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19 100. 세인트 킷츠 앤드 니비스 =========================================================================
“그것은 사실이오.”
“제가 앞에서 그럴 듯한 말을 지껄였지만 저희 종족의 미래는 뻔합니다. 리아무이가 섬사람들이나 쿠스퀘이아에 살던 타이노족이 그랬듯이 뼈만 남거나, 뼈마저 남기지 못하고 조만간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큰 돛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자랑하는 불 뿜는 막대기보다는 그들이 온 이후 번지는 돌림병이 더욱 무섭습니다.”
쿠스퀘이아는 ‘모든 땅의 어머니’라는 뜻으로서 쿠바 동쪽 에스파뇰라 섬, 즉 현대의 도미니카와 아이티의 영토인 영어명 히스파니올라 섬을 가리켰다. 아이티는 ‘산의 땅’이라는 뜻으로서 섬의 북쪽 산악지대를 이르는 지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에스파냐 탐험가들이 아이티를 전체 섬 이름으로 채록했고, 따로 에스파뇰라 섬이나 산토도밍고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스파뇰라 섬에 살던 타이노 원주민들은 1492년 콜럼부스가 상륙했을 때 환영했고, 1496년 첫 번째 에스파냐 정착촌이 건설될 때는 거주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 건설을 직접 도와주었다. 그러나 1492년 25만 명으로 추정됐던 원주민 인구가 홍역 등 면역이 되지 않은 질병에 의해 1517년에는 1만 4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흑인 노예가 대량으로 도입된 이후에는 더욱 줄어들어, 1607년 펠리페 3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 네덜란드 해적 때문에 원주민들을 섬의 남동부로 집중 이주시켰을 때는 몇 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나의 전사들이 병을 막는 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했을 때 섬사람들이 거부했소. 깨끗한 카리브나의 몸에 다른 부정한 기운을 주입하는 것은 전통에 어긋난다고 했었소.”
“고산국 전사들이 두려워서 저지른 큰 실수였고,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제가 자연의 섭리 운운했지만 고산국의 보호를 받는 포우하탄족과 에이레족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감히 청원하자면, 우리 섬사람들이 사는 땅을 고산국 대추장께 바치고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이 큰 마을을 방문한 여러 섬 추장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말씀드립니다.”
“휴우~ 내가 추장과 섬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고 있다 해도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소. 나는 그대들을 섬의 주인으로 인정하지만 에스파냐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반대할 것이오.”
법정에 참석한 외교관들이 웅성거리며 에스파냐 외교관들을 주시했다. 그런데 에스파냐는 에스파뇰라 섬처럼 사탕수수 대량 재배에 적합한 큰 섬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쿠바는 보물선 운항 경로에 가까워서 중요시했을 뿐이었다.
에스파냐는 카리브 해 동쪽 소 안틸레스 제도가 보물선을 노략질하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해적들의 소굴이라서 신경을 썼지, 영유권 자체에는 크게 흥미를 두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도 에스파냐는 멕시코와 남미의 은에만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고 쿠바를 제외한 카리브 해의 섬들을 버려두다시피 했다. 그래서 나머지 섬들은 차례로 영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의해 영유권을 주장할 여지는 남겨두었고, 프랑스에게 동쪽 3분의 1을 내준 에스파뇰라 섬 서쪽에도 식민지를 유지했다.
“국왕전하! 저희 에스파냐는 소 안틸레스 제도를 고산국에서 영유하는 일을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파나마 운하가 개통됐을 때부터 해적 토벌을 조건으로 꾸준히 고산국에 요청했던 사항입니다. 혹시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국왕전하?”
“험! 확실히 에스파냐에서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지만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지냈소.”
“고산국이 영토를 늘리는 일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럽 외교가에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강대국으로서 지역 내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적 토벌은 문명국가가 수행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소. 원주민들의 청원과 에스파냐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고산국이 소 안틸레스 제도를 떠맡기로 하겠소.”
리아무이가 섬을 비롯한 카리브 해 동쪽 섬들을 고산국이 영유하는 것이 오히려 에스파냐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고산국이 공짜로 영토를 얻는다기보다는 섬이라는 작은 대가를 받으며 에스파냐의 통상로를 지켜주는 셈이 된다. 에스파냐 외교관들이 외교적 승리에 기뻐하는 동안 카리브 해 해적들의 본국인 잉글랜드와 프랑스, 네덜란드 외교관들이 크게 낙심했다.
“존경하는 고산국 국왕전하!”
“말씀해보시오.”
프랑스 외교관 자격으로 그로티우스가 발언권을 신청했다. 이민호는 국제법과 전쟁법의 선구자인 그로티우스에게서 어떤 주장이 나올까 몰라 바짝 긴장했다.
