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20 100. 세인트 킷츠 앤드 니비스 =========================================================================
프랑스와 네덜란드 외교관과 관전무관들은 엉겁결에 사탕수수 경작지를 얻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잉글랜드 외교관들과 예조 관리들이 며칠째 협상하는 동안 이민호는 왕자들과 함께 다시 한 번 도로교통법을 손봤다. 왕도는 물론 새강릉을 비롯한 북미 개척 도시들에도 점차 민간 차량이 확산되는 추세라 승용차 대중화 초기부터 안전한 교통문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했다.
다른 영토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드넓은 북미 대륙에서 철도와 배, 항공기 외에 마차를 대신하는 승합차와 승용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특히 제철산업 등 후방 효과가 큰 승용차는 고산국의 과학기술과 경제 규모를 단번에 서너 단계 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아바마마! 학생 승합차가 멈출 때 다른 차들도 멈춰야 하는 교통규칙 말입니다.”
“응. 계속해봐.”
승용차와 승합차를 민간 소유로 개방하면서 도로교통법을 꽤 많이 수정했다. 그 중에서 보행자 보호 규정이 특히 강화됐으며, 스쿨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 다른 차량들이 일제히 멈추도록 강제한 규정은 교통법에서 보행자 보호규정의 극단이었다. 이때는 긴급 출동 중인 소방차와 경찰차 및 구급차가 서행하는 것을 제외하면 군용 차량을 포함한 모든 차량이 정지하도록 규정됐다.
“학생들에게 교통안전교육을 강화하는 대신 중앙선 너머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차들은 서행하도록 완화하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도 학생들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경우가 극히 적습니다.”
“바로 그 극히 적은 경우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서 문제야. 어린아이들이라서 교육으로도 어떻게 안 되잖아. 그리고 주택가나 농촌 마을에는 2차선 도로도 꽤 있어.”
이민호는 현대 미국의 교통법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어 입이 근질거렸다. 학생 승합차를 장갑차처럼 든든하게 만든 것도 말이 많았으나 이민호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학생 승합차가 정지해서 아이들을 내리는 동안 차 앞뒤로 멈춤 표지판이 내려왔다. 이것을 보고도 정차하지 않은 운전자는 20원이나 되는 고액의 벌금을 내거나, 교통안전교육 4시간을 이수해야 했다. 운전면허 취소나 정지에 영향을 주는 벌점도 높았다.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분은 아바마마였습니다만.”
“말 잘했다. 개똥이와 쥐똥이 너희들은 어렸을 때 장난꾸러기로 유명했었지. 너희들이 예닐곱 살 때 엄마 말 제대로 들은 적이 있었어? 너희 같은 애들이 학교 끝나고 승합차에 탔다가 집 앞에서 내려. 그럼 어떻게 하겠어?”
“도로든 뭐든 개의치 않고 집이나 친구들에게 달려가겠죠. 알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는 어른이 조심해야지.”
안전규정을 지키기 귀찮다거나 비용이 든다고 법을 완화하면 반드시 인명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신념이었다. 앞으로 운전자들로부터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겠지만 이것은 국가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이었다.
“너희들도 면허 땄지?”
“예, 아바마마. 시내에서는 얌전히 운행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시내나 도로 아닌 곳에서는?”
쥐똥이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쥐똥이의 거처에서 일반 승용차가 아닌 야외활동용 사륜구동차를 본 것 같아서 이민호가 물었다.
“설마 용기를 시험한다고 절벽까지 질주하거나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누가 먼저 피하나 내기를 하는 건 아니지?”
“하하! 설마 누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쥐똥이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이민호가 혀를 찼으나 20대 초반 한창 객기를 부릴 때라서 말리지는 못했다.
“말린다고 들을 놈이 아니지. 대신 네 어미가 졸도할지 모르니 그런 소리 안 들어가도록 해라. 무의미한 짓이라는 건 몇 년 지나면 알게 될 거다만 지금은 무슨 소리를 해도 못 알아들을 거야.”
“제가 잘 알아듣도록 타이르겠습니다, 아바마마.”
개똥이가 쥐똥이의 귀를 붙잡아 끌고 나갔다. 비명이 복도까지 이어졌지만 이민호는 형이 동생을 두들겨 패서 버릇을 고쳐줄 거란 기대는 아예 접었다.
“애비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나는 연기가 통했다며 둘이 낄낄대고 있을 게 뻔하지.”
“화 안 나세요?”
“젊을 때는 다 그렇고 나도 젊을 때 딱 저랬어.”
그러나 입장이 달라지면 아예 생각마저 달라지는 경우가 더 흔했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은 항상 통용됐지만 가끔 이렇게 예외도 있었다.
