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06화 (855/1,000)

00906  99. 한성 사변  =========================================================================

“그래. 가자! 남의 나라 궁정 반란을 진압하러 가는 게 명나라와 오스만 제국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인가?”

“두 나라에 두 번씩이었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도련님.”

“대원수! 특전대대 즉각 출동시키고 해병대도 함께 간다. 나머지 부대는 주둔지에서 비상 대기하도록.”

“예! 전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계복이 차렷 자세를 취한 채 큰소리로 복명했다. 이럴 때만은 이민호가 보기에도 계복이 제법 군인 같았다.

물론 계복은 고산국 육군에서 최고 가는 군인이었다. 북미에서 아파치와 나바호 원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10연발을 쏴서 기러기 열 마리를 떨어뜨린 일은 지금도 군과 민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대신들은 들으시오! 현무 계획에 따라 현장 작전은 계복 대원수가, 본토 방어는 감동 대장이 지휘할 것이오. 당분간 내정은 총리와 세자에게 공동으로 맡기기로 하겠소.”

이민호가 일어나서 국무회의 참석자들에게 선언했다. 현무 계획은 조선 왕실, 황룡 계획은 명나라 황실, 백호 계획은 오스만 제국, 주작 계획은 브루나이 왕실의 궁정 반란에 개입하는 작전 계획이었다. 모두가 고산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었으나, 명나라와 조선은 고산국의 개입을 달가워할 것 같지 않았다.

두 손을 꼭 쥔 혜영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이민호가 친정을 떠날 때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연약한 여자였다. 이민호는 그런 혜영을 잘 알면서도 상황변수가 많을 것으로 예상될 때는 직접 나서서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님! 조선은 멀리서 쏘는 것에 강한 나라에요. 조심하세요.”

“주변을 우리 장병들로 둘러쌀 때까지 전술 차량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게. 활을 든 자들로부터 145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면 되겠지?”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지은 공주님과 조선국 세자 저하, 그리고 원손님은 어떻게 보호하시겠어요? 주인님이 한성에 당도하기 전까지 서소문 사저의 하인들을 보내 모시도록 해야 할까요?”

작년에 아들을 낳았으나 지은이 조선국 세자의 정실부인이 아니었으므로 원손 칭호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 알고도 호칭 인플레이션에 의해 고산국에서만 흔히 원손이라 칭했다. 세자빈 밀양 박 씨가 낳았던 아들이 진짜 원손이었지만 어려서 죽었다.

그리고 명색이 역모를 진압하러 간다면서 그 누구도 조선국왕, 광해 임금의 안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민호가 아주 잠깐 광해군을 떠올렸다가 곧 신경을 꺼버렸다. 명나라와 조선에는 이민호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많이 개입했다.

“아니. 전에 이야기해봤는데 자기 남편은 자기가 지키겠대.”

“얌전하시면서도 당찬 분이시니 믿음직해요.”

지은 공주가 시집갈 때 이민호가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면서 호신용 권총을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은 공주가 조총으로 무장한 반란군 병사들과 치열하게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잠시 상상하던 이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불행한 일을 당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병력을 보내 구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이반이 서인들의 역모를 고변했어도 광해군은 엉뚱하게 이이첨 등 권세를 쥔 북인들을 의심하느라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모 고변이 광해군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아바마마! 독립국인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는 셈입니다. 당연히 개입하더라도 명분을 찾아야 합니다.”

“내 자식과 손자의 목숨을 지키는 것 이상의 명분은 없어! 그깟 조선 국왕 자리는 아무나 가지라고 해.”

개똥이가 황당하면서도 역시나 같은 자식으로서 약간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무작정 한양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었고 이런 사건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절차가 있었다. 고산국과 조선이 명목상 명나라의 제후국이라는 사실을 이용하는 계획이었다.

명나라 황제를 윽박질러 조선에서 역모를 일으킨 자들을 토벌하라는 칙서 한 장을 받아서 조선 전역에 반포하면 명분 문제는 끝난다. 칙서를 받아오는 문제로 예조 판서를 북경으로 보냈다.

이민호가 항공대 기지에 도착했을 때는 특전대대 병력이 탑승한 수송기들이 줄줄이 이륙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실전에 배치된 대형 직승기들이 해병대 병력을 태운 채 차례로 이륙했다.

소형 직승기들을 탑재한 해군 상륙함들은 이민호가 왕궁을 나서기 전부터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장비를 먼저 보내고 병력은 나중에 실어도 괜찮았다.

수송기들이 제주도 상공을 지날 때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대형 직승기들이 제주항을 향해 기수를 틀고 수송기 편대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비행했다.

