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27화 (876/1,000)

00927  101. 1624년  =========================================================================

겸 공조좌랑이 된 도시공학 교수를 배석시킨 채 국무회의가 계속됐다. 새로운 인재의 영입을 공조판서가 가장 기뻐했다. 건축과 토목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주거 공간인 도시를 유기적으로 설계하고 개선하는 복잡한 일을 맡을 사람이 생긴 셈이니 공조의 부담을 대폭 덜게 됐다.

“전하! 국영 은행의 금 보유량이 최근 급속히 줄어들고 있어요. 매년 금화 수요로 30톤 정도가 더 필요해요.”

“남아프리카 금광에서 증산하도록 명하겠소. 그리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럽에서 금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으니 식량과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매년 10톤 정도씩 금을 흡수해야겠소.”

“다이아몬드 판매와 금광 증산만으로는 조만간 한계가 오겠죠? 자동차의 민간 판매를 허용한 이후 경제규모가 너무 빨리 커지고 있어요.”

“어쩌겠소? 유럽 전쟁이 끝나고 나면 화폐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해 봅시다.”

경제규모 급속히 확장되면서 호주 남서부와 남아프리카에서 채굴한 금보다 화폐 수요가 더 커져서 다시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됐다. 지구에서 채굴 가능한 귀금속의 양이 한정됐기에 장기적으로는 결국 신용화폐 제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농업과 어업 외에 기껏해야 직물공업이 한계인 이 시대에 자동차 산업을 도입한 것은 여러 가지 화폐금융 문제를 일으키면서 이 추세를 강화했다. 이민호가 퇴위하기 전에 화폐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서 양위하기로 이 날 저녁 혜영과 개똥이를 따로 불러서 약속했다.

“예전에도 했던 발언 같소만 지금까지 백성들이 돈을 벌기만 하고 쓸 곳이 별로 없었소.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강조했듯 돈은 돌아야 제 역할을 하는 법, 자동차처럼 백성들이 수입 한도 내에서 쓸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요.”

“그럼 경제 확장에 가속도가 붙어요. 화폐 유동성 한도 내에서 경기를 부양해야 해요.”

“물론이오. 화폐 유통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그러니까 백성들의 집에 차곡차곡 쌓인 금화를 시장과 은행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더욱 시급한 일이오. 휴가와 여가를 즐길 휴양지와 놀이공원은 이미 다 만들었소. 백성들이 어떻게 돈을 더 쓰게 할지 세자와 대신들은 각자 의견을 제시하시오.”

건국 이후 계속되는 경기 활황으로 돈이 넘쳐나고, 산업에 투자돼 선순환이 되는 외에 나머지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했다. 현대 국가라면 유휴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몰려들어 대세상승을 이끌 테지만 고산국에서는 왕토사상과 기업의 공유화 제도 때문에 민간 자본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웠다.

건국 초부터 영업을 시작한 전화회사와 왕립백화점 등 공기업 일부는 매년 꾸준히 증자를 했는데도 주가수익비율이 천 퍼센트 이상에 달했다. 액면가 1원짜리 주식을 보유하면 주주들이 매년 이익배당금 10원을 받고 시가는 천원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전화회사는 독점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자금회전율이 빠른 유통업이 잘 나갈 때는 이익이 무지막지하게 난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게 됐다.

몇 년 전부터 고산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는 날부터 공기업 4곳에서 1주씩 시가의 반액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시가 일천 원을 넘는 주식 4주를 매수할 경우 최소 2천원, 순금 2kg 이상을 공짜로 받는 셈이었다. 여기에 예전에 매달 기본소득으로 받았던 은 넉 냥보다 조금 많은 금화 15원을 16년 동안 저축하면 거의 3천원에 달해 합하면 5천원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고산국에서는 의식주에 큰돈이 들지 않고 농민을 제외한 모든 백성이 평생 기본소득을 받으므로 5천원 전체를 사업자금으로 과감히 투자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거금을 쥐는 것은 평생 한 번이라 청년들은 남의 기업체에서 일하며 충분히 경험을 쌓은 다음 신중하게 사업을 시작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 돈을 젊어서 탕진하거나 도박으로 날리는 자들도 꽤 많았다.

“어려운 과제를 주셨습니다, 아바마마.”

“물론 이 자리에서 나온 의견을 바로 정책에 반영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세자와 대신들은 고위직에 있는 만큼, 계획의 초안을 짠다는 생각으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조건은 역시 한 사람이 떡을 둘로 나누고 다른 사람이 먼저 선택하기입니까?”

