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94 98. 전란의 시대 =========================================================================
명나라와 무역을 하는 기업체 50여 곳을 파산시키고 업주들을 구속했다. 이익이 그렇게 많이 나는데도 탈세를 하고 기회만 생기면 비자금을 만들어 빼돌렸기 때문이다. 비자금으로 조선에서 땅을 사거나 유럽에서 성과 귀족 작위를 산 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체납 세금은 물론 벌금까지 추징했다.
외국과 교역하는 품목이 많고 경쟁이 심해 무역업체가 2천여 곳이나 되는데 그중에서 탈세한 기업체가 그나마 낮은 비율이라 다행이었다. 탈세와 관련된 명나라 상인들의 무역 허가도 취소했다.
“호판! 무역업체들에 부과되는 세금이 많습니까?”
“매출에 세금을 매기지 않고 일 년 이익의 절반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식이라 고산국 업체들은 세금이 많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세금을 제대로 내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호소는 주로 명나라 상인들에게서 나옵니다.”
“요즘 명나라에서 장사하기가 어렵지요.”
동림파와 비동림파가 권력다툼을 하면서 권력은 엉뚱하게 환관 위충현에게 집중됐다. 새 황제는 위충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언로가 닫히는 바람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황제가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농민과 상인들은 만력제 시대보다 더욱 곤궁한 삶을 살게 됐다. 당연히 명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제는 반란 소리만 들어도 지겨워서 이민호가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30년 넘게 전국적인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아직도 망하지 않는 명나라의 저력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명나라와의 무역을 제대로 회계 처리를 하려면 우리 상인들이 매출액을 낮추는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 상인들이 금액이 큰 쪽으로 연말에 신고합니다만, 가끔은 적은 금액이 기록된 장부를 신고하기도 합니다.”
“호조판서께서는 구조화된 명나라의 부패가 우리 상인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수출입제도 개선에 신경을 쓰시오. 명나라에서 세제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우리를 떠보는 것이오. 또한 상인들이 관리에게 뇌물을 주는 범죄가 관행화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오.”
“호조와 국영기업청 관리들이 상인들의 사탕발린 말이나 뇌물에 넘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돈을 쌓아두어도 쓸 데가 없는데 가끔 이렇게 집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역업체 50곳을 폐업시킨 것은 오히려 약과였다. 호조판서가 겨우 일 년 새 호조와 세관 관리 110여 명을 고발해서 호조판서인지 감사원장인지 가끔 헷갈렸다.
조직의 장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는다면 외부 감사보다 내부 감찰이 확실히 효율적이었다. 물론 호조판서가 욕도 많이 먹고 상인들이나 파직된 전직 관료들에게 투서질도 자주 당했으나, 비리에 연루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호판께 신뢰를 보내드리오. 그 증거로 훈장을 수여해드리는 것이 어떻겠소? 물론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말이오.”
“이렇게 가끔 불러주셔서 직접 보고를 하게 해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관리들은 권력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판서에서 더 이상 승진시킬 수 없다는 점이 이럴 때는 장애로 작용했다. 혜영이 힘들다고 총리에서 물러나고 왕자빈이 총리직을 수행할 생각이 없다면 이런 사람을 총리로 뽑고 싶어졌다.
저녁식사에 참석하는 왕실 식구들이 해마다 줄어들었다. 왕자와 공주들이 결혼하는 동시에 왕궁에서 나가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고산국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거나 결혼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경향은 왕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민호가 자식들의 결혼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저녁식사에 가끔 오스만 제국의 상황 무스타파 1세를 초대했다.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 지내면서 병세가 호전된 모양이지만 가끔 신하들의 터번을 빼앗아 바닥에 굴리거나 수염을 잡아당기는 병증은 여전했다.
“통역은 상황폐하께 잘 전달해주기 바란다.”
“예, 전하. 상황폐하께서도 고산국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으십니다.”
“알았다. 자! 시작하지. 오늘 저녁의 주 요리는 대서양 바다가재 찜과 버터 구이다. 북미 동부 연안에서는 매우 싼 음식이지만 왕도까지 살려오기 위해 수송기에 실으면서 단가가 450그램 한 마리당 10전으로 뛰었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가공하거나 냉동한 바다가재는 이보다 훨씬 싼 편이다.”