대형 직승기들이 예비 연료통까지 가득 채운 채 출발했으나 한성까지 바로 가지 못하고 제주도에서 연료 보급을 받아야 했다. 헬기 엔진의 연료 효율이 아직 낮아 현대 시누크 헬기보다 연료를 더 많이 적재했으면서도 항속거리가 훨씬 짧았다.

“전하! 해동상단에 파견된 밀정에게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반군이 홍제원에 집결했다가 10분 전에 창의문을 통과했답니다.”

“창의문이면 한양의 북소문인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예. 북소문이며 자하문입니다. 창의문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도성의 성곽과 문의 경비를 관할하는 훈련대장이 반란에 가담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작전 지휘는 다른 수송기에 탄 계복이 맡았고 참모들도 그쪽에 모여 있었다. 이번 작전에서 이민호를 따라온 수행 참모와 통신병이 지휘기에서 통보한 내용을 이민호에게 전해주었다.

“그럼 반군 주력이 20분 이내에 창덕궁에 도착하겠군. 우리가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어.”

“궁궐을 지키는 금군이 시간을 벌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저녁이라 금군이나 겸사복 따위를 다 합쳐도 몇십 명 안 될 거야. 반군 병력은?”

“창의문을 통과한 병력은 800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외에 장단부사가 이끄는 축성군 600명이 조선 도성을 향해 남진하고 있습니다.”

그때 지휘기로부터 다시 통신이 들어왔다. 수송기가 착륙할 청파 들판으로 횃불을 든 조선 기병 100여 기가 접근해오고 있다는 나쁜 소식이었다.

“수송기의 착륙을 방해하겠다는 심산이군.”

“전하! 청파 활주로에 예비 연료가 쌓여 있습니다. 어딘가 착륙지를 찾는다 해도 수송기가 돌아갈 수 없습니다.”

비행기에 대해 잘 모르는 오스만 제국이 황궁 가까운 곳에 고산국 활주로 건설을 허용한 것과 달리, 조선은 비행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반란군 지도자가 조금이라도 군사적 식견을 가진 자라면 고산국이 병력을 투사할 것에 대비해 활주로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당연한 대응이었다.

“청파에 대기 중인 착륙 유도조를 철수시키라고 해. 지휘관이 군인이라도 나머지는 민간인들이다.”

“전하! 그럼 착륙은 어디서 합니까? 가장 가까운 예비 활주로는 수원에 있습니다만 조선 반군이 수원에도 대비해놓았을 것입니다. 이럴 것에 대비해서 항속거리가 짧더라도 활주로가 필요 없는 수상비행기를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연료 보급은 어떻게 합니까? 돌아갈 연료가 되지 않습니다.”

참모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민호는 실전 경험이 부족한 젊은 장교가 당황하거나 겁먹고 갑자기 머리가 텅 빌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쯧쯧!”

“아! 죄송합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건국 초부터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기계는 언제든지 포기하라고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이민호가 혀를 찬 효과가 컸다. 수행 참모가 실수한 것을 금방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통신기.”

“여기 있습니다, 전하.”

이민호가 통신기 송수화기를 잡고 지휘기에 탄 계복과 직접 대화했다.

“청파 활주로가 폐쇄됐다는데 복안이 있나, 대원수?”

- 창덕궁에서 더 가까운 운종가나 육조거리에 낙하산으로 내리죠, 뭐. 도련님도 강하훈련 받으셨지요?

운종가는 현대의 종로 1가를 포함해서 동서로 길게 뻗어 있지만 종각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남대문에 이른다. 이에 반해 육조거리는 20세기 세종로나 21세기의 광화문 광장과 같은 위치였고 폭은 60미터였다. 동쪽에 의정부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 등이 있었고 서쪽에는 예조와 중추부, 사헌부 및 병조와 형조, 공조 등의 건물들이 배치됐다.

“육조거리가 낫겠다. 그럼 병력은 내린다 치고, 전술 차량은?”

- 아깝지만 어떡합니까? 수송기와 함께 추락시켜 파괴해야 합니다. 이런 사태에 대응하려면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민호가 피식 웃었다. 시대를 앞선 고산국의 무기체계는 외국군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고산국 군인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경우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무기만은 절대 외국에 넘기지 않으려 했다.

“전술 차량을 버릴 수 없어. 안전해질 때까지 전술 차량 안에만 있겠다고 혜영이하고 약속했잖아.”

- 그럼 전술 차량을 살릴 방법이 있습니까?

“육조거리에 강하한 병력으로 먼저 길을 정리해. 그 전에 수송기 편대장에게 병력 강하 후 전술 차량을 낙하시키라고 전해. 그럼 알 거야. 그리고 수송기는 직승기들이 올 때까지 버티면 돼.”

