십니까?”

“아니요. 고산국은 침략전쟁을 부정한다오. 크리스의 영토가 외국군에게 공격받을 경우에 한해 도와주기로 약속했소.”

“아! 다행입니다. 그럼 우리가 반격을 할 경우 덴마크 국경까지 안심하고 밀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서로 확인을 해주시면 펠리페 4세 국왕폐하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폐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이민호의 시선이 30대 후반의 올리바레스 백공작의 시선과 마주쳤다. 서로 알고도 확인하는 절차였다. 여기서 말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피곤해진다.

“그건 아니요. 홀스타인이나 슐레스비히가 외국군에게 침공을 받는다면 내가 고산국 군대를 이끌고 가서 도와줘야 할 것이오.”

“어째서 그렇습니까?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명백히 덴마크가 아닌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입니다.”

“올리바레스 백공작은 들으시오.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와 내가 개인적으로 동맹을 맺었을 뿐, 고산국과 덴마크가 국가간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요. 그러니 나는 덴마크가 아니라 크리스의 영토를 지켜주는 것이 맞소.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이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라 해도, 그리고 홀스타인 공작이 누구든 상관없이 그곳은 크리스의 땅이오.”

“합당한 논리이십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는지 올리바레스 백공작이 금방 물러섰다. 이민호는 이번 협상 결과가 독일에도 전해져 황제군이나 용병부대가 슐레스비히-홀스타인으로 진군하지 않기를 기대했다. 고산국이 유럽에 영향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맞으나, 굳이 대군을 움직여 원정을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국왕전하. 순전히 궁금해서 여쭙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편하게 말씀해보시오.”

“고산국에서 의술을 배운 의사들이 유럽 여러 나라 궁정에서 어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덕택에 예전과 달리 유럽 왕실에서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왕족이 확실히 줄어들었고, 민간에서도 공중위생이 발달해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족한 식량은 고산국에서 싸게 공급해주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에스파냐 왕실에서만 어린 왕자와 공주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어서 안 좋은 풍문이 돈다는 말이겠지요?”

펠리페 3세의 공주 마리아와 마르가리타, 그리고 왕자 알폰소가 태어난 해에 죽거나 유산됐다. 현 국왕 펠리페 4세의 두 딸 마리아 마르가리타와 마르가리타 마리아 카탈리나 역시 태어난 해에 죽었다.

뒤늦게 고산국에서 의술을 배운 의사들을 어의로 고용했는데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큰 병을 앓았던 덴마크 공주들이 고산국 의사들 덕택에 무사히 장성해 고산국 왕자들과 결혼한 것과 확실히 비교됐다.

“황공하오나 그렇습니다. 과연 의사들이 주장한 것처럼 근친결혼에 의한 유전병 탓일까요?”

“확실한 건 알 수 없소. 그런데 턱이 지나치게 커져서 음식을 씹을 수 없을 지경인데, 다른 신체 부위가 건강하다고 단언하기 어렵지 않겠소?”

“하지만 에스파냐의 이사벨 왕비님은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 아니라 프랑스 국왕의 공주님이십니다. 솔직히 의사들이 의심스럽습니다. 에스파냐 왕실이 후계자를 옹립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린 바람에 주변의 모든 이들을 의심하게 됩니다.”

“에스파냐 궁정의 어의들은 비록 고산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땄다지만 원래 에스파냐 귀족 출신이거나 귀족 가문에서 후원해준 학생들이었소. 자국 귀족 출신 의사를 믿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선왕은 물론 현 국왕폐하께도 서자와 서녀가 수없이 많습니다. 유독 정실 왕비님이 낳은 자녀만 단명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민호가 유럽 왕실 족보를 정리해둔 책을 펼쳤다. 엄청나게 복잡한 도표들이 한 가득이었고, 특히 합스부르크 가문은 복잡함의 결정체였다.

“그래서 더더욱 근친결혼에 의한 유전병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거요. 에스파냐의 왕비께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딸이며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의 외손녀라지만 결국 페르디난트 황제의 외증손녀가 아니오? 유럽 왕실의 가계도를 볼라 치면 눈이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리오.”

