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15화 (864/1,000)

00915  100. 세인트 킷츠 앤드 니비스  =========================================================================

- 타앙! 탕!

그토록 심하게 포격과 폭격을 퍼부었는데도 요새에 생존자들이 남아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잉글랜드인들이 무너진 요새 방어진지 여러 곳으로 달려가 머스킷을 쏘는 모습이 상륙함 함교에서 포착됐다.

요새 위쪽 불타버린 숲에 강습 상륙한 특전대대와 해병대 각 1개 중대가 총격전을 수행하며 요새로 접근했다. 몇몇 직승기가 근접 지원을 하는 동안 나머지가 상륙함에 돌아와 추가 병력을 싣고 떠났다.

“설마 했는데 아바마마 말씀처럼 그런 불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상대도 우리처럼 인간이다. 우리 전함의 포격에 대비해서 땅굴을 파놓았겠지.”

그러나 무기 성능과 훈련 수준에서 차이가 크고 고산국 지상군은 요새가 위치한 언덕 위쪽에서 내려오며 싸우는 지리적 이점까지 안고 있었다. 분대마다 자동화기 사수가 2명씩이고 소대마다 기관총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화력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잉글랜드군은 총격전 중에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 사이에 유탄 사수와 척탄병이 동굴과 바위 틈바구니에 숨어서 저항하는 잉글랜드군을 차근차근 제압해 나갔다.

요새 수비군은 생각보다 일찍 지리멸렬하더니 마지막 남은 100여 명이 금방 항복해버렸다. 한창 싸우다가 갑자기 전투가 끝나자 관전 무관들이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요새에 백기가 오른 뒤에도 여기저기 숨은 자들이 머스킷을 쏘아 요새 점령에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잉글랜드 무관들은 항복 후에도 저항하는 것은 잉글랜드의 명예를 더럽힌 비신사적인 범죄라고 화를 냈다.

“세자는 지금 이 상황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 알지?”

“예. 포격과 폭격 때문에 아마 절반 이상이 고막이 나갔을 겁니다. 잉글랜드인들은 작렬탄을 처음 겪어봐서 충격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 넌 현역 장교지. 이번에도 운이 좋았지만 언젠가는 우리 군대가 불리한 전투를 수행할 수도 있다. 국가는 참전 군인들의 부상과 후유증뿐 아니라 피폐해진 정신까지 보살펴주어야 한다. 군인은 소모품이 아닌 너나 나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퇴역 군인에 대한 예우와 생활 보장은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군인들이 풍기는 인상이 험악하고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모습만 보이더라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평소에 군인은 장차 전투에 투입될 것에 대비해 인간의 본능에 반하는 살인을 하도록 훈련받는다.

전투에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야 하며 실제로 인간을 죽여야 한다. 당연히 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퇴역 후에 폐인이 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 될 수도 있었다. 국가에 필요한 군인의 임무를 맡겨놓고 나중에 필요가 없어지면 외면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 이민호의 신념이었다.

산발적인 저항을 모두 진압하느라 전투는 정오가 다 돼서 끝났다. 잉글랜드 포로들은 다들 귀가 먹었는지 의사소통하기가 몹시 어려워, 무장을 해제하고 해안으로 호송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의료용 직승기들이 몇 번이나 요새와 병원선을 왕복하며 잉글랜드인 부상자들을 실어 날랐다.

그 사이에 에스파냐 함대에서 종선 수십 척을 내렸다. 요새가 단번에 함락되는 것을 지켜본 잉글랜드 정착민들은 에스파냐군이 접근하자 저항 없이 마을을 둘러싼 목책의 문을 열었다. 산 너머 프랑스 정착민들도 에스파냐 군이 끌고 왔다. 여자와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바다 건너까지 들렸다.

“아이들 울음소리에 가슴이 저미는 것 같습니다. 민간인들을 에스파냐 병사들의 손에서 빼내 우리 상륙함에 수용해야겠습니다.”

“음. 그렇게 명을 내리겠다. 하지만 세자는 저들 중에 인종 학살 범죄자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부모를 잃은 원주민 아이들이 우는데도 남김없이 학살한 자들이 바로 저들입니다.”

그래서 정착민들 중에 이번 원주민 학살 사건에 관련된 성인 남성들을 순양함 구치시설에, 나머지 민간인들을 상륙함에 따로 수용했다. 남편이나 아버지와 떨어진 여자와 아이들이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배가 고파 나라를 떠날 것이라면 차라리 고산국에 이민을 오지 말이야.”

