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70화 (819/1,000)

00870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5월에 북미 남해안 지방의 목화밭에서 흑인 노예 남녀 21명이 발견됐다. 이들은 농장주로부터 채찍을 맞아가며 반 년 넘게 중노동에 종사했으며, 썩은 빵을 먹고 헛간에서 자는 등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다가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게 구조를 받았다.

노예 매매 및 사역 혐의로 적발된 농장주 3명은 프랑스 이민자 출신으로서 고산국에서 노예 제도가 금지된 것을 몰랐다고 항변했으나, 여지없이 애팔래치아 산맥의 탄광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다. 노예를 사거나 팔거나, 혹은 강제로 일을 시키면 기본 형량이 강제 노동 10년이었다. 노예를 학대할 경우 그 이상으로 처벌을 받았다.

흑인들은 노예에서 해방됐으나 고향에 돌아가기보다는 북미에 정착하길 원했다. 그래서 흑인들에게 넓은 농지와 함께 정착지원금과 보상금을 듬뿍 안겨주었다. 그리고 흑인들에게서 자식들이 태어나면 음악과 체육 방면으로 교육을 시키라고 권했다.

“노예선이 작년 하반기에 해군과 해안경비대 몰래 들어왔던 모양이야. 어느 나라 배인지 혹시 확인했어?”

“예. 지난 2월 말에 플리머스에 입항한 잉글랜드 범선으로 확인됐어요. 농장주가 국제우편을 통해 잉글랜드에 노예 구매의사를 밝혔던 모양이에요.”

정보국장 미카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에 국제우편제도에 잉글랜드가 임시 가입했는데, 고산국 여객선이 잉글랜드 항구에 입항할 때 우편행낭을 일괄적으로 내려놓는 형식이었다. 프랑스와 달리 우편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잉글랜드에서는 항구도시에서만 우편 이용이 가능했다.

“국제우편이 여전히 구멍이야. 앞으로 마약밀매 같은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을 테니 마약탐지견을 훈련시켜 우편국에 배치하라고 해.”

“예. 육군 군견훈련소와 협조해서 배치할게요. 그런데 밀무역과 밀입국을 막기 위해서 해안경비대 인원과 함선을 늘려야 하지 않나요?”

“밀무역과 밀입국은 당분간 눈감아줘야지. 그리고 아무리 해안경비대를 증강해서 바다를 지켜도 밀입국하려는 자들은 어떻게든 기어들어올 거야.”

누에바 에스파냐, 즉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 밀입국을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었다. 텍사스 레인저와 국경경비대, 그리고 웬만한 나라의 해군보다 강력하다는 미국 해안경비대도 밀입국과 마약밀매를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그럼 불안하잖아요. 고산국은 국경도 못 지킨다고 다른 나라에 우습게 보일 수도 있어요.”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무한정한 자원이 소모돼.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봐야지. 참! 보헤미아 반란에 참가할 나라가 나왔어?”

“신교도 연맹이나 가톨릭 동맹이 아직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어요.”

“덴마크와 스웨덴은 물론 오스만 제국에서도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더더욱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울 거야.”

역사처럼 30년 동안 전쟁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유럽 외 국가로서 유럽 전쟁에 참전할 명분이 부족한 고산국은 좀 더 기다려야 했다.

6월 10일에 가톨릭 군대인 제국군이 보헤미아의 개신교 군대를 상대로 자블라티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양쪽 군대에 파견된 고산국 관전 무관들로부터 시점에 따라 약간 상이한 보고서를 읽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민호는 참모본부 간부들과 함께 이 전투에 대한 평가회를 가졌다.

“제국군 사령관 카렐 보나벤투라 부쿼이 백작이 이번에 꽤나 인상적인 작전을 펼쳤어. 작년에 필젠 전투에서 패한 것은 단순히 병력과 물자 부족 탓이었나?”

“그런 것 같습니다. 필젠에서 패배한 이후 보헤미아 개신교도들이 갑자기 비엔나를 공격한 것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겨울의 혹한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봄부터 제국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국군 사령관 부쿼이 백작, 롱구에발의 카렐 보나벤투라는 플랑드르에서 태어나 평생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해 싸운 직업군인이었다. 이민호는 제국군의 보병방진 배치 방식과 기병의 활약을 자세히 살피며 감탄했다.