“상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현 국왕 부처가 핏줄이 이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국왕의 서자와 서녀들이 건강한 것도 합스부르크 가문에 만연한 유전병의 확실한 증거요. 앞으로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혈연적으로 관련 없는 가문에서 왕비를 구하는 게 좋을 것이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영토가 분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안에서만 혼사가 누적되더니 현재는 혈통 단절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서자와 서녀가 아무리 많아도 이들에게는 합법적인 계승권이 없었다. 동양의 왕실과 달리 유럽에서는 합법적인 일부일처제 결혼을 통해 낳은 정실 자식이어야 계승권을 갖는다. 그러나 조선이나 명나라의 예를 봐도 오직 적자만으로 왕통이 계승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실제 역사에서 펠리페 4세의 왕비, ‘프랑스의 이사벨’이 죽은 다음 펠리페 4세의 후처가 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는 국왕의 조카였다. 마리아나는 다섯을 낳아 셋이 어린 나이에 죽고 막내 카를로스가 에스파냐 국왕을 승계하지만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가 참전한 에스파냐 계승전쟁의 원인이 된다.

결국 프랑스의 이사벨이 낳은 딸 마리아 테레사와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가 펠리페 5세로서 에스파냐의 왕위를 잇게 된다. 사촌 이내 근친혼으로 인해 정실 자손의 수가 격감하고, 전통적인 구교도 동맹인 프랑스 왕실과 혼사를 맺었다가 에스파냐에 프랑스 출신의 부르봉 왕조가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에스파냐 왕실에서는 그 많은 금화를 어떻게 쓸 것이오?”

“그야 당장 필요한 군비를 확충하는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저지대 놈들을 때려잡고 군함을 다수 건조해 대서양의 해적들을 뿌리 뽑겠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에도 얼마간 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올리바레스 백공작도 이 시대의 고위 귀족 정치가라서 백성들을 전혀 생각해주지 않았다. 경제관념도 아예 없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모리스코들을 아무 대책 없이 국외 추방할 정도니 말 다했다.

“에스파냐의 경제규모가 계속 위축 일로라고 들었소. 이번 매매대금 일부를 국내에,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쓰는 게 어떻겠소? 돈이 국내에서 돌고 특히 생필품 제조업체들이 발전하면 더 큰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이오.”

“가난한 자를 도우면 더 게을러져서 안 될 말씀입니다. 경기를 부양하더라도 차라리 큰 토목사업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고산국에서도 경기를 부양하려고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됐소.”

가난한 자들을 위해 예산을 쓰면 정치인에게 남는 게 없으니 아깝게 생각되는 게 당연했다. 토목사업을 크게 벌여야 정치인에게 떨어지는 게 짭짤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맛이 나며 일시적인 호경기로 대중의 칭송을 받는다는 게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산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국책 토목사업에는 국영 건설회사만 참가할 수 있었다. 민간 회사는 소규모 하청을 받아 일할 수 있으나 감사원에서 감시의 눈을 부릅떠서 뇌물이 오갈 가능성이 적었다.

“혹시 국왕전하께서는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 대한 관심은 없으십니까? 해군이 강한 고산국이라면 지중해의 분쟁을 억누를 힘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전혀 관심 없소. 멕시코와 쿠바를 영토에 편입하는 일만으로도 앞으로 꽤나 골치 아플 것 같소. 자금 사정이 급해지면 언제든 빌려드리겠소. 고산국과 에스파냐는 오래된 우방 아니오?”

“항상 감사합니다, 국왕전하.”

남부 이탈리아는 괜히 떠본 소리에 불과했지만 시칠리아는 팔아먹을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 시칠리아 섬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해적들에게 노출돼 있어서 에스파냐 입장에서 방어 부담이 큰 편이었다. 가능하면 우호적인 고산국에 넘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직접 영토를 보유하고 지키는 것보다는 현대 미국 해군처럼 우방국의 항구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처럼 유럽 땅도 고산국에서 영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덴마크 공주들이 고산국 왕자들에게 시집오면서 지참금으로 들고 온 작은 영지마저 덴마크에 돌려줬었다.

============================ 작품 후기 ============================

영토가 거의 완성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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