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25화 (874/1,000)

00925  101. 1624년  =========================================================================

아부다비 섬 내륙 쪽과 두바이 강변, 바레인 섬 북서쪽 카티프에 각각 아랍인들을 위한 작은 도시를 지어주었다. 주로 유목과 대상을 하던 주민들은 비록 한 철이나마 대추야자나무 그늘 아래 푸른 풀밭에서 생활하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그리고 세 도시에 이스탄불에 있는 것보다는 조금 작지만 이 지역 주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커다란 순백의 모스크와 부속 대학을 건설했다. 원유를 채굴한 이익금의 일부를 투자한 데 불과했어도 지역 주민들이 침을 튀겨 가며 이민호를 칭송했다. 여기에 주민들을 위해 도로를 닦고 곳곳에 우물을 판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국왕전하께서 부를 주체 못해 쓸데없는 낭비를 한다고 비난한 자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세자 개똥이가 아부다비와 두바이, 그리고 카티프 모스크의 준공 행사에 다녀왔다. 모스크 정문 멀찌감치 장갑차를 세운 다음 내려서 걷고, 정문에 입장하기 전에 신발을 벗은 일로 무슬림들에게 큰 호감을 얻었다.

“지들을 위해줘도 지랄이야.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하고 아깝겠지.”

“그래서 본보기로 몇 명 잡아다가 곤장을 좀 쳤습니다. 국왕모독죄는 사형인데도 곤장을 치는 아량을 베풀었다고 감사의 절을 올리더군요.”

“그런 인간들은 역시 매가 약이야. 나머지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예. 상업지역에 활기가 돌고 있으며, 주거용 건물은 거의 다 채웠습니다. 박물관과 수족관, 놀이동산과 수영장이 이미 개관돼서 운영 중입니다. 바위산 그늘에 축구장이 완공됐는데 피서지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그늘이나 땡볕 아래나 더운 건 마찬가지라서 관중석 사이사이에 찬물이 흐르도록 설계한 것이 아주 주효했습니다.”

건국 초부터 지금까지 고산국에서 진행된 대체 에너지 연구가 일조량이 풍부한 이 지역에서 가일층 진전됐다. 그리고 태양열과 역삼투압을 이용한 담수화 공장이 세워진 이후 아라비아 반도 동부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물론 대체 에너지만으로 부족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 일부가 활용됐다.

“총리부와 협의해서 이익금 일부를 유전 지역에 계속 투자하도록 해. 석유는 원래 그들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자원 수탈이라는 비판이 나와서는 안 돼. 사실 유전 지역에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자들이 태반이지만 말이야.”

“예, 아바마마. 아라비아 반도 동부 해안이 일자리가 많고 살기 좋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꾸준히 몰려들고 있습니다. 카티프에서 리야드를 거쳐 메카까지 철도와 도로 공사가 완공되면 아라비아 반도 전체에 큰 변화가 올 것입니다.”

아라비아 반도 동해안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도로와 철도는 이미 완공됐다. 원유수송을 처음부터 아예 송유관으로 하는 바람에 도로와 철도가 그다지 경제성은 없었으나 고산국의 앞선 국력과 과학 수준을 아랍인들에게 알리는 아주 좋은 선전 수단이 되었다.

사막을 오가는 유목민들은 일단 고산국 영역에 도달하기만 하면 손님 대접을 아주 융숭히 받았다. 또한 녹화사업이 완료된 지역에 유목민들이 정착하겠다고 청하면 흔쾌히 받아들여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이 고산국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덕택에 유전과 도로 경비에 필요한 낙타기마대를 충성심이 넘치는 자들만으로 필요한 만큼 뽑아 유지할 수 있었다.

“잘해주고 있구나. 남들이 보면 우리가 아라비아 반도 전체에 욕심을 내는 줄 알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만, 오스만 제국이나 아랍 토후들은 부강한 고산국이 그깟 사막을 욕심내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그다드가 페르시아에 점령된 뒤부터 아랍 지역 전체가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기회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고산국 영토 주변에 위치해서 영향을 강하게 받는 몇몇 토후들은 오스만 제국이 아닌 고산국을 종주국으로 여겼다.

아랍 지역 토후들이 아부다비나 카티프에 도착해서 선물을 바치면 고산국 국왕 명의로 몇 배나 많은 하사품을 내렸다. 마치 역대 중국 왕조의 조공무역과 흡사한 모습이었으나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고산국왕의 관대함을 칭송하는 분위기였다.

“이집트에도 다녀왔지?”

“예. 오크남 파샤가 의외로 조선말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시찰하면서 운하의 중요성에 대해 파샤로부터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잉글랜드가 인도를 노리는 동안에는 고산국에 거역하지 못할 거라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물론 기회가 되면 이빨을 드러내겠지만 말입니다.”

