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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913화 (862/1,000)

00913  100. 세인트 킷츠 앤드 니비스  =========================================================================

카리브 해로 원정 준비를 하면서 우라부의 패륵 부잔타이를 북쪽 땅에서 소환했다. 그런데 이 인간이 바로 왕궁으로 오지 않고 이틀 동안 서점과 도서관을 뒤지고 다녀서 관리를 보내 끌고 오게 했다.

“뭘 그렇게 간절하게 찾나? 일반적인 책은 아닐 테고, 혹시 족보라도 잃어버렸나?”

“그게 아니고요, 전하.”

여진족의 족보는 내부 항쟁이 격심했던 역사에 비해 의외로 잘 보존된 편이었다. 게다가 내용이 정확하고 그 시대에 일어난 사건을 충실하게 기록해서 역사서를 보충할 만한 수준이었다. 요동 지방에 거주하는 고구려 후손들의 족보도 현대까지 내려왔다.

“그럼 남성잡지 과월호라도 찾는 건가?”

“헤헤! 역시 전하께서는 저를 잘 아시는군요. 막내아들 놈이 올해 3월호를 빌려갔다가 잊어버렸지 뭡니까? 가수 토끼 자매가 수영복을 입고 찍은 특별호라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나에게 먼저 물어봤어야지.”

출판사에 전화해 해당 호를 가져오게 했다. 권력이란 좋은 것이었다. 남성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이 정도 권력은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것 같아 낙심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미성년에게 야한 책을 판다고 부모들이 종종 항의하곤 하던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요즘도 꾸준히 듣고 있네만, 그런 책은 성인보다 미성년자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나? 미성년에게 판매 금지한다 해도 어떻게든 구해볼 거야. 그리고 그런 책 안 볼 시간에 교과서라도 한 줄 더 읽고 화살이라도 한 발 더 쏘겠어? 부모들의 기대와 달리 그저 야한 생각이나 하겠지.”

“맞습니다! 아버지라는 자들도 미성년이었을 때 틈만 나면 딸을 잡던...... 실례했습니다. 아들과 똑같은 짓을 했으면서 말입니다.”

집무실 안에 호위와 비서관들이 시립하고 있어서 두 사람이 민망하게 헛기침을 했다. 이민호가 부른 목적을 부잔타이도 대충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북녘 땅이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여진족들이 추위에 충분히 적응한지라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최근 들어 출산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습니다. 일반 여진족 백성들은 잘 모르고 지내더라도 저 같은 패륵은 인구 문제에 민감한 편입니다.”

“바로 그게 문제일세. 우라부를 조금 남쪽으로 이주시키고 싶지만 예전 우라부 영역은 너무 좁고 압록강 북쪽은 예허부와 건주 여진이 이미 차지하고 있어서 말일세.”

건주 여진의 주력은 사르후 전투에서 패한 직후 몽골로 도주했다. 그러나 건주 여진에 복속됐다가 독립한 무수히 많은 부족들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지금은 동해국에서 그 부족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혹시 이 추위가 얼마나 가겠습니까?”

“몇 년 지나면서 풀릴 추위가 아니라는 게 문제일세. 기상대의 예측으로는 앞으로 수 백 년 동안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네. 그래서 따뜻한 지역으로 이주시키면 좋겠는데, 우라부가 정착할 곳으로 호주는 어떨까?”

두만강 유역은 동해국의 영역이라 그곳을 내줄 수도 없었다. 원래 우라부의 인구를 회복시켜 유사시 명나라나 몽골에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기온이 떨어지면서 인구를 회복시키기가 난망했다.

일본인 여자들이 만주국에서, 중국 여자들이 티베트에서 이주 초반에 아기를 낳지 못했던 것과 비슷했다. 기온이 낮아 임신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신체에 공급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호주가 목축을 하기 좋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2만이 넘는 여진 기마병이 전혀 필요 없는 지역이 아니겠습니까?”

“다양한 인종이 정착한 호주의 치안을 우라부가 담당하면서 혹시 모를 외국군의 침략을 방어할 수도 있네. 범선 몇 척이 와봐야 대규모 지상전이 전개되긴 어렵겠지만 말일세.”

“여진족은 천성이 게으르고 전리품 욕심이 많아서 치안 유지보다는 전쟁 가능성이 있어야 열심히 훈련합니다. 이왕 이주해야 한다면 적성국이나, 적어도 적대할 가능성이 이웃으로 있는 지역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희가 토르구트 족처럼 고산국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충정은 참으로 고맙네. 그럼 남미 대륙 중앙, 브라질 국경 서쪽이 어떨까? 여기 지도를 보게. 이곳은 대규모 초원지대와 밀림이 교대로 펼쳐져 있어서 목축을 하건 농사를 짓건 무척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걸세. 가끔 브라질 사람들이 월경하면 추방해주게.”