“당연하다. 그래야 백성들에게서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고 나중에 다른 말이 없을 테니까. 명심해라. 내가 다스리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정책을 집행하므로 고산국에서 역모사건이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나고, 백성들은 거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왕자들의 권력 다툼이 드문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 원칙이 적용되는 동안에는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이 없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적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환장한 인간이 아니라면 굳이 권력에 도전할 필요가 없었다. 백성들도 일방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없으므로 새로운 정책 변화에 쉽게 적응했다.

“전하! 잠깐 쉬었다 진행하는 게 어떻겠어요?”

“그렇게 합시다, 총리. 20분 정회하겠소.”

대신들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이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으로서 몇 년 전부터 고산국 궁정화가가 된 프란스 할스가 스케치를 마친 캔버스를 구경했다. 이 간단한 스케치에 화가가 물감 약간을 더하고 예술혼을 듬뿍 불어넣으면 무척 인상적인 유화 작품으로 바뀐다.

할스가 네덜란드에서 주문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준 부자들은 대체로 검은 옷을 입었다. 그러나 이 시대 네덜란드 사람들이 검은 옷을 즐겨 입은 것은 경건한 신앙심을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목적을 가진 유행일 뿐이었다. 화가로서의 할스는 다양한 디자인에 원색의 옷을 입은 고산국 사람들을 그리는 것을 선호했다.

“우와! 역시 자넨 대단해! 자그마한 표정 하나만으로도 모델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는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묘사로 총리의 고민을 읽을 수 있겠어.”

“과찬이십니다, 전하.”

“그런데 왜 나를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웃는 장난꾸러기로 묘사했나?”

“뭔가 해답을 숨기고 먼저 대신들을 떠보실 요량이 아니십니까?”

“바로 들켰군. 자네가 궁정화가로 일한 이래로 초상화에 묘사되는 국무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이 무척 다양해졌어. 전에는 너무 딱딱했거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보고하게.”

1582년생인 프란스 할스는 바로크 회화를 완성한 화가로 평가받으며 주로 초상화를 그렸다. 그가 직업인으로서 돈을 받고 일한 첫 작품 의뢰는 하를럼 시청 건물 내에 장식됐다가 성상파괴운동으로 인해 훼손되거나 사라진 종교예술품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 네덜란드에서 종교예술은 장르 자체가 사라졌다.

프란스 할스는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났으나, 에스파냐 군대가 도시를 점령하기 직전에 부모와 함께 탈출한 뒤부터 하를렘에 거주했다. 그러나 천주교도로서 개신교 지역에서 사는 것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고, 자식들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자꾸 죽자 고산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실제 역사에서 프란스 할스의 남동생과 자식 다섯이 화가가 된다.

“저는 아직도 제가 왜 고산국 궁정화가로 발탁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산국에는 사진기라는 정확하고 뛰어난 묘사 도구가 있지 않습니까? 사관들에게 문서적 기록을 맡기고 사진사들에게 시각적 기록을 맡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되겠지. 하지만 문제는 사진사들이 자기들 스스로를 기록을 하는 자라거나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라고 자부한다는 거야. 전통적인 예술가인 화가나 내가 규정한 사진예술가가 되기 싫어하는 거지.”

이민호가 시종을 불러 물 한 잔을 받았다. 할스는 홍차와 초콜릿을 선택했다. 예술가나 학자들이 집중하다 보면 금방 허기가 지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종을 시켜 아예 죽 한 그릇을 가져오게 했다.

“고산국은 기계문명이 훨씬 앞서니 그런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기술자라면 고산국에서 최고로 자부심이 넘치는 직업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사진도 예술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사들도 예술가가 돼야 하거든. 특정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은 사진사가 화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네.”

“그림은 화가의 기억에 의존해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그 순간을 지나면 다시 촬영할 수 없으니까요. 일이 끝나기 전에는 도대체 언제가 결정적인 순간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니 사진보다는 아예 영화로 찍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것도 좋겠지. 사실은 사진이 그림처럼 작가가 의도한 대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사진에도 인간의 의도가 반영되니까 예술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판단과 인공적인 행위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예술의 개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미학, 또는 예술철학에서 예술의 범주에 대한 고민은 ‘부목(浮木)은 예술작품이다,’ 라는 말로 요약된다. 오랫동안 바다에 떠다니다가 해안에 밀려온 자연물인 나무토막으로부터 인간이 예술성을 발견했다면 비록 인간의 창조행위가 없더라도 그것은 예술작품인 것이다.

예술작품의 전통적 기본 전제였던 인공성 또는 창조행위보다는 인간의 시각이나 관념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일몰과 호수에 비친 숲의 반영과 뒤샹이 샘이라 이름 붙인 화장실 변기가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예술철학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었다. 예술철학의 유명한 논제를 기억한 이민호가 데카르트를 떠올렸다.

