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34 102. 30년 전쟁 =========================================================================
102. 30년 전쟁
1625년이 되면서 군 편제에 약간 변화를 주었다. 넓어진 영토 어디든 유사시에 신속히 투입한다는 명목으로 신속대응군을 증강 편성한 것인데, 사실상 유럽 전쟁에 참전할 원정군 개념이었다. 신속대응군 사령관은 건국 초부터 대원수 칭호를 가진 원수 계복에게 겸임시켰다.
“북미 주둔 해병대 2사단과 육군 6사단을 기간으로 군단급으로 편성했으며 새로 창설된 수송사령부와 항공사령부, 군수지원사령부가 원정군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후방 경비와 측면 방어 임무를 맡기려고 여러 사단에서 20개 기병 및 보병연대를 지정해 5개 여단으로 재편성했습니다.”
“실 전투부대보다 지원부대 규모가 몇 배나 되는군.”
“거리가 멀어서 병참 부담이 큽니다. 원정군에 보병 1개 사단을 더 편성하고 싶지만 현재 수송 능력으로는 무리입니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그리고 스웨덴이 약속대로 덴마크를 도와 참전해준다면 유럽 전쟁에 고산국이 참전할 필요가 아예 없거나 그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신교도 국가들은 재정 부족 등 여러 가지 자국 사정을 내세워 참전에 적극성을 띄지 않았다. 결국 덴마크만 단독 참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병참 부담만 없다면 사단 편제가 여러 모로 좋은데 말이야. 전투 사단보다는 여단에서 사상자가 더 많이 나올 것 같아 걱정이야.”
“네덜란드나 스웨덴에 참전을 종용해서 측면 방어 임무를 맡기면 어떻겠습니까?”
“그럴 명분이 없지. 그리고 신교도 국가들이 단합하지 못하는 것은 자금 사정보다는 주도권 다툼이 더욱 결정적인 이유야.”
“중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때문에 루스와 토르구트 기병을 동원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폴란드 국왕에게 뇌물을 좀 주면 영토 통과를 용인해주겠지만 폴란드는 국왕의 국가가 아니었다. 귀족들이 장악한 셰임에서 안건이 통과되길 기다리느니 차라리 폴란드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게 시간이 훨씬 절약될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로서는 덴마크가 황제군과 적당히 싸우다가 적당히 휴전하는 게 가장 좋아.”
“사실 우리가 참전해서 황제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다 해도 실익이 별로 없습니다. 도련님은 유럽 땅을 점령할 의도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다만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인상만 주면 돼.”
이민호가 계복을 노려봤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아직도 도련님이야?”
“헤헤! 도련님은 제게 영원한 도련님이십니다.”
그 사이에 계복도 많이 늙어서 검은머리보다는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물론 대군을 지휘하는 장군으로서는 딱 적당한 나이였고 앞으로 10년 정도는 충분히 더 활약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이누이트 신부들을 얻었다며?”
“그것이, 헤헤! 이누이트인들이 손님을 맞이하면서 자기 아내를 동침시키는 관습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극구 사양했더니 딸을 제 방에 들이미는 겁니다. 그런데 자매들이 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풍습이 있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섯이나 받아들였어? 여전하네.”
극지대에 사는 이누이트는 육식만 하는 식습관으로 인해 남녀 출생 성비가 1대 9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그래서 한 남자에게 자매들 전체를 시집보냈다. 그리고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어, 어쩌다 마주치는 이방인에게서 씨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인구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북극 인근에 파견됐던 병력에게 이런 사실을 주지시켜 그 동안 거의 실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에 알래스카를 순시하던 계복이 깜빡 잊고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신부 여섯 중 셋은 16세 미만이라 기숙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뭐 어떡하겠습니까. 그쪽 풍습인데요.”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군.”
“그렇지 않아도 두루두루 놀림 받고 있습니다.”
놀림 받는 사람치고는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그 동안 계복은 일본 노예 출신이나 포로가 됐던 다이묘 혹은 귀족 가문 처자들, 조선 양반과 여진족, 몽골족 귀족들이 거의 떠맡기다시피 한 처녀들을 합해 30명 넘는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 새로 여섯 명이 추가됐을 뿐이었다.