“비엔나가 급해지니까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군자금과 병력을 모아서 준 모양이지.”

“부쿼이 백작은 보병과 기병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지휘관인 것 같습니다. 5천 대 3,200으로 싸워서 신교도 군대가 절반이 사상하는 동안 제국군 사상자는 겨우 650명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병력이 우세할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 인명피해가 적게 나는 법이었다. 전력 제곱의 법칙은 해군 함선들끼리 벌이는 해전에서 가장 극명하게 적용되고 지상전과 항공전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기병 전개 방식도 화려하지만 보병도 특이하게 활용했어. 세상에! 적 보병방진을 앞에 두고도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보병방진들을 배치했어. 혹시 두 번째 보병방진을 누가 지휘했는지 조사했나? 이들의 우회기동이 승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아.”

“예. 후방의 보병방진은 이탈리아 의용병들로 구성됐고 연대장은 토르콰토 콘티 중령입니다. 20대 후반의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폴리 공작 로타리오 헤르조그 콘티의 아들입니다.”

“응? 이탈리아 사람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영입할 수 없을까? 작전은 부쿼이 백작이 세웠더라도 방진 운용이란 게 그리 쉬운 게 아닌데 이 사람은 제대로 기동했단 말이야.”

“황공하오나 영입을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국군에 저항하는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저항하지 않는 마을들까지 혹독하게 약탈하는 바람에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럼 할 수 없지. 그건 그렇고, 남의 전쟁을 구경하는 관전무관들이 부럽군.”

“관전무관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하.”

양쪽 군대에 파견한 고산국 관전무관들 중에서 세 명이 죽고 두 명이 부상을 입은 채 포로가 됐다. 포로들은 곧 석방됐으나 유럽의 전쟁은 일본 전국시대처럼 언덕에서 도시락 까먹으며 구경하는 것과 전혀 다른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총탄이 빗발치고 칼날과 창날이 번뜩이는 곳에서도 관전무관들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지 못했다. 그저 상대방 군인들이 고산국 군복을 알아봐주기만을 바랄 뿐이었지만 눈먼 총알과 포탄이 중립국 무관이라 해서 비켜가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중립국 관전무관의 개념이 아직 생소해서 일부 지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유럽 전쟁에 참전할 경우 스위스 용병으로 부족하면 구르카 용병을 추가할 수도 있어. 그런데 두 나라 출신 용병들은 기마술에 젬병이라 문제야. 유럽에는 들판이나 언덕 지형이 많아서 포병만큼 기병이, 특히 총을 쏘는 기병이 필수적이란 말이야.”

“여진이나 몽골 기병은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기병총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유럽에서 기병전에 밀리지 않으려면 고산국 기병이나 최소한 조선 기병 정도는 돼야 합니다.”

“명색이 유목민 기마군단인데 사실 활도 제대로 못 쏘는 놈들이야.”

여진 기병과 몽골 기병은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지만 말 타고 활을 쏠 때 명중률이 심각하게 떨어졌다. 청나라의 전투 교리에서 기사의 유효사거리가 20보로 짧게 규정돼 있고, 조선 사신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작성한 연행록에서도 여진족과 몽골족이 말은 잘 타도 활은 못 쏜다는 묘사가 있다. 명나라도 활을 못 쏘기는 마찬가지라서 임진왜란 때 명군 장수가 조선 환관에게 활쏘기를 시켰다가 감탄하는 실록 기사가 있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 참전한 제국 기병들이 총을 주무기로 활용했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다. 고산국이 유럽 전쟁에 참전하더라도 가급적 용병 부대만 보낼 계획이었는데 유럽 총기병을 상대할 만한 아군 기병이 별로 없었다. 고산국의 보호를 받으며 화약무기를 도입한 토르구트 족도 몽골족의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보병은 용병으로 구성한다 해도 포병과 기병은 역시 고산국 정규군을 파병해야겠습니다.”

“유럽 기병들의 갑주가 너무 다양해서 상대하기 참 곤란한 면이 있어. 같은 나라라도 누구는 전신 갑주를 입고 누구는 흉갑만 입으니까.”

“상관없습니다. 기병총으로 쏘면 다 뚫립니다.”