물론 포르투갈 식민지인 브라질에서 고산국 영토를 침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독립을 위해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일 것에 대비해 고산국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민호는 만에 하나 에스파냐와 분쟁이 생긴다면 북미에 주둔한 여진 기병이 남진하는 것과 동시에 우라부가 남쪽에서 멕시코로 치고 올라가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해군이 멕시코만을 봉쇄하는 동안 해안지방에 해병대가 상륙하고 항공대가 멕시코 시를 폭격한다면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저희가 상대할 세력이 포르투갈의 브라질 말고는 없습니까? 일단 원주민들이 많이 살 텐데요.”

“투피인과 과라니인 외에 여러 원주민 부족들이 살고 있네. 분산 거주하고 있어서 큰 위협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보호해줘야 한다네. 실체적 위협이라면 브라질의 노예사냥꾼 반데이란테라는 집단이야. 민간인이지만 수가 많고 무장 수준이 높아서 조심해야 할 걸세. 흑인노예들이 브라질 서부 황야로 도망쳐 큰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왔네.”

“기병 2만과 가족들을 분산 주둔시켜 브라질 국경을 수비하는 임무로 알겠습니다만, 더 큰 목적이 있겠지요?”

부잔타이가 이민호와 눈을 마주쳤다. 우라부 여진족은 이미 고산국의 속민이라서 부잔타이를 속일 필요는 없지만 에스파냐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적은 상황이기에 정확히 밝힐 필요도 없었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필요할 때 도와주게.”

“똑똑한 젊은이들 몇을 골라 스페인어를 배우게 하겠습니다, 전하.”

작긴 했어도 한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이라 눈치는 참 빨랐다. 이주는 내년 봄에 하기로 하고 올 가을에는 선발대를 보내 정착예정지를 답사하기로 했다.

10월 초에 고산국 대서양 함대에 의한 산크리스토발 섬 봉쇄가 시작되면서, 섬을 떠나 잉글랜드로 향하던 범선 한 척, 섬으로 접근하던 범선 두 척을 나포했다. 잉글랜드에서 출발한 범선 두 척에 적재한 요새용 대구경 화포 20문과 젊은 남자 300명을 모조리 포로로 잡았다.

왕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1개 대대와 특전대대 1개 중대가 1함대 분견대에 탑승해 10월 하순에 새동래에 도착했다. 대서양 함대 소속 해병연대 중에서 1개 대대를 출동시켜서 병력은 충분히 준비했다. 총리 혜영을 잘 설득해서 방위예산 예비비가 아닌 일반회계 예비비를 얻어 쓸 수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결국 내탕고를 열기로 했다.

“이렇게 보니 꽤나 장관이구나.”

“이토록 큰 배가 소형 전함이라니, 전혀 안 어울립니다, 아바마마.”

새동래를 출항한 본토 1함대 기함과 대서양 함대 기함이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인근 해상에서 만나는 순간 호위들이 탄성을 쏟아냈다. 이민호를 졸라서 따라온 개똥이도 3만톤 급 전함 두 척의 위용에 거의 넋을 잃었다. 한 척만 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함대와 대서양 함대에서 차출해 구성한 원정함대에는 전함 두 척, 경비 항공모함 두 척 외에 순양함과 상륙함 10여 척이 참가했다. 경비 항공모함이란 1만톤 급 순양함을 개조해 수상 비행기 10여 기를 탑재한 소형 항공모함이었다. 출격은 비행갑판에서 하고 귀환한 수상 비행기가 바다에 내려앉으면 기중기로 갑판에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 그리고 본토 1함대에 각각 세 척씩 배치돼 한 척씩 교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태평양 함대에는 11, 13, 15함대가 속해 있고 각각 왕도와 호주 장영실 항, 북미 서해안의 새목포를 모항으로 두고 있었다. 대서양 함대에 속한 22, 24함대는 북미 동해안의 북쪽과 남쪽을 담당했으며 26함대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모항으로 두었다. 함대라곤 해도 규모 자체는 현대에 비해 훨씬 작은 편이었다.

“배는 클수록 좋고 군함은 더욱 클수록 좋다. 10만톤 급 대형 전함은 100년 이내에 필요 없더라도 중형 전함은 네가 즉위하고 나서 만들도록 해라.”

“전함보다는 차라리 경비 항공모함을 더 만드는 게 낫겠습니다. 순양함만으로도 바다에서 우리 해군을 상대할 나라가 있을 리 없으니 전함은 상륙작전에서 함포 지원 정도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고산국 해군의 영향, 정확히는 충격을 받아 유럽에 전열함 시대가 실제 역사보다 일찍 도래했다. 다만 고산국 해군 함정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빨라서 해군 전력 차이가 점점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만재 배수량 3천 톤에 화포를 최대 104문이나 갖춘 전열함이라도 1만톤 급 고산국 순양함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목선 시대를 벗어나 철갑을 두른 장갑선이나 아예 철선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서 앞으로 유럽 국가들의 군함 배수량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정확한 판단이다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낫지. 유럽 해군 함정이 우리 함정을 바다에서 만나면 무척 공손해지지 않느냐?”

