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72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필리핀 북부에서 주변 마을을 침략한 일부 유력자들에 대한 토벌 작전이 진행됐다. 대원수 명의로 포고령을 반포한 이후 내란에 가담했던 유력자 대부분이 초기에 항복했으나, 몇몇 유력자들은 점령한 땅을 반환하지 않고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고산국 군대에 체포됐다.
북동부 카가얀 계곡 지방에서는 몇몇 유력자들이 연합해 고산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그러나 군대가 신속히 진주해서 무장한 자들을 포위한 다음 재빠르게 무장해제를 시켰다.
유력자들이 잡혀 들어간 다음에는 반란 분위기가 금방 잠잠해졌다. 필리핀 북부를 돌아보고 온 계복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몇몇 유력자들이 밀림에서 저항하고 있습니다만 현재 추세라면 열흘 이내에 완전히 진압될 것 같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이유도 신분 격하가 아니라 대체로 토지 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군. 대단히 수고가 많았다. 주민들 반응은 어때?”
“필리핀 북부가 고산국 영토에 편입된다니까 그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이 매우 높습니다. 유력자들의 무장집단이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금방 해체된 것도 그 지역 주민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열대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한다. 생존에 어려움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성인 남자들이 기본 소득에만 의존할까 걱정이다. 당분간 기본 소득은 북 필리핀의 생산량에 맞춰서 지급한다는 내용은 다들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루손 섬 북부의 일로카노 주민들은 강인하며 자부심이 강한 족속입니다. 중부의 타갈로그 종족들도 근면한 편이라 남에게 얹혀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적도에 가까운 남부 지역 주민들이 좋은 말로 낙천적인 모양인데 에스파냐의 영역이라서 우리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위아래가 모조리 부패해서 경찰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마약 혐의를 뒤집어씌워서 돈을 버는 현대 필리핀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시기에 북 필리핀 주민들은 훌륭한 백성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동안 필리핀 원주민들을 고산국의 백성으로 정식 편입하지 않은 것은 현대 필리핀인들에 대한 인상이 몹시 나빴던 이민호가 가급적 그 시기를 늦춘 탓이었다.
필리핀 북부 주민들에 대한 국민 통합 작업은 그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실시되고 있었다. 마을마다 세운 학교와 고산국 본토와 흡사한 교과 과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토 매입 조약을 체결하고 이제 완전한 고산국 영토가 됐으니 술탄이나 라자 같은 중간의 유력자들을 배제하고 고산국 정부가 백성들을 직접 지배하도록 했다.
고산국 본토는 여름에 조선보다 덥고 모든 직장에 일정 기간의 여름휴가가 보장돼서 한여름에 피서를 가는 문화가 점차 형성되고 있었다. 가족 단위로 한적한 어촌이나 산촌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해변 백사장에는 과감하게 노출도를 높인 수영복을 입은 청춘남녀들로 넘쳐났다. 학교 수영복을 짧게 만든 보람이 있었다.
성적으로 문란해질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됐으나 처녀 총각들은 신경 쓰지 않고 죄다 바닷가 백사장으로 몰려갔다. 한여름에 왕도는 텅텅 비고 왕궁에만 사람이 남은 것 같았다. 왕실에서도 곧 휴가를 떠날 계획이었고, 이민호와 혜영이 대화를 나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성 상대를 고를 때 얼굴보다 몸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 같아요.”
“바람직한 현상이야. 얼굴보다는 아무래도 몸이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가능성이 더 크지. 재산이나 수입, 교육수준은 전혀 선택 기준이 되지 못하더군.”
여름휴가가 오기 직전에 동네 운동회관이 운동하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것은 현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영은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몸을 만드는 운동이 각광을 받았다.
운동회관은 청춘남녀들이 사귀는 만남의 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연애와 결혼을 달리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첫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다.
미혼 남녀들은 중고등학교 때 이성을 평가하고 선택하는 연습을 책으로, 혹은 교사나 특별 강사를 통해, 그리고 남녀 혼성 반 편성으로 인해 충분히 배웠다. 최소한 순진하거나 잘 몰라서 평생 후회할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키가 큰 남자가 이성 상대를 선택하는 데에 유리하지 않을까요? 주인님도 키가 무척 크세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야. 청춘남녀들이 상대를 정하기 전에 여러 명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하잖아? 공놀이나 화투놀이 같은 것. 거기서 여자들이 다양한 기준으로 상대방 남자를 선택하는 것 같아.”