왕실의 저녁 식사는 요리 재료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왕실 식구들은 조선 서해에서 잡히는 꽃게나 대하를 더 좋아했지만 가끔 이렇게 국내 여러 지역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려는 차원에서 토속 음식을 먹었다. 기독교도는 비늘 없는 물고기를 피하고 무슬림들은 비늘 달린 해산물을 피하기에 종교가 다양한 왕실 식구들에게 갑각류는 인기가 높은 요리 재료였다.
영토가 넓다 보니 전국적인 항공망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아직도 백성들이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해서 정기 노선을 유지하려면 이렇게 여객기가 화물 운송도 떠맡아야 했다. 그래서 각지의 특산물을 다른 지역으로 2, 3일 내에 보내는 항공 유통업이 활발해졌다.
“혹시 큰 게 더 맛있습니까? 양식은 가능합니까?”
“450그램에서 500그램 정도가 가장 맛있고 더 크면 고기가 질기다고 한다. 양식은 가능한데 이 정도 크기로 키우는데 자그마치 8년이나 걸린다. 그리고 수심 200미터 이하에서 사는 놈이라서 효율적인 양식이 어렵다.”
“생물자원 보호를 위한 어업 지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어선 별로 어획 구역을 나누고 조업 시기를 조절하는 낮은 수준의 보호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적정 크기 이하 개체나 알을 밴 암컷을 놓아주는 식으로 개체수 감소를 예방한다. 작은 놈이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통발의 눈금 크기도 큰 편이다.”
이민호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친 다음 요리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이 질문에는 혜진이 맡아서 대답했다. 왕자와 공주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열심히 받아 적었다.
“질문이 끝났으면 식전 기도를 올리자. 오늘은 누구지?”
“제 차례예요, 아바마마. 비스밀라!”
브루나이 공주 세나의 딸 영숙은 16세가 되면서 자유의사로 어머니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택했다. 그리고 비스밀라, 즉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단 한 마디로 식전 기도를 대체해 왕실 식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브루나이와 자바 섬 출신 후궁들이 낳은 딸은 열 명이 넘었다. 그러나 무슬림에게 결혼은 종교적 의무이기도 해서 언니들은 스무 살 되기 전에 모두 시집갔고 왕실에는 미성년인 공주만 몇 남았다. 부마는 고산국에 얼마 안 되는 무슬림 중에서도 군인과 경찰, 의사나 소방관 등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남자로 골랐다.
“공주님들이 다들 밝고 미인인 데다가 지혜롭기까지 하군요. 전에 제가 고산국에서 황후를 구할 때 공주님 한 분을 보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식사가 시작되고, 프랑스 위그노 반란을 주제로 이야기하던 무스타파 1세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즉위 직후부터 황제가 정신병자라는 소문이 퍼져서 공주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오히려 무스타파 1세가 강제로 퇴위하고 고산국 왕실에 얹혀 산 이후부터 공주들이 관심을 조금 가졌다. 터번과 수염에 관한 병증은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 여자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프랑스 서해안의 항구도시이며 앙리 3세 이래로 신교도들의 요새화된 거점 도시로 기능했던 후아양(Royan)이 국왕군에게 포위공격을 받은 끝에 점령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후아양은 1623년에 다시 포위되고, 탄압받던 시민들이 네덜란드 신교도 지역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이제는 고산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무슬림이 아니라서 공주들의 혼처는 각자 알아서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으로 시집간 경우가 무척 드문 편입니다.”
“유럽의 여러 왕실에서 청혼해도 다 거절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고산국 공주님들이 외국에서 살면 불편할 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런 문제도 있겠지만 이 시대 여성의 인권이 남편의 재산 수준으로 지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루스인 남자들은 술 마시고 아내를 패는 것이 여가활동이었고 유럽 다른 지역 남자들의 생각도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무슬림들은 종교가 아니라 유목민 지역의 야만적인 관습이 큰 문제였다. 이슬람교 자체는 여성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편이라서 이 시대 기독교 문화에 비해 진보적인 면이 많이 있었다.
“설마 궁전이 불편하겠습니까. 여기서는 여자들도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슬림들과 기독교도, 유대인들을 보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원래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만 너무 멀어서 국왕전하께 폐를 끼쳐드린 것 같습니다.”