한때 총과 기사 갑주가 경쟁하면서 총의 구경이 강해질수록 이를 막기 위한 갑옷도 무거워졌다. 그러나 머스킷이 충분히 강화되면서 더 이상 갑옷을 무겁게 만들 수 없어 차라리 방어력을 포기하고 경기병으로 전환되는 추세였다.

“내 말은 기병 전체를 총기병만으로 구성하기 어렵다는 뜻이야. 우리 기병여단 외에 토르구트족에서 기병을 2, 3만 정도 뽑아야겠어.”

“그렇게 많이 파병하실 계획이십니까? 보병은 그 이상으로 동원하실 것 아닙니까?”

“함경북병사 휘하 편제를 봐. 보병이 기병보다 많아야 한다는 법은 없어.”

스위스 용병 1만 이상, 구르카 용병 5천 이상을 보병으로 하고, 고산국 기병 여단과 장갑차 연대 외에 토르구트 기병 2. 3만을 파병군의 전투 부대로 파병하기로 했다. 동유럽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지만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들이 눈치를 보는 단계라서 고산국이 직접 참전할 일은 아직 없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급료가 충분할 경우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시대에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완연하게 말기에 접어들어 염세주의가 팽배한 명나라 관료사회는 물론, 토색질을 지배층의 권리로 여기는 조선 관리들처럼 고산국 일부 공무원들도 뇌물을 밝혔다.

건설과 경제 분야, 경찰과 소방 등 치안 분야는 감사원이 수시로 회계 감사와 암행 감찰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리가 적은 편이었다. 뇌물수수 등 비리는 그 동안 깨끗하다고 알려졌던 교육계에서 오히려 더욱 만연하고 있었다. 자식을 학교에 맡긴 학부모들이 스승을 고발하기 어려운 동양적 문화 탓이었다.

“의무교육제도에 더해 완전 무상 교육이 시행중인 고산국에서 교사가 개인적으로 월사금을 받다니! 대단해.”

이민호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말을 내뱉자 교육국장 최 선생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조선 서당에서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기 위해 훈장에게 지급하는 것과 비슷한 월사금이나 학기를 마칠 때마다 책 떨이 사례를 요구하는 학교 또는 교사들이 이번에 다수 적발됐다. 학부모가 자기 자식을 특별히 잘 봐달라고 교사에게 주는 촌지도 일부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설마 교육계에 비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도 못한 채 방과 후 음악 과외 등에 소요되는 가계 교육비를 조사하는 단순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교육국과 감사원에서 부랴부랴 실사단을 파견해서 증거가 남은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월사금 관행이 국초부터 있었다고 해요. 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제게 죄가 있어요. 저를 벌해주세요.”

최 선생이 편지봉투를 이민호에게 바치고 무릎을 꿇었다. 봉투 안에 든 것은 사직서인 모양이었다.

“무상교육이 시행되는 것을 학부모들이 당연히 알 줄 알고 홍보를 게을리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소. 홍보는 방송과 신문, 잡지를 통해서 할 테니 최 선생이 책임지고 교육계의 비리 문제를 척결하시오. 그래도 교육국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으니 감봉 3개월 처분을 내리겠소.”

“제게 더 큰 벌을 내려주세요, 전하. 그래야 그 동안 비리를 저지른 교사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서 앞으로 비리를 없앨 수 있어요.”

“음. 알겠소. 안타깝지만 가택연금 2년에 처하겠소. 앞으로 2년 동안 출장을 금하고 왕궁에서 모든 일처리를 하시오.”

과다노출로 약식 기소된 섹시한 여성에게 미국 지방법원 판사가 내리는 판결, ‘내 사무실에서 2시간 구금형’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교육계에 만연한 촌지문화와 월사금 등을 강력하게 척결할 수 있었다.

비리에 연루된 교사들은 형법 독직죄(瀆職罪) 항목의 뇌물수수죄를 적용해 최대 형량 3년에 가깝게 선고해도 반발할 수 없었다. 비록 불법으로 징수한 금액이나 촌지 수수액이 얼마 안 되더라도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는 미래에 대한 범죄이기에 중한 처벌을 내렸다.

============================ 작품 후기 ============================

다른 부분으로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0