“요즘 개국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면서? 철학자 데카르트 백작도 꼭 그려주게.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읽고 싶어. 책으로 공개한 외에 그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궁금하거든.”

“능력을 다해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프란스 할스가 과연 데카르트의 철학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국무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그 동안 총리와 세자, 대신들은 차를 마시면서 도시공학 교수와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전하! 회의 시작 전에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정부 예산이 매년 늘어났지만 건국 초부터 항상 나라 살림이 쪼들렸어요. 여유를 가지고 재정을 집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험! 험! 총리가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다음부터는 예비비를 충분히 준비하도록 합시다.”

혜영이 오랜 시간 내정을 든든히 받쳐줬기에 이민호가 안심하고 외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군주의 배우자나 후궁이 개국공신이 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탐탁지 않게 여기겠지만 혜영의 경우에는 건국 과정과 그 이후 발전 과정에서 정치적 비중이 매우 컸다.

그래서 고산국에서 일부 식자들은 총리 혜영을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에 기여한 소서노 이상으로 찬양하기도 했다. 이민호도 내정에 한해 혜영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역시나 민간 분야의 유휴 자금이군요. 백성들이 먹고 입고 사는 데 많이 들지 않으니 노는 데에 쓰도록 유도하면 어때요?”

“놀면서도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겠소. 아국의 문화가 높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아국 상품의 국제경쟁력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오.”

“지금도 고산국 생산품은 고급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애플, 아니 사과가 비슷한 당도와 품질이더라도 원산지마다 가격이 다르듯이 기술적 가치보다는 문화적 가치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오.”

“맞아요. 큼직한 호주 사과보다는 조선의 대구 능금을 더 높이 치지요.”

“고산국이 문화강국이기 전에 먼저 군사대국이라는 사실도 외국에 잘 홍보해야 하오. 이번에 개똥이가 카자흐와 티베트에 가서 찍은 기록영상이 있지요? 편집이 끝났다니 잠시 그것을 봅시다.”

다들 자리를 잡은 다음 실내조명을 껐다. 그리고 영사기가 돌아가면서 흰 벽면에 영상이 비쳤다.

영상의 첫 장면은 임시 원수 제복을 입은 세자 개똥이가 국왕 이민호로부터 지휘권의 상징인 부월을 받는 장면이었다. 물론 실제 지휘권은 대원수 계복이 행사했다.

개똥이는 비행기를 타고 투먼에 착륙해, 기차를 타고 이미 도착한 여진족과 몽골족, 그리고 루스 기병대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자유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이 통과할 권리가 보장된 초원에서 통행세를 받겠다고 선포한 카자흐 칸을 응징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우와~ 아주 장관이다. 초원을 가득 메운 저게 20만 대군이라고? 훨씬 더 되겠는데?”

“아직 토르구트 족과 노가이 족이 참가하지 않아 10만입니다, 아바마마. 지평선에 가까운 것들은 군량으로 쓸 소와 양입니다.”

“오오! 합류하는구나.”

실제 시간으로 며칠 후에 노가이 족에 이어 토르구트 기마대가 합류했다. 그리고 여러 나라 기마대로 구성된 20만이나 되는 기마대군이 발하슈 호 동단까지 빠르게 진군했다.

연합군은 진군 도중에 카자흐의 작은 부족 연맹과 중간 부족 연맹을 합류시켜 병력 규모를 30만으로 불렸다. 큰 부족 연맹에서 급히 기병을 모아 대치했으나, 결국 카자흐 칸은 대세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 그대가 카자흐의 지배자 에심 칸인가?

- 그렇습니다, 고산국왕의 후계자이시여! 지난번에 제가 멋모르고 저지른 과오를 사죄드리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고산국에 저를 비롯한 가련한 유목민들의 처분을 맡깁니다.

조금 전까지 부하들에게 에심 술탄으로 불리던 에심이 칸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가 조금 늦춰지는 효과가 생겼다.

백마를 탄 채 태양을 등지고 다가온 개똥이가 무릎 꿇은 칸 바로 앞에서 말을 세웠다.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세자 전용 장갑차에서 내려 말로 갈아탄 것이다.

-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칸은 걱정할 필요 없다. 고산국에 복속하는 한 카자흐 유목민들은 조상의 땅에서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그대에게 칸의 지위도 보장해주겠다. 다만 이번 전쟁을 끝으로 주변국들과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라.

- 명을 받들어 고산국에 영원히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에심 칸과 카자흐의 현재 상황 설명이 길어서 다음 회로 넘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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