“서인도제도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뱃사람들이 도시 빈민들을 유혹했다고 합니다.”

“설탕을 팔아 부자가 될 꿈을 꿨겠군. 누구나 꿈은 크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지. 그래도 인간의 경제적 욕구를 이해하고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위정자가 할 일이다.”

현대 쿠바 정부에서 교육과 의료 등 복지를 아무리 잘해줘도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이유가 있었다. 식량 부족과 정치적 자유도 문제였지만, 특히 자본주의 하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약간의 행운을 얻으면 경제적으로 훨씬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이른바 자유 쿠바인들은 대부분 플로리다에서 빈민으로 살아간다.

“예. 어느 나라든 경제체제는 인간의 경제적 욕구에 기초한다고 봅니다. 인간의 욕구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자유 시장주의 정책을 실시하다 보면 독과점 같은 시장의 실패가 생길 수 있고, 이를 보완하려다가 정부의 실패가 생길 수도 있다. 어떤 정책이든 장단점이 있으니 한 가지 이론에 경도되지 말고 전체 백성들을 위해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해라.”

전투를 참관하면서도 이민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세자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베풀려고 노력했다. 세자 개똥이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한 탓에 경제문제에서는 백지상태에 가까워 오히려 이민호의 가르침을 솜처럼 빨아들였다.

“국왕전하! 저들을 어찌 처리하실 요량이신지요?”

“당연히 재판에 넘겨야겠지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법이 준비돼 있소.”

“고산국 형법에는 인간에 대한 범죄, 사회와 국가에 범죄 외에 인류에 대한 범죄가 규정된 것으로 압니다. 인종 학살에 대한 중벌 규정이 선언적인 의미만이 아니었군요.”

“실효성이 없는 법조문은 없소. 그대의 고향과 이름은 무엇이오?”

이 시대 귀족들처럼 목도리도마뱀 같은 장식을 단 학자풍의 프랑스 외교관이 자신을 위고 그로시오라고 소개했다. 네덜란드 관전 무관이 그를 잘 아는 척하며 다르게 부른 것이 기억난 이민호는 그가 태어난 곳과 원래 이름을 물었다.

“지금은 파리에 머물고 있지만 태어난 곳은 남 홀란드의 델프트입니다. 로테르담 북서쪽, 덴 하그 아니 헤이그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홀란드 이름은 휘호 더 흐로트이며 라틴어 이름은 휴고 그로티우스입니다.”

“아! <바다의 자유>라는 책은 아주 감명 깊게 읽었소. 자연법과 국제법 관련 논문에도 흥미를 갖고 있소.”

“영광입니다만, 국왕전하께서 영해와 접속수역에 더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논하셨을 때 제가 극렬하게 반대했었습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다면 이 자리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오. 무역에 경제를 의존하는 홀란드 출신 법학자라면 그런 논리 전개가 오히려 자연스럽소. 고산국은 무역보다 해안선 방어와 어업을 중시해서 입장 차이가 난 것뿐이오. 대척점에 선 두 가지 의견이 앞으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지요.”

“국왕전하께서는 듣던 대로 반대 주장에도 관대하십니다. 홀란드에서도 전에는 다른 종파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옛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프랑스에 계시오?”

“10년 넘게 종교 논쟁에 격렬하게 뛰어들었다가 결국 체포됐습니다. 저와 같은 주장을 펼치신 올덴바르네벨트님은 결국 처형당했지요. 아내와 하녀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지금은 프랑스와 나바레의 국왕 루이 13세 폐하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오.”

그로티우스는 1618년에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루베스테인(Loevestein) 성에 갇혔다. 구금 중이던 1621년 아내와 하녀의 도움을 받아 성에서 극적으로 탈출했고, 그 이야기가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혹시 고산국에서 법학을 연구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하겠소. 프랑스 국왕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소.”

“감사한 말씀이지만 제 주장이 고산국과 많이 달라서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될 것 같습니다.”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소. 다양한 의견이 나와야 학문이 발전할 수 있지 않겠소?”

“하오나 학문도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국내 생산력이 취약해 무역을 중시하는 유럽에 남아있는 편이 낫겠습니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오. 정말 안타깝소. 매년 연구비를 지원해줄 테니 그것만은 받아주기 바라오.”

“전하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 강하게 영입을 추진하려다가 프랑스 관전 무관들의 대표 에피아 후작이 주변에 얼쩡거리는 바람에 그만 두었다. 에피아 후작 앙투안 쿠아피에 드 뤼제는 리슐리외의 친구로서 조만간 프랑스 원수가 될 장군이었다.