정옥남은 해남도를 관리하는 동안 명나라 출신 귀화인으로 신분을 세탁했었다. 옥남은 계속 외지로만 돌아다녀서 예조 관리들도 그의 정확한 신분을 알지 못했다. 이민호는 조만간 그의 내력을 세자에게 알려줄 예정이었다.

“해적 본성을 감추고 있는 잉글랜드를 특히 주의해야 해. 그리고 오크남이야 항상 그렇듯 잘하고 있겠지.”

“파샤가 말하길 이집트의 독립이 다시 5년 더 늦춰질 것 같다고 합니다. 이집트인들이 아직은 고산국 밑에 있는 편이 유리하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고산국에서 강압적인 통치를 하고 있었다면 이집트인들이 나서서 독립운동을 했을 텐데, 언제든 독립하라고 고산국에서 자꾸 등을 떼미니 이집트인들이 오히려 주저했다. 이집트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주변 북아프리카 사정을 고려해 좀 더 완벽한 독립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행정도 하고 군대도 유지하면서도 계속 의존하려고 하네? 우리야 수에즈 운하만 지키고 있으면 큰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보다는 시나이 반도의 행정 공백 문제가 큰 것 같습니다.”

시나이 반도는 기원전 3천 년 이전부터 이집트인들이 구리 광산을 찾아 돌아다니는 등 이집트와 오래도록 연관이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16세기 초반 이후 시나이 반도는 오스만 제국에서 따로 관할했다.

“오크남은 앞으로 수에즈 운하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나이 반도를 영토로 편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겠지?”

“파샤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스만 제국에서 총독이나 행정관을 파견하지 않는 틈을 타서 베두인 족이 걸핏하면 주변 지역 약탈에 나서니까요.”

“그런 식으로 영토를 넓혀나가다 보면 고산국이 아예 세계를 정복해야 할 거다. 웬만하면 그 지역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맡겨둬. 괜히 우리 젊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평화를 유지해줄 필요가 없어.”

이민호의 진심이면서도 진심이 아니기도 했다. 세자 개똥이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 그쪽은 별로 돈이 안 되니까요.”

“네 이놈! 애비를 너무 잘 알고 있구나. 나무라고 싶지만 일이 너무 많아 나중으로 미루겠다. 먼저 이 보고서 요약본을 읽어봐라.”

“이번에는 호주 남섬이군요. 아마도 오늘 안에 남미 문제와 에이레 독립국 문제도 아바마마와 함께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서경 5도부터 동경 31도 사이만 빼고 죄다 고산국 직할 영토 아니면 영향권 내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자그마치 지구의 9할입니다.”

“다는 아니야. 명나라, 무굴제국,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을 빼야 하니까.”

얼마 전에 호주 남섬, 현대 지명으로 태즈메이니아에 대한 인구조사가 끝났다. 고산국 탐사단이 처음 접촉했을 때 추정 인구가 20만이었으나 이번에 실제 조사한 결과 6만에 불과했다.

최근 몇 년 간 태즈메이니아를 휩쓴 여러 가지 전염병 때문이었다. 태평양 탐사전단에서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과 접촉할 때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전염병이 확산되는 경로는 실로 다양해서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그나마 원주민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반강제로 예방접종을 실시한 덕에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선선한 기후에 어울리는 가축 몇 종과 신품종 농작물을 원주민들에게 전해주어 인구 증대에 기여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남섬에 흔한 주머니늑대 몇 가족이 본토 동물원에 들어왔다.

“휴우~ 다 읽었습니다. 남섬 원주민들을 멸족 위기로 내몬 데는 고산국의 책임이 큰 것 같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유럽인 항해자들이 남섬에 종종 들렀다 하니 그쪽을 통해 전염병이 유입됐을 수도 있다.”

“주변 섬들을 제외하고도 면적이 6만 평방킬로미터가 훨씬 넘는데도 인구가 너무 적습니다. 문제는 원주민들에게 면역력이 아예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호주 원주민 부족들 중에서도 북부 해안 거주민이나 새섬의 마오리족은 외부에서 들어온 전염병에 강한 편이었다. 상식과 달리 외부인들과 꾸준히 접촉했거나, 고립되어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호주 남부와 남섬의 원주민들은 외지인들과 오래도록 접촉하지 않아 전염병에 면역이 없었다. 결과는 항상 예상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몇 가지 전염병에 면역력이 없기는 우리나 조선인들도 마찬가지다. 병원과 주사기에 대한 원주민들의 거부감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북미의 경우 인구가 줄더라도 2세대 안에 회복됐습니다. 당분간 인구 증대에 힘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기본적인 의료와 위생적인 환경만 제공되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한다. 지원을 충분히 해줘서 단기간에 예전 인구를 회복하도록 도와야겠다.”

