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75화 (824/1,000)

00875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왕도 전체가 공동주택 재건축 사업 때문에 아침부터 오후까지 공사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구획을 나눠 순차적으로 재건축을 진행해서 인력이나 자재 부족난이 생기지는 않았다.

위정자라면 마땅히 백성들의 기본 생활인 의식주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의식주는 문화의 핵심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에 밀접하게 관계된 생활 분야이기도 했다. 다만 윤택한 주거 생활을 위한 주택 건설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공동주택 설계에 참가했던 이민호는 가끔 현장에 나가서 여러 종류의 주택을 구경했다. 물론 신문에는 ‘국왕전하의 현장 지도’로 포장돼 보도됐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는 기자들 수십 명을 대동하고 움직이는 것이 꽤 불편했으나 위정자로서 의무를 피하지 않았다.

“이쪽으로 납시지요, 전하. 이 주택은 전체가 독신자 숙소입니다.”

“5층 건물이구려. 계단이 널찍해서 좋소.”

건설현장 소장인 대목장에게 안내를 받아 갓 완공된 공동주택을 살펴봤다. 독신자 숙소라지만 집이 예전보다 한결 넓어져서 좋았다. 전기와 수도 등 내장공사는 이미 마쳤고 현재 벽에 도배를 하고 기본적인 가구를 들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유럽처럼 건물이 수백 년 넘게 유지되면 좋겠지만 석조건물이 아닌 철근콘크리트로 싸고 빠르게 짓느라 설계수명은 50년 정도였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 주거문화가 바뀌고 입주자의 요구가 다양해질 것이므로 건물의 수명 연장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골조에 물이 스며들어 철근이 부식해 팽창하거나 벽에 금이 가서 건물이 붕괴될 위험이 없도록 방수에 신경을 많이 쓴 편이었다. 층 간격이 넓고 천장이 이중이라 층간 소음도 적은 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단 부모에게서 무조건 독립하는 추세입니다만, 보통 2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하기 때문에 길어야 3, 4년 지낸 다음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래서 새 입주자를 받기 전에 수리하기 좋게 설계됐습니다. 여긴 화장실입니다, 전하.”

“수도 배관 공사가 가장 골치 아프지요. 수압은 적당한 것 같소.”

외국인들이 고산국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충격 받는 일이 화장실 문화였다. 고산국에서는 자그마치 도자기로 변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물을 내리면 배설물이 배관을 통해 정화조로 사라지는 장치는 제작이 간단해서 최근 유럽 귀족 사회에도 도입됐다. 물론 정화조를 따로 만들지 않아 냇가에 바로 연결됐다.

부드럽고 하얀 화장실 휴지도 문화충격이었다. 조랑말이라는 이름을 붙인 비데는 냉수와 온수를 조절하는 문제 때문에 변기와 따로 만들어 바로 옆에 배치했다. 같은 화장실에서 목욕도 하고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하는 것은 외국인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화장실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럽에서는 고산국 사람들이 뒷간에서 똥냄새를 맡으면서 목욕하고 빨래도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삼았다.

“거실에 햇빛이 잘 들어서 좋소. 그런데 큰 방은 서재, 작은 방은 침실이로군요. 뜻밖이오.”

“예. 예전에는 큰 방이 침실이었습니다만 휴식 시간에는 거실이 주로 활용되는 식으로 생활양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독신자 중에 대학생도 많고 직장에 다니더라도 꾸준히 책을 읽기 때문에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후후! 고등학교 때까지 실컷 놀더니 졸업하고 나서야 아쉬웠던 모양이오.”

이민호를 수행 취재하는 기자들이 뭔가 질문할 게 있는 것 같아서 허락했다. 한참 망설이던 기자가 이민호에게 건의했다.

“독신자 숙소든 신혼부부 집이든 공동주택의 건축비 자체는 적게 드는 편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양을 해서 백성들이 집을 소유하게 한다면 집에 애착을 갖고 지역 공동체의 일에도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주거를 위해 소모되는 국가예산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런 정책 제안을 꾸준히 받았지만 고산국에는 절대 주택사유제를 도입하지 않겠소. 안타깝게도 기성세대가 부동산 투기를 해서 가격이 폭등하면 나중에 집을 구해야 할 젊은이들만 고생하게 되기 때문이라오.”

