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86 98. 전란의 시대 =========================================================================
6월 하순에 유럽에서 두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프라하의 시청 광장에서 보헤미아 귀족 27명이 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흰 산 전투에서 패해 가톨릭 및 황제 연합군에게 프라하가 점령된 다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시대 변화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 하나는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난 위그노 반란이었다. 국왕군에 의해 완전 포위됐으면서도 위그노들이 26일에 걸쳐 처절하게 싸운 생 장 당젤리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겁에 질린 위그노들이 대거 북미로 피난을 떠났고, 루이 13세는 국왕군의 창끝을 프랑스 남서부 도시 몽토방으로 돌렸다.
분리주의자들이 최초로 정착한 이래 잉글랜드를 떠난 청교도들이 차례로 호주 남동부에 이주했다. 단 2년 사이에 3만여 명이 농장과 현대의 시드니 위치인 도시 지역에 순조롭게 정착했다. 호주 총독부에서 농기계를 대량 동원해 도시 서쪽 평원을 거대한 농경지로 변모시켰다.
도착 전에 농장과 집, 종자와 말 등이 이미 준비됐기에 이주민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잉글랜드 국왕의 군대에 붙들리지 않고 항구에서 네덜란드까지 무사히 배를 타고 건너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이 비행기를 타고 호주까지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 탑승자들 일부는 몇 년 동안 비행기가 추락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뭐? 특별 재판을 열어달라고?”
그런데 개척 초기에 정신없이 바쁜 청교도들이 뜬금없이 마녀 재판을 열어달라고 조정에 청원했다. 호주를 관할하는 고산국 경찰이나 순회판사가 재판은 물론 기소 자체도 거부하고 오히려 마녀 혐의로 고통 받는 자들을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촌장과 설교자 등 청교도 대표들이 직접 왕궁까지 찾아왔다. 비행기 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왕도까지 온 청교도 대표들을 이민호가 직접 만나봤다.
“국왕전하의 충성스런 신하인 저희들의 절실한 청원입니다.”
“정착도 아직 제대로 못했을 텐데 같은 마을 사람들을 마녀라 비판하고 심지어 처단까지 하려고 하나?”
“존경하는 국왕전하! 이 세상에 사탄이 횡행하고 있는데도 고산국 조정에서는 그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혹시 고산국 대신들이 단체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국왕전하의 눈과 귀를 가리지 않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교황청 대사와 목사님들이 여기 나와 계시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험! 험! 안타깝지만 로마가톨릭이 타락한 지는 이미 오래 됐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부들이 주도하는 마녀 재판은 시간을 지나치게 오래 끌고 판결도 너무 관대하게 내립니다. 유죄 여부 판단은 청교도 목회자들에게 맡겨주시고 국왕전하께서는 마녀들에게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종교 관련 청원이라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을 알현실에 미리 불러놓았다. 교황청 대사와 예수회 선교사 및 구호 기사, 스님과 도교 도사, 심지어 무당도 참석했다. 고산국만큼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곳도 드물었다.
종교 재판, 특히 마녀 재판이라면 보수적인 가톨릭에서만 했다고 흔히 오해한다. 종교 개혁 초반부터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 이단 재판과 혼동한 탓이다.
그러나 마녀 재판은 이단 재판과 달리 가톨릭 지역에서 유죄 판결 비율이 낮은 데 반해 프로테스탄트 지역, 특히 독일에서는 화형에 처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가톨릭 지역에서는 대체로 봉건 영주들보다 왕권이 강해 마녀 재판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적었기 때문이다. 특히 1621년에 유럽에서 유행한 마녀 사냥은 이상 기후의 장기화로 인해 불안감이 확산된 탓이 컸다.
“사바스에 참가해 악마들과 난교를 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여자들 중에 처녀들이 있었어. 난교를 했는데 어떻게 처녀로 남아있겠나?”
“성행위란 반드시 여성의 음부를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들이라 더러운 곳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도무지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겠군. 그렇다면 호주 남동부에 마녀가 된 이들이 있다고 치세. 신앙심이 깊은 신부들과 목사들을 보내 그들이 진짜 마녀인지 여부를 감별하도록 하겠네.”