아무리 속빈 강정이며 멀대같더라도 처음에는 키 크고 몸 좋은 남자가 여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단순한 남자와 달리 여자들의 이성 선택 기준은 매우 다양하므로 키 작고 마르거나 뚱뚱한 남자들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남자는 그저 예쁘고 착한 여자면 장땡이었고, 가슴이 크거나 애교가 넘치는 것은 착함의 기준 중 하나였다.
“여름 한 철만 반짝 놀면 섭섭하겠지? 놀거리는 역시 축제가 최고야. 지역마다 도시마다 축제를 만들라고 해야겠어. 유명해지면 다른 도시에서도 놀러오게 개최 시기를 분산시켜야겠지.”
“지금도 설과 추석, 단오 같은 명절이 있잖아요?”
“명절은 애들이나 좋지 어른들에게는 사실 고역이잖아?”
“맞아요. 여자들은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일만 하고 애들은 다른 애와 비교당하는 시장 상품이 된다고 들었어요.”
석탄절과 성탄절도 종교적 명절로 공인을 받았다. 특정 종교의 신도가 아니더라도 이런 날에는 모든 백성들이 거의 축제처럼 즐겼다.
“백성들이 잘 먹고 잘 노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아무래도 허망한 것 같아.”
“맞아요. 백성들은 굶주림과 천적의 위협에서 벗어난 애완동물이 아니라 인간이에요. 백성들에게 삶의 목표를 만들어주는 것도 위정자가 할 일인 것 같아요.”
“바로 그거야! 혜영이 말 한 번 잘했다.”
“하지만 어떻게 삶의 목표를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철학자가 필요한 거야. 데카르트 남작은 요즘 뭐하나?”
마침 바로 다음 날 데카르트가 고산국에 온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알현을 신청했다. 이 젊은 철학자는 왕립대학에 다니며 수학과 철학 등 몇 과목을 이수하고 책을 읽는 외에는 저택에 틀어박혀 있다는 보고를 이민호가 꾸준히 받았었다.
“전하! 르네 데카르트 남작 입시이옵니다.”
“들라 하라.”
이민호는 갈릴레오처럼 아침 일찍 만나려 했으나, 데카르트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이불 안에서 몇 시간 동안 뒹굴어야 하는 체질이라고 데카르트의 주치의가 보고해서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갯바위에서 몇 시간 동안 햇볕을 쬐어 체온을 올리는 바다 이구아나가 연상됐다.
공대 출신이었던 이민호는 철학자를 만난다는 사실 자체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안았다. 데카르트는 물론 갈릴레오나 다른 유럽인 학자들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크게 기여한 이민호를 존경했지만 정작 본인은 언제 무식이 드러날까 두려워 조마조마했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황송합니다, 전하. 오전에 입궐을 명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하루쯤은 밤을 새도 상관없습니다.”
“남작의 체질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는 어느 시간에 만나도 상관없으니 남작이 괜히 무리할 것은 없네. 조선말은 유럽 언어와 전혀 다른데도 금방 익히는구먼.”
데카르트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대수학이나 해석기하학, 광학 등 수학과 과학에 끼친 영향이 커서 공대 출신인 이민호도 잘 알고 있었다. 시험 볼 때는 새로운 발견을 해서 교과서에 이름을 남긴 학자들이 미웠지만 지금은 국가에 필요한 훌륭한 인재로 여겼다.
실제 역사에서 데카르트는 1649년 스웨덴 여왕에게 매주 세 번씩 철학 강의를 하기 위해 새벽에 차가운 거리를 걷다가 폐렴에 걸려 죽었다. 이민호는 아무리 국왕 겸 후원자라도 위대한 학자의 시간과 건강을 빼앗을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이틀 전 폭풍이 치는 밤에 잠을 설치다가 꿈 세 가지를 꾸었습니다.”