“에스파냐는 영유권을 포기했고 바로 어제까지 고산국은 소 안틸레스 제도를 영유하려는 의사를 갖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두 나라만의 구두협약으로 소 안틸레스 제도가 고산국 영토가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만 세인트 킷츠 섬은 승전국인 고산국의 영토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에스파냐의 요청이 없더라도 이미 그렇게 된 것이오. 섬사람들이 섬을 들어 바쳐 고산국 백성이 되길 원했고 내가 청원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말이오. 설마 원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원주민들이 야만인이라 하여 그들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하.”
“고산국 국왕인 나는 원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인정하오!”
이 순간만큼은 유럽 몇몇 나라와 고산국의 국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고산국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여기에 네덜란드가 연합하더라도 압도할 만한 해군력을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세 나라는 고산국 비행기들에 의한 폭격을 두려워해야 했다. 물론 이민호가 암암리에 경제권을 장악한 네덜란드를 폭격하라고 지시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에스파냐를 제외하면 고산국과 세 나라의 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없었다. 이민호도 멕시코를 얻을 목적으로 세 나라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설탕입니다, 전하. 프랑스는 에스파냐처럼 은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혹시 설탕을 프랑스와 잉글랜드에 조금 싸게 대량 공급해주신다면 저희는 작은 섬들이 이어진 소 안틸레스 제도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의외로 설탕 소비가 급증해서 충분히 공급하기가 여의치 않소.”
유럽에서 설탕 판매 가격을 내렸더니 수요가 폭증해서 생산을 몇 배로 늘렸는데도 예전보다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품귀현상을 빚은 설탕 가격은 가끔 예전 가격보다 더 높이 치솟는 경우도 있었다.
설탕이 서민의 구매능력 안에 들어오고 비상식품 역할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사치품이 아닌 생활필수품에 가까워졌다. 특히 요리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잉글랜드의 경우가 심했다.
“잉글랜드 입장에서 국왕전하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고산국의 동맹 자격으로 베네수엘라 지역을 얻은 덴마크가 너무 부럽습니다. 덴마크는 급증하는 국내 설탕 소비량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아서 발트 해 지역에 설탕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사탕수수를 재배할 만한 열대의 땅을 조금이라도 나눠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고산국 입장에서 잉글랜드에게 호의를 베풀기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 않소? 안 됐소.”
“그럼 잉글랜드에 대한 설탕 공급량을 최우선적으로 늘려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생각해보겠소. 하지만 이번에 세인트 킷츠 섬에서 전쟁을 했으니 그 뒤처리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소.”
잉글랜드와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인도 문제에도 연관돼 있었다. 고산국이 정식 개입하지 않는 동안 잉글랜드가 차근차근 인도를 장악할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럼 혹시 프랑스에는 열대의 땅을 나눠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하?”
“건국 초부터 좋은 관계를 형성한 프랑스라면 언제든 환영하오. 기후가 급변하면서 식량 부족이 큰 문제가 되고 있소. 설탕뿐만 아니라 밀이나 다른 곡식도 재배할 만한 땅이, 어디 보자.”
영토는 신성하지만 현대에도 얼마든지 교환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20세기 국경 획정 조약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민호는 프랑스가 앞으로 북미와 남미, 서인도제도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남북미 지역의 침략전쟁에 기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베네수엘라 동쪽 땅을 제시했다. 공짜나 다름없는 조건에 프랑스 관전무관들이 환성을 질렀다.
“노예의 사역과 매매 모두 금지하겠소. 그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킬 테니 신경 쓸 것 없소. 그리고 지표면 이하 지하자원은 전부 고산국 국왕인 내 것이오.”
“아아!”
“이주민들이 자체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무장을 허용하되 육군 주둔 금지와 해적 진압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등, 대체로 베네수엘라와 같은 조건이오. 받아들이겠소?”
“물론입니다, 전하! 감사합니다!”
“이건 말도 안 돼! 프랑스 만세! 고산국 만세!”
그로티우스와 프랑스 외교관들은 무게를 잡고 가만히 있는데 에피아 후작을 비롯한 관전무관들이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이어서 네덜란드 외교관이 쭈뼛쭈뼛 일어서서 요청하자 단박에 남미 북쪽의 땅을 할양해주기로 약속해서 외교관들을 감격하게 만들었다.
베네수엘라 동쪽 지역은 차례로 현대의 가이아나,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가 위치한 곳으로, 각각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이민호라고 땅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인들의 이주를 막기 어려운 곳이기에 예전에 이런 결정을 해두었다. 유럽 침략군이 아니라 카리브 해 섬으로 이주하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인들처럼 개인적으로 열대지방에 정착하려는 유럽 이주민들이 문제였다.
이 지역은 고산국 대서양 함대나 남미 방어사령부가 24시간 통제하기에 너무 먼 곳이었다. 사탕수수 등 열대작물을 재배할 농지가 절실히 필요한 유럽 국가들이 욕심을 낼만한 곳이었고, 고산국은 어차피 인구가 부족해 앞으로 수백 년 동안 빈 땅으로 남을 곳이었기에 대국적인 차원에서 영토를 양보해주었다. 유럽 국가들의 배가 대서양을 오가며 에스파냐의 국력을 갉아먹게 하려는 국가전략과도 관계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차별을 당한 잉글랜드 외교관과 관전무관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이민호가 예상한 대로 잉글랜드 외교관이 다른 것을 제시할 차례였다.