선교사들이 시도하는 것처럼 철기와 기후에 적합한 농작물 종자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들이는 필수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노동시간이 줄어든 원주민들은 선교사들이 기대하는 것과 달리 신앙생활보다는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이 정책은 고산국의 원주민 정책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이 영유아기를 넘어서까지 생존해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풍족한 식량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인구 증가 정책의 핵심이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눈 질끈 감고 원주민들을 멸족으로 이끌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보통은 그게 훨씬 편하지 않습니까?”

“나는 후손들이 보기에 부끄러워 할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설마 너는 달리 생각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고산국이 저지른 오점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본주에서 멸망했다는 일본인들도 실질적으로는 구주에서 더욱 번창하고 있지 않습니까?”

1600년경, 에도 시대 초기의 일본 인구는 1,200만에서 2천 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현대 규슈 인구 1,300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혼슈에서는 인구가 여전히 감소 추세였지만 고산국 지배 하의 규슈에서는 인구가 폭발하고 있었다. 규슈 인구가 600만을 넘는 순간부터 1가정 2자녀를 권장하는 산아제한을 유도할 계획이었다.

수명이 계속 연장되는 것을 감안하면 구주의 인구증가가 천만 이하에서 멈출 것으로 기대했다. 혼슈 인구와 합하면 예전 인구보다 적지 않게 된다. 물론 고산국 치하의 일본인들이 독립을 추구하거나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은 없었다.

“요즘 자동차 산업은 어떠냐?”

“예, 현재 매년 2만 대를 생산 중이며, 부품업체들이 1차 확장을 마치는 내년부터는 매년 10만 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고산국 인구가 6천 만을 넘었지만 모든 지역에서 자동차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산악지역에서는 도로를 개설하더라도 몇몇 중장비나 사륜구동차만 운행이 가능했다.

그래서 도로 사정이 나은 인구밀집 지대부터 자동차를 대량 공급하기 위해 자원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동차산업을 계속 확장해 10년 이내에 매년 3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승용차보다 소형 화물차와 사륜구동차가 더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응? 그러니까 산업용 수요 말고도 승용차를 살 만한 사람들이 화물차나 사륜구동차를 선택한다는 말이지? 그것 참 의외네.”

한국에서 살다온 이민호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편의성과 야외활동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밴 형태 차량의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도로 사정이 나쁘거나 기후가 추운 지역에서는 사륜구동차가 많이 판매됐다.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화물 적재칸을 확장한 소형 화물차가 승용차보다 더 잘 팔리고 있습니다. 속도가 느리고 도로 주행에서 주행 우선권이 밀리더라도 여러 가지 쓸모가 많아서 화물차 종류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차량 가격이 비싸고 휘발유 값 등 유지비가 더 많이 드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그만큼 고산국에 호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자동차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화물차와 SUV가 45퍼센트, 승용차가 55퍼센트였는데 2014년에는 이 비율이 반대로 역전됐다. 2008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셰일가스와 석유를 꾸준히 증산하면서 미국이 호황을 누리게 된 덕택이었다.

“휘발유 가격을 조절함으로써 자동차 판매 비율을 조정할 수 있겠습니다.”

“내버려둬라.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예. 그리고 백성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더 다양한 차종을 만들겠습니다.”

세자가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개똥이는 이민호가 맡긴 자동차 산업 외에도 국왕대리인으로서 외교 사절 및 정책 브레인 역할을 수행했다. 고산국 백성들의 유일한 걱정이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들어 정치적 관심이 확 줄어든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영토가 워낙 넓다 보니 웬만한 것은 영토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아국 경제의 해외의존도가 이례적으로 매우 낮다. 후대로 갈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그럴수록 고립주의를 지향할 우려가 있다.”

“아바마마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아국이 마땅히 국제적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세금과 우리 백성들의 피로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면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외국에서도 패권주의라면서 좋게 보지는 않을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또 이기적이라고 욕하겠지.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외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예. 여러 나라 왕실에 꾸준히 채무를 안기겠습니다. 우릴 상대로 전쟁을 걸 수는 없을 테니 결국은 뭔가 중요한 것을 토해내게 될 것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 정부 혹은 왕실에 돈을 꿔주면서 천사 행세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악마의 유혹이었다. 유럽에서 전쟁이 계속 이어지는 경제적 바탕에 고산국의 국가자본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서 에스파냐 정부가 파산해야 새 수도를 정하겠는데 말이야.”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덴마크가 본격적으로 나서고 스웨덴이 거드는 순간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신성 로마 제국이 차례로 파산할 것입니다.”

“멕시코 외에는 필요 없어.”

신교도 국가인 덴마크와 스웨덴을 오랜 세월 키워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만간 그 결실이 수확될 것으로 기대했다.

============================ 작품 후기 ============================

벌써 5일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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