현대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수입은 적고 집값은 비싸서 결혼과 출산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매입한 기성세대들은 은행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가처분 소득이 그만큼 줄어들어 내수 경제 위축의 주요 원인이 됐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대부분 주택이 국가 소유였다.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질 가능성은 적었으나 그 대신 주거비용이 소득의 10분의 1 이하에 불과했다.

“일인 가구를 포함한 전체 가구수보다 더 많은 집을 지으면 부동산 투기가 일어날 염려가 없지 않겠습니까?”

“내 단언하오. 집이 남아돌더라도 이익을 얻을 가능성만 있으면 반드시 부동산 투기를 하게 돼 있소. 그리고 전체 재산에서 부동산의 비중이 높고 모든 경제가 부동산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소.”

“그래도 백성들에게 내 집을 마련하는 기쁨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택이 사유제로 바뀔 경우 부자가 아닌 일반 백성들은 평생 뼈 빠지게 일해서 대출금을 갚아 나가야 할 것이오. 그리고 땅과 달리 집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하락하게 돼 있소. 은행 빚을 다 갚는 시점에는 공동주택이 너무 낡아 재건축을 해야 할 것이오. 백성들이 평생 빚에 허덕이다가 말년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꼴을 볼 수는 없소.”

“전하께서는 마치 직접 보신 듯이 단언하십니다. 혹시 그런 나라가 있었습니까?”

“저기 유럽의 어떤 나라가 그랬다고 들었소.”

모든 땅이 국왕의 소유인 왕토제도 아래에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었다. 최근에 짓기 시작한 별장은 50년 사용권을 줘서 부유한 자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주말마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별장 견본주택 주위가 인산인해였다.

“테라스에 화분을 놓을 자리도 잘 갖춰진 것 같소. 대목장이 아주 세심하게 잘 지었소.”

“칭찬 감사합니다. 하오나 1, 2층은 외부인이 침입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도둑은 거의 없습니다만, 여성 독신자들이 혹시나 해를 입을까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더운 지역이라서 문을 꼭꼭 잠그고 살 수도 없고, 그것 참 문제요.”

미관상 좋지는 않지만 철망으로 만든 창문을 덧대는 문제를 대목장과 한참 논의했다. 모기장을 겸한 방범창을 단다면 범죄자의 침입에 입주자가 대응할 시간을 약간이라도 벌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범죄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럼 전화 교환원이 알아서 주소를 통보해 경찰이 출동하게 돼 있었다.

“이번에는 옥상으로 가시지요, 전하.”

“전에는 빨래만 널었는데 이번 공동주택 옥상은 다르지요?”

“예, 전하. 꽃밭과 간단한 운동시설은 기본이고 공동주택 몇 채를 엮어서 다양한 시설을 공동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여기는 수영장입니다. 온수를 틀면 겨울에도 수영이 가능합니다.”

“흐흐! 겨울에도 남녀가 어울려 수영을 하면 괜찮을 것 같소.”

“청춘 남녀들이 눈이 맞을 기회가 많아지면 더 일찍 결혼하겠지요.”

물론 이민호가 옥상에 수영장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청춘남녀들이 여름에만 해변에서 짝을 찾는 것이 안타까워서 일 년 내내 짝을 찾을 기회를 주도록 한 것이었다.

옥상에서 보니 옆 건물 옥상에는 바퀴 스케이트장, 다른 건물에는 농구장과 배구장, 또 다른 건물 옥상에는 무용과 요가 연습장이 설치됐다. 남자들, 혹은 여자들끼리만 노는 곳보다는 남녀가 함께 어울리는 놀이터에 주안점을 두었다. 독신자 공동주택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지만 혹시나 있더라도 평지 놀이터를 이용하도록 하고 옥상은 성인 전용이었다.

“전하! 청춘남녀가 충동적으로 쉽게 만나고 헤어지면 성 윤리가 문란해질까 두렵습니다. 지나친 성 개방 풍조를 종교계에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참 걱정도 많소. 그럼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요하고 여자들에게 쓰개치마를 입히고 부모가 배우자를 정해줘야 되겠소?”

“그건 아닙니다만.”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뿐이오. 결혼하거나 말거나 당사자들이 결정하도록 하시오.”

남자는 사춘기 이후부터 한동안 거의 짐승처럼 밝히지만 여자들은 배우자나 남자 선택에 매우 신중한 편이었다. 이성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훈련을 초등학교 때부터 받아왔으므로 이성을 접할 기회가 많더라도 쉽게 맺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구르카 용병 출신으로서 정착한 이민자들이 형제혼을 해서 경향의 신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알고 계시는지요?”