왕자들이 나가자 경호대장 선영이 현재 잉글랜드와 진행 중인 외교 교섭에 대해 자세히 보고했다. 예조 관리들이 잉글랜드 외교관들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중이라 했다.
“자칭 전권대사라고 하지만 잉글랜드 외교관들도 자기네 국왕으로부터 최소한의 지침을 받았을 테지.”
“산크리스토발 섬 전투를 전쟁으로 간주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더라도 새로 사탕수수 재배지를 얻게 될 테니 잉글랜드에 손해는 아니라고 보나 봐요.”
“아일랜드는?”
“북부 극히 일부 빼고는 에이레 독립군이 거의 다 점령했잖아요. 이미 잉글랜드 영토도 아니라서 지금은 포기 상태예요.”
예조 관리들이 잘해주고 있어서 이민호는 나중에 서명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잉글랜드 대표로서 버킹검 공작 조지 빌러즈가 조약 조인을 위해 며칠 전에 새강릉에 도착했다.
그런데 인도 문제는 지금 단계에서 개입하기에는 명분이 없어서 참으로 곤란했다. 그래서 수에즈 운하를 통해 잉글랜드 배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의 진입을 허용한 무굴 제국에도 문제가 많지만, 나라를 팔아먹는 토후들이 더 큰 문제였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공작 테오도시오 2세가 아들 주앙의 혼처를 고산국 왕가에서 구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 전달해왔어요. 테오도시오 공작이 광증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주앙 본인의 뜻일 거여요.”
“금을 그렇게 많이 받고도 부족해서 내 딸마저 달라는 거야? 못 줘.”
이민호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민호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선영이 피식 웃었다.
“뭐라고 이유를 댈까요?”
“음! 뭐, 미천한 종속국의 공작가 영식 따위에게 보낼 공주는 없다고 말하면 화를 내겠지?”
“화를 내면 어쩌겠어요.”
에스파냐가 국력이 기울고 있다지만 여전히 유럽 제일의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본토가 에스파냐와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해야 했다.
포르투갈이 독립하려면 같은 포르투갈 귀족 가문에서 주앙의 배우자를 구해 내부 통합을 다지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1640년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해 포르투갈 국왕 주앙 4세로 등극할 주앙 브라간사는 1633년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 후안 마누엘 페레스 데 구스만의 장녀 루이사 데 구스만과 결혼한다.
“주앙이 고산국에 의존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건국왕의 왕비는 국가 통합이라는 상징성이 커서 곤란해. 주앙에게 누나나 여동생은 없나? 차라리 2대 국왕의 사촌 가문이라는 적당한 관계가 되는 편이 나을 거야.”
“공작가문의 기록을 살펴보니 1606년에 태어난 카타리나 영애는 1610년에 사망했고 두아르테와 알렉산드르라는 이름의 남동생들만 있어요.”
“쯧!”
유럽의 웬만한 왕실이나 부유한 귀족가문에는 고산국 의대 출신 의사들이 고용됐지만 브라간사 공작가문은 그리 부유한 가문이 아니었다. 브라간사 가문은 카타리나를 어린 나이에 잃은 다음에야 고산국 의대 출신 의사를 고용했다고 들었다.
“포르투갈 귀족가문들 중에서 우리 왕가와 정략결혼을 할 후보를 찾아볼까요?”
“브라간사 공작가와 협의해서 진행해 줘. 쥐똥이를 신랑 후보로 내세우면 다들 아주 좋아할 거야.”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아우르는 합스부르크 가문은 주로 사촌 이내에서만 결혼을 추진했다. 프랑스 왕가와 국혼을 맺더라도 공주 본인은 물론 그 후손들의 계승권도 박탈하는 등 가문의 결속과 영토 유지를 위해 애썼다. 그래서 에스파냐와 국혼을 추진하더라도 고산국에서 얻을 것이라곤 신부 지참금과 주걱턱 유전자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석민 왕자님은 에이레 가수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괜찮겠어요?”
“내가 자식들의 연애 문제는 간섭하지 않는 편인데 대중가수만은 예외야. 자칫 왕가가 욕심이 많다는 이유로 백성들의 지지를 잃을 수가 있어. 이건 내가 쥐똥이를 설득할게.”
“10대 후반 20대 초반은 질풍노도의 시절이라면서요? 설득이 통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쥐똥이는 빨간 머리의 에이레 가수 말고도 북미 원주민 출신 가수에게도 헬렐레 하는 것을 봤기에 설득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쥐똥이가 왕가 출신의 장교라 해도 젊고 예쁜 여가수에게 열광하는 젊은 군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잉글랜드와 고산국의 평화조약은 본토에서 급히 날아온 예조참판과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의 총신이며 초대 버킹검 공작인 조지 빌러즈(George Villiers) 사이에 체결되기 직전이었다. 이민호는 추인을 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유심히 훑어보는 척했다.