-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음. 전술 차량을 결속시킨 철판이 기체 바닥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수상쩍다 했습니다. 수송기가 반드시 착륙해야 되는 것은 아니었군요.

“항공대에서 시험을 거의 마쳐가는 중이다.”

수송기 승무원들이 전술 차량에 낙하산 두 개씩을 다는 동안 특전대대 장병들은 낙하 준비에 들어갔다. 고고도에서 전술 차량을 낙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송기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드랍시킬 목적이라면 낙하산 한두 개로 충분했다.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수송기들이 숭례문 바로 위를 지나 북으로 비행하면서 뒷문을 열었다. 기내에서 경보가 울리자마자 특전대대 대원들이 떼를 지어 뛰어 내렸다.

이민호가 수송기에서 뛰어내린 즉시 낙하산이 펼쳐졌다. 자유낙하를 만끽할 틈도 없이 어깨와 사타구니에 충격이 왔고 하얀 낙하산이 검은 밤하늘에 마치 해파리처럼 너울거렸다. 밑을 내려다보니 육조거리 관청 건물들에 밝힌 횃불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육조거리에 밝힌 불 덕택에 야간 강하를 하면서 다리가 부러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으쌰!”

엉덩이부터 착지한 즉시 일어나서 낙하산 끈을 붙잡고 버텼다. 곧이어 낙하산이 가라앉으면서 낙하산 끈과 배낭을 쉽게 벗을 수 있었다.

몇 초 일찍 낙하한 호위대장 선영이 도와주러 뛰어왔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호위들이 이민호를 중심으로 모이는 동안 특전대대도 편제단위별로 집결했다.

“수송기들이 저공비행을 할 것이다. 육조거리에서 걸릴 만한 것들은 다 치워! 어서!”

특전대대가 제대로 집결하기 전부터 계복이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그 동안에도 관청 안으로 낙하한 대원들이 담을 넘거나 대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육조거리는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었을 때 광화문의 남쪽으로 이어지는 대로인 주작대로 역할을 맡았다. 경복궁이 재건된 지금도 창덕궁을 정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평소에도 서슬 퍼런 관리들이 오가는 육조거리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 사이 크게 선회해 다시 남대문을 지난 수송기들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낮게 비행했다. 수송기의 후방 문에서 하얀 낙하산 두 개가 동시에 기체 후미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고, 전술 차량이 낙하산에 딸려 수송기에서 튀어나왔다. 육조거리의 길이가 짧아 수송기에 적재한 두 번째 전술 차량을 낙하시키기 위해서는 수송기들이 한 바퀴 더 선회해야 했다.

- 쿠웅!

전술 차량은 10톤도 안 되는 주제에 제법 육중한 소리를 내며 착지했고, 낙하산에 끌려가지도 않았다. 육조거리 관청가에서 숙직하는 관리들이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구경하고 있었다. 계복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낙하산을 떼고 결속구를 풀어! 전술 차량 승무원들은 먼저 탑승해!”

이민호도 선영과 함께 1호차에 탑승했다. 기관을 가동시킨 선희가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이때 차내 통신기에서 계복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대원수다. 목표는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이다. 첨병 소대가 앞선다. 호위대장님! 1호차는 전술 차량 행렬 맨 마지막에 위치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원수님.”

초저녁이지만 완전히 어둠이 내린 육조거리에서 전술 차량이 전조등을 키고 달렸다. 전술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안국동 방향으로 달려가고 그 뒤를 특전대원들이 따라 뛰었다. 장갑차와 달리 전술 차량은 출력이 약해서 차량 위에 보병들이 올라탈 수가 없었다.

- 타탕! 탕!

총소리가 잇따라 울렸으나 특전대대를 노리는 것이 아닌 창덕궁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궁궐 내부에서 저항하는 금군들이 한성 상공을 선회하는 수송기들을 보고 용기를 얻기를 바랐다.

잠시 후 돈화문 앞에 도착했을 때, 미처 창덕궁 내부로 진입하지 못한 반란군의 후미 부대를 만날 수 있었다. 계복의 목소리가 다시 차내에 울려 퍼졌다.

- 전술 차량 횡대 전개! 중대 전 차량 사격 임무!

- 전 차량 사격 임무!

- 목표는 반란군이다. 쏴!

반란군이라지만 복장은 그냥 조선군이었다. 금군과 별시위, 겸사복 등이 수은갑과 두석린갑, 두정갑을 비롯해 화려한 갑옷을 입으므로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 따다다다다!

============================ 작품 후기 ============================

내일 이사하느라 내일까지 경황이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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