“국왕전하! 저희 잉글랜드 외교관들은 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왕전하께 면담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아일랜드 문제는 고산국과 관계없으니 알아서 해결하시오. 그보다 먼저 리아무이가 섬, 세인트 킷츠 섬에 군대를 보낸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요?”
“그, 그것은 용병...... 예. 고산국 검찰에서 조사한 것처럼 국왕군 소속이 맞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대화하기 곤란할 것 같으니 나중에 따로 대화할 시간을 잡겠소.”
잉글랜드가 수십 년째 이어지는 아일랜드 독립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대신에 사탕수수를 재배할 남미 북부의 땅을 원하는 것 같았다. 이민호는 잉글랜드에 떼어줄 땅도 미리 준비해놓았고, 에스파냐가 멕시코를 고산국에 할양할 때 사탕수수 농장의 대체지로 준비해놓은 땅도 있었다. 고산국 예조와 정보국, 참모본부가 합동으로 몇 년째 준비한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아일랜드 문제가 해결될 계기가 마련됐다. 잉글랜드가 세인트 킷츠 섬에 병력을 파견해 고산국과 싸우도록 한 의도는 이민호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는 이 작은 전쟁으로 고산국의 역량을 평가한 다음 아일랜드 문제를 결정할 속셈이었다. 당연히 잉글랜드가 고산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무리였다.
“에스파냐에서는 문제가 없겠소?”
“물론입니다, 국왕전하. 해적들과 자칭 정착민들이 카리브 해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면 에스파냐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다행히 에스파냐 외교관들은 남미 포토시 광산과 멕시코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인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금 사정이 최악으로 몰릴 경우 여차 하면 멕시코를 고산국에 판매할 생각을 가진 에스파냐 외교관들은 멕시코를 비싸게 팔긴 틀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먼저 풀어야 더 중요한 것을 싸게 살 수 있는 법이었다.
잉글랜드와 협상이 진행되는 며칠 동안 재판부에서 형량을 정한 다음 다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오해할 여지가 많았던 정황을 감안하고 원주민 피해자와 유족들이 가해자들의 선처를 바란다는 명시적인 의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잉글랜드 정착민 성인 남성들의 가담 정도에 따라 징역 10년에서 15년 사이로 감형된 형량을 선고했다. 프랑스 피고들에게는 잉글랜드 피고들의 긴급 구원요청으로 참가한 만큼 징역 5년에서 8년을 선고했다.
변호인단을 맡은 각국 외교관들은 피고들과 협의한 다음 항소를 포기해서 형량이 확정됐다. 목숨을 구한 피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본 재판부는 기결수 가족들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부인이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계속 함께 살고 싶다면 기결수들이 강제노동을 하는 기간 동안에도 밤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지내게 해주겠습니다.”
“당연해요! 정말 고마워요, 재판장님.”
“반대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기결수 잉글랜드 국적의 존 카펜터 외 221명, 기결수 프랑스 국적의 장 자크 드 생나제르 외 157명에게 애팔래치아 산맥의 국영탄광에서 형기만큼 강제 노동에 종사할 것을 명한다. 임금은 기본 소득을 제외하면 다른 비숙련 광부들과 동일하며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임금도 오를 것이다. 다만 수령한 임금의 절반은 희생된 원주민과 그 유족들에게 사용되기 위해 갹출될 것이다.”
적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재판부에서 꽤나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기 고산국 죄수들에게 부과되는 징역형이 목화밭이나 과수원에 투입되는 것에 불과하므로 탄광 강제노동은 강도가 아주 높은 징벌이었다.
“그리고 국영 탄광에서 마련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거하되 마을 경계선을 벗어날 수 없다. 형기를 마친 자는 귀국하거나 탄광마을에 정착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와아!”
재판부는 강제노동이라 이름이 붙었지만 근무조건이 괜찮은 탄광마을에 정착해 생활하는 것으로 형기를 마치도록 했다.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를 내질렀다.
기결수들은 검사로부터 사형이 구형됐고 최소한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도 비록 임금은 절반밖에 못 받더라도 일반 광부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됐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정착민들은 변호인 역할을 맡은 외교관에게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기뻐했다. 특히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광부는 쉬운 일에 속했다.
재판이 끝나고 누군가가 평하길, 모두가 행복한 재판 결과가 나왔지만 죽은 사람들만 억울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국왕인 이민호의 정치적 개입 없이 재판부에서 알아서 판단해 내린 결정이었다.
============================ 작품 후기 ============================
잉글랜드와 협정을 맺는 것은 또 뒤로 미룹니다. -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