“참판! 전쟁 배상금으로 고산국 금화 3백만 원, 황금 3톤이라면 너무 적지 않소? 그것도 5년에 걸쳐 나눠 갚는다니 이해할 수가 없소.”
“그 작은 금액이 잉글랜드의 일 년치 국가 세입에 해당합니다, 전하. 잉글랜드 정부의 부채 비율은 민간 기업이라면 이미 파산할 수준입니다.”
1601년 이후 1663년 이전까지 통화단위 1파운드는 62실링이 기준이었으며 1실링은 12펜스였다. 이 시기에 1펜스 은화가 0.5그램 무게에 순은은 3분의 1 비율에 불과했으므로 1파운드는 은 124그램에 해당했다. 잉글랜드 통화 1파운드는 고산국 금화 10원보다 가치가 적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1580년까지 골든 하인드 호를 타고 에스파냐 보물선을 털고 남미 서해안을 약탈한 다음 여왕에게 30만 파운드를 바쳤다고 한다. 이는 당시 잉글랜드의 일 년치 국고 수입 이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처럼 국가재정이 중앙정부에 통합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근거로 잉글랜드 전체의 국부를 추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선에서도 전국에서 마포 광흥창으로 세미를 보냈으나 이는 중앙 관료들의 녹봉을 지급하는데 소요됐을 뿐이다.
“국왕전하! 제가 생각하기에 전하께서는 그 대신 아일랜드를 아주 헐값에 얻으셨습니다.”
“공작!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오. 조약 내용에서 우리 두 나라가 아일랜드의 독립을 보장했지만 내 땅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소.”
“아일랜드 문제로 피차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30대 초반에 흰색의 화려한 복식을 갖춘 조지 빌러즈 공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1614년 21세의 나이로 제임스 1세의 눈에 든 다음 남작과 자작, 백작으로 빠르게 승작한 조지 빌러즈는 1618년에 버킹검 후작으로 승작하고 다음해에 왕립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1620년에 루틀랜드 백작 프랜시스 매너스의 외동딸 캐서린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이야기로 유명했다.
처음에 조지 빌러즈의 모친인 버킹검 백작부인이 캐서린 매너스 영애를 며느리로 점찍었다. 그러나 조지 빌러즈 당시 후작의 연인인 국왕 제임스 1세가 이 결혼을 허가하지 않았고, 가톨릭 신도였던 캐서린이 개신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조지 빌러즈의 반대로 결혼은 불가능한 듯했다. 그러다가 버킹검 백작부인이 캐서린을 저택으로 초대했는데 갑자기 병이 나는 바람에 하룻밤 묵었다. 아마도 버킹검 백작부인과 공모했을 루틀랜드 백작이 딸의 정절에 흠집이 생겼다면서 노발대발, 딸을 버킹검 후작가에 머무르게 해서 억지로 결혼을 시킨 셈이 되었다.
캐서린은 왕족을 제외하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며, 당시 잉글랜드가 부패와 부도덕의 시대임에도 정절과 헌신의 대명사로 유명한 여자였다. 그러나 결혼 직후에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남편 버킹검 공작이 암살당한 다음에는 아일랜드의 안트림 백작 랜달 맥도넬과 재혼한다.
“아일랜드에서 패해 밀려나고 세인트 킷츠에서도 패했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사탕수수를 재배할 열대의 땅을 얻었으니 잉글랜드가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셈이오.”
“그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전하. 잉글랜드 국왕폐하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국왕 제임스 1세를 제외하고 잉글랜드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버킹검 공작이 조약문에 서명했다. 기자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 나중에 새강릉 조약으로 알려질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했다.
기자들에게는 30살 넘어서도 시들지 않는 버킹검 공작의 미모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진이 신문에 실린 다음 고산국 여성들 사이에 공작의 인기가 치솟았다고 한다.
“고산국 예조참판 각하에 이어 잉글랜드 국왕폐하의 대리인인 저도 서명을 마쳤습니다. 이로써 잉글랜드와 고산국이 대립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두 나라 사이에 우호와 친선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그 문제는 전적으로 잉글랜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고산국 국왕인 나도 서명했으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서명을 마친 직후 이 조약이 정식 발효될 것이오.”