“그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꼬리를 마는 거죠.”

사실 유럽 해군과 함대 결전을 할 게 아니라면 거대한 전함은 시현 효과밖에 기대할 게 없었다. 그래서 대서양 함대 소속 전함이 가장 중시하는 임무가 외국 항구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가끔 외국 함대와 연합 훈련을 빌미로 해상 사격 시범을 보여주면 다들 놀라 자빠졌다. 수평선상에 놓인 작은 어선 크기의 표적이라면 3회 포격 이내에 명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러 나라들과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는 고산국 해군과 해전을 벌이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 자체를 아예 폐기했다.

“잉글랜드 이주민들이 산크리스토발 섬 북서쪽 브림스톤 힐이라는 곳에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아직 교전한 적은 없으나 대구경 대포가 다수 배치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잉글랜드 이주민이 맞소? 아무리 봐도 정규군 같소만. 우리가 함대와 군대를 몰고 오는 것을 알 텐데 즉각 항복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오.”

대서양 함대 사령관이 국왕좌승함으로 사용하는 상륙함을 방문해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학살사건이 발생한 초기에 대서양 함대에 맡겼다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겠지만 군사작전은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기 쉬웠고, 그래서 이렇게 비효율이 증가했다.

“이번에 범선을 타고 오다가 포로로 잡힌 자들도 형식상은 이주민입니다, 전하. 잉글랜드에서 우리를 시험하려는 것 같습니다.”

“풋! 시험에 응해주지.”

고산국의 힘을 경계한 잉글랜드는 그 동안 직접 고산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십 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고산국이 배후에서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도 정식으로 항의 한 번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지속되는 전쟁에 잉글랜드가 본격적인 개입을 앞두고 에스파냐에 가까운 고산국의 군사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또한 고산국 입장에서는 에스파냐와 잉글랜드, 프랑스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발생한 원주민 학살사건에 어째서 고산국이 개입하는지 그 이유를 세계 모든 나라에 설명해줘야 했다. 마침 유럽 여러 나라에서 중립국 참관단을 보내 이들에게 구경시켜주면서 설명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아주 가파른 언덕에 대포를 올렸군. 위치도 아주 적절해서 북쪽과 남쪽 해협을 모두 감제하겠어. 함대 사령관은 공격 계획을 짜두었소?”

“예, 전하. 먼저 전함과 순양함에서 포격을 가한 다음 직승기에 태운 병력을 요새 위쪽에 투입해 점령할 예정입니다.”

“인명피해가 많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오.”

직승기가 없었으면 곤란할 뻔했다. 브림스톤 힐 요새는 일반적인 유럽 함대나 군대가 공격하기에 매우 난감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거리는 일반적으로 요새에 배치된 대구경 화포가 더 길었고, 포화를 무릎 쓰고 범선이 해안선에 접근해 반격하려고 하면 요새 위치가 너무 높고 언덕에 가려 제대로 된 사각이 안 나왔다. 그리고 언덕이 워낙 가팔라서 지상군이 공격할 때 방어군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사상자를 내야 하는 곳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1782년 프랑스가 브림스톤 힐 요새를 점령할 때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한 달 넘게 포위한 다음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파리협정 이후 반환받은 요새를 영국군이 대폭 보강한 다음 1806년에 다시 실시된 프랑스의 공격은 물론 이후에 요새에 가해진 그 어떤 공격도 모두 물리쳤다.

“짧은 시간에 마을을 건설하고 요새까지 건설했다면 국가적 지원이 있었다고 봐야 하오. 여차 하면 잉글랜드와 전쟁을 하게 될 수도 있소.”

“모든 결정은 전하께서 내리소서. 저희들은 어명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적을 제압하겠습니다.”

“믿음직하오. 고맙소, 사령관.”

원정 함대가 산크리스토발 섬의 북쪽을 지나 대서양에서 카리브 해로 진입했다. 황 언덕을 뜻하는 브림스톤 힐 요새가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거리가 멀고 높은 상륙함 함교에 있는데도 고개를 한참 들어 올려서 봐야 할 정도로 브림스톤 힐 요새는 높은 곳에 있었다.

“아바마마. 이 정도 위치라면 고산국 해군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포격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다. 세자는 절대 배를 떠나지 말도록 해라.”

해안에 상륙할 해병대나 요새 위쪽에 강하할 특전대대에 끼고 싶었는지 개똥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까지 고산국이 치른 그 어떤 전투보다도 위험한 곳이었다. 요새의 위치 자체가 함정이었다.

============================ 작품 후기 ============================

전투 좀 하고, 재판과정이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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