마녀가 있다고 믿는 자들을 설득하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재판부를 구성하고, 혹시 몰라서 정신과 의사들도 함께 호주에 보내기로 했다. 마녀나 악마에게 사로잡힌 자로 오인되는 사람들의 증상이 현대 의학 관점에서 간질병이나 정신병자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예전에 읽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전하. 하오나 유럽에서 널리 인정된 마녀 감별법에 따라야 합니다.”
“마녀 감별법? 물론이지. 먼저 촌장 당신이 마녀인지 확인해야 하니까 당신이 먼저 수장 심판을 받게. 호위!”
남자 호위들이 촌장을 번쩍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이민호도 따라 나왔다. 여름이라 뜨거운 공기로 인해 숨이 턱턱 막혔다.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새처럼 보기보다 몸무게가 가벼워 물에 빠뜨려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논리가 적용된 것이 수장 심판이었다. 물에 빠지지 않으면 마녀로 확정돼서 화형에 처하고, 물에 빠져 죽으면 그냥 죽는 것이 수장 심판이었다.
“국왕전하! 살려주십시오. 저는 마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심판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하라고!”
왕궁 분수대가 심판의 장이 되었다. 촌장이 분수대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물에서 머리를 내밀 때마다 호위들이 밟아 물을 먹였다.
유럽 전역에서 마녀 재판을 받아 유죄가 확정된 남자들이 여자의 1할 정도 됐다. 이들을 마녀의 남성 명사인 마법사라 칭하기 곤란해 흔히 남자 마녀로 번역된다.
“컥! 컥! 마녀가 아닌 저한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촌장의 몸이 자꾸 물 위에 떠오르는데 혹시 마녀 아냐? 제대로 확인해야겠어. 호위! 머리를 못 들게 마구 밟아!”
“국왕전하! 이 분은 고집이 세서 그렇지 마녀는 아닙니다. 희생자를 마녀로 몰든 아니든 결국 죽이고 마는 불합리한 마녀 판별법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민호가 호위들을 시켜 촌장을 물고문하는 중에 중년의 목사가 나섰다. 북유럽 이민자들 사이에 다수파인 칼뱅파의 목사였다.
“촌장! 이 목사님의 말씀이 맞나?”
“맞습니다, 전하! 목사님! 저를 살려주세요.”
“사람이 물에 뜬 사실만으로 마녀라고 단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촌장도 인정하나?”
“인정합니다! 그만 물에서 꺼내 주십시오!”
알현실에 모인 목사, 신부들과 진지한 대화를 한 다음 결국 호주 남동부에서 마녀 재판을 열기로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호주 남동부에 마녀가 득실댄다고 믿는 청교도들의 민심을 먼저 안정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호주에 정착한 분리주의자나 청교도가 잉글랜드 성공회의 소수파인 점을 감안해 개신교 목사 3인과 고산국 본토 개신교 및 가톨릭 신자인 법관 4인, 고산국 본토를 관할하는 가톨릭 주교에 의해 장엄구마식을 허락 받은 예수회 선교사 1인, 법력이 높다고 소문 난 스님 1인까지 9인으로 종교 재판부를 구성했다. 재판부는 피의자가 마녀인지 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 뿐 처음부터 아예 사법권을 주지 않아 형량을 정할 수도 없었다.
재판부가 호주로 떠나기 전에 이민호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우선 참조하라고 지시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는 환자라면 본인 스스로가 악령에 씌웠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마녀 재판에서는 자백의 법적 효력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몸에 악령이 깃들었다고 믿기 쉬웠다.
17세기에 유럽은 물론 북미에서도 마녀 사냥이 유행했다. 실제 역사에서 1692년 2월부터 1693년 5월까지 매사추세츠 세일럼(Salem) 마을과 인근에서 200명이 마녀로 줄줄이 고발된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과부의 재산 등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마녀 사냥이 진행됐다면, 세일럼에서는 주로 사이 나쁜 이웃이나 정적을 해치우는 데 마녀 재판이 이용됐다. 결국 150명이 투옥되고 목사 한 명을 비롯한 20명이 교수형과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5명이 고문 과정에서 주로 압슬형에 의해 죽었다. 나중에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미국 정부에서도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호주 남동부 정착지에서 실시된 마녀 재판은 3개월을 끌었다. 치안은 좋은 편이지만 고국을 떠나 새로이 정착한 개척지라서 주민들의 정서가 불안한 탓에 마녀로 고발된 자들이 100여 명에 달했다.