아일랜드의 독립을 고산국과 잉글랜드가 보장함으로써 드디어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끝났다. 20년을 끈 기나긴 전쟁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땅과 고향을 잃었다. 고산국 입장에서는 아일랜드 이주민 중 다수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감수해야겠지만, 인도주의 차원에서 아일랜드의 부흥을 적극 돕기로 약속했다.
조약 조인식에 참가한 아일랜드 관전무관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들이 무릎을 꿇으며 감사를 표하자 이민호가 그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아일랜드 관전무관 중 몇 명은 고산국 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아바마마! 이번 원정과 조약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진정한 이익은 무엇입니까?”
“세자야. 에이레 공화국이라는 아주 가난하고 작은 우방의 독립이다.”
“역시 아바마마께서는 제 생각과 같으시군요. 그 동안 들인 노력과 자금에 비해 의미가 몹시 큽니다. 베네수엘라 동쪽 황무지를 내줌으로써 비교적 쉽게 아일랜드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민호와 개똥이가 대화하는 동안 쥐똥이는 어리둥절하면서 차마 묻지도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산국에서 얻을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이번 조약을 기회삼아 아일랜드에서 얼른 손을 떼었다고 볼 수도 있지. 어쨌든 이로써 대서양의 대부분이 우리 고산국의 것이 되었다. 후손들은 더 이상 외국의 침략을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민호가 지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조만간 에스파냐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일 포르투갈을 선으로 연결하자 아주 멋진 그림이 나왔다. 고산국이 유럽 국가들의 대서양 진출을 언제든지 봉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이 더욱 중요했고, 유럽 국가들이 이 사실을 깨달은 다음에는 고산국에 큰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에스파냐가 멕시코를 계속 보유하는 것은 그저 고산국의 관용에 기대고 있을 뿐이었고,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영토매매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에 걸쳐 추진해온 국가전략의 완성이 그리 멀지 않았다.
“지금도 그 가능성은 무척 적습니다. 땅과 바다에서 고산국을 상대할 나라는 없습니다.”
“왜? 잉글랜드 군대가 뗏목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새강릉이나 새원산을 침략해올 수도 있지. 해군의 전파탐지기를 피해서 말이야.”
“하하하! 농담이 심하십니다.”
“웃어? 큭! 내가 말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전초선으로 삼는 개념은 이민호가 현대 미국의 국가전략을 모방한 것이었다. 구소련의 대서양 진출을 막기 위한 방어선,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영국을 잇는 GIUK 갭과 비슷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미국이 20세기 전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미국 본토 동해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논리로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일본 정부 대신 일본 땅을 방어해주고 무역에서 일본과 한국에 특혜를 베푼 것은 미국 본토 서해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와이의 진주만이 일본에 의해 공격당했을 때 본토에서 느낀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었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이 카누를 타고 미국 서해안을 공격할 거라는 이야기는 전혀 엄살이 아니었고, 국방예산을 타내기 위한 수작도 아니었다. 인구밀집 지대인 동해안과 서해안을 지켜줄 만한 지리적 방어선이 미국 땅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대양 건너편을 일차 방어선으로 삼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 작은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를 위해 지출하는 국방비가 결코 헛되이 낭비되는 돈이 아니야.”
“예. 다른 나라들도 군사력이 꾸준히 발전할 테니 미리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내서 전쟁 가능성이 아예 없어지면 더 좋은 일이야.”
고산국처럼 인구 대비 병력을 적게 유지하는 국가에서는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일단 중요했다. 현대 미국과 러시아처럼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졌으면서도 아프가니스탄이나 베트남, 조지아 같은 수렁에 일단 빠지면 병력과 군비가 대책 없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을 보유했음에도 고산국왕이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유럽 외교가의 평가는 정확한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약간 무리해서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한 것이었다.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함대의 지상 포격 훈련과 수송기의 폭격 훈련, 특전대대와 해병대의 직승기 강습 훈련이 강도 높게 며칠이나 이어졌었다. 실제 전투에서는 사상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지만 훈련 중에 직승기가 추락해 일곱 명이 사망했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이 될 때까지는 군사력을 강하게 유지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하지만 국가 발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한도가 어디인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똥이는 사관학교 출신이면서도 정치인으로서 균형 감각이 뛰어난 편이었다. 군부에서 불만을 품고 반대로 총리부에서 반발한다면 아마도 적정한 수준일 것이다. 양쪽을 설득해 합의점에 이르게 하는 것은 국왕이 할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챕터의 결론 부분이라서 길어졌습니다. 연재 하루 빼먹었고요.
멕시코를 제외하면 일단 영토와 방어선의 완성이 이뤄졌습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정착민 재판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아 탄광으로 보내겠습니다.
이제 명나라와 30년 전쟁만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