“오오! 어떤 꿈인가? 필시 남작의 철학을 완성시켜줄지도 모를 위대한 암시가 깃든 꿈일 게야.”
“저는 그렇게 대단한 학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개꿈 같아서 괜히 국왕전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상관없네. 개꿈이면 어떤가? 나도 오랜만에 남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쉬는 셈 치세. 꿈이라고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군. 호위! 궁정 작곡가 선생을 잠시 불러오게.”
데카르트에게서 꿈이라는 말을 듣고 이민호는 가장 먼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떠올렸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모든 인종이 평등하게 살고 있으며 학교와 언론을 통해 누누이 강조하고 있으므로 굳이 평등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
고산국 백성들은 지금까지 어느 시대의 백성들도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풍족히 누리고 있었다. 정치 분야의 논의도 체제에 대한 변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광범위하고 자유롭게 허용됐다.
먹고 사는 것과 재산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그런 물질적인 것만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데카르트를 환대하고 조만간 그가 낼 철학책을 고대했다.
“전하! 오랜만에 어제곡을 지으신다기에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어서 오게, 작곡가 선생! 핵심적인 구절의 가사와 곡조만 읊을 테니 오선지에 잘 그리게. 첫 곡의 제목은 거위의 꿈이야. 젊은이가 갖가지 고난을 극복하며 끝내 꿈에 다가간다는 것이 주제야.”
“아아! 어제곡은 언제나 명곡입니다. 준비 됐습니다, 전하.”
이민호가 그룹 카니발이 부른 ‘거위의 꿈’에서 높은 음 부분만 띄엄띄엄 나눠서 불렀다. 편곡을 맡은 작곡가가 눈을 빛내면서 오선지에 열심히 받아 적은 다음 차분하게 진행되는 앞부분을 급히 채워 넣었다.
그 다음에는 아바의 ‘I have a dream.’을 콧노래로 곡조와 주요 가사 내용만 전했다. 이민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음치에 가까워서 노래를 직접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창의력은 부족하지만 이론에 몹시 밝은 궁정 작곡가가 이민호가 부르지 않은 앞뒤 부분을 금방 채워 넣었다. 곧 궁정 가수들이 뒤늦게 달려와서 작곡가에게서 악보를 빼앗듯이 들고 곡을 살폈다.
“입 찢어지겠다. 부를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전하! 이런 명곡이 도대체 어떻게 작곡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남녀 가수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더니 잠시 후 이들에게서 천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현대에서 들었던 곡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게 편곡됐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목소리만큼은 최고였다.
데카르트는 아주 짧은 시간에 곡 두 개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직접 관찰하면서 아주 기겁했다. 그런데 노래가 진행될수록 데카르트의 눈길이 궁정 여가수의 얼굴에 고정됐다. 남들이 보기에는 결코 미인이라 하기 어렵고 게다가 사팔뜨기인 여가수였지만 데카르트는 거의 홀린 듯한 눈길이었다. 그 여가수는 소프라노 목소리가 듣기에 아주 좋았기에 궁정 가수로 두고 있었다.
“노래를 잘 들었네. 자! 이제 남작이 꾼 꿈 이야기를 해보게. 혹시 궁정 여가수가 마음에 들면 알현이 끝나고 만나자고 청해보게. 고산국에서는 처녀 총각의 만남을 국가적으로 지원해준다네.”
“예, 예. 아! 아닙니다, 전하! 감정이 이성의 판단을 방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사팔뜨기 소녀를 짝사랑한 적이 있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신체적 특성이 여전히 제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과 이유로 인해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지는 게지. 남작이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철학자이지만 비이성적인 감정 변화가 나타났다 해서 불쾌하게 여길 필요는 없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국왕전하께 해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삶과 앞으로의 여정에서 중요한 지평을 열어준 계기가 될지도 모르기에 전하께 조언을 얻고자 합니다.”
“궁금하니 어서 이야기해보게.”
데카르트는 별 것 아닌 꿈이라고 반복했지만,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괜히 꿈을 설명하기 위해 왕궁으로 달려온 것은 아닐 거라고 이민호는 믿었다. 그래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데카르트를 채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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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질 내용이 있습니다.
같이 연재하려 했는데 20kb가 넘는 바람에 다음 회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