“뭐요? 형제끼리 결혼한단 말이오?”

“그게 아닌 줄은 전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네팔이나 티베트 등에서는 부족에 따라 부인 하나에 남편이 여럿인 일처다부혼이 행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여자 인구가 적거나 남편이 행상이나 외지에서 노동을 하는 등 장기간 집을 비울 때 나타나는 결혼풍습이었다. 네팔과 티베트에서는 복수의 남편으로 형제만 가능했으나 인도의 나얄족은 형제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구르카 용병 출신 남자와 결혼하는 고산국 여자는 그런 결혼 풍습을 알고 결혼했다고 들었소. 고산국에서는 배우자를 속이지만 않으면 중혼을 해도 죄가 아니오.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든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오. 물론 바람을 피우다 걸리면 벌을 받지만 말이오.”

“솔직히 말씀드려 그런 결혼제도는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부다처제라면 몰라도 여자 하나에 남자 여럿이면 혐오감이 들지 않습니까?”

“그게 그거요. 생물학적으로 남자가 질투를 더 심하게 한다오. 하지만 일처다부제는 남자들이 먼저 요구했기에 가능한 결혼풍습이오.”

고산국 형법에는 중혼죄가 없는 대신 간통죄가 명기돼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려면 간통죄는 형법에서 사라지고 다만 결혼생활을 깨뜨린 데 대한 민사적 책임만 져야 한다.

그러나 중혼죄가 없는 상황에서 배우자 몰래 새장가를 드는 남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간통죄를 저지른 남녀를 처벌하기보다 오히려 보호하는 차원에서 간통죄를 유지했다. 간통 문제를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면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친족에게 맞아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목장! 공동주택 단지가 완공된 다음 입주자를 모집하는 신문광고를 내시오. 이곳은 주로 독신자들이 이용할 테니 선남선녀들이 수영복을 입고 옥상 수영장에서 노는 사진을 광고 전면에 실으면 어떻겠소?”

“좋은 방법입니다, 전하. 입주신청자들로 인해 시청 민원실이 미어터지게 될 것 같습니다.”

군사력과 경제규모,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의식주, 예술과 스포츠 등 문화 분야도 이 시대 기준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고산국이 많이 앞서 나갔다. 인구가 늘수록 내수가 받쳐주면서 무역의존도를 꾸준히 줄여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30년 전쟁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1619년 8월에 트란실바니아 대공 가보르 베틀렌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권 내에 있던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다. 그는 대도시 코시체, 즉 카사와 포조니를 비롯한 상부 헝가리, 현대 슬로바키아 지역 전체를 점령했다. 이 전공으로 베틀렌은 개신교도들로부터 헝가리의 지도자이며 개신교도의 보호자로 선언됐다. 헝가리 국왕 이슈트반은 원래 허수아비였던 왕좌마저 조만간 내놓게 생겼다.

베틀렌은 개신교 동맹군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포위했다. 신교도 군대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민호는 전황 보고를 받고 나서 신교도가 낙승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11월 23일, 동 슬로바키아 지역 후메네 인근에서 트란실바니아 군과 리소프치치 휘하의 폴란드 기병대가 충돌했다. 1만기나 동원한 폴란드 기병대가 엷게 분산돼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란실바니아 군 보병이 폴란드 군의 보급 거점을 급습했다. 그러나 급히 집결한 폴란드 기병들이 약탈에 여념이 없는 트란실바니아 군을 격파했다.

베틀렌은 비엔나 포위를 풀고 급히 트란실바니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 군이 트란실바니아를 친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였다. 목적을 달성한 폴란드 기병대는 그 즉시 퇴각했다.

“전쟁이 커지다 보니 변수가 매우 많아졌어. 트란실바니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갑자기 폴란드라니!”

“이렇게 되면 오스만 제국도 큰 변수가 될 거여요.”

“오스만이 폴란드를 치려고 움직이면 페르시아가 오스만 뒤통수를 치려고 하겠지.”

국왕 집무실 벽에 내걸린 유럽의 전쟁지역 지도가 점점 확대됐다. 당장 덴마크나 스웨덴이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고산국에서 군용 보급품을 수입하는 규모가 점점 늘어나서 조만간 참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민호가 가급적 덴마크는 참전하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크리스티안은 딱 잡아떼었다.

============================ 작품 후기 ============================

1619년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