봄이 되어 오랜만에 최 선생과 세자 등을 대동해 고등학교 사회 과목 수업을 참관했다. 이민호는 체육과 음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외에 교육체계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총리 혜영의 다음 세대 우선 정책과 교육국장 최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 그리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교육철학이 어우러져 현장에서는 꽤나 높은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산국 공교육은 수업 시간도 짧고 시험도 없지만 이민호는 고산국 교육체계가 현대 대한민국보다 훨씬 낫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단 교사들의 수준과 열의가 높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예산도 많이 들어가서, 전체 정부 예산에서 국방비나 의료비보다 더 높은 비율을 교육비가 차지했다.
교실 뒤에 선 이민호가 수업중인 학생들을 살펴봤다. 신분이 높은 손님들이 방문했음에도 학생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밝은 얼굴들이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최근 소도시로 이주하는 가족이 점점 많아져서 한 반 정원 30명을 채우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은 만 17세 전후의 학생들이라 혼례를 올린 학생이 드물지 않았는데, 겉모습으로 구별할 방법은 없었다.
“조선국 삼남 지방의 여러 가지 군정(軍丁)을 호수로 계산하면 전라도 83,685명, 충청도 40,530명, 경상도 94,056명이 평상시 정원입니다. 정병에 대한 재정지원과 군장 운반, 예비군 역할을 담당하는 보인은 수군에게 3정, 한성에 상번하는 기병에게 3정, 보병에게 1정이 배정됩니다. 상번하는 갑사와 정로위, 별시위에게는 각각 보인 2정이 배정됩니다. 전라도 군정 83,685명 중에서 수군이 47,000여 명이므로 수군 정병은 약 12,000명, 수군 보인은 약 36,000명으로 구성됩니다. 이명규 군, 평가해보세요.”
“조선국 삼남 지방에는 육군보다 수군이 더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변 전에도 장기간 왜구의 침범을 받은 지역이므로 전체 병력 중에서 수군의 비중이 높은 것이 타당합니다.”
지방마다 국방 환경이 다르므로 수륙군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함경도는 여진족에 대비해야 했으므로 소수 수군을 제외하면 대부분 육군으로 구성되고 기병과 보병이 3대 1 비율이었다. 중앙군의 기보 비율은 3대 2에 달했다.
반면에 왜구의 침범이 잦았던 삼남 지방에서는 수군의 비중이 컸다. 수군 진영에 가까운 해안 지방에서만 수군을 징병할 경우 백성들이 힘든 수군역을 피해 죄다 도망가므로 내륙지방을 비롯한 모든 고을에 고르게 수군을 배정했다. 그리고 삼남 지방에서는 수영뿐만 아니라 병영도 모두 해안에 위치시켜서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명규 군이 아주 정확히 봤습니다. 다만 조선 수군은 전선을 타고 바다를 지킬 뿐만 아니라 해안지대 방어도 담당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해안에 수축된 성과 보루를 지키고, 왜구나 왜군이 이미 상륙한 경우 지상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1592년 음력 4월에 경상좌수영 부산포첨사진과 다대포첨사진 소속 병력은 왜군을 상대로 성곽에서 방어전을 수행했고 나머지 수군 병력도 경상좌수사 박홍의 지휘 아래 동래성을 지원하기 위해 집결했습니다. 그런데 강순이 양은 의문이 있는 모양이군요.”
“예, 김석 철인님! 1592년 6월에 전라 감사가 지휘한 전라도 근왕군 6만이 경기도 용인까지 북상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지휘하는 육군 4만이 경상도와의 경계인 섬진강 방어선에 투입됐다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동시에 전라도 수군 4만 7천여 명이 동원됐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숫자가 맞지 않습니다.”
교사 호칭인 선생님보다 더 명예로운 칭호가 몇 있었다. 철인 3종 경기 완주자 철인이나 박사 학위, 무슬림 성지순례자 하지를 비롯한 종교 관련 칭호는 선생님보다 우선했다. 고등학교 사회 교사 김석은 교육학 석사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철인으로 불리길 원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강순이 양. 기존 학설이나 사료에 대한 의심은 과학적 탐구정신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잠시 이 숫자들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조선 지방군의 군제를 추론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조선에는 평시 외에 전시에 대비한 지상군 병력 동원체계가 따로 준비돼 있다는 뜻 같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전시에 대비해 평시에 과도한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인력 낭비이기도 하고, 재정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선국 삼남 지방의 전시 병력 운용 지침인 남도 제승방략 절목(節目)에는 전시에 모든 고을에서 병력을 징발해 3운(運)으로 운영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1592년 경상도의 경우 1운은 병마절도사에게, 1운은 순변사에게 보내고 1운은 고을 수령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김 철인님, 질문 있습니다!”