“저는 이슬람교의 관용을 존경합니다.”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중에 선영이 이민호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이민호가 한숨을 팍 내쉰 다음 선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을 무스타파 1세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쪽지 내용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1622년 5월 20일에 오스만 제국의 황도에서 예니체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고 똑똑하고 용감하고 겨우 18세밖에 안 된 황제는 코틴 전투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군에 패한 다음 수치심을 느꼈다. 예니체리들을 겁쟁이로 간주하고,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 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군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행정제도도 대대적으로 개편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는 예니체리들과 황궁 내에 위치한 관료학교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무시한 것이 잘못이었다. 예니체리들에 대한 황제의 대응은 이들이 모여 불만을 토로하는 커피 가게를 문 닫게 한 것밖에 없었다. 황제가 똑똑해도 경험이 너무 부족한 것이 패착이었다.
오스만 2세는 예니체리들이 일으킨 궁정반란에 의해 강제로 퇴위된 다음 황궁 중앙 모스크에 갇혔다. 젊은 황제는 사형집행인들이 방문한 순간까지 저항했으나 등을 도끼에 맞은 다음 활줄에 목이 졸려 죽었다.
프랑스 여행자 포크빌의 기록에 따르면 오스만 2세가 사형집행인을 때려눕히자 다급해진 대재상 카라 다부드 파샤가 젊은 황제의 불알을 잡고 늘어졌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른 간수들이 황제의 목을 졸라 죽였다. 진실이 어찌 됐든 궁정반란에 예니체리는 물론 재상부가 적극 가담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상황폐하의 황제 복위를 경하드립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궁정 반란에 의해 오스만 2세 황제가 폐위된 다음 교살됐다고 합니다.”
“맙소사!”
무스타파 1세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식사를 시중드는 오스만 환관의 터번을 잡았다가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상황폐하를 복위시킬 테니 보내달라고 대재상부에서 저희 대사관에 공식 요청했습니다. 콘스탄티니예로 돌아가셔야겠지요?”
“하아! 제가 다시 황제로 즉위해봤자 어머니나 대재상, 혹은 예니체리들의 꼭두각시밖에 되지 못할 것입니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몰라 두려움에 떨면서 잠도 못 자겠지요. 저는 여기 고산국 왕도가 좋습니다.”
그러나 황족으로 태어난 이상 황족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 의무에는 유사시 황제로 즉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포함됐다.
무스타파가 거부한다면 강제로 이스탄불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오스만의 대재상부에서는 황제 무스타파 1세를 안전하게 보내주는 대가로 금 50톤을 제시했다.
“국왕전하! 제가 합법적인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맞습니까? 제가 황제가 됐으니 국왕전하께서 저를 보호해주시겠지요?”
“오래 전의 약속이지만 적법한 계승자인 황제폐하께서 직접 요청하신다면 언제든 군대를 파병해 보호해드릴 것입니다.”
무스타파 1세가 예니체리들이 두려워 고산국 병력을 경호부대로 고용하겠다고 요청하는 줄 알았다. 이민호는 스위스 용병 일부를 이스탄불에 파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스타파가 이민호에게 부탁한 내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고산국 군대를 보내 콘스탄티니예 황궁을 점거하고 충성스런 사파히들과 함께 반란군 예니체리를 쳐부숴주십시오.”
“으음!”
원래 역사에서는 무스타파 1세가 다시 황위에 올라, 누구나 예상했듯이 여러 세력의 꼭두각시로 일 년 반 가량을 지낸다. 그러나 오스만 2세의 죽음에 분개하고 예니체리에 원한을 품은 에르주룸 총독 아바자 메흐메드 파샤가 아나톨리아 군대를 이끌고 이스탄불로 진격한다.
오스만 중앙정부와 권력을 쥔 여러 세력들은 대재상 카라 다부드 파샤를 처형하고 무스타파 1세를 퇴위시켜 반란을 무마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아바자가 이스탄불로 계속 진격하자 결국 군대를 보내 제압한다. 아바자 메흐메드 파샤는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서도 오스만 황실에 대한 충성을 증명한 덕에 처벌을 받기는커녕 총독 직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국왕전하께서 원하는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황제로서 가능한 어떤 요구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고산국은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만. 대재상부로부터 황금 50톤을 받기로 했고. 에.”
“제가 실권을 가진 황제가 된다면 대재상부에서 제시한 황금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원하는 조건도 무조건 들어드리겠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고산국의 국력을 기울여 황제폐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당장 콘스탄티니예로 출발합시다!”
이민호가 벌떡 일어났다. 남의 나라 용병이 되기도 싫고 오스만 제국의 내정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아주 자그마한 바닷가 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아닌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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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죠 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