“국왕전하! 일방적인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전투가 승리로 끝났으니 대대적으로 승전 연회를 열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범죄자들에 대한 재판을 끝낸 다음 연회를 열겠소. 후작도 재판을 참관하시겠소?”

“물론입니다, 전하. 프랑스인들이 붙잡혀 있으니까요. 평소에는 합리적인 프랑스인들이 잉글랜드 야만인들의 협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범죄에 연루된 것 같습니다.”

에피아 후작이 에스파냐 관전 무관들을 노려봤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에스파냐가 프랑스에 위협적이지 않는 한 불구대천의 원수인 잉글랜드와 협력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 ‘국왕의 진영과 군대의 대원수’ 겸 프랑스 총사령관은 레디기에레 공작 프랑수아 드 본느였다.

함대는 카리브 해를 남쪽으로 돌아 쿠바 아바나를 거쳐 새동래에 도착했다. 본토에서 차출한 원정군과 1함대 분견대를 먼저 귀국시키고 이민호는 포로와 외교관들을 상륙함에 태우고 새강릉으로 향했다.

재판은 북미 동해안 지방의 중심지이며 지방법원 소재지인 새강릉에서 열렸다. 상업지역인 새원산에는 순회재판소가 매주 개정됐고 군사지역인 새동래에는 군사재판이 더 자주 열렸다. 북미 도시들이 점점 커지고 농촌지역이 확장되면서 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됐으나 아직은 수도 이전을 핑계로 그냥저냥 버티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아름답소. 마치 열대지방의 극락조 같구려.”

“극락조 깃털이 맞아요, 전하.”

비올레타와 포카혼타스가 성장을 하고 이민호를 맞이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함의 극치였지만 브루나이에서 선물로 보낸 각종 극락조의 꽁지 깃털을 제외하면 의상 제작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원색의 빛나는 깃털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전설 속의 천둥새보다 더 화려하고 위엄 넘치는 복장을 하고 대중 앞에 나선 비올레타와 포카혼타스는 북미 원주민들로부터 여자 대정령으로 추앙받았다. 원주민들 사이에 도시행정에 불만이 쌓이더라도 비올레타나 포카혼타스가 한 마디 하면 껌뻑 죽었다.

“아바마마와 세자이신 석현 형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쥐똥이도 반갑다.”

“한참 전에 성인이 됐습니다. 이제는 제발 석민이나 카를로스라고 불러주십시오, 아바마마.”

비올레타의 아들 고석민은 ‘카를로스 다스마리냐스 고’라는 스페인식 이름을 따로 갖고 있었다. 지적인 누나 마르그레타와 달리 카를로스는 세자 개똥이처럼 천방지축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개똥이가 히말라야나 남극과 북극처럼 세계의 극지를 정복하려 한다면 쥐똥이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오지 탐험을 즐겼다. 지금은 육군 소위로서 북미 탐사대의 일원이지만 조만간 남미로 전출하고 싶다고 했다. 로키산맥과 캐나다 지역을 포함해 북미 탐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뭐 어때. 너도 더 이상 엄마 속 썩이지 말고 장가나 가거라.”

“저는 아직 어려서 여러 곳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10년 후에도 살아남으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쥐똥이는 매년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할 때마다 완주할 정도였으니 체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오지에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비올레타의 걱정이 깊었다.

“전하! 재판을 열기 전에 정보국에서 보고한 서류를 살펴보세요. 재미있는 사실이 많아요.”

“알고 있소. 그 정보 없이 재판을 진행할까 생각하고 있소.”

산크리스토발 섬과 잉글랜드 정부가 의견을 교환하려면 정상적인 범선 항해로는 일 년씩 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산국 본토에서 원정군을 보내기 전에 잉글랜드에서 먼저 대서양 건너 서인도제도로 병력을 파견했다. 특이한 점은 잉글랜드가 병력을 파견한 것이 원래 예정된 계획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이것은 고산국의 우편제도를 이용했기에 가능했다. 산크리스토발에서 원주민 학살사건이 발생한 즉시 잉글랜드 정착민이 새동래에 가서 잉글랜드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정보국에서 복사해서 핵심 내용을 고산국 왕실에 보고했다. 잉글랜드 정부에서 보낸 편지도 마찬가지로 중간에 복제됐다. 통신의 자유라는 헌법상 권리가 아직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았고, 특히 외국인에게 통신의 비밀을 보장해줄 이유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회에 재판을 하고 1623년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자책 교정 때문에 내일은 연재를 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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