“구자천 씨, 조선국 군사제도 전반에 불신이 서려있는 것 같군요. 질문해보십시오.”
호칭에 씨를 붙인 것으로 미루어 유부남 고등학생인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 해서 인생과 이성을 모른 채 평생을 저당 잡히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고산국 고등학생들이 현대 대한민국에서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왔던 이민호보다 이성을 잘 알았다.
“1592년 즈음에 조선에 살면서 전쟁에 참가했던 몇몇 어른들 말씀으로는 조선국 군대가 오합지졸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변 당시의 현실은 정식 군제와 달리 엉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참전자들에게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임진왜변 당시 조선 팔도 전역에서 정식 군제에 규정된 그대로 병력이 집결해 전투에 투입됐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일단 병력이 모여야 싸울 수 있는 법입니다. 조선이 초반에 연속 패배를 당했다지만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병력을 모은 것만으로도 국가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산국과 조선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교사나 언론이 조선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논의 내용이 외부로 새나갈 염려가 적은 전사편찬위원회나 사관학교 전술 토의 시간에는 조선군, 특히 조선 국왕과 조정을 비롯한 지휘부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몇 가지 토론이 더 진행됐다. 고등학생이라곤 하지만 이미 법적으로 성인들이라서 매사에 발언이 신중한 편이었다.
“오늘 수업 내용이 아주 알차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학생 여러분이 강의 내용을 일일이 받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세부 내용을 외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항상 깨어있는 정신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그 현실이 유지되는 원인을 알아낼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철인님.”
“여기 제가 교사로 있고, 학생 여러분은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함으로써 수업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현상에 불과합니다. 왜 이런 교육체계가 유지되고 있으며, 왜 특정 과목을 이렇게 토론식으로 강의할까요? 그리고 과연 이런 식의 교육이 효과적일까요? 그런 고민을 항상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졸업하고 나서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잠시 생각하느라 침묵에 빠져들었다. 수업 시간은 아직도 15분이나 남았다.
“국왕전하께서 학생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원하던 바요, 김 철인. 그럼 잠시 실례하겠소.”
이민호가 교탁에 올라 교사와 함께 서로 반절을 올렸다. 건국 이후 교사와 성직자, 그리고 소방관 등 사회에 봉사하는 이들에 대한 존대와 예우에는 국왕이라 해도 예외가 없었다.
“학생 여러분의 밝은 얼굴을 보게 돼서 기쁘오. 국왕인 나는 학생 여러분이 평생 행복하게 살길 원하오. 그러나 과연 모든 백성들이 학교 졸업 후에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오. 그래서 왕실과 정부에서는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뇌하며 노력하고 있소.”
“감사합니다, 전하.”
“고맙소. 히포크라테스는 ‘기술은 길고 생명은 짧다. 기회는 빨리 지나가고 실험은 불완전하며 판단하기 어렵다.’는 명언을 남겼소.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직업의식을 이 경구에서 볼 수 있소.”
이민호는 예전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배웠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art는 예술이 아니라 의학기술, 즉 의술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결코 약하지 않으며 인간의 삶인 인생은 결코 짧지 않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생은 지독히 긴 고통의 연속일 수 있소. 사람에 따라서는 무의미한 시간의 나열일 수도 있소. 인생을 어떻게 즐기건, 혹은 버티건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이며, 현재 학생으로서 준비과정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소.”
때로는 냉철하다 못해 잔인한 말을 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 특히 교육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예를 들어보겠소. 여러분은 고등학교 2학년이며 만 17세 전후일 것이오. 여러분은 근육이 굳어서 체조 선수를 하기에는 너무 늙었소. 축구나 농구를 시작하려 해도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갖춘 경쟁자들에 비해 너무 늦었소. 미술이든 음악이든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위해 준비하기에는 이미 상당히 늦었다고 볼 수 있소. 물론 취미로 삼겠다면 그 누구도 말리지는 않겠지만 최고가 되기에는 어려울 것이오.”
주자가 권학문에서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이라 했으나 이런 경구를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고등학생들 대부분은 아직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기회가 적었다.
============================ 작품 후기 ============================
국왕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복지군사 등등 모든 분야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도해야 합니다. 교육은 제가 거의 모르는 분야라서 쓰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만, 앞으로 반 회 분량만 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ㅜ.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