마녀 혐의가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안감과 광기에 휘말린 주민들 사이에 고발이 지나치게 남발된 경향이 있었다. 못 생긴 여자부터 피부병 환자, 고양이를 키우는 여자, 40세 넘어서도 독신인 노총각, 악성 채무자까지 모조리 마녀로 지목됐다.
“피의자 대부분이 마녀 행위와 상관없이 무고를 당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종파의 성직자들이 중복 검사한 다음 석방했습니다.”
“피의자들을 보호하고 개척지를 안정시킬 조치는 취했소?”
“물론입니다, 전하. 하명하신 대로 공개된 자리에서 목사와 신부님이 피의자에게 축복을 하고 성물을 소지시켰습니다. 그런 자를 다시 마녀로 고발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개척민들이 납득할 만하겠습니다.”
종교 재판부가 본토에 돌아와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피의자 100여 명 중에서 95명이 이런 식으로 석방되고 목회자들이 공개적으로 마녀가 아니라고 선언했기에 피의자들이 다시 마녀로 고발될 염려는 적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명 중에서 여섯 명이 정신병자로 분류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정신병은 이 시기에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병증이었고, 의사들은 환자의 두뇌와 신경에 작용하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환자들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럼 나머지 세 명은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두 명은 저희들이 판단하기 어려워 일단 왕도에 데려왔습니다. 개척민들이 마녀로 판단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서 좀 더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녀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오?”
“성서에 악마가 있다고 했으니 마녀도 당연히 있겠지요. 그들이 마녀라 해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왕도에서 고위 성직자들을 소집해 종교 재판을 다시 열거나, 피의자들을 로마교황청에 보내 판단하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세례를 받지 않은 아기의 간을 갈아서 그 가루를 어쩌고 하는데 듣기에 실로 끔찍했다. 그러나 재판부에서 건의한 것처럼 로마로 보냈다간 아무리 신중한 교리성성에서 재판을 받더라도 당장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당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 큰 문제는 피의자 두 명이 자기가 진짜 마녀라고 믿는 것이었다. 중세 유럽에는 약초사나 산파 등의 마을 일을 해주며 마녀로 취급되는 자들이 가톨릭교회와 공존한 기간이 꽤 길었다. 에스파냐에서 그랬듯이 고대 종교의 잔재일 수도 있었다.
“자기가 진짜 마녀라고 믿고 그런 짓을 했다 해도 단순한 범죄자에 불과하오. 마법 도구를 장만하는 과정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범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리면 그뿐이오. 이번 같은 경우 아기를 납치해 살해했다면 사형이오.”
“명쾌하십니다만, 전하의 결정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상관없소. 나머지 한 명은 중범죄자요?”
목사가 살짝 놀랐다. 그러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오히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조사해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가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에 더 놀라야 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한 명은 연쇄 살인마였습니다. 호주 정착 직후에 실종된 아이들이 네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시체가 바로 그 자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됐습니다.”
“맙소사!”
살인마는 수사 과정에서 구속시켰으며, 종교 재판부에 처벌권이 없으므로 호주 지방법원으로 수감됐다. 현재는 대법원에서 사형 언도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마녀 재판을 통해 유일하게 잘한 일이었다.
호주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마녀 재판을 요청해서 특별히 허용했지만 이민호는 처음부터 별로 내키지 않았다. 만약 마녀 재판을 자주 허용할 경우 주민들이 서로를 마녀라고 고발하면서 공동체의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의자 중 극히 일부만 처형당하더라도 공동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
이번 마녀 재판을 통해 사이가 나쁜 자들끼리 서로 무고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교도들뿐만 아니라 고산국의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교훈이 됐을 것으로 기대했다.
마녀라고 자백한 자들도 마녀의 권능을 나타내지 못했다. 종교 재판부에서 공개리에 피의자들에게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것을 명령했지만, 구름처럼 몰려든 구경꾼들을 실망시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격오지에 불과했던 호주 남동부에 국왕과 조정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개척민들이 소외감과 불안감을 씻을 수 있었다. 고산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마녀 재판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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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재판 자체가 비합리적이지만 이를 합리적인 교육의 장으로 이끌었다는 교훈적-_-인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